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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름밤, 나는 택시를 타고 이태원에서 내렸다. 술에 엄청나게 취해 있었고, 몸을 가눌 수가 없을 정도였다. 내리다가 보도블록에 무릎을 갈았다. 너무 아파서 한동안 일어나질 못했다. 생전 본 적 없는 양의 피가 무릎에서 쏟아지기 시작했다. 당황해서 절룩거리며 일어나는데, 어떤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괜찮으세요?"
"아... 네."
"걸으실 수 있겠어요?"
"네네, 괜찮습니다."
"그럼 술 한잔 더 하실래요?"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나? 사람이 이 정도로 피를 흘리는데 술이요? 나는 거절하고 절룩이며 돌아갔다. 다음날 아침 나는 걸을 수 없어 콜택시를 불러서 병원으로 향했다. 무릎의 상처는 열 바늘짜리였다. 눈앞에 열 바늘을 꿰매야 할 정도로 다친 사람이 있는데 그 '헌팅남'은 119를 부르는 대신에 술 한잔을 권했다.

물론 주변의 수많은 여성들에게서도 곧잘 이런 경험담을 들을 수 있다. 다른 사례를 좀 더 들어보자. 지금부터는 내 지인들의 이야기다.

헌팅 잔혹사

1) A는 친구들과의 술자리에 합석한 생면부지의 어느 남성이 동의하지 않은 스킨십을 함부로 막 하더니, 갑자기 집에 안 가겠다며 매달리고 조금만 같이 있자고 조르기 시작했다. A가 도저히 안 되겠다고 판단하고 도망가려고 했더니 남성은 A 뒤에서 계속 욕설을 하며 쫓아왔다.


2) 지나가던 B에게 한 경찰이 이름과 전화번호를 물었다. B는 경찰이니까 무서워서 아무 생각 없이 연락처를 알려주었고, 며칠 뒤 "경찰오빠야 ㅎㅎ 스무살이네? 애기구나~ 오빠랑 주말에 밥 먹자"라는 연락을 받아야 했다. 신원조회를 해 본 건지 알려주지도 않은 B의 나이까지 알고 있던 경찰은 한동안 계속 밥 먹자고 졸라댔다.

3) 밤늦게 뒤에서 누가 따라오는 기미에 걸음을 재촉하던 C는 걸음을 빨리해서 원룸으로 들어갔다. 이층집의 문을 열쇠로 따서 열자마자 뒤에서 누군가 뒤에서 C의 어깨를 확 잡았다. "저기, 번호 좀 알려주세요."

이대로 #헌팅_잔혹사 를 연재한다면 밑도 끝도 없이 연재할 수 있을테니, 마지막 예시를 들어보자. 며칠 전 페이스북의 '페북춘천'이라는 페이지에는 남성 세 명이 헌팅을 시도한 이야기가 실렸다. 이 남성들은 여성들에게 술을 같이 먹자고 조르다가 여성들이 끝끝내 거절하자 음료 '갈아만든 배'를 여성들의 머리 위에 뿌리고는 도망쳤다고 한다.

갈아만든 배
 갈아만든 배
ⓒ 해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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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여성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고 성적 어프로치를 하는 것을 속칭 '헌팅'이라고 한다. 헌팅(Hunting), 직역을 하자면 사냥이다. 사냥은 보통은 활이나 엽총 같은 것을 들고 숲 속에서 하며, 가끔은 개를 풀거나 덫을 놓기도 한다. 근데 이 경우에는 광활하고 아름다운 자연이 아니라 도시 속이다. 이 경우 '사냥감'은 보통 여성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며 여성에게 반복적으로 어프로치하기를 권하는 문화에서 여성은 '나무'라는 비인격적 대체물로 대표된다. '헌팅'이라는 문화 속에서는 당연히 사냥감이라는 비인격적 대체물로 대표된다. 그러하다. 도무지 이 헌팅이라는 게 어떻게 진행되는 것인지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행위가 '헌팅'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된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위의 사례들만 종합해 보더라도 이 사회에는 여자가 술을 마시고 몸을 못 가누는 것 같으면 '오늘 저 여자를 어떻게 해 볼 수 있을 것 같으니 술을 한 잔 더 마시자고 하는'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사냥감이 다쳐서 움직이지 못하면 사냥의 효율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지사인데 대체 왜 술을 권하지 않겠는가.

