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분명 보기 드문 풍경이었다. 여러 명의 여성들이 테이블 주위에 둘러 앉아 북한 핵위기에 대해 토론하는 모습은. '다수의 여성들'이 군대에 가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으나 여성들이 '안보'나 '북한' 관련 이슈를 입에 담는 프로그램을 보기 드물었던 건 사실이다. '북핵 위기 토론'에 대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보통의 '그림'은 양복을 입은 중년의 남성들이 좌우로 나뉘어 목소리를 높여가며 열성적으로 언쟁을 벌이는 '지상파 토론 프로그램'이 아니었나.

온스타일에서 지난 8월부터 방송 중인 <뜨거운 사이다>는 여성들이 모여 토론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그림을 만들어 낸다. 인터뷰를 위해 지난 19일 상암에서 만난 문신애 피디는 와하하 웃으며 "(여성들이 방송에 나와 토론하는 모습은) 처음이니 다들 보시라고 그렇게 만들었어요"라며 "여자들이 모여서 북핵 위기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도 있는 거고 방송에서 처음 보여주는 그림을 시청자 분들께 선사하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온스타일 예능 <뜨거운 사이다> 스틸 사진

온스타일 예능 <뜨거운 사이다> 스틸 사진 ⓒ 온스타일


"왜 한국에는 없지?"

매주 정치·사회·문화 등 벌어지는 여러 이슈에 대해 '뜨겁게' 토론하는 프로그램인 <뜨거운 사이다>(온스타일 목요일 9시 30분)는 회마다 출연하는 인물에서부터 다루는 이슈까지 화제를 모은다. <뜨거운 사이다>를 1회부터 끌어온 문신애 피디는 "여성들이 모여서 토크쇼를 하는 포맷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이라고 말했다.

"정확히 어떤 그림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잘 차려입은 여성분들이 물컵 한 잔만 가져다 놓고 원탁에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이미지가 있었다. 멋있었다. 멋있는데 왜 한국에는 이런 게 없지? 왜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그림이지? '그러면 방송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여성에 의한, 여성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 싶었다."

 온스타일 예능 <뜨거운 사이다>의 문신애 피디

온스타일 예능 <뜨거운 사이다>의 문신애 피디 ⓒ 온스타일


현재까지 <뜨거운 사이다>는 '씨가 마른 여성 예능' '김기덕 감독 여성 배우 폭행 논란' '독성 생리대 파문'과 같은 소위 '여성 이슈들' 말고도 '트럼프 쇼크'나 '소년법 폐지 논란' '1인 미디어 인터넷 개인방송' 등 사회 전반에 걸친 논란까지 폭넓게 다룬다. 최대한 따끈따끈한 최신 이슈를 다루다 보니 보통 다른 예능 프로그램의 경우 2~3회씩 촬영해두는 게 보편적인 반면 <뜨거운 사이다> 제작진과 출연진은 '일주일에 1회 녹화'라는 고된 스케줄을 감내하고 있다.

"한 주에 있었던 이슈를 전하려면 '시의성'이 제일 중요하다. 이슈를 선정하고 이를 바로 대본화해서 바로 스튜디오 촬영을 하고 바로 편집을 해서 나가야 한다. 물리적으로 힘든 시스템이긴 한데 '지금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그렇게밖에 방법이 없다. '생리대 파동' 때도 촬영을 한 뒤 후속 보도가 있을 경우에 자막으로 기사를 삽입한다든지 그런 식으로 계속 이슈를 체크하고 있다. 그래도 생각보다 많이들 반응해주셔서 기분도 좋고 적극적으로 내주시는 의견들도 참고하면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여성판 썰전'이라고?"

 온스타일 예능 <뜨거운 사이다> 스틸 사진

ⓒ 온스타일


 온스타일 예능 <뜨거운 사이다> 스틸 사진

ⓒ 온스타일


그간 이런 프로그램이 없다 보니 <뜨거운 사이다>는 '여성판 썰전'이나 '여성판 알쓸신잡'이라는 수식어로 설명되기도 한다. 문 피디는 "계속 ('여성판 썰전') 아니라고 말씀드렸는데"라면서 웃었다. 

"<썰전> 같은 경우 장기간 잘 되고 있는 프로그램이고 '한국인이 좋아하는 프로그램' 순위 안에 있기도 하지 않나? 분명 좋은 포맷으로 기획된 프로그램이지만 그런 비교를 하는 게 좋을 수도 있고 좋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까지 <뜨거운 사이다> 같은 프로그램이 없었기 때문에 기존 프로그램과 비교하지 않으면 이 프로그램을 설명하기 힘든 거다. 여성들이 앉아서 토론하는 프로그램의 전례가 없다 보니 그렇게 수식하면 이해가 쉬우니까. 그런 수식조차 사회상을 보여주는 것 같다. 만약 <뜨거운 사이다>가 자리를 잘 잡으면 수식 없이도 충분히 설명이 될 수 있겠지."

