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작년 8월 우리나라 평균 기온은 30도였다. 15년도 8월 평균 기온이 26도였던 것에 비해 4도나 높았다. 푹푹 찌는 한증막 같은 열대야에 밤잠을 설쳤던 작년 여름 우리 가족은 에어컨없이 여름을 났다.

지구를 위해 에어컨을 사용 안 한 건 아니고 새로 이사 간 집에 문제가 있어 6개월 만에 다시 이사를 결정했는데, 에어컨 설치비가 아까워서 사용하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나는 한여름에 어린이집을 다니지 않는 4살 남자아이와 선풍기만 가지고 여름을 보내는 일은 체력전이었다.

아침밥을 먹고 태양이 뜨거워지기 전에 집을 나선다. 연간 회원을 끊어 놓은 20분 거리 놀이 공원에 주 3회 정도 갔다. 에어컨 빵빵하게 나오는 실내 놀이터도 있고, 야외 놀이공원에서 땀을 쭉 빼면 그날은 무조건 숙면이었다. 작년 여름 7, 8월에는 실내외를 가리지 않고 돌아다녔다. 밖을 떠돌다 해가 질 무렵 집으로 돌아와 목욕하고 땀이 나기 전에 자리에 누웠다.

기록적인 폭염이 있었던 작년 여름 누진세 때문에 전기세 폭탄을 맞은 집들이 많았다. 우리 집은 에어컨을 사용하지 않아서 다행히 전기세는 적게 나왔지만, 누진세를 비롯한 전기요금 제도 문제와 해마다 반복되는 전력난으로 인한 블랙아웃 문제는 왜 일어나는지 궁금했다. 최근 공론화 과정을 거쳐 신고리 5, 6호기 건설 재개가 결정되었는데, 정말 원전을 새로 지어야 할 만큼 우리나라 전력 공급에 문제가 있는 걸까?

전력난은 공급보다 수요가 많아서 생기는 문제이다. 13년도에 방송된 KBS '시사기획 창'에서 보도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1인당 주택 전력 소비량은 OECD 국가 평균 50%에도 미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산업용 소비량은 OECD 평균 2배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정용 전력소비는 전체 전력에 14% 밖에 되지 않는다. 반면 산업용은 53%를 차지하고 있다.

해마다 발생되는 전력난은 우리가 에너지를 덜 아껴서가 아니다(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절약은 필요하다). 산업용 전력이 문제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산업을 발전시킨다는 명목 하에 기업 중심의 공급 위주 에너지 정책을 써왔다. 국민들에게는 누진세를 책정해 비싼 전기료를 거두면서, 기업에는 전기를 원가 이하로 공급했다.

더불어민주당 어기구 국회의원(충남 당진시)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2012~2016년 산업용 경부하 전력 매출손익' 자료를 제출받아 분석한 결과 전체 산업용 전기 중 21%를 차지하고 있는 상위 10대 기업은 심야 시간 전기를 싸게 공급받아 5년 간 1조 659억원이 넘는 혜택을 받았다. 이는 한전 손실금 중 56%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여기 이 그림책을 한번 보자.

오노 미유키 <빛의 용>
 오노 미유키 <빛의 용>
ⓒ 봄나무

관련사진보기

작은 마을 임금님이 먼 마을에 가서 '빛을 내는 용'을 가지고 왔다. 대단한 박사님이 발명한 마법의 생물인 용은 특별한 돌을 먹으면 일곱 가지 무지개 색 빛을 뿜어냈다. 그 빛이 있으면 밤이 낮처럼 밝아지고, 추운 겨울도 봄처럼 따뜻해져 공장에서 더 많은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했다. 작은 마을 임금님은 더욱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거라고 말하며 이 용이 우리의 '신'이라고 했다.

곧 마을 뒤편에 용이 사는 오두막이 세워지고 사람들은 매일 용이 뿜어내는 빛을 받으러왔다. 마을은 활기에 넘쳤고 모두 용을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용은 무서운 생물이고 용이 소란을 피우면 마을이 모두 쑥대밭이 된다는 소문에 사람들은 싸우기 시작했다. 용이 필요하다는 쪽과 쫓아내야 한다는 사람들은 매일 싸우기만 했다.

