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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MBC' 수업 방식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자극적인 영상에 길들여진 요즘 아이들에게 교실의 칠판과 높낮이 없이 밋밋하기만 한 교사의 강의는 하품만 나오게 할 뿐이다. 참고로 'MBC' 수업이란, 입(Mouth)과 칠판(Blackboard), 분필(Chalk)을 뜻하는 영어의 앞글자를 이어 붙인 것으로, 고루한 옛 수업 방식을 조롱할 때 쓰는 표현이다.

한때 주목을 받았던 파워포인트조차 식상하다며 거들떠보지도 않는 마당이니, 수업시간 아이들의 눈과 귀를 붙잡아두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아무리 의미있고 내실있는 수업이라도 재미가 없으면 애써 하나 마나다. 아이들은 단 1분도 기다려주는 법이 없어, 수업이 웬만한 TV의 예능 프로그램처럼 자극적이지 않으면 눈과 귀를 닫은 채 바로 책상에 엎드려버린다.

수업 중 의미와 재미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한 나름의 최대 공약수는 영상물을 활용하는 것이다. 잘만 하면 수업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적어도 잠시나마 아이들의 떨군 고개를 일으켜 세우고 감긴 눈을 뜨게 하자면 적어도 지금까진 그만한 게 없다. 인터넷에서 관련 영상을 검색하는 게 수업 준비를 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일이 된 이유다.

교과서보다 나은 다큐, 아이들도 졸지 않았다

 지난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총 100부작 특집 다큐멘터리로 MBC에서 방영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시리즈는 한국사 수업에 있어서 교과서 다음 가는 최고의 '부교재'다.
 지난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총 100부작 특집 다큐멘터리로 MBC에서 방영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시리즈는 한국사 수업에 있어서 교과서 다음 가는 최고의 '부교재'다.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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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도 지난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총 100부작 특집 다큐멘터리로 MBC에서 방영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시리즈는 한국사 수업에 있어서 교과서 다음 가는 최고의 '부교재'다. 아이들의 호응 역시 좋아 굳이 편집해 쓰지 않고 50여 분짜리 영상을 통째로 보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옥에 티라면 용량을 낮춘 영상이다 보니 화질이 다소 떨어진다는 것뿐이다.

특히 자기 검열하듯 여전히 조심스러운 현대사 부분을 수업하는 데는 열 교과서 부럽지 않을 만큼 알찬 내용을 담고 있다. 교과서에서는 거두절미하듯 소략하게 다룬 내용을 영상을 통해 앞뒤 맥락을 이어 꼼꼼하게 들려주니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도 제격이다. 영상을 통해 본 것과 교과서의 내용을 서로 비교해 보는 아이들이 있을 정도로 교육적 효과는 이미 검증됐다.

아이들에게 파란만장했던 우리 현대사를 가르쳐준 진짜 스승인 셈이다. 친일파 문제부터, 제주 4.3 항쟁과 반민특위, 한국전쟁과 보도연맹 사건, 10.26 사태와 전두환 정권의 3S 정책에 이르기까지, MBC 특별 기획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아니었다면 가르치기도 배우기도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들조차 이를 두고 우리나라 최고의 현대사 영상 기록이라고 추켜세웠다.

지난 10월 26일에도, 학급 자율 활동 시간을 빌어 10.26 사태를 주제로 다룬 편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한국사 교사로서, 학사일정에 차질이 없다면 가급적 날짜에 맞춘 역사 다큐멘터리를 찾아 자료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무릇 역사가 망각에 맞선 기억의 투쟁이라고 할 때, 1년 중 하루하루에 담긴 역사적 의미를 찾아 기억하는 행위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웬만큼 재미있는 영화가 아니면 대개 채 10분도 버티지 못하고 고꾸라지기 일쑤인데, 조는 경우가 별로 없을 정도로 아이들의 눈빛은 초롱초롱 빛났다. 38년 전 오늘, 심복이었던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박정희 전 대통령이 피격 사망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아이는 많지 않았지만, 시신조차 수습되기 전의 당시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영상에 자못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PD들의 소명의식과 헌신적 노력은 생존자들의 증언을 이끌어냈고, 10.26 사태에 대해 묻히고 왜곡되었던 사실들을 한 꺼풀씩 벗겨냈다. 몇몇 아이들은 자신이 알고 있던 내용과 너무나 다르다면서, 사료를 통해 정확한 진실이 무엇인지 따져볼 작정이라며 다짐하기도 했다. 지금껏 누구에게도 들을 수 없었고, 교과서에서도 배울 수 없었던 진실에 한 발 다가선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기실 교과서 내용만으로 10.26 사태를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교과서의 마치 부록처럼 맨 뒤에 있는 현대사 내용 자체가 소략한 터라 더 바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참고로 현행 한국사 교과서 속 10.26 사태와 관련된 서술은 달랑 두 문장이다. 더욱이 단순한 권력 갈등이 주요한 원인인 양 묘사되어 있어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참고로 한 교과서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본다.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에서 유신 체제에 저항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발생하였고, 여기에 시민이 동참하면서 시위가 확산되었다. 이 사건의 처리 방법을 두고 권력자들 간에 갈등이 생겼는데, 이 과정에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하며 유신 체제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10.26 사태).'

