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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시간은 아이들을 가르치기보다 깨우는 시간이 된 지 오래다. 무거워진 눈꺼풀을 주체하지 못하고 도미노 게임처럼 연이어 책상 위로 고꾸라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차라리 편히 자라고 교실 바닥에 푹신한 매트라도 깔아주고 싶은 생각마저 든다. 어제 오늘의 문제도 아니고 이제 무감각해질 때도 됐건만, 교사로서 알량한 자존심에 이것만은 당최 용납이 안 된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도록 책과 씨름해야 하는 피곤함 탓이려니 싶다가도,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언제 그랬냐는 듯 왁자지껄한 모습에선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도 든다. 부러 잠자리에 드는 시간을 물어보면, 더러 새벽 두세 시를 넘긴다는 아이들도 있긴 하지만, 시험기간을 제외하면 대개 12시 이전이라고 답한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잠이 아주 부족한 건 아니다.

결국 수업이 문제다. 칠판엔 깨알 같은 판서가 빼곡하지만, 아이들의 교과서나 공책은 그 흔한 펜 자국 하나 없이 새 것처럼 깨끗하다. 목이 터져라 외쳐봐야 되레 튕겨져 나오는 느낌이 들 뿐이다. 언제부턴가 아이들에게 수업이란 배움이 있는 즐거운 시간이기는커녕 견뎌내야 할 인고의 시간이 돼버렸다. 수업시간 아이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은 "오늘은 자습"이다.

아이들을 깨울 수 있는 딱 하나 남은 방법은 '시험에 나온다'며 다그치는 것뿐이다. 시험 점수에 애초 무관심한 경우라면 하나마나한 이야기지만, 적어도 공부를 하겠다는 아이들에게는 쓸 수 있는 마지막 카드다. 옛날이야 체벌을 해서라도 공부를 시킬 수 있었지만, 지금은 어림도 없는 이야기다. 만에 하나 그랬다가는 경찰에 고소당하지 않으면 다행인 시절이 됐다.

오늘도 전가의 보도처럼 시험을 들먹였다. 그 말에 어쩔 수 없이 책을 들여다보곤 있지만, 그걸 공부라고 할 순 없을 것 같다. 낼모레 있을 시험이 끝나면 머릿속에서 모두 지워질 '일회용 지식'일 테니 말이다. 어차피 시험을 치르기 위해 공부한 것이니, 그 효용이 다했다면 사라지는 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억지 춘향 식으로 하는 공부가 잘 될 리도 없다.

여관으로 변해가는 교실... 아이들 눈 뜨게 할 수 있다면

대학입시를 경험한 이들이라면 모두가 공감하는 게 하나 있다. 수능이 끝난 뒤 시험장을 나서는 순간, 고등학교 3년간 배운 지식은 허공의 연기처럼 말끔히 사라지고 만다는 것.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꽤 지난 중년이든, 갓 졸업한 청년이든 학창시절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대비하기 위해 죽도록 외워댔던 내용을 기억해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선지 학창시절의 추억담에 공부는 낄 자리가 없다.

몇 해 전부터 온갖 방법을 총동원했다. 마치 불치병 환자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특효약을 찾아 헤매듯 연수를 다녔고, 배우고 익힌 수업 모형을 교실 수업에 적용해봤다. 선무당 사람 잡듯 어설프게 배운 걸로 애꿎은 아이들을 '마루타' 삼은 거지만, 그렇다고 교실이 시나브로 여관으로 변해가는 상황을 망연자실 두고 볼 순 없는 노릇이었다. 교사는 수업으로 말해야 하는 존재 아닌가.

단지 수업시간 아이들의 눈을 뜨게 할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었다. 수업시간마다 학습지를 개인별로 풀게 해 일일이 검사해보기도 했고, 진도와 관련지어 단원별 주제를 뽑아 모둠별로 토론수업을 진행한 적도 있다. 한번은 사전에 모둠별로 과제를 내준 뒤 보고서를 작성해 수업시간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한 학기 수업을 꾸려보기도 했다.

급기야 수업 영상을 주말에 집에서 미리 녹화해 인터넷 카페에 탑재한 뒤 예습해오도록 하고, 수업시간 학습지를 모둠별로 해결하는 방식으로, 이른바 '거꾸로 수업'을 흉내내보기도 했지만, 시큰둥한 아이들의 반응은 달라지지 않았다. 시키니 마지못해 따라서 한다는 듯, 몇몇 아이들은 '영혼 없는 수업'이라 수군거리기까지 했다. 수업 방식의 문제가 아니었던 셈이다.

