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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사넬노동조합 위원장13일 오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김소연 사넬노동조합 위원장13일 오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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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 '엄마, 나 마음 치료 받고 싶다'고. 내가 너무 놀라 '왜?'라고 물었는데 고민이 많아 말로 다 할 수 없다고 했다. 건강했던 아이가 마음에 병이 들었다. 한 달에 두세 번 정도라도 고정 휴일이 확보됐으면 좋겠다. 아이에게 '잘 자라'고 인사라도 편안하게 하도록 말이다."

엄마의 소원은 한 달에 두세 번이라도 주말에 쉬는 것이었다.

13일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장.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등 거대 이슈들이 줄지어 오르는 가운데, 감사 끝 무렵인 오후 5시 50분께 김소연 샤넬노조위원장이 참고인석에서 어색한 얼굴로 일어났다. 그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있는 한 백화점에서 명품 브랜드 샤넬의 화장품을 판매하는 20년차 서비스직 노동자였다.  

"백화점에서 20년 가까이 일했다. 평일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11시간 일하고 금요일과 주말에는 12시간 일한다. 퇴근 시간이 너무 늦어 아이를 전혀 돌보지 못한다. 아이가 엄마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을 알면서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 힘들다."

김 위원장은 아이 이야기를 전하며 이따금 울먹였다.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가 심리치료를 받고 싶다고 스스로 이야기했을 때, 엄마는 가슴이 내려앉았다. 주말, 평일 모두 반나절 가까운 노동에, 주말 휴일을 보장 받지 못하는 백화점 판매직의 업무 특성상 아이와 "교감 자체가 안 되"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지 않는 백화점 노동자들도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샤넬노동조합' 인터넷 카페만 들어가 봐도, 백화점 서비스직 노동자들이 올린 아우성이 가득하다. 주말 없는 노동은 물론이고, 압박스타킹 없이는 버틸 수 없는 근무환경까지. 진상고객을 대하는 감정 노동은 기본 옵션이다.

새민중정당 김종훈 의원이 13일 오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새민중정당 김종훈 의원이 13일 오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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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산업법 '의무휴업제' 사각지대 "최소한의 휴식 필요"

"일주일 풀로 해 보세요. 허벅지부터 다리까지 온몸이 부어서 터질 것 같습니다. 기계 아니지 않습니까?"

"압박스타킹 지원 이번에는 지원 안해 주나요? 하루 종일 서 있느라 다리가 퉁퉁..."

"한달에 주말 휴무가 한 번? 언제 가족들과, 친구들과 밝은 시간에 만날 수 있나요?"

"얼마 전에 립스틱 살 때 샘플 안 줬다고 갑자기 와서는 샘플 달라고 소리 소리... 상황 설명했더니 싸가지 없는 년이라며 재수 없다고 매니저 부르라고 소리소리... 말씀드리고 챙겨 드리니 백화점 년들은 큰 소리를 내야 정신차리고 일한다며 소리소리..."

"근무시간이 너무 길다. 다시 주말이 왔다. 10월은 다 빨간 날로 가득한데 매일 높은 강도의 연장 근무겠지."

장시간 서 있어야 하는 근무 특성상, 백화점 판매직 노동자들은 대부분 다리가 붓는 하지정맥류나 발가락이 변하는 무지외반증에 시달린다. 이를 견디기 위해 지급 받는 것이 압박 스타킹이다. 김 위원장은 국감 직후 김종훈 새민중정당 의원실에서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쉬는 날에는 허리, 다리, 어깨뭉침을 풀어주거나 종일 잠만 자야 한다"고 전했다.

"우리 어머니가 (루이뷔통 일을 한다고 해서) 굉장히 기대하셨다. 이제는 그런 말씀을 안 하신다. 겉모습으로 보는 모습과 직원들이 겪는 모습은 정말 다르다. 입사하고 1년이 지나자마자 다리에 핏줄이 서기 시작했다."

