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더>의 포스터. 전작 <노아>에 이어,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자신만의 독특한 신화를 만들었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여성 입장에서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삶의 중요한 분기점입니다. 뱃속에서 아이를 키우고 때가 되어 출산하는 경험은 이전까지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준비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양육 부담이 여성에게 많이 쏠릴 수밖에 없는 불평등한 사회이기 때문에 여성의 사회 활동이나 자아실현을 막는 족쇄가 되기도 하지요.

영화 <마더!>의 주인공(제니퍼 로렌스)은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남편(하비에르 바르뎀)과 단둘이 외딴 저택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녀는 한때 완전히 불에 탄 적이 있는 남편의 저택을 새로 꾸미며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하지만 한때 재능이 넘치는 시인이었던 남편은 뭔가를 써 보려고 하지만 한 줄도 못 쓰는 상태입니다. 둘 사이에는 아직 아이가 없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기를 의사라고 밝힌 불청객(에드 해리스)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찾아옵니다. 남편은 그를 아무렇지도 않게 집에 들여 마치 오래전부터 알았던 친구처럼 대하면서 자고 가라고 하기까지 합니다. 주인공은 이런 상황 자체를 불편하게 느끼지만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다음 날에는 불청객의 아내(미셸 파이퍼)까지 등장하여 사사건건 주인공의 속을 뒤집어 놓지요.

고딕 호러의 활용

 영화 <마더!>의 주인공(제니퍼 로렌스)에게 집은 그녀의 염원이 담긴 곳이다.

영화 <마더!>의 주인공(제니퍼 로렌스)에게 집은 그녀의 염원이 담긴 곳이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마더!>는 공포 소설의 한 갈래인 '고딕 호러'의 이야기 구성을 따릅니다. 고딕 호러는 비밀이 담긴 성이나 저택을 배경으로 등장인물 간의 애정 관계가 얽히면서 벌어지는 무서운 이야기를 가리킵니다. 무대가 되는 공간은 중심인물의 정념이 투사된 경우가 많고 주로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며 인물의 주관적 현실 인식과 객관적 세계 사이의 간극이 주는 아이러니를 활용합니다.

이 영화에서도 주인공이 사는 저택은 남편의 창조력 회복과 이상적인 가정에 대한 그녀의 열망을 담고 있으며 종종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는 곳으로 설정돼 있습니다. 줄기차게 제니퍼 로렌스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담아낸 화면 역시 1인칭 시점이 주는 아이러니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관객의 관심을 주인공의 감정에 몰아주기 위한 것입니다.

전반부에서 이 영화에 등장하는 불청객 가족은 주인공이 여러 가지 이유로 직접 드러내지 못했던 진짜 욕망을 재조명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들이 안주인 제니퍼 로렌스가 세워 놓은 질서를 어지럽히고 집을 훼손하는 행위는 결과적으로 그 안에 봉인된 그녀의 열망을 해방하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단 해방된 욕망은 곧바로 결실을 보게 되지만 그 결실은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주인공에게 악몽으로 돌아옵니다. 여기서 성서 속 일화에서 차용한 모티브가 상당수 사용됩니다. 가진 것을 나누라는 예수의 가르침, 마르타와 마리아 이야기, 피와 살을 나누는 디오니소스 제의와 맥락이 같은 성찬 의식 등이 그것입니다.

제니퍼 로렌스는 섬세한 표정 연기를 통해 개인의 영역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상처받기 쉬운 주인공을 설득력 있게 그려냅니다. 그동안 겉으로는 강인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 남은 상처도 못지않게 큰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 장기였는데 여기서는 좀 더 직접적으로 고통받는 마음을 드러내고 분노를 표시하는 스타일의 연기를 보여 줍니다.

종교 전통을 바탕으로 한 독특한 신화

 전작 <노아>에 이어,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자신만의 독특한 신화를 만들었다.

전작 <노아>에 이어,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자신만의 독특한 신화를 만들었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전작 <노아>에서도 그랬듯 유대교-기독교 전통을 바탕으로 자기식으로 재해석한 신화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발상이 독특하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종교와 무관하게 살아가는 현대의 일반 관객에게 딱히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도 당대의 현실에 대한 논평이라고 볼 만한 연계 지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보편적인 인간의 삶에 대한 통찰을 보여 주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가 자신의 신화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유대-기독교 전통의 부정적인 면모는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종교 전통은 개인의 욕망과 개성을 부정하는 전체주의적 특성이 있습니다. 자기만의 세계를 가꾸고 그 안에 질서를 부여하고 싶은 주인공의 개인적인 욕망은 영화 전반에 걸쳐 철저히 부정당합니다. 성서에서 믿음의 사람으로 자주 거론되는 욥이나 요나가 고난을 겪은 이유도 이처럼 신의 의지보다 개인의 판단을 앞세웠기 때문이었죠.

또한 매우 가부장적이기도 합니다. 영화 내내 여성으로 설정된 주인공은 존재 자체를 부정당할 정도로 온갖 수난을 겪습니다. 이 '아버지 하나님' 전통에서는 여성이자 '어머니 세계'로 설정된 캐릭터가 생각과 감정을 무시당하고 고통받게 만드는 식으로 그릴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현대의 기독교 정신은 예수가 공생애에서 보여 준 모습을 예로 들며 모든 차별과 고통에 반대하는 박애주의를 강조합니다. 하지만 개인의 판단보다는 종교 공동체가 제시하는 신의 뜻에 따라 사는 삶을 중요시하고 기존 사회 체제를 내면화한 가부장제에 단단히 뿌리박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감독의 진짜 의도와는 상관없어 보이지만 <마더!>는 이 오래된 종교적 전통의 한계를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권오윤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cinekwon.wordpres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마더 제니퍼 로렌스 하비에르 바르뎀 대런 아로노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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