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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눈을 앗아간 가해자들은 감옥에 가지 않았다. (최종 판결 결과)
 청년의 눈을 앗아간 가해자들은 감옥에 가지 않았다. (최종 판결 결과)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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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의 눈을 멀게 한 가해자들의 형사재판이 모두 끝났다. 가해자들은 모두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받았고, 그 누구도 감옥에 가지 않았다.

2016년 2월 삼성전자·LG전자 스마트폰 부품 제조 하청업체에서 일어난 메틸알코올(메탄올) 중독 실명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자, 우리 사회는 충격을 받았다. 특히 2015~2016년 파견노동자로 일한 20·30대 청년 6명의 실명을 두고, 불법 파견과 산업 재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회적인 요구가 커졌다.

하지만 가해자들의 형사재판에서 단죄나 엄벌은 없었다. 1심 재판이 끝난 뒤 3명의 사용사업주(하청업체 운영자)와 5명의 파견사업주(파견업체 대표) 가운데 형량이 무겁다며 항소장을 제출한 가해자는 한 명도 없었다. 모두 가벼운 처벌을 받아들인 것이다.

검찰은 유일하게 덕용ENG 운영자 조아무개씨의 1심 판결(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에 불복해 항소했다. 조씨의 공장에서는 2015년 2월과 12월 각각 김영신씨(현재 29세)와 중국동포 양아무개씨(현재 26세)가 메탄올에 시력을 잃었다. 인천지방법원 2심 재판부는 지난 20일 판결을 내리면서 조씨의 형량이 가벼워 부당하다는 검찰의 항소를 기각했다.

혹시 대법원에서 다시 재판이 이뤄지면, 그때는 단죄가 이뤄지지 않을까. 그럴 가능성은 없다. 대법원은 단순히 형량을 높여달라는 검찰의 상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기각한다. 결국 조씨의 판결은 원심 그대로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인천지방검찰청 관계자는 "특별한 상황이 없다면, 상고할 이유가 없다"라고 밝혔다.

이번에 마무리되는 메탄올 실명 사건 형사재판에서도, 산업재해를 일으킨 기업주에 관대한 판결이 또 다시 반복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재판부는 왜 엄벌에 처하지 않았을까

조씨가 노동자의 안전에 조금만 신경을 쓰고 노동자들을 불법파견으로 데려와 부리지 않았다면,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1심 재판부는 조씨가 산업안전보건법과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도 마찬가지다.

2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근로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져야할 지위에 있는 피고인이 그러한 의무를 다하지 못하여 이 사건 근로자들이 실명하는 중한 상해까지 입게 된 점을 볼 때, 그 결과가 매우 중하여 이를 엄벌에 처할 필요성이 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어지는 판결문에서 조씨에게 유리한 양형 사유를 나열했다.

'그러나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면서 반성하고 있는 점, 동종 범행전력이 없는 점, 당심에 이르러 피해 근로자 양○○에게 금원을 지급하고 합의한 점, 피해 근로자들이 다행히 모두 산재보험 혜택을 받고 있는 점 (중략) 여러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원심이 선고한 형이 너무 가벼워 부당하다고 보이지는 아니하므로, 검사의 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지난 6월 8일 메탄올 실명 사건 피해자 김영신씨가 경기도 부천시 옛 덕용ENG 공장을 살펴보고 있다. 현재 덕용ENG는 폐업했고, 그 자리에서 다른 업체가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6월 8일 메탄올 실명 사건 피해자 김영신씨가 경기도 부천시 옛 덕용ENG 공장을 살펴보고 있다. 현재 덕용ENG는 폐업했고, 그 자리에서 다른 업체가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 민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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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씨에게 유리하게 반영된 양형사유는 사실과 거리가 있다. 1, 2심 재판부는 일관되게 조씨가 반성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조씨는 양씨가 시력을 잃자 "메탄올을 마시고 자살을 시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2월 조씨가 피의자로서 중부지방고용노동청에서 조사를 받을 때도 "양씨 사건 관련해서는 아직 의구심이 남아 있다", "앞선 회사에서 왜 하루밖에 일을 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든다"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어떤 이유로 그가 진정성 있는 반성을 하고 있다고 판단했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조씨가 양씨와 합의를 한 것도 뜯어보면, 조씨에게 유리한 영향사유로 삼기 힘들다. 양씨 가족은 양씨가 스스로 메탄올을 마셨다는 조씨의 주장에 분통을 터트렸다. 양씨의 누나는 "처음 합의를 하자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 돈 안 받을 테니 조씨가 감옥에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하지만 조씨는 재판에서 가벼운 처벌을 받았고,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이겨도 조씨 명의의 재산이 없는 상태에서 배상을 받기 어렵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다른 판단을 할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피해자인 김영신씨는 조씨의 합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김영신씨는 조씨 쪽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조씨 쪽은 이러한 청구를 기각해달라는 의견을 재판부에 냈다. 김영신씨는 "조씨가 진심어린 사과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왜 항소를 하지 않았을까

검찰 역시 산업재해 기업주 처벌에 관대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검찰은 가해자 8명의 1심 판결 가운데, 조씨 판결을 제외하고는 항소를 하지 않았다.

법원이 잘못 판단한 내용을 두고, 검찰이 항소를 하지 않아 이를 바로잡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2016년 1월과 2월 전정훈씨(현재 35세), 이진희씨(현재 29세)의 시력을 앗아간 BK테크 대표 안아무개씨는 지난 6월 인천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과 80시간의 사회봉사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조씨에게 실형을 선고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면서 "피고인은 이 사건 범행 이전까지 메틸알코올의 위험성에 대하여 온전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 아니한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메탄올 실명 사건 피해자들이 파견·사용사업주와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피고 대한민국은 안씨가 메탄올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다는 준비서면을 재판부에 낸 바 있다.

준비서면에 따르면,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소속 근로감독관들은 2016년 2월 BK테크를 찾아 안씨에게 메탄올을 사용하고 있는지 물었다. 안씨는 메탄올을 숨겨놓은 채 "메탄올 사고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고, 사용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씨는 근로감독관들을 속이고 메탄올을 썼고, 이후 이진희씨는 시력을 잃었다. 검찰의 항소로 2심 재판이 열렸다면, 판결문 내용은 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 사회는 위험에 내몰리는 사람을 구할 수 있을까"

메탄올 실명 피해자들의 소송을 돕고 있는 김종보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는 "'노동자가 다치면 내가 감옥간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산업안전에 대한 법제도가 실질적인 효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메탄올 실명 사건에서 드러나듯, 우리나라 노동 형법은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 아래 유명무실해졌다"라고 비판했다.

박혜영 노무사(노동건강연대)는 "법원과 우리 사회가 메탄올 실명 사건을 아무것도 아닌 사건이었던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고, 피해 입은 사람들만 암흑에서 살아야 된다는 것을 최종적으로 확인한 느낌이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위험하고 힘든 일에 내몰리는 사람들을 구해낼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4~6월 노동건강연대와 함께 삼성·LG전자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메탄올 중독으로 시력을 잃은 파견노동자 청년 6명을 조명하는 '누가 청년의 눈을 멀게 했나' 기획 기사 시리즈를 내놓았다. 다음 스토리펀딩에도 연재해 1745만 원의 후원금을 모았다.

[클릭] '누가 청년의 눈을 멀게 했나' 기획기사 및 관련보도 모아보기



태그:#누가 청년의 눈을 멀게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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