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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육아, 가사노동 등을 도맡아 하는 모습입니다. 성별에 따라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아이가 있는 여성은 집안에 갇힌 납작한 존재로 그려지는 걸까요? 여기, 사회가 그어놓은 선을 뛰어넘고 제 목소리를 내는 엄마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교육 개혁·정치·여성주의 등의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합니다. '엄마의 영역'은 정해져 있지 않다는 당연한 명제를 몸소 증명하는, 'OO하는 엄마들'을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까페 덕분에 골목이 환해졌다
▲ 까페 또봄의 전경 까페 덕분에 골목이 환해졌다
ⓒ 까페 또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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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한적한 서울시 강동구 마을 한 곳에 카페가 생긴다는 소식이 들렸다. 지역 곳곳에서 활동하던 8명의 여성이 힘을 합쳐 문을 연다고 했다. 8명의 이름을 들어보니 그들의 내공이면 해낼 수 있겠다 싶었지만 이런저런 걱정도 했다.

기우였다. 거주자 주차 지역 정도로만 쓰이던 골목길에 카페가 들어선 후, 그곳은 마을의 거점이 되었고 이름처럼 환해졌다. 한 번 본 사람들은 또 보게 된다는 그 카페의 이름은 '카페 또봄'이다.

한 번 본 사람들은 또 보게 되는 '까페 또봄'

'OO하는 엄마들'이라는 기획기사를 요청받고 가장 먼저 떠오른 이는 '또봄'의 공동대표 8명 중 한 명인 채은순 대표다. 동네에서 마주칠 때마다 늘 엄마의 삶과 자신의 삶을 조화롭게 꾸려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고 시절 흠모하던 3학년 선배 같았던 채은순 대표. 지난달 26일, 인터뷰 요청을 핑계 삼아 또봄으로 그녀를 만나러 갔다.

"은행을 다니다 결혼 후 전업주부가 되었어요. 동네 엄마들과의 연대로 첫 아이 육아를 근근이 이어갔죠. 그러다 다른 건 몰라도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둘째는 자연주의 태교를 택했죠. 생활협동조합(아래 생협)의 식품과 생필품으로 먹거리를 다 바꿔 아이를 키웠어요. 첫째는 자라면서 잦은 병치레로 약을 많이 먹었지만 잘 낫지 않았는데, 건강한 먹거리로 키운 둘째는 다르더라고요."

다르게 키운 아이는 다르게 자란다는 걸 경험으로 확인한 채 대표는 본격적으로 생협의 식품위원회 활동을 시작했다. 유해 물질로 가득한 생활전반을 건강하게 바꾸고 싶은 마음은 2006년 여성환경연대의 건강관리양성과정으로 이어져 생활전반에 대한 강의를 하는 교육활동가로 그녀를 성장시킨다.

채은순 대표의 고민은 지속적인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다
▲ 스스로 돌보는 몸에 대한 오래된 고민 채은순 대표의 고민은 지속적인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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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몸을 돌보는 시간과 노력

아토피 해결을 위해 친환경급식 개선, 먹거리 부모교육 등을 이어가던 중 그녀의 어머니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신다. 그녀는 병원에 다니며 이후 활동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점을 깨닫게 된다.

"어머니는 평생 술, 담배 안 하시고 운동하며 잘 지내셨는데 왜 갑자기 아프신가 고민했어요. 살면서 몸은 정말 중요한데, 자신의 몸과 건강에 관해 상의할 사람이 없더라고요. 길어야 3분뿐인 의사와의 진료에 매달릴 게 아니라 나 스스로, 또 다른 사람들과 건강에 관해 이야기하며 몸을 돌보는 시간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이후 그녀는 대사증후군 줄이기 프로젝트 매니저로 지역 자활센터 등에서 여성들에게 스스로 건강을 돌볼 수 있는 법을 알려주는 활동을 이어간다. 먹거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함께 현미밥을 지어 먹으며 소감을 나누는 방식의 수업을 진행했다.

그러다 상상 이상의 변화를 보았다고 한다.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돌보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눈에 띄게 달라진 대사증후군 지표를 보며 여성들이 좀 더 이기적으로 자기 몸을 돌보며 자신을 찾아갈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까페 또봄이 준비한 세월호 가족 간담회
▲ 세월호 가족간담회 까페 또봄이 준비한 세월호 가족 간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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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을 겪으며 바뀐 생각

"그동안 같은 마을에 살지만 교육가, 활동가로 존재하다 보니 마을에서 스스로 이방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던 중 세월호 사건을 겪으며 활동가로 공허한 목소리만 낼 것이 아니라 마을로 들어가 일상을 함께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게 됐어요.

