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심상정 의원실

관련사진보기


우리나라 시중은행들에는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아닌 새로운 계급이 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이를 '2등 정규직'이라 명명했다. 이에 해당하는 행원 약 90%가 여성이었다.

어떤 은행의 2등 정규직은 정규직들과 비슷한 일을 하지만 급여는 절반 밖에 받지 못한다. 또 어떤 은행에서 10년 동안 2등 정규직으로 근무한 행원 가운데 승진을 원하는 사람은 다시 복잡한 면접을 거쳐 신입행원이 돼야 한다. 지난 23일 국회에서 열린 기업은행 국정감사에서 심 의원은 "흘리는 땀만큼 동등하게 보장돼야 한다"며 은행들의 행태를 비판했다.

기업은행 2등 정규직이 정규직 과장되려면 최소 16년

심 의원은 2등 정규직이 받는 차별 중에서도 승진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생각했다. 기업은행의 경우 2등 정규직은 지난 9월 기준 모두 3700여 명인데 이 중 87%가 여성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승진 통로는 바늘구멍만큼 좁았다. 심 의원에 따르면 기업은행의 정규직은 계장, 대리, 과장, 차장, 부지점장, 지점장 순으로 승진하게 되는데, 과장급으로 가는데 6년이 소요된다. 하지만 2등 정규직은 달랐다. 심 의원은 국감 때 김도진 기업은행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2등 정규직은 어떻게 해야 되냐. 계장에서 대리 가는 데 5년, 대리에서 과장 가는 데 5년. 그리고 여기서 탁 막혀있습니다. 천정이 탁 막혀있어요. 더 승진하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면, 여기서 밑에 정규직의 계장으로 와가지고 신입생처럼 와서 다시 올라가야 되는 거예요. 은행장님, 이 2등 정규직은 도대체 무슨 잘못이 있어서 이렇게 돼야 하는 겁니까?"

정규직들은 6년이면 과장이 되는 반면, 2등 정규직은 10년이나 지나야 과장을 달 수 있다. 여기서 차장이 되려면 다시 실적경쟁, 면접, 1박2일 면접, 임원면접 등 사실상의 신규채용 절차를 거쳐 정규직 계장이 된 다음 승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2등 정규직으로 들어온 행원이 정규직 과장을 다는데 최소 16년이 걸린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첫 여성은행장을 탄생시킨, 여성 임원의 수도 가장 많은 은행이 기업은행이지만 이곳의 대다수 여성 직원들은 1970·80년대와 다름없는 처지에 놓여있다고 심 의원은 지적했다.

신한은행 2등 정규직 연봉은 정규직의 반토막

더불어 심상정 의원실은 신한·우리·KEB하나·KB국민·기업은행 등 국내 시중은행들의 2등 정규직 현황을 분석한 결과도 공개했다. 2등 정규직들이 사실상 정규직과 비슷한 업무를 수행함에도 주요 근로조건에서 차별 받고 있다는 것이 심 의원실의 설명이다. 특히 신한은행의 경우 임금격차가 구체적 수치로 나타나기도 했다.

의원실에 따르면 신한은행의 부행장급 여성비율은 0.0%인데 반해 2등 정규직에 해당하는 'RS(Retail Service)직군'의 여성비율은 99.3%(2398명 중 2382명)였다. RS직군은 지난 2011년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일환으로 신한은행이 도입한 것인데, 이 직급의 평균연봉은 정규직 행원의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정규직 행원·대리급은 평균 6200만 원의 연봉을 받았지만 RS직군 행원은 3200만 원을 받았다. 또 정규직 대리가 과장이 되는 데는 최소 7~9년이 걸리지만 RS직권 행원은 최소 13년은 근무해야 과장으로 승진할 수 있는 구조였다.

1990년대 남녀차별 이유로 사라진 '여행원제도' 부활?

RS직군은 신한은행에만 있지만 사실 다른 은행들도 비슷한 직급을 마련해두고 있다는 것이 심상정 의원실 쪽 설명이다. 은행들이 지난 2007년부터 선도적으로 정규직화를 시행하는 대신 고객과 대면하는 업무를 맡던 비정규직을 기존 정규직과 합치지 않고, 별도 직급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개인금융서비스직군', '행원B/6급' 등 은행마다 그 이름은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사실상 무기계약직, '2등 정규직'이다.

이에 대해 심 의원은 기업은행 국정감사 당시 "(과거) 여성행원 제도가 문제가 돼서 정규직화 했는데, (실상은) 다시 여성차별을 제도화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1990년대 초 남녀차별이라는 이유로 사라진 '여행원 제도'가 사실상 2등 정규직이라는 형태로 되살아나고 있다는 얘기다. 2등 정규직의 90% 가량이 여성이라는 점에 심 의원은 주목한 것이다.

이런 지적에도 김 행장이 "(기획재정부에 관련 사항을) 충분히 전달했다"며 "준정규직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함에 따라 일손을 덜고자 하는 것"이라고 답하자 심 의원은 이를 다시 바로잡았다. 그는 "일손을 덜고 안 덜고가 아니라, 똑같은 사람으로서의 문제"라며 "이번에 반드시 해결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태그:#기업은행, #신한은행, #심상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