사냥을 하면 인간은 흔히 사냥감을 '먹는다'. 창세기 1장을 보면 신이라는 존재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고 명령한다. 동물을 사냥할 때 고기에게 '내가 너를 지금 사냥해도 되겠니?'라고 묻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지배'다. 그러므로 토끼는 엽총을 보면 도망간다. 사슴도 엽총을 보면 도망간다. 그렇다면 '헌팅'을 당하는 여성의 경우는 어떨까.

노라 빈센트라는 여성은 18개월 동안 남장을 하고 남성으로 산 기록을 <548일 남장체험>이라는 책으로 써냈다. 여성을 '헌팅'해서 데이트를 하기 위해서 벌이는 온갖 노력에 대해 그녀는 "90퍼센트는 퇴짜 맞는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고 말한다. "남자로 사는 게 원래 그래요. 퇴짜 맞는 거야 삶의 일부분인 걸요. 각오하는 일이고요." 그렇다. 여자들도 사슴이나 토끼처럼 도망을 간다.

여성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헌팅남들

여성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고, '사냥'하려고만 드니 여성들은 도망갈 수밖에 없다
 여성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고, '사냥'하려고만 드니 여성들은 도망갈 수밖에 없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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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헌팅을 받는다고 여자가 죽지는 않잖아요. 그냥 연애 좀 거는 건데"라고 누가 반박을 한다면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성적 대상화'라는 말이 '성적 대상으로 바라봄'이라는 의미만을 가진다면 연애에 있어서 성적 대상화란 필연적이다. 이 매력적인 성적 대상과 연애 혹은 성적 행위를 하고 싶어서 떨리는 마음으로 다가서겠다는데 그걸 누가 비난할 수 있겠나. 그러나 그 이전에 우리가 이해해야 할 문제가 있다.

성적 대상화는 정확히 말하자면 '성적 비인격화'다. 상대방이 감정과 인격이 있는 존재라는 걸 무시하고 성적 대상 이외의 무엇으로도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고기를 주는 토끼와 사슴을 바라보듯, 여성을 술 취한 '골뱅이'로 바라보는 것을 성적 대상화라고 한다. 술에 취해 피를 흘리는 여자에게 다가서서 술을 한잔 더 하자고 말을 하는 것은 전형적인 '성적 대상화'일 것이다. 그리고 '헌팅'을 하는 남자들은 많은 경우 바로 그런 방식으로 여자를 대하고 있다.

많은 여성들은 헌팅을 당할 때마다 그걸 본능적으로 느낀다. 연락처를 주지 않는다고 내지는 함께 술을 먹지 않는다고 성질을 부리거나, 몰래 연락처를 가져가서 연락을 시도하거나, 술에 취해 있는 내게 의사를 묻지 않고 몸을 붙여오는 남성들 앞에서 내가 인격체가 아니라는 건 여러 번 재확인 된다.

그럴 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은 누가 봐도 그냥 방어막을 바짝 세우고 도망가는 것이다. 난생 처음 본 사람을 이렇게 대하는데, 그 사람이랑 지속적 관계를 잠시라도 대체 왜 가지겠는가. 더욱이 이런 남성들은 곧잘 폭력적으로 변하기까지 한다. 인격으로 안 보는데 폭력적으로 변하는 건 얼마나 간편한 일일까.