때마침 지역의 여성들이 모여 마을 카페를 세우려는 논의를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합류를 결심했죠. 초기 멤버 중 모르는 분도 계셨지만 그들의 지난 시간을 믿고, 마을로 들어가야 한다는 결심으로 시작할 수 있었어요."

또봄의 창립 멤버이자 지금도 굳건하게 카페를 꾸려가는 8인은 모두 주부다. 그러면서도 자원봉사자, 어린이책시민연대 활동가 등 다양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아이가 자라면서 본인과 지역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모이게 되었단다.

"준비 기간은 1년이었어요. 매월 소문난 지역의 카페를 탐방하며 우리가 꿈꾸는 카페를 함께 공부했어요. 각자 형편에 맞게 출자금을 냈지만 턱없이 부족했죠.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직접 하자고 팔을 걷어붙였어요. 평소 인테리어 관심 있는 분이 직접 설계도와 간판을, 그리고 음식 솜씨가 좋은 분들은 메뉴를 만들어 냈지요. 그 과정에서 주부는 참 많은 일을 하는구나, 그런 주부들이 뭉치면 다 되는구나 감탄했죠."

8명 모두가 함께 뛰어들어 해낸 까페 인테리어 공사현장에서
▲ 채은순 대표 8명 모두가 함께 뛰어들어 해낸 까페 인테리어 공사현장에서
ⓒ 까페 또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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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들이 뭉치면 못 하는 것이 없더라

봉사자, 활동가이기 이전에 주부였던 8인은 10여 년 넘게 가사노동을 했던 시간들을 발판 삼아 카페 또봄을 만들었다. 2년 동안 다른 직원 없이 8명이 카페를 공동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왜 하필 카페였을까?

"시민단체 활동이 가치가 있지만, 오는 사람만 오는 구조예요. 보다 많은 사람들을 문턱 없이 만나고 싶어 찾은 게 카페였고, 그런 뜻과 계기가 잘 맞았죠.

그동안 또봄에서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가장 애착이 가는 건 드로잉 수업이에요. 카페 인테리어를 하던 중에 우연히 지나가는 이웃을 만났는데 그분이 드로잉을 하신다는 거예요. 유명한 작가가 아니어도 (그런데 섭외하고 보니 유명한 작가시더라고요) 마을 사람들이 강사와 수강생이 되어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어요. 스스로 문화를 만들어내는 일을 꿈꿨는데, 드로잉 수업이 그 시작이었던 거죠."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이들의 문화는 이제 마을의 문화가 되고 있다
▲ 까페 또봄의 장수 프로그램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이들의 문화는 이제 마을의 문화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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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문화를 만들어 내는 카페

"볼펜 하나 들고 나의 일상을 그리는 그 시간이 단순한 미술수업을 넘어 자기 자신의 인생과 만나는 과정이 됐어요. 드로잉를 시작으로 뜨개질, 캘리그래피, 사진, 그림책, 글쓰기, 자수 등의 프로그램을 이어가고 있어요.

엄마들은 다 같을 거예요. 식구들 챙기다 보면 자신을 잘 못 챙겨요. 자신을 챙기던 습관이 너무 오래전 일이라 낯설기까지 하죠. 멀리 가지 않고 마을에서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니 참 좋다며 카페를 찾는 분들이 점점 늘고 있어요.

카페가 물꼬가 되어 마을에서 문화를 통해 서로의 인생이 만나는 시간들이 참 좋아요. 카페를 통해 만난 사람들과 밖에서도 연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 이 공간이 마을로 확장되는 느낌이 들어 뿌듯해요."

스스로를 발전시켜 마을의 거점이 되는 공간까지 만들어 낸 채은순 대표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떤 딸, 어떤 엄마, 어떤 아내인지도 궁금해진다.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한 모색

"딸 넷, 그 다음이 아들인 집안에서 넷째 딸로 태어났어요. 언니들과 남동생 사이에서 내 자리를 찾지 못하고 유년시절을 보냈죠. 결혼 후에도 그런 거예요. 아내와 엄마의 자리만 있지 내 자리가 없는. 그래서 활동할 땐 일부러 밤에 시간을 잡아요. 밤에 나갈 수 있어야 진짜 내 시간을 찾는 것이다, 하면서."

