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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한 경주터미널
 한산한 경주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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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을 가로지르는 자전거 탄 신사
 능을 가로지르는 자전거 탄 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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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하지 말자.

게스트 하우스를 예약하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떠나는 데 익숙지 않은 나 같은 사람은 한 번 떠나는 것에 큰 부담을 느낀다. 언제 또 와보겠냐는 심정이 발동하면 그 지역의 모든 명소와 음식과 즐길 거리를 섭렵해야만 할 것 같다. 단 한 번 만에 말이다. 부담을 떨치기 위해 '북스테이' 여행을 떠나기로 한 건 탁월한 결정이었다.

아무 데도 안 가도 괜찮아! 게스트 하우스에서 뒹굴거리며 책을 읽기만 해도 돼. 그렇게 다독이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내 책은 한 권도 챙기지 않았다. 그곳에 가서 만나게 될 책을 읽기로 했다. 마음과 다르게 '훌쩍' 떠나지 못하는 나에게 내린 처방이었다. 머리 속도 가방도 최대한 가볍게. 행선지는 경주, 딮 게스트하우스였다.

꽃게 된장국이 맛있었던 홍앤리 식탁
 꽃게 된장국이 맛있었던 홍앤리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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딮 사장님의 추천으로 간 홍앤리 식탁. 요즘 인스타에 나올 법한 인테리어 예쁜 식당이었다. 힙한 외관을 보고 유추하기 어려울 만큼 깊은 맛의 꽃게 된장국에 놀랐다. 뭐야. 맛있잖아.

게스트하우스에서 읽은 책 연애놀이
 게스트하우스에서 읽은 책 연애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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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집 밖으로 나온 건, 좀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어서였다. 이 좋은 가을날에 혼자 방 안에 있지 않기를 바라서였다. 바람을 쐬고 경치도 보고 사람들과 대화도 좀 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저녁 8시, 딮 1층 테이블에 앉아 찻잔에 막걸리를 따라 마셨다. 나윤과 지은이 내 맞은편에 앉았다.

우리는 모두 다른 도시에서 다른 일을 하다가 경주에서 만났다. 누군가 순서를 정한 것도 아닌데 자연스레 한 명씩 돌아가며 이야기를 꺼냈다. 나윤은 '어머, 사람들 고민은 다 똑같구나!' 맞장구를 치곤 했다. 대화를 하면서 느꼈다. 혼자 있을 때의 나는 나의 단점만을 커다랗게 확대하여 들여다보곤 했다.

반면 다른 사람들 속에 있는 나는 나의 장점을 최대한 발현하려고 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랬다. 솔직하게 그러면서도 부드러운 방식으로 속내를 보여주었다. 각자의 장점이 증폭되고 융합되어 하나의 큰 덩어리를 이루는 것. 그날 밤 대화는 그런 것이었다. 혼자서 안으로 파고드느라 잊었던 것들을 겉으로 발산하고 확인하고 나누는 일. 이야기를 나눈 것만으로 안도감이 들었다.

책 먹는 법
 책 먹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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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독서법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질문을 잡아야 합니다.
삶이 던진 질문을 붙들고 책을 읽을 때 가장 열심히 가장 정직하게 읽고,
가장 큰 것을 배울 수 있으니까요.
- <책 먹는 법> 중

이런 구절에 늘 밑줄을 긋는다. 지긋지긋하도록 긋는다. 그리고 답답해한다. 도대체 내 질문은 뭘까. 난 여전히 질문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시간을 허비하고 멍청하게 군다. 얼마나 더 그래야 할까. 답답함에 책을 붙들었다가 답답함에 책을 놓는다.

경주 자전거 여행
 경주 자전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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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자전거. 경주로 오면서 자전거를 가지고 올까 말까 생각했었다. 이번에는 '뭘 하려고' 하는 여행이 아니었기에 두고 왔다. 경주에 오자마자 자전거 생각이 났고, 빌려서라도 자전거를 탔다. Choi는 서울에서 브롬톤(자전거의 일종)을 가지고 온 여행가였다. 고양이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마침 게스트하우스에 그가 그린 고양이 그림책이 있었다. 책 앞에 고양이를 그려주는 그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자기 책에 그림을 그려서 선물해줄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그는 조용한 사람처럼 보였다. 함께 자전거를 탄다면 천천히 느긋하게 경주를 한 바퀴 둘러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자전거를 타는 순간, 그는 터보 엔진으로 변신하여 가열차게 달렸다. 브롬톤으로도 어찌나 씽씽 달리던지. 따라가느라 모든 것을 잊고 전속력으로 페달을 밟았다. 햇살이 아주 좋은 날이었다. 이런 날은 자전거를 타주어야 햇살이 아깝지 않다.

만족스럽지 않았던 레모네이드
 만족스럽지 않았던 레모네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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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서 강렬했던 경험>
1. 홍앤리 식탁 꽃게 된장국이 너무 맛있었다
2. 밤에 책을 읽었다 기분이 좋았다
3. 사람들과의 교류, 함께 라이딩한 것

처음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고 시작한 여행이지만, 떠나오니 알아서 움직였다. 황리단길을 가고 첨성대 야경을 보며 비눗방울을 불었다. 다음날 오전에는 자전거로 산림 연구원을 달렸다.

세상은 언제나 풍성하다. 그저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길을 나서기만 하면 된다. 약간의 피로감. 집이었으면 생각할 것도 없이 널부러졌을텐데. 그래도 경주를 떠나기 전에 카페에 들러서 글을 쓰기로 했다. 피곤할 때 글쓰기가 얼마나 좋은지 대만에서 느낀 바가 있기 때문이었다.

지친 여행 중의 글쓰기는 힘이 들어가 있지 않다. 소소하고 담백하게. 쓸 것만 쓴다. 피곤하니까. 처음엔 귀찮았지만 시작하고 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45분이 지나있다. 기분이 좋다. 글쓰기와 조금은 친해진 기분이다.

그동안 글쓰기를 머리 속으로만 생각하고 당연히 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스스로 부담 주고 압박해왔다. 머리 속 부담을 벗어던지고 몸으로 부딪혀 봐야 아는 일이다. 여행이든 글쓰기든.


책 먹는 법 - 든든한 내면을 만드는 독서 레시피

김이경 지음, 유유(2015)


연애놀이 (반양장)

정유미 지음, 컬쳐플랫폼(2017)


태그:#경주여행, #북스테이여행, #북스테이, #경주북스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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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쓰고 글을 쓴다. 자전거를 타고 춤을 추고 여행을 하는 사람. 글을 쓰고 있을 때 비로소 사람이 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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