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룸메이드가 출근해서 처음 하는 일. 
당일 사용할 타월 개키기
▲ 타월개기 룸메이드가 출근해서 처음 하는 일. 당일 사용할 타월 개키기
ⓒ 세종노조

관련사진보기


[기사수정 : 22일 오후 6시]

룸메이드가 처음인 내게 교육을 한 사수는 정년을 1년 앞둔 왕고참 룸메이드였다. 짧은 인사 후 그녀는 다짜고짜 타월 개는 방법부터 가르쳐주며 바로 따라하라고 하였다. 타월은 흔히 비치타월로 아는 '대 타월'과 가정에서 흔히 쓰는 '중 타월', '핸드타월'라고 부르는 '소 타월'과 '발 매트'가 있다. 타월을 개키며 그녀가 말했다.

"호텔 룸메이드는 새 상품을 만드는 사람이야. 전날 고객이 사용한 상품을 싹 뒤집고 청소해서 새 방으로 만드는 거지. 예약실에서 객실을 예약받고, 프런트에서 방을 배정한다고 해도 그들이 청소하나? 룸메이드가 다 하는 거지."

룸메이드의 업무 시작은 자신이 세팅할 객실의 퇴실 여부를 확인한 후, 침대시트와 타월을 정리하는 것이다. 침구류는 바닥에 까는 '시트'와 오리털 이불을 감싸는 '커버'가 있다. 시트와 커버는 침대 사이즈에 따라 킹, 더블, 수퍼싱글, 싱글이 있다. 초보 룸메이드는 침대 사이즈에 맞는 시트와 커버를 육안으로는 절대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아침마다 시트와 커버 정리가 제일 진땀 빼는 일이었다. 2주간의 교육 중 첫 주는 아예 침대에 손도 댈 수 없었다.

사수는 욕실 청소하는 시범을 단 한 번만 보여주고, 자신이 청소하러 들어갈 객실의 욕실청소를 맡겼다. 사용한 콘돔이 들러붙은 쓰레기통을 비우고, 침을 뱉어놓은 세면대, 대소변이 눌어붙은 변기, 욕조를 세제로 먼저 닦아야 한다. 장갑을 껴도 도저히 닦을 엄두가 나지 않아서 구역질을 하며 얼굴을 돌리곤 했다. 욕실 거울은 마른걸레를 들고 고개를 바짝 꺾어 아래에서 천정까지 치올려다 보며 세제로 닦는 시간보다 훨씬 더 오래 공을 들여 치약 자국, 물방울 자국 하나 없이 닦아야 한다. 거울뿐만 아니라 변기, 욕조, 욕실바닥까지 물 한 방울 남김없이 닦기 위해 세면대 아래로 기어들어 가야 한다.

룸메이드가 청소한 후 풀세팅한 호텔욕실
▲ 청소된 욕실 룸메이드가 청소한 후 풀세팅한 호텔욕실
ⓒ 세종노조

관련사진보기


둘째 날까지 26개의 욕실을 청소하고 퇴근길에 만난 남편과 집 앞 순댓국집에서 안주 없이 소주만 벌컥 들이켰다.

"어제 , 오늘 26개의 변기를 안고 살았어. 이걸 내가 왜 해야 해?" 밥이 나왔지만 소주잔만 들이 부었다. "결국 이렇게 되려고 우리 엄마는 대학을 보내고, 20년을..."

엉엉 소리 내어 우는 내게 남편은 말 한마디 없이 밥 먹으라며 숟가락을 쥐어주었다.
세종호텔에서 교환으로 20년 근속한 상과 메달
▲ 20년 근속상과 메달 세종호텔에서 교환으로 20년 근속한 상과 메달
ⓒ 허지희

관련사진보기


세종호텔에서 전화교환으로 20년 근속상을 받았다. 2014년 12월 9일 오전 10시, 20년 근속 표창장과 금메달을 수여한 회사는 같은 날 오후 5시 나를 룸메이드로 발령냈다. 2012년 내가 속해 있던 세종호텔 노동조합(이후 세종노조)은 세종호텔이 용역회사를 만들어 놓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해의 임금교섭에서 비정규직 확대를 반대하고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하겠다던 합의사항을 지키라고 지방노동위원회의 중재를 거쳐 합법적인 파업을 결정했다. 교환으로 근무하며 우리팀도 용역화에서 예외일 수 없다고 여기고 그 파업에 찬성해 나도 38일간의 파업에 참가했었다.

복수노조가 설립되고 파업에서 복직한 이후, 희망퇴직으로 퇴사하지도 않고 세종노조에 남아있는 조합원 대부분이 전환배치 되었다. 회사의 입장은 언제나 호텔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전직원이 '멀티플레이어'가 돼야 한다는 것이었으나, 희망퇴직으로 수많은 직원을 떠나보낸 후 직원을 충원하지 않는 변명에 불과했다.

