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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형 신고리5·6호기공론화위원장이 20일 오전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 입장이 담긴 대정부 최종권고안을 발표하고 있다. 시민참여단 중 공사 재개는 59.5%로, 공사 중단은 40.5%로 집계됐다.
▲ 신고리5,6호기 공론화위, '공사 재개' 권고 김지형 신고리5·6호기공론화위원장이 20일 오전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 입장이 담긴 대정부 최종권고안을 발표하고 있다. 시민참여단 중 공사 재개는 59.5%로, 공사 중단은 40.5%로 집계됐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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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공사 진행 여부는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문 정부의 대선 공약사안이기도 했던 원전 공사 백지화 정책을 두고 찬반의 입장이 첨예하게 부딪혔다.

이에 정부는 지난 6월 27일 이 사안에 대하여 국민의 뜻을 물어 결정하겠다며 공론화 위원회 구성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7월 24일 김지형 전 대법관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공론화 위원회가 공식적으로 출범하고 그로부터 3개월 뒤인 10월 20일 위원회는 공사 재개라는 최종 권고안을 발표하였다. 문재인 정권의 공약사항과 반대되는 권고안이다. 정부는 이 권고안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하였다.

공론화위원회의 최종 권고안을 두고 지난 3일 동안 각종 언론사에서는 나름대로의 해석과 입장을 내어 놓았다. 대체로 보수 성향의 언론들은 이 결정을 환영하면서도 문재인 정부의 무리했던 공약 사항 이행과 그로 인해 소모적 논쟁의 발생을 이유로 공론화 과정을 비판했다. 반면 진보 성향의 언론들은 이번 공론화 과정을 통한 결정이야 말로 숙의 민주주의 제도의 모범사례로 남을만하다는 긍정적 평가를 내어 놓았다.

양측의 의견을 꼼꼼히 살펴본 필자는 이번 공론화 결정 과정이 우리 사회에 제시하는 보다 근본적 의미가 덜 부각되는 듯하여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시민기자로서 필자 역시 숙의 민주주의에 참여한다는 마음으로 이번 사안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볼 점은 없는지 따져보고자 한다. 따라서 가급적 진보와 보수라는 진영의 논리에서 벗어나 보다 공정한 시각에서 이 사안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에 주목해 보고자 한다.

공론화 과정에 대해 진보와 보수 양측이 부딪히는 3가지 주요 쟁점

본 논의를 보다 풍성하고 엄밀히 하기 위해 먼저 진보와 보수 양측이 부딪혔던 몇 가지 주요 쟁점을 사실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공론화 위원회를 구성하는 8인의 위원 명단에 대한 타당성 문제이다. 공론화 위원 8인은 인문사회•과학기술•조사통계•갈등관리 등 총 네 분야에서 식견을 갖춘 전문가 2명이 각각 선정되어 구성되었다. 그러나 원전의 공사 여부를 따지는 위원 명단에 원전 전문가의 이름이 없다는 사실이 비판받았다.

둘째, 전문적이고 기술적 판단이 요구되는 국가 중대사안에 대해 시민이 결정을 내리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문제이다. 이번 공론화 위원회가 최종 권고안을 내린 근거는 471명의 시민 참여단이 내린 최종 투표 결과이다. 최종 투표 결과는 59.5%의 재개 찬성으로 40.5%를 보인 중단 찬성에 비해 약 19% 차이를 보이며 오차 범위를 훌쩍 넘었다.

그러나 결과 여부를 떠나 국민의 안전 및 경제와 관련된 중대한 문제를 전문가가 아닌 시민참여단에 의한 다수결 방식으로 결정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비판은 제기된다. 사회적 책임이 크게 요구되는 이 기술적 현안에 대한 결정을 시민 손에 맡긴다면 이 일을 진행하는 정권의 정치적 책임의 부담이 줄어들고 심지어 책임소재도 불분명해지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셋째, 공론화 과정을 진행하는 아젠다의 선정 기준이다. 국가의 모든 사안을 다 공론화할수는 없다. 일부 특수한 사안에 대해서만 가능하다. 그렇다면 질문은 과연 어떤 아젠다를 공론화 사안으로 선정할 것인가이다.

