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스포츠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떨어지지만 한국 프로스포츠 역사를 이야기할 때 절대 빼놓지 말아야 할 팀이 바로 여자프로농구의 신한은행 에스버드다. 신한은행은 2007년 겨울리그를 시작으로 2011-2012 시즌까지 무려 6회 연속 통합우승이라는 프로 스포츠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던 대기록을 작성했다. 농구팬들은 전주원,정선민,하은주,최윤아,김단비 등 여자농구의 스타들이 한 곳에 모인 신한은행을 '레알신한'이라 불렀다.

하지만 오늘날 '왕조'라는 이름을 달고 신한은행의 아성을 넘보는 팀은 우리은행 위비가 됐다. 2012-2013 시즌 챔피언 결정전에서 신한은행 출신 위성우 감독과 전주원 코치가 이끄는 우리은행에게 패하며 7연패가 무산된 신한은행은 주전 선수들의 연이은 부상과 함께 성적이 점점 떨어졌다. 급기야 2015-2016 시즌과 2016-2017 시즌에는 두 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신한은행은 이번 시즌 모기업이 타이틀 스폰서를 맡았다. 삼성생명이 타이틀 스폰서를 맡았던 지난 시즌 삼성생명 블루밍스는 챔피언 결정전까지 진출해 준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구단에서도 이번 시즌 에스버드에게 최소 지난 시즌의 삼성생명에 버금가는 성적을 기대하고 있다는 뜻이다. 신기성 감독을 비롯한 신한은행 선수들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김단비 5관왕 했지만... 극복하지 못한 '원맨팀'의 한계

 이제 김단비가 없는 신한은행은 감히 상상하기 조차 힘들다.

이제 김단비가 없는 신한은행은 감히 상상하기 조차 힘들다. ⓒ 신한은행 에스버드


신한은행은 전주원이 출산으로 잠정 은퇴를 했던 2005년 겨울리그 이후 무려 12 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여자프로농구의 플레이오프 진출 확률이 타 종목보다 높다는 점을 고려해도 대단히 오랜 기간 꾸준한 성적을 유지한 것이다. 물론 그 사이 통합 6연패를 포함해 7번이나 우승을 차지하며 여자프로농구의 가장 화려한 왕조시대를 열었음은 물론이다. 한마디로 그 시절 신한은행이 없는 WKBL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런 신한은행이 2015-2016 시즌13승22패로 정규리그 5위에 머물며 13 시즌, 햇수로 11년 만에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됐다. 구단 창단 최초로 6연패의 늪에 빠지는 낯선 경험을 하기도 했다. 6시즌 연속 통합 우승을 차지하고 이후로도 3년 연속 정규리그 준우승을 차지한 팀이 단숨에 최하위권으로 추락한 것이다. 2014-2015 시즌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했던 신정자와 선수 생활 내내 부상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하은주는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신한은행은 2015-2016 시즌이 끝난 후 현역 시절 '총알 탄 사나이'로 불리던 포인트가드 출신의 신기성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내정했다. 신기성 감독은 김단비를 중심으로 젊고 빠른 농구를 추구하는 색깔로 변신시키려 했다. 대신 골밑을 든든히 하기 위해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는 195cm의 정통센터 아둣 불각을 지명했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와 국내 선수의 호흡은 원활하지 못했고 불각도 기대했던 것 만큼 골밑에서의 지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불각은 8경기 만에 조기 퇴출됐다. 그나마 대체 선수로 합류한 데스티니 윌리엄즈가 14.6득점11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외국인 선수 고민을 덜어 줬다. 하지만 이번엔 가드진이 문제였다. 주전 가드 김규희가 무릎 부상으로 18경기 밖에 소화하지 못했고 2010-2011 시즌 신인왕 출신 윤미지 역시 김규희의 대안이 되지 못했다.

신한은행은 팀 내에서 득점(14.71), 리바운드(6.49개), 어시스트(4.23개), 스틸(1.97개), 블록슛(1.43개), 출전시간(35분5초), 공헌도(984.15) 부문 1위를 휩쓴 에이스 김단비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뛰어난 에이스가 있다 해도 특정 선수에게 의존하는 원맨팀을 상대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결국 신한은행은 KB스타즈와 똑같이 14승21패를 기록하고도 상대전적에서 뒤져 두 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지 못했다.

김단비 의존 줄이고 유망주 키우며 성적도 잡을 수 있을까

 '미녀슈터' 김연주도 어느덧 팀 내에서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노장 선수가 됐다.

'미녀슈터' 김연주도 어느덧 팀 내에서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노장 선수가 됐다. ⓒ 신한은행 에스버드


신한은행은 지난 시즌을 끝으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8강의 주역이자 몇 남지 않은 '레알 신한'의 산 증인 최윤아가 은퇴를 선언했다. 여기에 대체 불가능 에이스 김단비마저 FA자격을 얻었다. 신한은행은 다행히 2억5000만원을 투자해 김단비를 잔류시키는데 성공했다. 만약 김단비마저 다른 팀으로 이적했다면 신한은행은 농구단 운영 여부를 고민해야 했을지 모른다. 그만큼 신한은행에서 김단비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3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있던 신한은행은 지난 시즌 KEB하나은행에서 활약했던 카일라 쏜튼을 지명했다. 지난 시즌 이미 WKBL 무대를 경험했던 쏜튼은 WNBA에서도 댈러스 윙스의 식스맨으로 활약하며 6.8득점 3.3리바운드를 기록했다. 2라운드에서는 '달릴 수 있는 빅맨' 르샨다 그레이를 지명했다.

하지만 신한은행은 시즌이 시작되기 전부터 커다란 악재를 만났다. 무릎 부상 후 재활 과정을 거의 마쳐 가던 주전 가드 김규희의 무릎 부상이 재발한 것. 지난 9월 수술을 받은 김규희는 사실상 시즌 아웃이 유력하다.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윤미지,유승희 등 백업 가드들의 활약이 절실해진 가운데 신기성 감독은 지난 4월 신재영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한 박소영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 시즌 평균 5득점을 넘긴 선수가 단 3명(김단비,곽주영,김연주) 밖에 없다. 이번 시즌에도 이 세 선수는 신한은행의 주축으로 활약할 예정이지만 30세를 훌쩍 넘긴 김연주와 곽주영의 나이를 생각하면 유망주 발굴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특히 박신자컵에서 가능성을 보여준 포워드 김아름과 양지영은 신한은행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번 시즌을 통해 반드시 한 단계 도약해야 한다.

신한은행은 지난 2년 동안 삼성생명이나 KB처럼 우승에 도전해 보지도 못했고 KDB생명이나 하나은행처럼 유망주들을 꾸준히 수집하지도 못했다. 성적을 올리지도, 리빌딩을 완성하지도 못한 사이 '레알 신한'의 주역들은 하나,둘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만약 이번 시즌 별다른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국내 프로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팀이었던 신한은행은 더욱 깊은 흑역사를 겪게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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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프로농구 2017-2018 시즌 프리뷰 신한은행 에스버드 김단비 김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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