영상 시청이 끝난 뒤 서로 간단히 소감을 나누는 시간, 한 아이가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방금 본 영상의 화면에 'MBC 특별 기획'이라는 글귀가 보이던데, 그 MBC가 지금의 MBC랑 같은 방송사인가요? 설마 MBC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죽인 김재규를 재평가하는 이런 민감한 내용을 공공연히 방송으로 내보낼 리는 없잖아요."

'만나면 좋은 친구'는 '어용방송의 대명사'가 됐다

MBC 조합원 "김장겸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즉각 퇴진하라" 총파업 투쟁 46일째인 전국언론노동조합 MBC 본부 소속 조합원들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방송문화진흥회 앞에서 MBC 정상화를 촉구하며 김장겸 사장 해임과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 등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 MBC 조합원 "김장겸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즉각 퇴진하라" 총파업 투쟁 46일째인 전국언론노동조합 MBC 본부 소속 조합원들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방송문화진흥회 앞에서 MBC 정상화를 촉구하며 김장겸 사장 해임과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 등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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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MBC는 어용방송의 대명사다. 지금까지도 영문 이니셜을 따서 '명박씨'를 위한 방송이라며 키득거린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 사장으로 임명된 뒤, 정권 보위를 자처하며 양심적인 기자들을 눈엣가시로 여겨 내쫓았으니 그들의 조롱은 차라리 촌철살인의 비유다. 한 아이는 TV에 죽고 못 사는 그의 부모님조차 MBC는 전혀 보지 않는다며, 이미 '유령방송'이 됐다고 말했다. 방송사로서의 수명이 끝났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아이들은 대개 2000년생이니 1999년 첫 방송을 시작했을 땐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 국민들의 사랑과 지지를 독차지하던 MBC의 화려했던 시절을 그들이 알 리가 없다. 사실 그 시절 <9시 뉴스데스크>는 웬만한 일일 드라마보다 시청률이 높았고, MBC 뉴스를 진행하는 앵커쯤 되면 유명 연예인들 버금갈 만큼 대중적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부처의 장관 이름은 몰라도 MBC 앵커의 이름은 줄줄 꿰었다.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만이 소년소녀 가장마냥 MBC를 먹여 살리고 있다는 조롱도 이어졌다. 심지어 <무한도전>이 진짜 MBC에서 제작한 것인지를 반문하는 아이도 있었다. 요즘엔 주중이고 주말이고 재방송만 종일 틀어주니 그나마 <무한도전>에 대한 애정마저 식었다면서, 방송사로서 MBC는 역할과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선언하듯 말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 있어 대통령만큼이나 유명한 언론인인 손석희 <JTBC 뉴스룸> 앵커가 MBC 출신이라는 사실에 '깜놀'했다. MBC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PD 수첩> 등의 주옥같은 프로그램을 제작했다는 사실보다도 훨씬 더 놀라워했다. 이런 '상식'조차 몰랐을까 싶지만, 그가 내쫓겼을 때 아이들은 고작 초등학교 1~2학년이었으니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아이들 중에 장래에 기자나 언론인이 되고 싶다는 경우가 최근 부쩍 늘었는데, 그들에게 이유를 물으면 십중팔구 손석희 앵커를 롤 모델로 삼고 있다는 말이 뒤따라온다. 아이들은 온갖 파렴치한 짓을 서슴지 않아온 MBC가 우리 사회의 존경받는 언론인으로서 그를 키워준 곳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그를 떠올릴수록 MBC의 몰락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것이다.

아이들끼리 수군대는 TV 채널에 관한 '공식'이 있다. '뉴스는 JTBC, 예능은 tvN, 스포츠는 SPOTV'라는 것. 어느 누구도 공영방송인 KBS와 MBC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아직 지상파로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생명을 유지하고는 있으나, 적어도 아이들에게 KBS와 MBC는 편파적인 막말 방송이라며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종편보다 존재감이 없는 방송으로 전락해버렸다.

부러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보여준 건 아이들에게 10.26 사태라는 현대사를 알려줄 목적이었는데, 되레 MBC 방송의 역사에 대한 성토장이 되고 말았다. 멀쩡하던 MBC는 급전직하 망가졌고, '명박씨' 방송으로 전락한 게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이들 모두 알아버렸다. 방송이 정권의 홍보 수단으로 전락할 때 어떻게 되는지를 분명히 깨닫게 된 것이다.

아이들은 모두 MBC의 파업을 지지한다고 했으나, 과연 존재감을 상실한 MBC가 과거의 '영화'를 되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신뢰는 무너지긴 쉬워도, 다시 쌓기는 수십 배 어렵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얼마 안 있어 성인이 되는 2000년생 아이들에게 MBC는 과연 그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만나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방송독립 연대파업 출정식’이 파업중인 언론노조 MBC본부와 KBS본부 조합원들을 비롯한 언론노조 조합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지난 9월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방송독립 연대파업 출정식’이 파업중인 언론노조 MBC본부와 KBS본부 조합원들을 비롯한 언론노조 조합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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