분명 최종적으로 사안을 결정하고 발표하는 주체는 국정을 운영하는 정부일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정부는 자신의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고픈 사안에 대해 선별적으로 선택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즉 정부의 정치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 외에도 여러 문제와 비판들이 있지만 위 세 가지 주제는 보수와 진보의 언론에서 자주 언급되었던 주제들인 만큼 이를 중심으로 논의를 이어가고자 한다.

먼저 공론화 위원회 8인의 명단에 원전 전문가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비판은 공론화 방식에 대한 부족한 이해가 아닌가 싶다. 이 공론화의 핵심 이슈는 원전이다. 그렇다면 원전에 대해 객관적 입장을 유지할 수 있는 이들로 위원회를 꾸려야 한다.

그러나 원자력 발전 분야는 그 성격상 소수 전문가 집단이 활동하는 분야이다. 따라서 원전 전문가는 이미 이 주제에 대한 입장이 명확히 전제되어있을 확률이 높다. 그러므로 어떤 정치적 입장이 선점되지 않은 이들이 공정한 입장에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전제가 함축된 본 제도의 취지상 원전 전문가가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것 자체는 큰 문제라 보기 어렵다. 또한 500명의 시민 참여단의 선정 역시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양측이 신뢰할 수 있는 서울대 사회조사연구소가 검증을 진행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 문제 제기는 이번 사안처럼 전문적이고 기술적 판단이 포함되어야만 하는, 즉 국가 경제와 안전에 대한 이슈가 내포된 사안의 경우 시민참여단이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기술성과 전문성이 어떻게 담보될 수 있는가란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 질문은 앞서 언급한 공론화 과정에 대한 두 번째 쟁점이다. .

공론화 과정이 진행된 과정을 살펴보자. 최종 투표가 이루어지기까지 시민참여단은 2박 3일의 합숙교육 및 이러닝 학습 등 본 주제와 관련된 교육 과정은 물론 여러 토론 과정을 거쳤다. 이러한 교육과 토론의 과정에서 원전 공사 찬성측과 반대측의 전문가들은 각자 자신의 입장을 설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설득 작업을 벌였고 자신들의 입장과 정보를 더 잘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국가적 사안이었던 만큼 시민참여단의 관심과 열기는 높았고 교육과 토론의 과정을 거치며 그들은 주제에 대한 사고의 깊이와 넓이를 더해갔다. 기존에 몰랐던 사실을 알고 자신의 편견을 수정한 경우가 많았고, 개중에는 이런 과정을 통해 스스로 입장을 완전히 바꾼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고 한다.

시민 참여단을 설득해야 할 임무를 맡은 전문가 집단 양측 모두가 대체로 설득과정에서  주어진 기회들과 방식에 대한 불공정성을 제기하지 않았다는 점은 눈여겨볼 일이다. 세세히 따지면 흠잡을 것이 없지는 않으나 큰 틀에서 무난했다는 평이다. 그렇다면 비록 시민참여단이 기술성과 전문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으나 그런 자격을 갖춘 이들의 도움을 받아 공정하게 판단에 임했다는 사실이 성립된다.

따라서 이번 최종 투표가 전문성이나 기술성에 대한 고려 없이 이루어졌다는 주장은 힘을 얻기 힘들다. 사실 따지고 보면 모든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국가 사안도 그 결정을 내리는 주체는 여전히 전문가의 도움을 얻는 비전문가인 정치가들이다. 예를 들어 국가의 스포츠 관련 법안을 스포츠 선수가 아닌 국회의원이 스포츠 분야에 종사하거나 이 분야를 잘 아는 이들의 조언과 도움을 받아 마련한다는 점에서 본 사안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마지막으로 어떤 이슈를 공론화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의 문제이다. 이 부분은 여전히 우리에게 생각해볼 숙제를 남겼다. 지난 정부가 어찌되었건 입법절차를 거쳐 결정한 사안에 대해서 새로운 정부가 출범되면서 완전히 백지화 하려 하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묻는 언론이 많다.