어쨌든, 집을 사느라 은행 빚을 지고 사는 평범한 월급쟁이인 나는 고정 수입이 필요했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를 룸메이드 생활에 적응시키는 동안 룸메이드의 남편은 퇴근 후 저녁시간에 자유가 생겼다. 24시간 3교대 근무를 하던 교환으로 일할 때는 아이들에게 야근하는 엄마의 공백을 채워주느라 회식도 불참하고 개인시간이 전혀 없던 남편이었다. 아내가 청소하는 사람이 되어 5시에 퇴근하자, 남편은 취미생활을 하느라 볼링장으로 퇴근하였다. 한겨울에도 반팔원피스를 입고 호텔 복도와 객실을 종종거리며 땀이 뻘뻘 나게 일하는 룸메이드는 귀가 후 아이들 밥을 차려주기가 무섭게 곯아떨어지고 퉁퉁 부은 손가락 마디마디의 통증으로 아침잠을 깨서는 다툴 기력조차 없었다.

절대 적응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룸메이드 업무에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함께 일하던 동료들, 특히 세종노조의 조합원들 덕분이었다. 룸메이드로 함께 근무하는 세종노조 조합원 중 특히 맏언니인 박은영(가명)씨는 항상 "잘하고 있어" 라고 다독여주고, 시간 날 때마다 내가 일하는 층에 일부러 와서 침대시트와 커버를 새로 입혀놓고 가곤 했다. 신라호텔 용역으로 오래 일하다가 세종호텔 계약직으로 입사한 이유는 정규직이 되고 싶어서 라고 하였다.

그러나 계약직 1년이면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단체협약을 회사는 지키지 않았고 은영언니는 파업에 참가해 당신 손으로 직접 정규직을 쟁취하였다. 아쉽게도 정규직이 된 지 4년 만에 정년퇴임하였으니 20년 넘는 선배의 룸메이드 생활 중 정규직으로 근무한건 오로지 세종호텔에서의 4년이 전부인 셈이다. 내가 은영언니와 일한 기간은 겨우 6개월. 너무 짧아서 아쉽기도 했지만 6개월이라도 그런 대선배와 일할 수 있었던 건 영광이었다.

20년 입어온 유니폼 벗기 전 마지막 교환실 근무날
▲ 교환근무 마지막날 20년 입어온 유니폼 벗기 전 마지막 교환실 근무날
ⓒ 허지희

관련사진보기


전화교환 업무와 전혀 무관한 룸메이드 전환배치는 몸과 마음에 큰 충격을 남겼지만, 룸메이드 조합원들의 격려와 보호 속에 노조라는 어색한 집단의 주변인에서 당사자가 되어 갔다. 누군가의 강요가 아닌, 노조를 위해서만도 아닌 나의 원직 복직을 위해서 집회에 참석하고, 세종호텔과 세종대학교에서 피켓을 들고 선전전을 하고 있다. 은영언니가 파업을 통해 스스로 정규직이 되었듯이 그녀의 멋진 후배로 내 자리를 찾아가는 당당한 싸움을 보여주고 싶다.

세종호텔에는 나의 경우처럼 업무와 무관하게 전환배치되어 룸메이드를 하다가 호텔로비를 청소하고, 20년 경력의 쉐프가 식자재를 손질하고, 시설팀 엔지니어가 침구류를 수거하고, 전 노조위원장이었다 해고된 세종호텔 조합원이 있다. 300명 넘던 조합원은 이제 16명만이 남아 민주노조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노동을 지키기 위해 지금도 하루하루를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다.

반론보도문
본 인터넷 신문은 지난 2017년 10월 14일 오마이뉴스 홈페이지에 "26개의 변기 청소하고 퇴근, 눈물만 흘렀습니다"제목으로 세종호텔에서 호텔 근로자들에게 부당노동행위를 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세종호텔 측은 세종호텔노조에서 부당 노동행위구제 신청을 하였으나, 지노위, 중노위에서 구제신청을 모두 기각한 바 있고, 현재 노조 측이 해당 기각 결정에 대해 결정취소 소송을 진행해 행정법원에서 사건 계류 중이라고 알려와 이를 알려드립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일은 힘들지만 노조원들끼리 똘똘뭉쳐 즐겁게 집회하는 세종노조
▲ 세종노조 집회 일은 힘들지만 노조원들끼리 똘똘뭉쳐 즐겁게 집회하는 세종노조
ⓒ 곽세영

관련사진보기


* 룸메이드 업무란? 호텔에서 투숙객의 안락함과 청결, 편의를 위해 객실 청소와 정리정돈을 담당하는 사람입니다.[워크넷 직업사전]


태그:#명동 세종호텔, #세종호텔 노동조합, #전화교환, #룸메이드, #전환배치
댓글14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6,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세종호텔에서 28년 근무하고 12월 10일자로 정리해고 통보받음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