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파이널 컷>의 스틸 이미지 및 포스터

ⓒ (주)인디스토리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보는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영화가 좋아서, 배우가 마음에 들어서, 영화가 하는 이야기를 응원하고 싶어서, 혹은, 대사를 외우거나 음악을 확인하고 싶어서 등등 수많은 이유가 있을 수가 있을 거다. 하지만, 이번은 조금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2016년 10월, (개봉관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부산의 한 극장에서 힘들게 만난 영화를 거의 1년이 지난 지금, 내가 사는 포항에서 만났다. 게다가, <무현: 두 도시 이야기>에 대해 바로 이 1년의 세월이 가져다준 차이는 '이야기'에만 있지 않았다.

가장 어두운 시간은 동트기 직전이다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파이널 컷>의 스틸 이미지 및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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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였을까? 내게 2016년 10월은 지독히도 어두웠다. 상식적인 어떠한 논쟁조차 뚫고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았고, 누군가는 일제에 의해 강제 병합이 이루어진 1910년에 비유하며 절망을 토로하고 있었다. 그때 만난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우리에게 '잊지 말아야 할' 민주주의의 역사를 보여주며 자부심을 잊지 말라며 위로를 던졌다. (관련 기사: 우리의 자랑스러웠던 민주주의를 기억하라) 하지만, 토닥거리며 어깨에 얹힌 위로는 점점 더 무거운 짐이 되어 실패한 역사를 아쉽게 기억하게 했다. 그렇게 1년 전에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아쉬움과 미안함으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관람은, 짙게 드리운 먹구름을 절대 뚫어낼 수 없다는 무력감과 함께였던 것으로 기억에 남았다.

그 후로 우리는, 이제는 모두가 알고 있는 대로 '놀라운 역사'를 이뤄냈다. 정확히 1년의 세월이 흘렀을 뿐인데 세상은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전국을 통틀어도 개봉관을 40개 이상 찾기 힘들었던 '작은' 영화가 '파이널 컷'이라는 이름을 달고 재개봉을 한 것만으로도 의아한 일일 텐데, 이곳 포항의 독립영화관에서 '당당하게' 상영되고 있다. 몸을 낮추고 숨어야 한다며 위축되었던 우리로서는 기대할 수 없었던 일들이, '백주대낮'에 벌어지고 있다. 어깨를 폈다, 고개를 들고 신선한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허파꽈리 하나하나에 새로운 공기가 공급되자, 머리도 한결 맑아지더니 '용기'가 생긴다.

<무현: 두 도시 이야기-파이널 컷> 보러 가지 않을래요?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파이널 컷>의 스틸 이미지 및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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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의 지역 담벼락에 광고했다. 포항에도 독립영화관이 문을 열었으니 보고 싶은 영화를 찾아 전국을 헤매지 않아도 된다면서, 같이 보자고 말이다. 열 명 남짓한 친구들이 모였다. 새 단장을 하고 '독립 영화관'으로 다시 태어난 상영관의 좌석은 깨끗했고, 옆자리를 채워준 친구들로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암전과 함께 두 번째 관람이 시작되었고, 놀랍게도, 영화는 전혀 달라져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나? 사회 시간이었을 것이다. 대한민국 지도를 보고 북쪽에서부터 주요 산맥의 이름을 외웠어야 했다. 선생님은 매 대신 사용하실 자를 들고 조그마한 나무 책상에 바로 붙어 서 계셨고,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산맥 이름을 외워 내렸다. 조금이라도 틀리면 저 자로 맞겠구나, 하는 생각이 계속 머리를 복잡하게 하더니, 나는 결국 뺨을 한 대 맞아야 했었다.

공포는 힘이 세다. 곧잘 해내던 일들도 관중이 있으면 실수를 하게 되고, 억압이 있는 경우엔 간신히 내었던 용기마저도 쉽게 사라지고 만다. 1년 전의 <무현: 두 도시 이야기>의 느낌이 딱 그랬다.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공포를 이겨낸 용기로 간신히 한 발을 내디뎠으나, 억압을 충분히 밀어낼 수 있을 만큼 시원하지 않았다. 도리어 되돌릴 수 없는 '과거'의 기억으로 답답했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우리는 그런 답답한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희망'을 기억해 낼 수 있었음에 위로를 받았다. 그랬던 영화는, 촛불 혁명 이후의 몇 장면을 추가한 것만으로도 눈부시게 밝아져 있었다.

1년의 세월은 그냥 흘러가 버린 것은 아니었다. 계절을 몇 번이나 보내면서 촛불을 들었던 국민의 힘으로, 대한민국에는 짙은 어둠을 밀어낸 '새로운 아침'이 왔다. 영화엔 광장을 가득 채운 촛불을 만들어낸 '우리'가 있었고, 탄핵에 환호하며 새로 들어선 정부에 끝없는 응원을 보내는 '우리'가 있었다. 결국, 작년에 개봉했던 영화에서 미처 말하지 못했던 희망은, 영화의 주인공인 노무현 대통령의 유지를 따른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에 의해 현실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첫 번째 개봉에서는 '새드엔딩'이었던 영화가 '기적처럼' 조심스러운 해피엔딩으로 바뀌어 버렸다.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 '우리'가 있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영화 다 끝났어... 안 나가?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파이널 컷>의 스틸 이미지 및 포스터

ⓒ (주)인디스토리


불이 켜지고 자막이 올라가고 있는데도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했다. 분명 1년 전의 첫 번째 관람에서와 묘하게 겹치는 장면인데, 영화를 보고 난 마음은 확실히 다르다. 첫 관람에서는 미안함과 절망감이 더 컸다면, 지금은 자부심과 희망으로 뿌듯하다. 그리고, 지금은 이런 뜻을 같이하는 친구들도 함께하고 있지 않은가?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시간이 흘러간 것으로 생각했다. 지난봄의 환희는 벌써 흐릿해지고 있었고, 현실에서는 '적폐 청산'의 대상으로 지목된 세력들이 끈질기게 저항하고 있어 두려워진다. 불안이라는 것은 너무도 쉽게 '희망'을 변질시키고, 자부심의 기억은 일상에 묻혀버린다. 올해 10월에 다시 만난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1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잊어버리고 있는 자부심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다. 우리가 그냥 흘려보낸 시간이 아니었으니, 우리의 혁명이 성공적으로 대한민국의 대 전환을 완성할 수 있도록 좀 더 기운을 내라고 말해 주었다. 1년의 간격을 두고 만난 묘한 데자뷔의 순간, 그 결말은 전혀 달라져 있으니 말이다.

단지 1년의 세월이 흘렀을 뿐이지만, 그 시간이 그냥 흘러간 것만은 아니다. 쉽게 불타오른 촛불이 아니었으니, '우리' 쉽게 잊지도 말자. 적폐는 아직 그대로이고 그들이 만들어온 세상은 쉽게 '전진'할 수 없을 만큼 끈질기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촛불의 승리'가 더해진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 이외에는 없지 않은가? 어둠을 걷어낸 아침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오늘날의 영화읽기 무현: 두 도시 이야기 촛불혁명 적폐청산 망각은 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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