김성원 부루벨코리아 노동조합위원장이 13일 오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김성원 부루벨코리아 노동조합위원장이 13일 오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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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세점 서비스직의 노동 환경도 크게 다르지 않다. 루이뷔통 그룹 유통대행인 부루벨코리아에서 일하는 김성원 노조위원장도 국감장을 찾았다. 김 위원장은 "면세점 판매직은 90%가 여성이다"라면서 "공항 면세점의 경우 밤늦게 폐점하고 새벽 일찍 개점해 때때로 밤에 퇴근하고 새벽에 출근하는 상황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김종훈 의원은 질의 중 무지외반증에 걸린 백화점, 면세점 노동자들의 발 사진을 게시하기도 했다. 그는 "이것은 발레리나의 발이 아니다. 일하는 노동자의 발이다"라면서 "최소한의 휴식과 쉼이 필요하다. 한 달에 한 번 주말에 쉬는 것이 그렇게 힘든가"라고 지적했다.

백운규 산자부 장관은 이에 "마음이 무겁다"면서 "산자부 차원에서 다룰 수 있는 것을 고민해 보겠다"고 답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또한 추가 질의를 요청하고 김 위원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래는 그 일문일답이다.

백화점과 면세점에서 일하는 서비스직 노동자들의 발.
 백화점과 면세점에서 일하는 서비스직 노동자들의 발.
ⓒ 김종훈 의원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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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의 논리가 아니라, 인간의 논리로 봐야 할 문제"

홍익표 : "일주일에 보통 몇 시간 근무하나?"

김소연 : "52시간에서 56시간 근무한다."

홍익표 : "어렵게 일하고 계신 것 같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들은 주1회 주말 휴무를 보장 받아야 하는데."

김소연 : "한 달 한 번도 어렵다. 매달 (쉬는 날이) 바뀐다."

홍익표 : "국민 휴일에 관한 법이 보장돼 있지 않아 빨간날도 그림의 떡이신 것 같다. 유통산업법을 통해 의무휴업제를 정비하는 노력을 해야겠다."

김소연 : "이번 연휴도..."

김소연 사넬노동조합 위원장13일 오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김소연 사넬노동조합 위원장13일 오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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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표 : "최소한 인간의 일자리를 만드는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도 강조하는 저출산 문제 해결도 맞물려 있다. 아이를 낳으라고 하는데, 아이와 같이 할 시간을 보장하지 않는다. 산업부도 산업적 논리가 아니라, 사람을 보는 관점에서, 사회적 책임의 관점에서 봐 주길 바란다."

장시간 중노동의 원인은 결국 법의 미비에 있었다. 일부 대형마트 등 대규모 점포에만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일이 강제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법안 또한 발의돼 있지만, 번번이 '수익 감소', '소비자 권리 침해' 등의 산업적 논리에 부딪히고 있다.

지난해 11월 23일 김종훈 의원이 대표발의한 '유통산업발전법 일부 개정법률안'은 "대규모점포에 대해서도 대형마트에 준하는 영업시간 제한 및 의무휴일제를 실시하고 백화점과 면세점을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 대상에 포함시키며, 추석과 설날은 반드시 의무휴업일로 지정하게 하는 등 영업시간 제한 및 의무휴업제도를 정비하려 한다"고 적시했다. 김소연 위원장과 김성원씨는 인터뷰 말미 '진짜 쉴 권리'를 호소했다.

김소연 : "가끔 교육 받는 날에는 오후 6시에 끝난다. 밖에 나오면 왜 이렇게 날이 밝은지. 저녁을 먹고 나면 '아직 8시밖에 안 됐어?'하고 놀란다. 항상 끝나면 오후 10시에 회식 겸 저녁 겸... 밥다운 밥을 먹지 못했다."

김성원 : "한 달에 한 번 (의무적으로 주말에) 쉬는 게 정말 산업에 영향을 미칠까? 진짜 쉬는 것은 (모두 쉴 때) 함께 쉬는 것이다."


태그:#샤넬, #루이뷔통, #명품, #의무휴업, #유통산업발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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