하지만 제작진과 출연진이 모두 '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뜨거운 사이다>는 때론 '여성편향적'이라는 시선에 부딪힌다.

"출연진이 모두 여성들이긴 하지만 여성들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여성들도 모두 생각하는 바가 다르고 출연진 직업군도 다양하게 섭외했고. 하나의 사안에 대해 여섯명이 똑같은 이야기를 한 적은 없다. 여성들이니 다 같은 이야기를 하겠지라는 생각 또한 하나의 선입견이다. <알쓸신잡>의 출연진 전원이 남성이라고 해서 '남성편향적'이라는 이야기를 듣진 않는다.

결국 <뜨거운 사이다>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다 같이 잘 살자'는 말인 거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더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 그러려면 제도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다만 남성 출연자들이 다루기 어려운 '스토킹'이나 '생리대 파동' 이슈 같은 경우는 <뜨거운 사이다>의 특징이자 장점이 될 수 있는데 이것이 곧 '여성편향적'이라는 건 오해다."

"<뜨거운 사이다>가 망해도"

 온스타일 예능 <뜨거운 사이다>의 문신애 피디

온스타일 예능 <뜨거운 사이다>의 문신애 피디 ⓒ 온스타일


<뜨거운 사이다>는 1회에서 사진작가 '로타'를 출연시켜 시작부터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로타'는 설리 등 다수의 연예인들의 사진을 찍은 '핫한' 사진작가이지만 이른바 '롤리타'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문제적' 인물이기도 하다.

"방송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1회가 중요하기도 하고 1회만으로 판가름이 나기도 한다. 방송 나오기 전에 욕부터 하시는 분들도 있고 궁금하다고 하신 분들도 있지만 대중문화 속에 롤리타 콘셉트나 소아성애를 연상시키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가 많이 되고 있기도 하고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런 부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보고자 하는 바람에서 섭외했다. 저와 출연진들은 그런 부분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고 있었는데 로타 작가 같은 경우도 '할 말이 있다. 나올 수 있다'고 해주셔서 출연하게 됐다."

현재 <뜨거운 사이다>는 배우 이영진이 5회에서 중도 하차를 하고 예능인 김숙과 박혜진 아나운서, 이지혜 기자와 김지예 변호사, 사업가 이여영과 함께 하고 있다. 이들 중 절대 다수가 예능 경험이 없고, 방송 경험이 아예 없는 출연진도 있다. 하지만 모두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가 반갑다며 섭외 제의를 했을 때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출연자 분들도 날로 예능감이 늘어 방송 멘트가 점점 재밌어진다. (웃음) 방송 경험 자체가 아예 없는 분들도 있는데 다들 회가 갈수록 방송에 대한 여유가 생기시는지 비판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면서도 예능인으로서 활약해주고 계신다. 다른 생각을 지닌 다양한 여성들이 나와서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게 <뜨거운 사이다>의 좋은 점 아니겠나."

 온스타일 예능 <뜨거운 사이다> 스틸 사진

온스타일 예능 <뜨거운 사이다> 스틸 사진 ⓒ 온스타일


화제성 덕분인지 <뜨거운 사이다>는 12월까지 온스타일 채널에서 편성을 마친 상태다. 문신애 피디는 "앞으로 12월까지 쭉 달릴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문 피디는 <뜨거운 사이다> 6회에 출연했던 위근우 기자의 말을 빌려 "혹여 <뜨거운 사이다>가 망하더라도 그게 곧 여성 예능의 실패는 아니다"라고 말을 덧붙였다.

"남성 예능이 망하면 아무런 이야기도 안 하다가 여성 예능이 안 되면 '여자들이 하니까 안 되지'라고 비난하는 것도 잘못됐다. <뜨거운 사이다> 같은 경우도 처음으로 기획된 포맷의 프로그램이니 시행착오가 있을 수도 있고 피드백도 점차 반영해가면서 완성해가는 과정에 있다. 그 과정 중에 성장하기도 하고 퇴행하기도 할 거다. 우선 너무 성급하게 단정 짓지 않았으면 좋겠다."

 '할말이 많으면 하는 게 당연하지!' 온스타일 예능 <뜨거운 사이다> 포스터

'할말이 많으면 하는 게 당연하지!' 온스타일 예능 <뜨거운 사이다> 포스터 ⓒ 온스타일



뜨거운 사이다 문신애 피디 인터뷰 여성 토론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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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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