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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실업급여가 끝났다. 완연한 백수의 삶으로 접어드는 것이다. 이왕 백수로 사는 거, 잘 먹고 잘 놀고 잘 쓰고 싶다. 앞으로 춥고 배고픈 나날을 잘 헤쳐나가길 바라며 짧은 여행을 가기로 했다. 백수 기념 여행이랄까.

지난 17일부터 20일까지 3박 4일의 일정으로 후쿠오카에 다녀왔다. 부산에서 비행기로 날아가니 웬걸, 서울 가는 것보다 더 빨리 도착했다. 그곳에서 쉴 새 없이 돌아다니며 느꼈던 여러 가지 '맛'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첫 편은 '아침의 맛'이다. 백수는 낮이 되도록 늦잠을 자지만 여행자는 아침부터 부지런하다. 조식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멘타이쥬 명란 덮밥의 정갈한 자태
 멘타이쥬 명란 덮밥의 정갈한 자태
ⓒ 이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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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아침] 멘타이쥬 명란덮밥과 나카스 요정 푸딩
- 후쿠오카 명물, 명란을 곁들인 고품격 아침식사

명란!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외쳤다. 명란 덮밥을 먹으러 가는 날이다. 아침을 꼭 챙겨 먹는 편이 아니지만, 여행지에선 다르다. 아침부터 새로운 음식을 맛볼 기대에 눈을 뜬다.

텐진역 부근에 자리한 '멘타이쥬'는 명란덮밥과 나카스요정 푸딩으로 유명한 곳이다. 오전 7시부터 영업을 시작해서 여행객들이 조식 코스로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8시가 조금 넘은 시간,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카운터에서 '맛'을 고른다. 조금 매운 맛을 고르고 안내를 받아 2층으로 올라가니 어두운 조명이 은은하게 주위를 감싼다. 고급스러운 분위기다. 이미 몇몇 테이블에 여럿이 혹은 혼자서 자리를 잡고 식사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면을 추가한 '한스이 세트'를 많이들 먹는다고 들었지만, 너무 많을 것 같아 명란 덮밥만 먹기로 했다. 그리고 나카스요정 푸딩을 후식으로 주문했다. 달콤한 것을 위한 공간은 언제나 준비된 법이니까.

명란덮밥은 도자기 재질의 함에 담겨온다. 뚜껑을 열어보기 전의 두근거림을 즐긴다. 무언가 소중한 게 담겨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뚜껑을 열면 명란이 아름답게 누워있다
 뚜껑을 열면 명란이 아름답게 누워있다
ⓒ 이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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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레 뚜껑을 열어본다. 탐스러운 명란이 통째로 얹어진 밥과 수프. 소스통에는 처음 들어올 때 선택한 '조금 매운 맛' 소스가 들어있다.

고소하고 짭조름한 명란의 맛을 오롯이 느끼기에 충분하다. 다만 조금 짜다. 한국에서는 검지손가락 한 마디 정도 크기의 명란젓만으로도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웠는데, 명란을 통째로 먹으려니 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소스는 명란보다 더 짠맛이 난다. 명란을 입에 머금고 밥을 한 숟갈 두 숟갈 꼭꼭 씹어먹다 보면 가득했던 통 안이 어느새 깨끗이 비워진다.

 깊고 짭조름한 맛이 일품인 명란
 깊고 짭조름한 맛이 일품인 명란
ⓒ 이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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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업원이 내가 덮밥이 담긴 통을 깨끗이 비워낸 것을 확인하고 푸딩을 내어왔다. 푸딩과 함께 가져온 녹차 또한 맛이 깊고 좋았다.

진하고 부드러운 푸딩, 달콤한 카라멜 시럽이 입안에 스며든다. 너무 달지 않게 밸런스를 잡아주는 쌉쌀한 맛의 커피 젤리가 탱글탱글 씹는 재미를 더해준다. 혀 위에서 어우러지는 삼위일체를 즐기다 보면 아까 먹었던 명란덮밥이 조금 짜다는 것도 완전히 잊어버린다.

 나카스요정 푸딩
 나카스요정 푸딩
ⓒ 이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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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딩 속에 조그맣게 까만 점처럼 콕콕 박힌 것이 풍미를 더해주길래, 종업원에게 이게 뭐냐고 물었다.

"바닐라예요."