수업을 변화시키려는 교사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웬만해선 흥미를 보이지 않는 목석같은 아이들을 따라가기엔 역부족인 듯하다. 이른바 '문화지체'에 비유될 만큼 둘의 속도 차이가 커 보인다. 흡사 스마트폰으로 게임하는 재미에 푹 빠진 아이들에게 공깃돌 쥐어주며 공기놀이하라고 권하는 꼴이다. 단지 재미로만 놓고 본다면, 수업은 애초 게임의 적수가 될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일선 학교에서 4차 산업혁명이 코앞이라는 지금까지도 대학입시에 그토록 목을 매다는지 이해되는 구석이 없지 않다. 흔히 학벌구조와 대학입시를 우리 교육 문제의 근본적인 적폐로 누구나 낙인찍고 있지만, 그마저 없다면 교실에서 아이들을 제어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것이다. 학벌구조는 학교를 순치시키고, 학교는 그것을 핑계 삼아 아이들을 통제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들 말마따나 '영혼 없는 수업'은 산만한 분위기로 이어져 교실을 파편화시키고 만다. 시작종이 울리기도 전부터 잠들어 있는 아이, 교과서와 공책은커녕 필기구도 없이 멍하니 앉아있는 아이, 다른 과목 숙제를 하느라 여념이 없는 아이, 대놓고 잡지나 소설책을 읽는 아이까지,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수업시간인지 자습시간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듯하다. 그나마 스마트폰을 꺼내어 게임을 하는 경우는 없다는 걸 위안삼아야 할 정도다.

교과서 덮어둔 채 소설 <남한산성> 읽는 아이

 영화 <남한산성>의 한 장면.
 영화 <남한산성>의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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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라도 수업을 계속해야 하나 자괴감이 들어 맥이 풀릴 때쯤, 독서삼매경에 빠진 한 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교과서를 덮어둔 채 소설 <남한산성>을 읽고 있었다. 그 아이만의 문제도 아닌데 지목해 나무랄 수도 없어, 수업을 하다 말고 그에게 다가가 소감이라도 들어볼 요량으로 말을 건넸다. 그와의 대화가 내게 '비수'가 되어 돌아올 줄은 그땐 미처 몰랐다.

얼마 전 영화 <남한산성>을 보았는데,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원작 소설을 찾아 읽고 싶어졌다는 거다. 러닝 타임이 두 시간 반 가까운 긴 영화인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면서, 영화관을 나오자마자 곧장 서점에 달려가 구입했단다. 책을 읽다 보니 마치 영화를 한 번 더 보는 느낌이 들어 좋다고 했다. 또, 책을 읽고 난 뒤 영화를 보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고도 했다.

그는 영화와 소설에서는 분명 실존 인물과 허구적 인물이 뒤섞여 있을 텐데도 전혀 구분되지 않았다면서, 병자호란 당시의 역사 기록을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욕심을 밝히기도 했다. 모르긴 해도, 소설을 다 읽고 나면 곧장 또 서점에 달려가 <조선왕조실록>이나 <산성일기> 등을 구입해 탐독하게 될 것 같다. 그런 그에게 수업시간에 딴 짓을 한다고 나무랄 순 없었다.

그것이 진짜 공부였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공부란 자발적 동기를 유발해 지적 호기심을 충족해가는 일련의 과정이다. 그에게 영화 관람이 원작 소설을 사서 읽도록 자발적 동기를 부여했고, 나아가 허구가 아닌 사실을 알기 위해 역사 기록을 찾아보도록 이끌었으니, 비록 수업시간 되바라진 모습을 보였다 해도, 역사 공부 하나만큼은 제대로 하고 있었던 셈이다.

수업은 이내 영화 <남한산성>을 본 아이들이 주도하며 감상평을 나누는 시간이 돼버렸다. 전에 볼 수 없었던 활기가 넘쳐났지만, 명색이 교사로서는 부끄럽고 참담했다. 고작 영화 한 편보다 못한 수업을 1년 내내 해왔다고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토록 활기찬 아이들을 내내 졸거나 딴 짓 하도록 방치해왔으니 무능하다고 손가락질당해도 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긴 얼마 전 영화 <택시 운전사>가 인기를 끌었을 때도 그랬다. 해마다 5월이면 잊지 않고 계기교육을 실시해오고 있지만, 적잖은 아이들이 여전히 5.18과 5.16을 헛갈려한다. 심지어 5.18이 6.25 전쟁보다 앞서 일어난 일이라 답하는 경우도 봤다. 그랬던 아이들이 영화를 본 뒤 5.18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며, 자발적으로 모둠을 꾸려 5.18 사적지로 답사를 가자고 졸라대기 시작했다.

영화 <택시 운전사>가 목석같던 아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영화를 본 뒤, 어릴 적 부모님을 따라 멋모르고 봤던 영화 <화려한 휴가>와 <26년>을 다시 찾아보게 됐다는 이야기부터, 지지난 주말에 친구들과 시내버스를 타고 망월동 묘역을 다녀왔다는 아이도 있었다. 부끄럽지만, 수많은 교사가 엄두조차 내지 못한 일을 영화가 보란 듯 대신해주고 있는 셈이다.

자괴감 속에 길고 길었던 수업이 끝났다. 영화를 통해 역사 공부의 재미와 교훈을 동시에 얻었다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교실을 나오려니 뒤통수가 따갑다. 아무리 알찬 수업이라도 일단 재미가 없으면 요즘 아이들에겐 가차 없이 버림받는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과연 나는 아이들로부터 저 영화들처럼 사랑 받는 유능한 교사로 거듭날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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