이쯤 되면 오늘도 길거리에서 무서워서 움츠리고 도망가는 여자들을 향해, 혹은 술이 취한 여자들을 향해 "술 한잔 더 하자" 내지는 "번호 좀 주세요"를 무용하게 읊조리고 있을 21세기 남성들의 근저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해서는 같이 술 먹어줄 여자의 숫자가 후닥닥 줄어드는 게 눈에 선한데 대체 어쩌다가 당신들은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여자들을 사냥감 취급하면서 대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이 사회에서 여성의 성이 '획득'해야 할 가치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관계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 여성의 성은 여성에게 속해 있는 것이지만, 가부장주의의 시선에서 여성의 성은 교환하고 소비하고 획득해야 할 비인격적 가치다. 그러므로 수많은 남성들은 마치 '부자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것처럼 '많은 여자와 섹스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섹스나 연애의 구체성은 탈각된다. 섹스/연애를 하는 대상의 구체적 인격, 태도, 주체성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인간은 '획득'할 필요가 없지만 여성의 '성'은 다르다. 에어아시아 사장과 결혼한 한국인 여성의 사진 아래에 '돈 보고 결혼한다'는 욕설이 주구장창 달리는 이유는 돈이 많으면 여성의 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 인지 속에서 구체적 관계는 갈 곳을 잃는다.

이건 사실 헌팅을 하는 남성들에게도 썩 즐거울 상황이 아니다. 일단 헌팅이 잘 안 된다. 위에서도 한참 서술했듯이 여성들은 도무지 자신을 구체적 인격으로 대하지 않는 남성에게 연락처를 줄 이유도, 술을 마실 이유도 없다. 그러므로 이런 사고를 계속 유지하는 남자는 웬만해서는 '노리는' 여성과 관계를 이어나갈 수 없을 것이다.

두 번째는 헌팅에 실패한 후 기분이 나쁘다. 위에서 말했던 경우들 중 어떤 남자들은 연락처를 안 준다고 '욕을 하거나', '음료수를 뿌리면서' 분개한다. 대체 왜 그렇게 분개하는 것일까. 마음에 안 들면 연락처를 안 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이유야 단순하다. 여성의 성이란 사냥감처럼 획득해야 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 사고 속에서 여성의 성이란 일종의 물건 같은 것이다. 비인격적 물건을 획득하려고 했는데, 이 물건이 싫다고 자기주장을 하며 날 거부해 버렸다. 이 물건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사회적 능력을 증명하는데, 그러므로 나는 여자의 연락처를 따거나 함께 술을 먹는 것으로 나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었는데. 그래서 남성들은 연락처를 안 준 여자에게 욕설을 퍼붓고, 자신을 무시한다고 분노하고, 머리 위에 갈아만든 배를 뿌리는 한심한 짓
을 한다.

세 번째는 그래서 술을 먹게 되거나 연락처를 땄다고 하더라도 관계에서 소외된다. 술에 엄청나게 취한 여자랑 술을 또 먹으러 가면 적어도 그 여자와 대화를 할 수 없는 건 명확하다. 드디어 술 취해 뻗어버린 여자의 '성을 획득'해서 모텔에 끌고 가서 강간을 시도하면 범죄자가 된다.

모든 관계는 구체적이다. 아주 짧은 관계라고 하더라도 그 관계는 인간과 인간의 주체적 사고와 행동이 교차한다. 상대방의 인격과 주체성을 무시한 상황에서 이뤄지는 관계들이 충만할 리가 없다. '나 오늘 골뱅이 따먹었다'라고 어디 자랑스럽게 글을 올릴지언정 그건 그 사람의 가치를 증명하지 않는다. 아, 범죄자라는 가치는 증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헌팅을 해야 하는가

'사랑의 온도' 남주인공 온정선(양세종 역)도 첫 만남에 거절당했지만, 상대방에게 선택권을 줬고 결국 사랑을 얻어냈다.
 '사랑의 온도' 남주인공 온정선(양세종 역)도 첫 만남에 거절당했지만, 상대방에게 선택권을 줬고 결국 사랑을 얻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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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보들레르처럼 거리에서 잠깐 마주한 여인에게서 홀연 나를 되살리는 영원을 느꼈다면(<지나가는 여인에게> <파리의 우울>) 여성의 성을 획득하지 않기 위해 가만히 그 순간을 보내야만 한단 말인가? 아니, 그 정도까지 아니라도 원나잇 스탠드를 하고 싶은 소위 '훅업' 문화가 죄라도 된단 말인가?

