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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현씨의 입북 사건을 계기로 최근 경찰청이 탈북자 전수조사에 나선 결과, 거주 불명자가 900명으로 나타났다. 그중 746명(82.9%)이 해외로 출국했고, 12명이 재입북한 것으로 밝혀졌다. 탈북민들의 해외 출국 목적은 주로 난민 지위를 얻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정착한 국가는 캐나다, 미국, 영국 등이다. 경찰청 조사에 따르면 중국으로 출국한 탈북민도 무려 81명(10.9%)이나 됐다.

한 탈북민은 필자에게 "친누나가 캐나다로 건너가 난민 신청을 했지만 난민 지위를 받지 못했다"며 "추방당할까 봐 노심초사했는데, 다행히 캐나다 정부가 일자리도 주선해주고 영어교육도 무료로 시켜주고 있다"고 밝혔다.

이렇듯 소수지만 탈북과 입북을 반복하며 남북 사이를 떠도는 탈북민들도 있고, 남과 북이라는 두 개의 정체성을 모두 등지고 유럽으로 떠나는 탈북민들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북한을 떠나 중국과 동남아를 거쳐 어렵게 남한에 입국했지만, 냉대와 고정관념, 차별의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탈남'을 시도하는 것이다. 영국에 정착한 한 탈북자는 현지에서 북한 출신자를 남한 출신과 구별해 차별하지 않고, 한국의 입시교육에 자녀를 희생시키지 않는 점을 정착 이유로 꼽기도 했다.

흔히 우리는 탈북민을 가리켜 '먼저 온 통일'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그만큼 남한정부가 이들의 정착 지원에 실효성을 거두고 있다고 말하긴 어렵지 않을까 한다. 경쟁과 개인주의에 익숙지 않고, 경제지식이 거의 없는 탈북민들은 쓰라린 경험을 쌓으며 남한사회에 적응하곤 한다.

통일에 대비해 북한사회와 북한인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야 하지만, 남한사회 전반에서 북한에 대한 진지하고 깊은 관심을 찾아보긴 어렵다. 북한을 바라볼 때 남한식으로 '경제' 논리에 치우쳐서 보는 경향이 짙은데, 북한 사회는 경제 논리로만 설명할 수 없고 그것만 작동하는 사회도 아니다.

외신 보도는 북한사회 자체에 대한 관심을 담은 기사가 많다. 이것은 북한을 단순히 못 사는 나라로만 본다면 나올 수 없는 보도들이다. 반면 남한 언론은 북핵 위기 고조 이전에도 대북관계, 군사 도발, 6자 회담 재개 가능성 같은 외교적 접근이 대부분이었다. 출처가 불분명하고 객관적으로 확인이 불가능한 정보를 기사화했다가 오보로 판명되는 때도 많았다. 북한을 제대로 알아야 오보를 피할 수 있고, 제대로 된 대북정책도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남한사회에선 천문학적 통일 비용에 대한 우려와 남북간 오랜 이질성, 사회·경제적 격차로 인해 지난 수십 년간 통일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점차 증가해왔다.

하지만 통일과정에서의 경제적 혼란 같은 '통일 비용'보다 '분단 유지 비용'이 더 높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치솟는 국방예산, 북핵 위기, 남북간 대치 및 긴장, 미국에의 지나친 의존, 주한미군 주둔비용, 정보기관의 권력 남용과 정치 개입, 정치인들이 꺼내드는 북한 리스크 등을 고려하면 현상 유지보다 통일이 한반도의 미래를 위한 더 나은 선택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북한학 연구자들도 대부분 통일 과도기의 사회·경제적 혼란을 평균 20년 이내에 극복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에 비하면 분단 비용은 분단이 유지되는 한 후손들까지 계속 감당해야 하는 비용이다. 

탈북민 지원엔 순수한 인도적 목적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에 대한 지원과 (재)교육의 필요성엔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목적이 있다. 남한에 정착한 탈북민들은 대부분 통일이 되면 고향으로 돌아갈 사람들이다. 이들은 남한에서 배운 지식, 기술, 경험 등을 바탕으로 북한사회를 재건하는 데 헌신하겠다는 나름의 뚜렷한 목표를 갖고 있다. 필자가 만난 탈북민들은 탈북 과정에서 극한의 경험을 겪고 트라우마를 입었지만 대부분 고향에서의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고, 남한보다 북한이 더 나은 점들도 조목조목 설파할 정도로 자부심이 컸다.

