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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인가 국립국어원이 국어 사용 빈도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한다. 이때 '것'이 가장 자주 쓰는 말이라고 했다. 본디 이 말은 아주 드물게 썼는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 말에 조금 수다스럽게 자주 쓴다.

일본말에서 '것'은 '모노もの'라고 하는데, 사물, 일, 현상 따위를 구체로 가리키지 않고 대강 어물쩍 넘길 때 쓴다. 그 말을 내남없이 따라 써 왔다. 거기에 영어 정답 찾는 공부에 시달려 영어 to부정사와 동명사, 가짜 주어 구문이 나오면 판에 박은 듯 독해하던 버릇도 겹쳤다. 이때 '것'은 뭔가 그럴듯하게 떠오르는 말을 꼭 집어 말하지 못하고 두루뭉술하게 말할 때 꽤나 쓸모가 있다. 가령, 다음과 같은 영어 문장이 있다손 치자.

△ To smoke near the school is illegal.
  = It is illegal to smoke near the school.

앞 문장은 to부정사, 뒤에 쓴 문장은 가짜 주어 구문이다. 재미삼아 중·고등학교 때 실력을 발휘해서 이 말을 우리 말로 한번 뒤쳐보시라.

학교 근처에서 담배를 배우는 것은 불법이다. 
㈏ 학교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

아무래도 열에 아홉은 ㈎처럼 뒤치지 않았을까. 정말이지 영어 공부한 보람이 있다. 학교에서 그렇게 독해해야 정답이라고 배운 까닭이다. 오히려 ㈏처럼 뒤쳤을 때 더 어색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답이 곧 우리 말은 아니다. 사실 우리 말에서는 누가 했는지를 알 만한 자리에서는 임자말을 아낀다. 뻔히 다 아는데 굳이 말해봐야 내 입만 아플 뿐이다. 오히려 말 임자를 빼고 말해야 말 흐름이 더 자연스럽고 말맛도 깔끔해질 때도 많다. 하지만 영어는 임자말이 꼭 써야 한다. 그래야 말이 된다. 그래서 가짜로 말 임자를 만들기도 하고 수동태 표현으로 쓰기도 한다. 잘 알다시피 '것'은 매인이름씨다. 혼자서는 뜻을 온전히 지닐 수 없다. 반드시 꾸미는 말 도움을 받아야 한다. 자연히 말 마디가 길어지거나 거치적거리게 한다. 교과서는 아이들에게 주는 책이다. 그 어떤 책들보다 우리 말을 가장 잘 살려쓰는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초등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서 어수선하게 쓴 '것'을 들추어 본다. 묶음표 치고 그 안에 넣은 말은 빠진 임자말이다.

임자말 자리에 쓴 '것'
△ 바른 인사는 어떻게 하는 일까요?(1-1-가, 140쪽)
  → (우리가) 인사를 바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 인사는 예의 바른 자세와 마음으로 하는이 중요해요.(1-1-가, 140쪽)
  → (우리는) 예의 바른 자세와 마음으로 인사해야 해요.
  → (우리는)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마음을 담아 인사해야 해요.
△ 토끼가 말한 은 무엇인가요?(1-1-나, 154쪽)
  → 토끼는 무슨 말을 했나요?
  → 토끼는 무엇을 말했나요?
△ 내가 잘하는 은 무엇일까?(1-2-가, 115쪽)
  → 나는 무엇을 잘할까?
△ 처음에는 말이 오르락내리락 움직이는 조금 무서웠다.(1-2-나, 189쪽)
  → 처음에는 말이 오르락내리락해서 조금 무서웠다.
△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않는 이 환경에 적응하게 하는 동물 사랑입니다. (1-2-나, 229쪽)
  → 동물을 사랑한다면 모이를 주지 않아서 비둘기가 혼자 힘으로 살아가게 두어야 한다.


먹이와 모이 
닭이나 날짐승한테 주는 '먹이'는 모이라고 한다. 여기처럼 '먹이'라고 해도 말은 된다. 먹이도 '동물이 살아가기 위하여 먹어야 할 거리. 또는 사육하는 가축에게 주는 먹을거리'이니까. 하지만 '닭 모이', 새 모이'를 '닭 먹이', '새 먹이'라고 하면 영 어색하지 않은가. 
말난 김에, 1학년 아이에게 '환경', '적응'이라는 말부터 가르쳐야할 것인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부림말 자리에 쓴 '것'
△ 자신이 잘하는 을 떠올려 봅시다.(1-2-가, 114쪽)
  →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떠올려 봅시다.
△ 개미들이 줄지어 가는 을 보았다. 어디로 가는 일까? (1-2-나, 208쪽)
→ 개미들이 줄지어 간다. 어디로 갈까?
△ 파리는 주머니에서 달콤한 냄새가 난다는 을 알았어요.(1-2-국어활동, 68쪽)
  → 파리는 주머니에서 나는 달콤한 냄새를 맡았아요.

사실 영어 공부할 때 끙끙 애쓰는 그런 정성이라면 '것'을 아무 자리에나 덜렁덜렁 쓰는 버릇은 얼마든지 고칠 수 있다. '것'을 줄이려는 정성에 보태 글 쓰는 손이 저절로 생각하게 해야 한다. 그게 우리 일이고 우리 아이들 일이다. 우리 말과 얼을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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