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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군 봉산면 화전리에 있는 사면석불(보물 794호)이 불두가 없이 몸통만 남아있다(왼쪽). 1983년 출토돼 국립공주박물관 수장고에 보관 중인 사면석불 불두(오른쪽).
 충남 예산군 봉산면 화전리에 있는 사면석불(보물 794호)이 불두가 없이 몸통만 남아있다(왼쪽). 1983년 출토돼 국립공주박물관 수장고에 보관 중인 사면석불 불두(오른쪽).
ⓒ 무한정보·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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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지명유래 1100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예산사면석불(충남 예산군 봉산면 화전리, 보물 794호) 복원에 관심이 모아질 전망이다.

1400여 년 만고풍상을 견디고 한자리를 지켜 온 사면석불은 발굴당시 출토된 불두(佛頭)와 파편들이 국립공주박물관 수장고에 30년 넘게 보관된 채 복원을 기다리고 있다. <무한정보>는 지난 2004년 11월 29일자 '사면석불 너무 무관심'이란 제목으로 복원의 필요성을 강력히 제기했다. 그리고 13년만이다.

예산군청 문화관광과는 용역을 통해 지난 19일 국립공주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사면석불 불두를 포함한 유물에 대해 정밀실측조사를 진행했다. 향후 재난에 대비한 실측도면을 만들기 위한 작업이지만, 사면석불 복원가능 여부도 검토할 계획이다. 내포문화의 중심에 자리잡은 자랑스런 예산군의 문화재 '사면석불'이 본래 모습을 찾아 국보로 승격될 수 있을지 기대되는 대목이다.

불상연구에 조예가 깊은 미술사학계 석학 최완수(간송미술관) 선생은 '내포의 3불(서산·태안 마애삼존불, 예산 사면석불) 중 예산 사면석불의 주존이 무령왕을 표현한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또한 2004년 12월 2일 공주대에서 열린 첫 국제학술 심포지엄에서 사면석불이 6세기 초(사비시대 538~660년) 제작돼 태안과 서산의마애삼존불 등 백제시대 어느 석불보다 연대가 가장 앞선 것으로 결론지었다.

당시 발표자로 참석했던 정은우(불교미술 전공) 교수도 "전체적 형상을 조형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복원이 필요하다"고 제기했다.

특히 발굴당시 조사가 400여 평으로 제한돼 아쉬웠고, 좀더 너른지역을 발굴하면 가람배치가 나올 가능성과 불두 복원 등을 추후 과제로 남겼다.

지난 19일 예산군이 공주박물관에서 사면석불을 실측조사하고 있다.
 지난 19일 예산군이 공주박물관에서 사면석불을 실측조사하고 있다.
ⓒ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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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석불은 1983년 봉산 화전리 불당골 야산에 묻혀있는 상태로 주민에 의해 발견됐다. 그러나 발굴한지 20년만인 2004년에서야 첫 학술회를 열 만큼 당시 예산군의 문화재에 대한 관심은 부족했다.

오는 2019년 예산지명유래 1100년 기념행사에 맞춰 내포불교문화에 가장 큰 상징이자 걸작으로 평가받는 사면석불의 면목을 찾아주고 국보로 승격시킨다면, 그야말로 예산군의 '면목'이 설 것으로 보인다.

예산군청 문화재팀 담당공무원은 이에 대해 "복원이 꼭 필요한데, 사전준비작업이 중요하다. 일단 11월 중순즈음이면 이번 실측조사를 한 데이터가 나올 것이고, 복원이 가능한지, 불두를 올렸을 때 이질감이 없겠는지 검토작업을 할 것이다. 또 한국불교미술의 석학인 최완수 교수님과 이 분야의 전문가인 윤용혁 교수님의 자문도 들어보고 신중하게 추진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예산군에서 발행되는 <무한정보>에서 취재한 기사입니다.



태그:#사면석불, #내포 3불, #내포문화, #석불,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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