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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이 어릴 때는 집에서 앞머리도 깎아주고 여차하면 뒷머리도 깎아줄 때도 많았습니다. 여자 셋이 미용실을 가면 커트만 하는데도 3만~4만 원 정도가 들어가니 적은 돈이 아닙니다. 아이 때는 엄마가 머리 만져주며 스킨쉽 하는 것도 좋고 또 삐뚤빼뚤 쥐를 파먹어도 귀엽기만 합니다.

중요한 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머리카락 상태를 인지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에만 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3-4학년 정도만 돼도 엄마가 깎아준 머리카락은 뭔가 돈 주고 깎은 것과 다르다는 것을 서서히 알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는 아무리 좋은 말로 꼬셔봐도 요지부동입니다.

일찍부터 멋을 알아버린 둘째는 저에게 절대 앞 머리카락도 내주지 않습니다. 차라리 자신이 깎는 게 낫다며 혼자 화장실 거울 앞에서 앞머리 손질을 하곤 합니다. 재미있는 건 고등학교 2학년 큰딸은 오히려 무던합니다. 엄마가 이번엔 진짜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십 년 넘게 해보니까 이제 감이 온다고 슬슬 꼬시면 "이번엔 믿어도 되겠지..."라는 표정으로 머리카락을 내줍니다.

중학교 2학년 때인가 그렇게 앞 머리카락을 저에게 맡겼다가 그만 앞 머리카락이 이마의 1/2 지점에 덩그러니 매달리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순하디 순한 큰딸도 도저히 봐줄 수 없는 자신의 앞 머리카락을 보며 하염없이 거울 앞에서 눈물만 흘렸습니다. 급기야는 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이불 속에 드러누워 버렸습니다.

사태가 너무 심각해져서 저는 친정엄마에게 SOS를 쳤습니다. 손녀딸을 세상에서 제일 귀중하게 여기는 친정엄마는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한달음에 달려와서는 저를 막 나무랐습니다. 그리고는 울고 있는 딸아이에 모자를 씌우고 미용실로 직행하셨습니다.

"엄마, 뒷머리도 자를 수 있어?" 딸이 물었다

저는 속으로 '저기서 더 짧아지면 어떡하나' 걱정하고 있는데 돌아온 딸아이 표정이 맑게 개었습니다. 역시 전문가 디자이너의 손길이 달라도 확실히 달랐습니다. 길이는 같은 것 같은데 이쁘게 손질이 되니 그런대로 봐줄 만 했고, 사랑하는 할머니의 세상 없는 위로를 받고 다행히 등교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몇 번 더 저한테 속고 울고 하기를 반복하다 결국 한동안은 죽어도 미용실만 가겠다고 고집을 피우길래 이제 더이상은 안 되겠구나 싶었는데 웬일인지 오늘 딸아이가 저에게 살짝 물어봅니다.

조카 앞머리카락 잘라주고 동생에게 욕먹던 날
 조카 앞머리카락 잘라주고 동생에게 욕먹던 날
ⓒ 장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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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뒷머리도 자를 수 있어?"
"당연하지, 앞머리보다 뒷머리가 훨씬 쉬워. 엄마가 너희 머리카락을 몇 년을 깎아줬는데."


무슨 근거 없는 자신감인지 큰소리를 치면서도 속으로는 만일의 사태에는 대비해 조금만 손을 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동안의 내공이 쌓인 걸까요? 딸아이도 저도 아주 만족스러운 컷이 나왔습니다.

그동안 나의 마루타가 되어준 두 딸과 조카 시연이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조카 앞머리 자르고 동생에게 욕먹던 날이 생각나네요.



태그:#앞머리자르기, #셀프컷트, #미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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