어느 날 용의 오두막에서 괴로운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임금님은 용에게 더 많은 돌을 먹이려고 했고, 장사꾼은 용의 배를 발로 찼다. 그날 밤 마을에 폭풍우가 몰려왔고 용이 사는 오두막에 번개가 떨어져 용의 배가 터지고 말았다. 용의 배에서 흘러나온 독이 마을을 삼키기 시작했다. 빛의 용은 그 후로 더는 움직이지 않았고, 용이 흘린 독이 퍼져 마을 사람들은 이사를 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빛으로 가득했던 마을은 슬픔으로 가득찼다. 아빠는 말씀하셨다.

"사람이 잘 다룰 수 없는 것을 억지로 만들어 내면 큰 탈이 나는 법이란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자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된 <빛의 용> 그림책 내용이다. 그동안 빛의 용이 내뿜은 일곱색깔 무지개 빛 덕분에 우리는 눈부신 산업발전을 이루어왔다.

기업들은 지금까지 값싼 전기를 공급받아 배를 불려왔고, 전력난이 우려되면 원전을 짓거나 화력발전소를 세우는 공급을 늘리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왔다. 빛을 내는 용에게 자꾸 돌만 먹이려 했다. 그러나 지금은 배가 아픈 용이 신음하는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데, 배를 발로 자꾸 차는 행위인 원전 추가 건설을 결정했다. 용의 배가 언제 터질지 알 수 없다.

탈원전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 중 원전이 없으면 전기 공급에 차질이 생긴다는 것과 전기요금이 인상된다는 의견이 있다. 이 두 가지 문제는 합리적인 전기요금 개편과 수요조절로 해결해야한다. 수요를 조절하지 않고 계속해서 공급을 늘리는 건 언발에 오줌을 누는 일이다. 기업들은 우리나라 산업을 위해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하다고 주장한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를 권고한 19일 오전 탈핵부산시민연대와 신고리 5?6호기백지화부산시민운동본부는 이번 결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부산시청 광장에서 개최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를 권고한 19일 오전 탈핵부산시민연대와 신고리 5?6호기백지화부산시민운동본부는 이번 결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부산시청 광장에서 개최했다.
ⓒ 정민규

관련사진보기


값싼 전기를 공급받아 일으킨 산업 이익이 누구에게 돌아가며, 국가 전력난을 일으키는 산업 발전이 유의미한 일인지 의문이다. 에어컨 없이 여름을 보내는 건 상상도 못 했는데, 우리 아이는 작년 여름 땀띠 하나 나지 않고 선풍기 2대로 여름을 났다. 산업용 전기료를 인상하면 기업들이 이익을 내기 위해 알아서 전기를 아끼는 방법을 강구할 것이다.

우리 나라는 현재 운영 중인 원전만으로도 국토면적 대비 원전 개수와 설비용량이 가장 높은 수준으로, 신고리 5·6호기가 추가되면 원전 10기가 한곳에 위치하게 되고, 밀집된 원전으로 사고 발생 위험이 가중된다. 지난 경주 지진으로 원전 안전에 대한 우려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이때 신고리 5, 6호기가 추가로 건설되는 것이다.

원전은 결코 싼 전기가 아니다. 원전 폐쇄 시 드는 비용과 고준위 핵폐기물은 무려 10만 년 이상 안전하게 보관해야 하는 점을 생각할 때 비싸고 위험한 에너지다. <빛의 용> 그림책 속 아버지는 "사람이 잘 다룰 수 없는 것을 억지로 만들어 내면 큰 탈이 나는 법이란다"고 말했다. 원전 폐쇄 기술도 없는 우리나라에서 자꾸만 원전을 추가로 건설하는 일을 꼭 해야 하는 일인지 두려운 마음이 든다.


빛의 용

오노 미유키 글, 히다카 쿄코 그림, 봄나무(2016)


태그:#빛의용, #신고리5,6호기, #탈원전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