5년의 대통령 단임제를 실시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정권이 바뀔 적마다 기존의 정책을 무시하고 새로운 정책을 펴는 것으로 인해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의 정책 시행이 어렵다는 단점을 가진다. 물론 이는 이 제도를 선택하고 있는 나라의 국민이 짊어져야 할 숙명이지만 문제는 입법절차를 거친 여러 사안들에 대해 백지화의 시도를 당연시 하게 된다면 5년임기의 대통령 단임제가 가진 단점이 더욱 극대화 될 위험이 있다.

문재인 정부는 대선 과정에서 신고리 5.6호기 백지화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따라서 문재인의 대통령 당선은 그 공약의 실천을 국민에게 허락받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도 사실이다. 다만 앞으로 대선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경우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기존 입법과정을 거친 정책들에 대해 백지화를 주장한 정책의 실행이 어느 선까지 허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필요하다.

공론화를 위한 아젠다 설정이 올바로 선택되고 활용되면 분명 숙의민주주의 실행에 좋은 길을 열어주겠지만 반대로 정권의 정략적 수단으로 전락할 경우 오히려 실행하지 않은 것만 못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이에 대한 기준과 공정성 담보를 위한 안정 장치들이 반드시 제시되어야 한다.

공론화 과정이 우리에게 보여준 근본적 가치는 바로 이분법의 극복!

지금까지 진보와 보수의 의견이 나뉘는 사안에 대해 정리한 것을 토대로 보다 근본적 주제인 이 과정이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를 주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지금 우리 정치 현실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단 한 가지를 꼽으라면 필자는 단호히 극단적인 이분법이라 생각한다. 이분법은 니 편과 내편 혹은 이쪽은 선이고 저쪽은 악이라 명확히 구분하는 분절적이고 양극화된 사고방식이다. 따라서 나의 의견, 나의 편만이 옳고 상대의 의견 혹은 다른 편은 무조건 틀리다는 고정된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이분법이 오늘날 우리 정치 현실과 국민의 삶을 상당히 왜곡시켜 놓았다. 정당정치를 시행하는 우리 나라 정당들의 정치를 보자. 정당들의 정치 활동을 지켜보면서 종종 정당들에게 일관적이고 포용적인 입장이나 정치 철학이 존재하는지 묻게 되는 경우가 많다.

대화와 토론의 모습보다 늘 니가 옳다 내가 옳다 대립하며 늘 상대에게 날카로운 각을 세운다. 어찌보면  그들의 입장이란 다름 아니라 상대 당이 정책이나 입장을 내어 놓으면 그에 반대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그들의 입장과 철학은 상대의 반대라는 입장이자 철학으로 대변된다.

이렇게 이분법이 강력할 경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상대의 의견 속에 담긴 좋은 점이나 고려해볼만 점들도 모조리 배제된다는 것이다. 상대는 악이고 무조건 잘못된 것이므로 상대의 의견을 경청할 수 없고 나의 부족한 의견을 보완해줄 방안도 찾을 수 없다. 그러면 결국 나의 의견만이 올바른 대안이고 완벽한 선이 되게 되는데 이는 미래에 큰 문제를 야기할 원인이 된다.

아무리 올바른 의견이고 대안도 국가라는 다양성의 세계에서 실현되다 보면 부족함과 한계가 드러나는데 그럴 때 올바른 대처 방안을 찾기 어렵고 유연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적으로 간주된 상대 역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더욱 나에게 공격적이고 대립적인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는 이분법 구도에서 양극화 현상은 극대화 된다.

물론 인간은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한 어떤 사안에 대해 하나의 입장만을 표명할 수밖에 없다. 원전 재개 입장에 서 있으면서 동시에 중단 입장에도 서 있을 수는 없다. 그것이 유한한 존재인 인간의 숙명이다. 하지만 하나의 입장에 서더라도 상대의 입장을 알아보고 경청할 수 있다. 이는 극단적인 이분법에서 빠져나와 중용의 길을 모색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입장이 대립되는 여러 문제들을 푸는 방식에 있어 상대를 이해하는 접근은 매우 긍정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해준다.

