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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지역이 술렁인다. 벌써부터 공천을 노리는 예비 후보자들의 물밑 경쟁이 뜨겁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면 지방선거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꽃이다. 이번 지방 선거가 4년짜리 보여주기식 공약 남발의 장이 아닌, 지역 사회의 비전 수립을 위한 정책 토론과 검증의 장이 될 수 있을까.

"기업하기 좋은 00" 얼마전까지만 해도 우리 지역 랜드마크에 붙어 있었던 현수막이다. '지역발전=기업유치'라는 고정 프레임이 지배하는 곳에서 다른 접근, 다른 계획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을까. 기업유치 경쟁이라는 '레드오션'이 아닌 마을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블루오션'적 비전을 호소할 만한 참신한 정치인이 과연 나타날까.

지방 선거임에도 불구하고 중앙 정치 이슈에 블랙홀처럼 빨려들어가 정작 공론화되어야 할 지역의 정치 이슈는 실종되어 버리고 마는 상황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주권자로서 선거에 참여하면서 번번히 실망했던 경험이 큰 탓인지 여전히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산업경제의 변화 속 지역의 대안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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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컬지향의 시대> 표지 .
ⓒ R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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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경제, 교육, 문화 등 전 영역에서 나타나는 서울과 지방간 구조화 된 격차와 차별을 '내부식민지체제'(<지방식민지 독립선언>, 강준만 저)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오사카 시립대학 대학원 마쓰나가 게이코 교수는 책 <로컬 지향의 시대>에서 포스트 산업화와 저성장, 지역불균형과 고령화 시대에 천편일률적인 기업 유치 없이 마을이 살아남을 수 있는 '특별한 방법'에 관해 역설한다.

저자는 "지자체가 지역 주민의 고용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 유치에 의존해야 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해외 이전이 늘어나고 기업이 언제 철수할지 모르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지자체는 이제 지역 경제를 기업 유치에만 의존하는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며 "최근 들어 산업의 수명 주기가 짧아지면서 기업을 유치해도 바로 기업-지역 간 이익이 일치하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118쪽)고 분석한다.

그는 "경제 일변도의 가치관 대신 다양한 사상과 이념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사회와 경제 시스템이 글로벌화되면서 지방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이 깊어지고 라이프스타일, 노동 방식, 가치관 자체가 변하고 있다는 점을 주의깊게 파악해야 한다"(172쪽)며 "사람들의 가치관 자체가 다양화된 지금이야말로, 지방에서 유연한 발상으로 독자적인 시도를 해나가야 할 때"(51쪽)라고 강조한다.

"인구노동력과 같은 양적 측면 뿐 아니라 그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을 포함해 인재를 총체적으로 질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에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바로 산업경제의 변화를 포착하는 시각이다...(중략)...최근 산업의 폭과 종류가 엄청나게 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업종과 일이 남게 될까? 이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지역에 있으면서도 글로벌한 동향을 파악하고 현재의 자원과 미래를 연결시키면서 비전을 그려야 한다. 그것이 지자체 정책담당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땀 흘려가며 죽어라 기업을 유치하고 지역 특산품을 제조하던 시대에서 풍요로운 라이프스타일과 매력적인 관광요소를 전국에 알려야 하는 시대가 됐다. 지역 정책 수립에도 세상의 변화를 예리하게 알아차리고 그 변화를 정책에 반영하는 감각이 절실한 시대다."(173쪽)

저자는 "지역에 산업을 만들면 사람들이 찾아온다. 독특한 가치를 만들어내는 지역도 나타났다. 지금까지 지방 부활을 둘러싼 논의는 주로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권한 이양과 같은 제도론에만 치우쳐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지자체의 경영 수완이 핵심이 됐다. 기초 지자체는 유연한 발상으로 독자적인 정책을 펼치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179쪽)고 충고한다.

포스트 산업화 시대 일하는 방식과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속에서 지역은 커뮤니티와 유연한 노동방식에 기반해 새로운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창조하는 공간으로 '재발견'되어야 한다. 경제활동에서의 '로컬한 특성'의 확산은 성장일변도 시대에 잃어버렸던 커뮤니티를 회복하고 마을공동체를 복원하려는 시도와 깊은 연관을 갖는다.

21세기 지속가능한 마을의 비전을 수립하자

일본 못지않게 한국도 전국에서 마을 만들기 사업이 경쟁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마을이 유행처럼 번지다보니 각양각색의 '마을'들이 출현한다. 도시와 농촌의 현실이 엄연히 다르고, 무리지은 사람들의 처지와 관심사에 따라서도 다양한 형태를 띤 '마을'들이 생겨났다. 뜻 맞는 소수가 결사해 터전을 잡고 아예 공동체를 꾸리는 방법도 있겠지만 대중적이지는 않다. 대신 민관 협력을 통해 자원을 조달하고 추진하는 마을 '사업'이 대세다.

물론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관에서 돈을 끌어들여 사업을 벌렸다가 오히려 공동체에 상처만 남기고 끝나버린 경우도 많고, 주민들의 살림살이와는 무관하게 외부인 유치에만 열을 올리는 전시용 마을 만들기로 전락한 경우도 허다하다.

저자는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의 미래상을 생각하고 토론하는 '마당'을 구축하는 것"이라며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면서 주민들의 반응을 살피고 마을 전체의 자치와 삶의 향상으로 연결시켜야 한다"(176쪽)고 강조한다.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이것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마을공동체의 복원과 확장이 동반되어야 한다. 자치를 이야기하면서도 마을에 자치적인 의사결정구조가 없고, 자급을 말하면서도 자원은 모두 외부에서 조달해야만 하는 신세라면 마을공동체를 제대로 꾸려나갈 수 없을 것이다. 마을은 주민들의 호혜와 협력으로 만들어가는 '삶의 터전'이다.

결국 키워드는 마을이다. 주민들의 연대와 마을의 자급력에 기초한 '내재적 발전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1인 다양성의 시대에 경제-교육-복지-환경 등 삶의 각 분야에서 작고 다양한 노동들이 조화롭게 연결되고 선순환할 수 있는 마을이 되어야 한다. 매력적인 마을 비전은 사람들을 불러 모을 것이다. 인구 절벽과 지방 소멸의 위기를 벗어날 해법은 가까운데 있다.

덧붙이는 글 | <로컬 지향의 시대>(마쓰나가 게이코 지음 / RHK 펴냄 / 2017.8 / 14,000원)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로컬 지향의 시대 - 마을이 우리를 구한다

마쓰나가 게이코 지음, 이혁재 옮김, 알에이치코리아(RHK)(2017)


태그:#로컬 지향의 시대, #마을공동체, #마을기업, #마을경제, #지방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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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골 농촌에서 하루 하루 잘 살기 위해.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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