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부터 개막하는 2017-18시즌 프로농구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슈는 감독이다. 최근 프로농구 10개구단의 사령탑들을 돌아보면 어느새 절반 이상이 9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다녔던 '농구대잔치 세대' 출신의 스타 감독들로 채워졌다.

문경은 서울 SK 감독, 이상민 서울 삼성 감독, 추승균 전주 KCC 감독, 김승기 안양 KGC 감독, 조동현 부산 kt 감독에 이어 올해부터는 '매직히포'로 유명했던 현주엽 감독이 창원 LG 지휘봉을 잡으며 지도자 반열에 합류했다. 이들은 한국농구의 르네상스기였던 90년대 대학농구의 주역들이자 프로 초창기를 함께했던 프로화 1세대이기도 하다.

이들보다 살짝 한 시대 위인 유재학 울산 현대모비스 감독, 추일승 고양 오리온 감독, 유도훈 인천 전자랜드 감독, 이상범 원주 DB 감독 등 다른 종목같으면 지도자로서 아직  한창 나이인 50대 감독들이 프로농구에서는 벌써 '노장'처럼 느껴질 감독들의 연령대가 젊어졌다. 농구대잔치 시절의 향수를 간직하고 있는 팬들에게는 왕년의 스타들이 어느덧 유니폼이 아닌 양복을 입고 코트에서 지략대결을 펼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낯설면서도 감개가 무량해질 수밖에 없다.

농구대잔치 세대 출신 감독들은 지도자로서도 나름의 업적을 쌓아가고 있다. 지난해 김승기 감독은 안양 KGC를 정규리그/챔피언결정전 통합 우승으로 이끄는 업적을 세웠다. 프로무대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거머쥔 것은 허재 전 KCC 감독에 이어 김승기 감독이 두 번째였다.

문경은 감독과 추승균 감독도 각각 소속팀을 정규리그 우승과 챔피언결정전 진출로 이끌었다. 이상민 감독 역시 지난 시즌 삼성을 8년 만에 챔피언결정전으로 이끌며 나름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추승균-이상민-문경은-조동현-현주엽 감독 등은 모두 현역 시절에서 활약했던 친정팀의 지휘봉을 잡으며 구단과의 끈끈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스타 출신 감독으로서 가지는 무게감과 화제성, 젊은 감독으로서 프로 구단의 생리와 선수들과의 소통에 능하다는 장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스타 출신 감독들이라고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문경은 감독이 이끄는 SK는 최근 2년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며 부진한 경기력으로 문 감독의 리더십이 자주 도마에 올랐다. 추승균 감독도 지난 시즌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속에 정규리그 우승팀이 1년만에 최하위로 곤두박칠치는 굴욕을 맛봤다. 올시즌 LG 코치로 자리를 옮긴 김영만 전 감독도 지난해 DB를 3년연속 플레이오프로 이끌었으나 정작 세대교체 실패와 함께 단기전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며 플레이오프 10연패라는 불명예를 남기고 결국 이상범 신임감독에게 지휘봉을 내줘야 했다.

조동현 감독은 부임과 동시에 전력이 약한 KT를 재건하는데 고전하며 아직까지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아보지못했다. 지난해 나란히 챔프전에서 명승부를 펼쳤지만 소속팀 핵심 선수들이 이탈하며 팀전력이 약화되었다는 평가를 받는 김승기 KGC 감독과 이상민 삼성 감독도 올시즌이 진정한 시험무대라는 전망도 있다. 올해 처음 도전장을 던진 '초보 사령탑' 현주엽 LG 신임감독은 프로 지도자 경험이 전무하다는 약점을 어떻게 극복할지가 관건으로 보인다.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감독들이 단지 과거 현역 시절의 명성에만 기대어 성급하게 감독직에 올랐다가 시행착오를 겪는 것에 대하여 우려의 시각도 존재한다. 이충희나 박수교 전 감독처럼 현역 시절의 명성을 지도자로서 완전히 깎아먹은 사례도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선수빨'을 바탕으로 성적을 내는 감독을 넘어, 선수육성이나 리빌딩 등에서도 어느 정도의 역량을 발휘할수 있느냐가 지도자로서 오래 살아남기위하여 검증받아야할 관문으로 보인다.

유재학-추일승 같은 산전수전 다 겪으며  KBL에서 장수한 베테랑 감독들의 공통점은 감독으로서 '우승와 꼴찌까지 모두 경험해본' 지도자들이라는 점이다. 좋은 지도자가 되기위해서는 승리 못지않게 패배의 경험도 중요하다. 선수 시절 승리에만 익숙했던 스타 출신 지도자들이 감독이 되어서 가장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농구대잔치 세대 출신 스타들은 은퇴한지 오래인 지금도 아직도 현역 선수 못지않은 인기와 지명도를 자랑하기도 한다. 지난 프로농구 미디어데이에서도 10개구단을 대표하여 참석한 선수들보다 오히려 감독들의 언행이 더 주목받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좋게보면 이들이 그만큼 한국농구에서 차지하던 위상이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요즘 프로농구나 선수들의 인기가 떨어진다는 의미와도 일맥상통한다. 아직도 선수보다 감독들이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기묘한 상황은 그만큼 오늘날의 팬들을 사로잡을 새로운 컨텐츠가 부족한 한국 프로농구가 극복해야할 숙제인 셈이다.

어쩌면 그래서 젊은 감독들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혈기왕성한 젊은 '오빠'에서 어느덧 나이지긋한 '아재'가 된 지금은 이들이 바로 한국농구의 주류를 움직이는 기성세대가 됐다. 눈앞의 성적에만 연연하거나 한국농구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더 재미있고 감동적인 컨텐츠로 농구의 인기를 재건하는데 앞장서야할 의무가 있다. 그것이 한국농구의 최고 호황기를 누리며 팬들의 과분한 사랑까지 받았던 세대로서 그간의 농구인생에 대한 보답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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