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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개봉하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는 대개 정해져 있다. 주인공이나 감독이다. 폭을 조금 더 넓히면 시나리오를 구상한 작가도 조명을 받는 반열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는 복합 예술이다. 이들의 공만으로 영화가 제작돼 상영작에 내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를 감안하면 제작에 끼친 '공'에 비해 너무 늦게 조명한 장르가 있다. 바로 '영화 음악'이다.

영화 음악은 밋밋한 장면에 생기를 넣어주고, 관객의 주목을 한층 붙든다. 카메라로 담은 장면이 밑그림에 불과하다면 여기에 음악을 덧입히는 일은 영화의 완성을 위한 전제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완성뿐 아니라 영화의 영속성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가만히 감명 깊게 본 영화를 떠올리면 심금을 울린 음악이 상기되더니 영화의 여운을 잇는다. 익히 알려진 <배트맨> 시리즈나 <겨울왕국>하면 장면과 함께 머리에 맴도는 음악이 있을 것이다.

지난 19일 개봉한 <스코어: 영화음악의 모든 것>은 '씨네 필'의 욕구를 충족시킬 내용으로 가득하다. 그동안 DVD 부록에 기록되는 정도로 취급받았던 영화 음악이 전면에 등장해 제작의 과정과 작곡가들이 가졌던 고뇌를 날 것으로 보여준다. 영화가 다루는 음악은 천편일률에서 벗어나 <스타워즈> <록키> < 007 >과 같은 명작에서부터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 이르는 최근의 주목 작을 포괄한다.

20세기 영화 음악을 압축적이고도 세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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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귀에 익은 음악을 재탕하는 정도로 <스코어>가 구성됐다면 유튜브나 OST로 영화를 갈음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물음이 제기될 것이다. 영화만의 고유의 특성이 저마다 있는 것처럼 <스코어>도 영화만의 다큐멘터리 적 속성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음악을 재생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장면과 음악을 병렬해 만일 장면에 음악이 빠졌다면 관객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같은 영화의 여타 장면엔 주제곡이 어찌 변주됐는지를 압축적이고도 세심히 살핀다.

영화 음악에 정통한 사학자가 등장해 20세기 초 프로젝터의 소음을 줄이려는 방편으로 영화 음악이 시작됐다는 설명에서부터 피아노와 기타를 비롯해서 심지어 썰매 방울 등 영화 음악의 악기별 구현 방식도 설명한다. 이들 설명만큼이나 <스코어>의 백미는 명작을 수놓았던 작곡가들, 이를테면 한국인에게도 잘 알려진 한스 짐머나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를 작곡한 스티븐 자브론스키 등이 출연해 작곡의 이면을 말한다는 점이다.

시대별 걸작들로 대변되는 1958년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버티고>와 1960년 <싸이코>, 1982년 스티븐 스필버그 작인 < E.T. >와 1994년 <쉰들러 리스트>는 물론이고, 배급사 폭스가 담당한 영화의 시작부에 으레 나오는 팡파르 음악도 <스코어>의 탐구 대상이다. 한 세기 영화사에 담긴 주옥같은 음악을 스쳐 지나가듯 살피면서 각기 음악들의 의의에 대해 핵심적으로 요약한다.

<스코어>를 본 뒤 아쉬움과 부러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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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어>는 작곡가가 생각하는 지점과 감독의 고심점이 맞물리는 과정을 재현이 아닌 실제 증언과 과거에 기록된 실사로 보여준다. 영화 음악은 '독단'이 아닌 조율의 예술이다. 작곡가의 주장만으로 영화의 색을 규정할 수 없고, 감독의 고집만 하고 작곡가가 내는 의견을 마냥 무시할 수 없다. 감독과 작곡가의 생각이 융합되어 장면에 대한 곡의 영감이 발생하고, 영화의 색이 한층 뚜렷해진다.

<스코어>의 가치는 영화의 음악사를 집대성했다는 것과 그간 뒷전에 머물렀던 작곡가들을 앞으로 내세웠다는 점에 있다. 최근 개봉한 <덩케르크>나 <히든 피겨스> 등 평단의 지속적인 지지를 받으며 작품 활동을 해왔던 한스 짐머는 이미 유명 인사이지만 그 외에 <스코어>에 출연한 트렌트 레즈너나 알렉상드르 데스플라는 국내 영화팬들에게 다소 생소하게 다가온다.

낯이 덜 익은 작곡가들이 제작 마감의 시한을 생각하면 괴롭다던가, 자신이 제작한 음악에 관객의 호응이 어떨까 싶어 화장실에 들어가 본다고 말을 하는 대목에선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와 더 나은 음악을 만들기 위한 나름의 치열한 고뇌를 느낄 수 있다. 이 느낌은 영화가 인간의 여러 고뇌가 들어간 예술이라는 점을 새삼 인식하는 계기가 된다. 다만 <스코어>의 아쉬운 점이라면 상영시간이 짧다는 데 있다. 93분이란 시간은 영화 속 명곡의 발자취를 따라가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한편으로 <스코어>를 본 뒤 부러움과 또 다른 아쉬움이 밀려왔다. 한국에도 2005년 <친절한 금자씨>와 2012년 <베를린> 등을 작곡한 조영욱, 1996년 <은행나무침대>, 1999년 <쉬리>, 최근에 개봉한 <아이 캔 스피크>를 작곡한 이동준 등 실력파 작곡가들이 많다. 이들이 영화에 구현한 공은 적지 않지만 언제나 감독과 배우의 그늘에만 머무르는 것 같아 아쉽고, 해외 작곡가들을 조명한 <스코어>가 부러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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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어 작곡 한스짐머 영화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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