인류 역사에서 민주정치의 최초 모델을 구축했다는 고대 그리스를 살펴보자. 고대 그리스 7현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정치가 솔론은 당시 분열된 아테네 민심을 수습하고 사회적 정의를 실현한 현명한 정치가로 기억되고 있다. 그가 살았던 시대의 그리스는 양극화가 매우 심해져 있었다. 농민들은 과도하게 빛을 져 자신의 몸을 저당 잡히고 노예로 귀속되는 경우가 잦았다. 상인이나 수공업자들은 자신들이 사회에 기여하는 수준에 비해 정치에 참여할 수 없다는 사실에 소외감과 불만을 느꼈다. 이래저래 귀족들에게 불만이 사회적으로 상당히 쌓여 있었고 민중과 부유층간에는 봉합할 수 없을 정도로 간극이 벌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솔론은 경제 개혁을 하여 농민들의 빈곤이 문제가 되지 않도록 하였고 시민들의 정치 참여 기회도 확대하였다. 그는 역사에서 시민과 노예의 편에 선 정의의 사도로 기억된다.

하지만 오늘날 그리스 역사 전문가들이 말하는 진실은 조금 다르다. 뉴캐슬대학의 그리스 철학 교수였던 로빈 워터필드 작가는 사실 솔론이 본래 민주파는 아니었다고 한다. 그는 귀족들의 편이었다. 그러나 그는 시대적 상황이 내전이 일어날 정도의 위기였음을 간파하였다. 그리하여 비록 귀족의 편이었지만 반대의 입장에 있는 민중과 시민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이해하려 노력하였다.

이 과정을 통해 그는 자연스럽게 귀족들의 많은 권리를 약화시키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그 역시 귀족의 편이라는 입장이 있었으나 상대의 입장을 알아보고 이해하게 됨으로써 이쪽이냐 저쪽이냐의 논리에서 벗어나 중용의 정치를 펼 수 있었다.

자신의 입장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상대 측의 입장과 이야기에 대한 경청과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물론 반대 측 역시 단순히 이분법에 매몰되지 않고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 진정성있는 노력을 해야 하고 자신들도 마찬가지로 상대의 입장을 경청하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토론과 학습을 통해 상대의 입장을 알아보고 그렇게 상대의 입장을 제대로 이해하다보면 더불어 자신의 입장 또한 더욱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상대를 이해하면서 우리는 이 사회의 양극화 문제나 극단적 이분법 정치의 문제를 풀 수 있다. 사회의 정의는 그렇게 실현되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공론화 과정이 보여준 모습은 우리 사회의 성숙한 정치 미래를 밝게 하는 측면이 있다. 공론화 첫 토론 과정에서는 건설 재개와 중단의 양측이 매우 대립적이었고 상대의 입장에 대해 배타적이었다고 한다. 한 공영방송의 TV 토론에 출연한 전문가는 자신이 참여한 이 공론화 과정 초기 양측이 상대에 대해 매우 호전적 자세를 가지고 있었으며 상당한 거리감을 느꼈다고 하였다.

실제로 공론화 과정 1차 조사에서 건설 재개와 중단의 입장은 세대간의 입장차로 뚜렷히 대변되었다. 20대와 30대에는 중단 의견이 월등히 많았고 50대 60대는 재개 의견이 더 많았다. 이를 두고 시민참여단으로 활동했던 송호열 전 서원대 총장은 재개 측은 초반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부분에 치중해 있었고 반대 측은 감성적으로 접근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습과 토론이 이어지고 서로가 상대 입장을 이해하게 되면서 재미난 현상이 드러났다. 기술적이고 현실적 이유로 건설 재개를 주장하던 측은 오히려 국가의 안전과 미래라는 상대의 의견 역시 간과할 수 없음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반대로 감성적이고 추상적으로 접근했던 건설 재개 반대 측은 현실적이고 기술적인 이유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그렇게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며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던 시민 참여단은 결국 비록 하나의 입장을 선택해야 하는 숙명적 상황에서 건설 재개를 선택했다. 하지만 최소한 양측은 상대측의 의견과 자신의 입장에 가진 장단점을 보다 잘 파악하게 되었다.