이렇게 깨알 같은 것이 풍미를 더해주다니. 나는 바닐라에게 감탄했다. 크게 떠서 먹던 푸딩 조각이 자꾸 자꾸 작아졌다. 사라지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탱글한 커피젤리가 맛과 식감의 밸런스를 잡아준다
 탱글한 커피젤리가 맛과 식감의 밸런스를 잡아준다
ⓒ 이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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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도 나카스요정 푸딩은 자꾸 생각난다. 멘타이쥬,  명란덮밥이 별로였다는 건 아니지만 '푸딩 맛집'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둘째날 아침] 타카타니야 호스텔 조식
- 돈 없는 여행자에게 이 정도면 든든한 아침

타카타니야 호스텔은 3일 동안 묵었던 호스텔 중 유일하게 조식이 나오는 호스텔이었다. 비싼 호텔의 경우 조식이 다양하고 맛있는 것으로 유명해서 일부러 조식을 맛보려 호텔에 투숙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반면 도미토리가 최선인 여행자로서는, 조식이 존재한다는 자체만으로 감격스러울 때가 있다. 바로 타카타니야 호스텔에서 그랬다.

 별거 아닌데 감동적인 조식
 별거 아닌데 감동적인 조식
ⓒ 이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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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툼하고 큼직한 식빵, 잼과 버터, 요거트, 인스턴트 스프까지. 특별할 것 없는 조식이었다. 그러나 숙박비에 조식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마음 한 켠을 풍족하게 만들어주었다. 아침부터 식당을 찾아나서는 고생은 기꺼이 기쁘게 할 만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눈 뜨자마자 로비에 내려와 느긋하게 즐기는 아침도 필요한 법이다.

토스트를 굽고 있는 동안 영어를 모르지만 수다스러운 일본 아주머니가 자꾸 일본어로 말을 걸었다. 일본어를 모르지만 대강 알 수 있었다. 아주머니는 토스트를 담을 접시가 있는 위치를 알려줬다.

토스트와 요거트와 스프를 먹는 동안에도 아주머니의 일방적인 수다는 그치지 않았고, 다 먹은 접시를 놓는 위치를 알려주고 나서야 조용해졌다. 어쩌면 수다스러운 게 아니라, 나에게 뭔가를 많이 알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별거 아닌데 감동적인 조식
 별거 아닌데 감동적인 조식
ⓒ 이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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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밖으로 나서니 한결 느긋하다. 조식이 포함된 숙소에 묵는 것은 이렇게나 여유롭다. 일어나자마자 '아침을 먹으러 어디로 가야 하지?' 하는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이제 내가 가고 싶은 데로 가면 된다. 아침은 먹었으니까, 아이스크림이나 케익을 파는 곳 같은 곳으로 말이다.

[마지막 날 아침] 탄야 우설구이 아침 정식
- 소 혀를 맛보는 특별한 아침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하카타 역에서 버스 터미널로 이동해 공항행 버스를 타야 한다. 그 전에 하카타 역에서 아침 식사를 해결하고 가기로 했다. 하카타 역 안내소로 가서 물었다.

"지금 시간에 아침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나요?"
"지하 푸드코트로 가시면 있을 거예요."


상냥한 대답에 따라 지하 1층으로 내려가니 문을 연 식당이 제법 있었다. 그중 한국어로 '우설구이 아침 정식'이라고 쓰인 것이 눈에 띄었다.

 탄야에는 한국어 메뉴판이 있다
 탄야에는 한국어 메뉴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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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의 혀라니, 그것도 아침으로.'

신기한 마음에 주저 없이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후쿠오카에는 곳곳에 한국어 안내가 있다. 덕분에 첫 일본여행을 편하게 할 수 있었다. 돌아와서 찾아 보니, 이곳 '탄야'는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곳이었다.

 우설구이 아침 정식
 우설구이 아침 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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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설구이 아침 정식을 주문하면 샐러드를 곁들인 우설 4조각에 국, 밥이 함께 나온다. 후쿠오카에 있는 동안 어딜 가나 밥이 맛있어서 모든 음식을 잘 먹었다. 소박한 한 상도 먹고 나면 든든해진다.

얇게 저며진 우설구이는 부드러우면서도 씹는 식감이 살아있었다. 특유의 고소한 맛이 인상적이었다. 이것이 후쿠오카에서의 마지막 식사라고 생각하니 이런저런 감정들이 몰려들었다. 고맙고, 떠나려니 섭섭했다.

 먹음직스러운 우설구이
 먹음직스러운 우설구이
ⓒ 이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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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에 머무르면서 길을 잃거나 정보가 필요할 때마다 상냥한 일본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의 대부분은 내가 가야 할 곳까지 직접 데려다주기도 했다. 함께 걷는 잠깐 동안 나누었던 대화, 웃던 얼굴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음식은 훌륭했고 술은 언제나 시원했다. 거기다 우설구이까지. 짧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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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쓰고 글을 쓴다. 자전거를 타고 춤을 추고 여행을 하는 사람. 글을 쓰고 있을 때 비로소 사람이 된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