인간의 자연스러운 모든 욕망을 죄악시하고 싶은 생각이야 물론 없다. 오래 전 한때 나는 홍대 놀이터에서 어떤 남성을 '헌팅'한 적이 있다. 술에 거나하게 취해서 나는 옆자리에 앉아 있는 남성을 아련하게 바라보다가 가방 안에 있는 책을 꺼내서 내 연락처를 적어 그 남자에게 건넸다. 연락을 하고, 하지 않고는 그 남자의 선택이었다.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내가 한 방식의 '헌팅'을 당해 본 적이 없다. 여성의 성이 '사냥감'인 이상 사냥감에게 선택권을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토끼의 의향을 물어보는 사냥꾼이 없듯이 여자를 '헌팅'하러 나온 '헌터'들도 그러지 않는다. 여성의 성은 획책해야 할 대상이고, 그 결과 여성들은 충만할 수 없는 관계에서 미리미리 도망친다.

만일 당신이 여성을 '사냥감'으로 상정하지 않고 대한다면 여성에게 거절 당하더라도 "어떻게 나를 거절해서 나를 이렇게 실패한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생각에 혼자 마음이 뜨거워졌다 차가워졌다 하다가 여자 머리에 갈아만든 배를 뿌리고 웅얼웅얼 욕설을 하면서 몇십 분씩 여자를 쫓아다니면서 여자를 두렵게 하지 않고도 즐겁게 그날 밤을 보낼 수 있다.

어느 여자가 권유를 거절하고 술도 먹지 않고 번호도 주지 않았는데, 그 여자가 '사냥감'이 아니라면 당신은 그저 인간으로서 다른 인간에게 뭔가를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사람일 뿐이다. 당신은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하고 가던 길을 갈 수가 있다. 너무나 아쉽다면 아쉬워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여자를 쫓아다니면서 두렵게 하고 연락처를 내놓으라고 할 권리는 당신에게 없다. 왜냐면 그 여자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마음대로 사냥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선택권'의 문제다. 같이 술 먹기 싫다고 말했더니 머리 위에 음료수를 뿌리는 남자와의 관계는 선택권이 있는 게 아니다. 술에 취한 여자는 판단이 흐려져서 제대로 선택할 수 없을 것이라는 계산 하에 다가서는 남자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타인의 인격과 주체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관계에서 무언가를 고민하고 선택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당신의 번호를 주는 것도 좋고, 몇 시에 어디로 가 있을 테니 술 한잔 더 하고 싶으면 나와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좋다. 만일 여성을 '사냥감'으로 보지 않을 수 있다면 누구라도 여성이 자신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제안을 할 것이다.

당신이 매력이 없거나 영 내키지 않아서 여자는 당신의 제안을 거절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존중받지 못한다는 것을 단박에 간파하고, 두려움에 도망치는 경우의 수는 확실히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누구라도 알다시피 타인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자신을 여는 것이 기본이다. 나와 친구가 되어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음료수를 뿌리거나 욕설을 하는 사람과는 누구도 친구가 되고 싶지 않다. 이 글을 읽는 누구라도 마음이 이끌리는 누군가를 '헌팅'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부디 마음에 꼭꼭 담아주시길 바란다. 당신이 지금 바라본 누군가는 사냥감이 아니라 '인간'이다.


태그:#헌팅, #페미니즘,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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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을 씁니다.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혹은 그 역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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