서로 상대의 입장을 확인하면서 합의를 도출한 사안에 대해서는 그만큼 추후 논란의 여지도 적을 뿐더러 더 중요한 것은 국가의 에너지 정책과 원전에 대한 이해가 어느 한면에 쏠리지 않고 균형적으로 이해되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공론화 과정의 가장 중요한 장점 중 하나가 역대 어느 시기보다도 국민이 에너지 정책과 원전에 대한 관심이 높았으며 이에 대한 이해의 폭이 증가하였다는 점을 꼽는다. 이 점은 앞으로 있을 다양한 미래의 에너지 및 원자력 발전 정책에 있어 밑거름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런 의미를 생각해본다면 이 과정을 두고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거나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요구는 다소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 통해 우리는 정치 현실, 아니 더 나아가 우리 삶 속에 살아 숨쉬는 강력한 이분법의 실체를 알아보고 해소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첫걸음을 뗐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과거 정권에서 강력한 이분법으로 국가를 몰아넣은 4대강 사업이나 국정교과서 사업을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이러한 공론화 과정으로 시도해 보았으면 결과가 어떠했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첨예한 이해가 대립되었던 이 사안들에 대해 국민이 더 잘 알아보고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면 조금 더뎌도 제대로 진행할 수 있는 토대를 가지던가 아니면 국민의 뜻에 반하는 정책으로 결론이 내려져 사전에 더 큰 분열의 계기를 차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의 입장을 들으려 하지 않았고 반면 상대는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더 강력하게 이야기하려 했다. 그럴 경우 위정자는 상대의 이야기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무력화시킬 다른 방도를 찾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 신고리 원전의 공론화 과정을 추진함으로써 얻게 된 국민의 학습 비용이 원전 중단에 따른 공사 손실 1000억원을 제대로 보상할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시도가 대한민국 최초의 시도였다는 점에서 이해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앞으로 이런 오차 역시 줄여야겠지만.

이번 공론화 위원회의 결정이 문재인 내각에 주는 조언

마지막으로 공사 반대가 우세했던 최초의 결정이 공사 재개로 최종 결정나게 된 이번 공론화 과정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한가지 꼭 알았으면 하는 점이 있다. 인간은 윤리와 당위를 추구해야 하는 윤리적 존재이지만 또한 이 험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현실속의 존재이기도 하다.

지난 10년간의 보수 정권은 인간의 현실적인 측면에만 집중하여 현실의 실용적 가치를 과도하게 추구하다가 인간성이라는 인류문명의 중요한 가치를 놓쳐 버렸다. 과도하게 한쪽 가치에만 치중하면서 극단으로 기운 편향성은 본래 추구하던 현실적 측면마저 잡아먹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기 십상이다. 이분법인 그렇게 모든 것을 엉망으로 무너뜨린다.

한쪽으로 치우쳤던 우리 사회 현실 속에서 이번 정권이 인간성이란 가치를 심도 있게 추구한다면 이는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어느 한쪽으로 과도하게 가는 것은 많은 위험을 내포한다. 촛불민심으로 탄생한 이번 정부는 이런 과거 정권의 실수를 교훈 삼아 두가지 측면에서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지 않고 균형있게 양쪽을 추구했으면 한다.

국민의 힘으로 탄생한 정부라는 상징성을 가진 이 정부가 당장 이 정권 재임 시절만이 아닌 미래에도 좋은 정부, 성공적인 정부였다는 평을 받았으면 한다. 이분법에서 어느 한쪽으로 과도하게 쏠리지 않고 정권이 끝나도 인간성이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와 현실의 문제 양쪽을 다 신중히 고려하여 국정운영하였다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우리는 보다 나은 사회를 건설하고 후대에 조화와 화합의 시대를 물려주기 위해 극단적인 이분법을 인식하고 이에서 벗어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계기를 만드는 시대가 지금이었으면 한다. 토론과 대화를 통해 상대를 이해하고 또 상대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나의 모습 또한 더 잘 이해하게 됨으로써 조화와 화합의 시대가 될 수 있음을 학습해야 한다.

국민이 그런 학습이 충분히 될 때 어떤 진영에서 정권을 창출하던 이분법의 폭력과 비합리성을 인식하며 올바로 우리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대한민국의 미래는 지속가능하며 인간성이란 가치를 올바로 현실에 맞추어 추진하는 진정한 홍익인간의 국가가 될 것이고.


태그:#신고리, #공론화, #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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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다시 페미니즘, 싱글의 철학 외 다수) / 철학상담치료사/ 희망철학연구소 연구원 /불교상담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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