말은 이렇게 했지만 바쁜 은행원인 남편을 두고 두 아이를 키우며 그 많은 일을 해온 채 대표의 지난날이 쉬웠을 리 없다. 가사와 육아에 있어 여성의 노동을 시시콜콜 말해 무엇하랴. 채 대표는 여성의 자기계발, 사회발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여성 본인의 의지라고 말한다. 끊임없이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가족들에게 요구하고, 사회의 여성들에게 이야기 하고 있다.

"저부터도 '아줌마'에 대한 편견을 여전히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카페를 만들고, 운영하다가 알게 된 것이 있어요. 소위 전형적인 '아줌마'라고 해도 다 자신만의 것이 있어요, 겉모습으론 보이지 않는 내공이. 우리에겐 기회가 없을 뿐이에요. 사회에서 기회를 줘야 해요.

육아와 살림만 하다 보니 처음엔 잘 못 할 수도 있어요. 시간이 더 걸리고 말도 잘 안 통할 수 있죠. 그래도 자꾸 기회를 주고 스스로 비전을 찾게 도와주면 돼요. 그를 해냈을 때 여성들에게 보상을 하고요. 그렇게 여성들은 차근차근 성장할 수 있어요. 엄마 그 이후의 삶으로. 이는 여성들만의 성장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성장이기도 해요."

아이와 엄마를 위한 음악회가 열리기도 한다.
▲ 까페의 오전 11시 음악회 아이와 엄마를 위한 음악회가 열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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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페 또봄 그다음의 비전

"지금까지 해온 일은 여성주의로 관통할 수 있어요. 여전히 사회는 여성주의를 여러 의미로 어려워해요. 여성주의를 근간으로 가볍게 사람들과 만나고 싶어요. 여성주의를 어떻게 접목할까 고민이 많았는데 그동안 카페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자기 안의 여성주의적 시선이 열리는 걸 봤어요.

이를 좀 더 확장해나갈까 해요. 크게는 사회생활, 작게는 자신의 일상에서 힘들고 주저할 때 스스로 버팀목이 될 수 있게. 여성주의라고 표현은 하지만 사회의 약자들의 편에서 약자들 스스로 소리를 낼 수 있는 다양한 길을 모색하고 싶어요."

혼자선 변하지 않더라도 연대의 힘으로 끊임없이 이야기하다 보면 언젠가는 바뀐다는 것을 일상의 경험으로 확인 중인 채 대표. 그녀는 여성과 사회의 약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관심의 폭을 넓혀가길 희망한다.

"얼마 전 결혼 후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다녀왔어요. 5시간 산행하고 숙소에서 혼자 밥을 지어먹고 드로잉을 하며 책을 보는 그 순간 이루 말할 수 없는 충만감이 드는 거예요. 그때 깨달았죠. 내가 했던 수많은 일이 결국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의 자양분이었구나. 그런데 혼자 온 나를 보고 많은 분들이 '간도 크다, 무슨 여자가 혼자...'라며 걱정을 하더라고요. 나는 충분히 혼자 행복한데(웃음)."

채 대표의 이야기는 결국 '혼자서도 오롯이 행복할 수 있는 여성의 독립'으로 귀결됐다. 사소한 행복 같아 보이지만, 그 행복을 위해 개인의 부단한 노력과 사회 전체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에둘러 말한다.

많은 일을 하는 주부들이 뭉치면 못해낼 일이 없음을 증명한 까페 또봄
▲ 까페 또봄의 8인의 공동대표들 많은 일을 하는 주부들이 뭉치면 못해낼 일이 없음을 증명한 까페 또봄
ⓒ 까페 또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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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노동의 가치가 인정받는 사회

그동안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이 누군가를 돌보는 것은 익숙한 일로 여겨졌다. 아이를 키우거나 남편의 사회생활을 돕는 일은 만만치 않은 노동이지만 이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경험이 크기에 많은 여성들이 힘들어하고 주저한다.

카페 또봄이 인적 드문 마을 골목길을 환하게 바꿀 수 있던 건 서로의 가치를 알아봐 주고 격려해준 덕분이다. 다시 시작하는 여성들을 사회에서 마주친다면 산에 혼자 온 '간 큰 아줌마'가 아닌 산에 혼자 온 '씩씩한 이웃'으로 응원해주길. 누구나 '엄마' 이후의 삶이 다시 '또 봄'이 될 수 있도록.

[OO하는 엄마들] 기획 살펴보기
① "육아하다 새벽 2시 등교해 공부" '엄마 학생'의 하루
② 아이 업고 국회로 향하는, '수상한' 엄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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