통일을 대비해 탈북민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이렇듯 현실적이고 중요하다. 통일 후에 남과 북 양쪽을 모두 경험했고, 잘 아는 탈북민들이 자기 연고지나 고향으로 돌아가 민주주의와 새 사회에 대한 지식·정보를 전파하고 사람들을 돕는다면 훨씬 효과가 클 것이다. 민주주의 경험이 전무한 북한의 엘리트와 간부, 북한주민의 사고와 경험, 문화에 어두운 남한사람만으로는 남북의 격차를 줄이기 어려울 것이다. 

구소련과 동구권에서는 공산체제가 무너진 후 많은 이들이 투기와 사기, 다단계 피해를 입었다. 특히 알바니아에선 인구 절반이 다단계 사기를 당했고, 이로 인해 내전까지 일어났다. 북한에서 시장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평양에서 아파트를 사고팔며, 신의주에서 부동산 투기가 과열되고 있다는 등의 뉴스가 나오지만, 시장화를 통해 돈을 버는 이들은 소수다. 대부분의 북한주민은 투자와 이익 추구에 대한 개념이 없고, 은행도 잘 이용하지 않는다.

탈북민 대부분은 브로커를 통해 북한의 가족에게 송금을 하고, 중국제 휴대전화를 이용해 연락을 주고받는 등 탈북 후에도 북한 내부와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통일 후에 탈북민과 그 2·3세들이 고향사람들을 도와 예측 가능한 이런 피해들을 막아야 한다. 그러려면 탈북민들의 성공적인 정착을 지원하고 (재)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탈북민들 중엔 북한학 박사, 언론인, 명문대 로스쿨을 다니는 청년, 북한에서 최고 수준의 예술교육을 받고 전 세계로 연주 여행을 다니는 피아니스트, 유럽 대학의 초빙교수로 건너간 시인, 중소기업 경영자, 태영호 전 공사 같은 유럽인 수준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감수성을 갖춘 외교관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 숫자상으로 소수이고, 탈북자 대부분은 국경지대 출신의 노동자가 많다. 하나원에서 자본주의 체제 적응에 필요한 초보적인 지식을 가르치지만, 교육기간이 짧고 교육내용도 간략하다.

필자의 생각으론 하나원의 교육기간을 늘리거나 사회로 배출된 이후에도 꾸준히 재교육을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남한에 정착한 탈북민들이 사기를 당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이러한 재교육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재교육은 직업과 연계된 것일수록 좋다. 일례로 1960~70년대에 독일에 광부로 건너간 한국인들이 독일사회에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정부가 힘든 광부 일을 그만두고 직업을 바꾸고 싶어한 이들에게 재교육의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특히 부모와 함께 탈북해 남한에 정착한 어린이와 10대 청소년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이들이야말로 통일 후 민주화된 북한을 이끌어갈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평양의 봄'이 오면 북쪽의 변화와 발전을 이끌 주도적인 세력이 될 것이고, 또 그렇게 되도록 양성해야 한다.

하지만 탈북 청소년들이 다니는 한겨레 중·고등학교의 통계에 따르면, 대학 입학생 중 80% 가량이 휴학이나 자퇴를 한다고 조사됐다. 북한 청소년은 연간 150일 이상 노동력을 징발당하고, 그외 시간도 정치학습, 군사훈련, 생활총화(자아비판 모임)에 동원되기 때문에 다른 나라 아이들처럼 공부할 시간이 없다. 탈북 후에도 홀로 혹은 부모를 따라 수년간 중국을 떠돌기 때문에 또래의 남한 아이에 비해 학습능력이 뒤처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북한 출신 청소년과 어린이들도 본인의 의지와 양질의 교육만 있으면 얼마든지 높은 능력을 발휘하며 통일된 미래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 이들의 교육을 위한 예산은 비교적 비용이 적게 들고, 한반도의 미래를 위한 값진 투자가 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캐나다 정부의 난민에 대한 투자를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탈북민들이 역할을 잘할수록 통일 과도기가 덜 고통스럽고, 연착륙한다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선 남한사회가 이들을 차별의 시선으로 보지 않고, 남한 아이들과 같은 수준의 교육을 제공받을 수 있게 정부 차원의 지원과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처럼 천덕꾸러기, 북한체제에서 밀려난 사람들로 취급해 탈남하도록 방치해선 안 될 것이다.


태그:#탈북민, #지원정책, #통일, #북한,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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