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원자력 발전소를 하나씩 없애면, 어떻게 될까요? 전기가 부족해지고 큰 혼란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하지만 이미 아무런 문제없이 원전 하나 줄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많은 에너지자립마을들이 에너지를 절약하고, 에너지를 직접 생산하고, 에너지 효율을 높였고, 결국 서울에서는 원전 1.83기가 1년 동안 생산하는 발전량 만큼의 에너지를 절약했습니다. 녹색당의 도움을 받아 그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말]
서울 동작구 상도4동 에너지슈퍼마켙.
 서울 동작구 상도4동 에너지슈퍼마켙.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서울 동작구 상도4동 에너지슈퍼마켙에서 만난 김소영 성대골에너지전환마을 대표.
 서울 동작구 상도4동 에너지슈퍼마켙에서 만난 김소영 성대골에너지전환마을 대표.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에너지 절약은 불편하고 귀찮다. 태양광도 낯설지만, 집에 태양광을 설치한다고 에너지 절약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전기요금이 덜 나온다고 하는데, 결정은 좀처럼 쉽지 않다. 못 하나 박으려면 주인 눈치를 봐야 하는 전셋집에 태양광을 설치해도 될까, 태풍이 불면 태양광이 날아가지 않을까, 고민의 폭은 다양하다. 안전한 에너지는 아름답지만, 마음의 거리는 통 가까워지지 않는다.

오랜 고심 끝에 집에 미니 태양광을 설치한다고 해도 끝나는 게 아니다. 설치 후 발생하는 A/S도 문제다. 태양광 업체들은 소규모 업체가 대부분이다. 필요할 때마다 문의와 A/S를 바로바로 요청하기도 쉽지 않고, 요청한다 해도 바로 대응이 되는 것도 아니다. 260W(와트) 정도의 미니태양광을 지붕이나 베란다에 설치하면, 냉장고 한 대가 필요한 전기를 생산할 수 있지만 여전히 망설여진다.

서울 동작구 상도4동 에너지슈퍼마켙에서 만난 김소영 성대골에너지전환마을 대표.
 서울 동작구 상도4동 에너지슈퍼마켙에서 만난 김소영 성대골에너지전환마을 대표.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내 새끼 잘 키우자는 마음에서 시작"

서울시 동작구 상도 3, 4동의 주민이라고 다를리 없다. 매년 봄·가을 이사철마다 주민의 20~30%가 바뀌는 동네에서 태양광 설치에 관심을 두긴 어렵다. 관심이 있다 해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길이 없으니 막막하긴 마찬가지다. 그런데 어떻게 6년 넘게 에너지자립 실험이 이어지고 있을까?

성대골의 실험 한가운데는 김소영 성대골에너지전환마을 대표가 있다. 김 대표는 2003년 '민란지대'로 일컬어진 전라북도 부안에 있었다. 아이를 낳고 몸조리를 하기 위해 고향을 찾은 것이다.

한적했던 시골 마을이었던 부안은 깃발이 내걸리고 담장에 페인트로 여러 구호가 쓰여 있었다. 방사성폐기물처리장(이하 방폐장) 설립을 반대한 주민과 정부의 갈등은 극심했다. 핵폐기장을 반대한 민심은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화염병을 들었다.

"고향이 분열되고 파괴되는 현장을 직접 봤죠. 작은 땅에서 일어난 분열과 갈등의 현장은 충격이었어요. 2년간의 투쟁을 듣고 보면서 핵폐기물 처리를 생각하게 됐죠. 이건 단순히 작은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도 했고요."

김 대표가 처음부터 성대골의 에너지자립을 고민했던 것은 아니다. 14년 전 목격한 부안의 방폐장 반대 투쟁과 2011년 3월 발생한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 참사가 영향을 미쳤다.

"엄마 마음이 전부였어요. 내 새끼 키우는 나라, 동네, 세계가 과연 이래도 되는가. 내가 좀 불편하게 살고 안전한 전기를 쓰면 내 아이 세대는 좀 나아지지 않으려나 싶은 마음이요. 생명체를 품은 엄마 자궁 같은 곳이 지구잖아요. 태아에게 느끼는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좋은 것만 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에너지자립을 시도했죠."

지난 28일 에너지 슈퍼마켙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난 김 대표가 강조한 것은 '엄마 마음'이었다. 실제로 성대골 에너지자립에 참여하는 이의 98%가 여성, 엄마다. 에너지 자립운동을 마을에서 어떻게 이어가야 하는지 고민을 거듭한 끝에 탄생한 것이 '에너지 슈퍼마켙'이다. 마을 사람 누구든 오다가다 들를 수 있는 에너지 슈퍼마켙에는 휴대폰 태양열 보조배터리부터 절전형 에너지 제품인 LED 전등, 타이머 콘센트, 멀티탭까지 여러 제품이 있다.

성대골 주민인 약 2만 5000세대 중에서 에너지 자립에 함께하는 세대는 3000~4000세대 정도다. 김 대표는 마을 에너지 축제에 참여하는 등 에너지자립에 노출된 가구를 1만 세대로 본다.

2013년 1월 서울 동작구 상도동 국사봉 등산로에서 '성대골 마을학교' 아이들이 마을학교의 화목난로에 땔 나뭇가지를 찾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13년 1월 서울 동작구 상도동 국사봉 등산로에서 '성대골 마을학교' 아이들이 마을학교의 화목난로에 땔 나뭇가지를 찾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궁상맞음이 아닌 지구를 위한 길

'피라미드 물건 파는 사람이다, 종북이다, 정치하려고 마을을 들쑤시고 다닌다, 어딘가 이상한 사람이다….' 마을 사람들은 김 대표를 이상한 사람으로 봤다. 그렇게 3년, 5년, 7년이 흘렀다. 두 딸의 미래를 위해 시작한 안전한 먹거리, 맑은 공기, 깨끗한 물, 안전한 전기의 고민을 함께하려 사람들을 만나고 설득했다.

"스킨십밖에는 없어요. 나는 이런 방식으로 전기를 아끼고 있다는 걸 시장에서 오가며 만나서 나누는 거죠. 그렇게 친해진 사람 집에 가서 전기 진단하고 태양광 설치를 설명하죠. 오래 걸리는 일이에요. 시장 주민들을 설득하고 상가 가게들을 찾아다니며 말하는데, 짧게는 3년 길게는 6년까지 걸리죠. 이렇게 만난 한 사람 한 사람을 소홀히 할 수 없어요. 마을 전체에 태양광 설치하게 하겠다는 큰 목표가 아니라 한 가정, 한 사람이 시작이고 소중하죠."

성대골의 실험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에너지 절약의 불편함, 마음 놓고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쓰지 못하는 불편함을 괴롭게 받아들이지 않고 즐겁게 참여하는 마음. 궁상맞게 사는 것이 아닌 내 아이가 살아갈 지구를 생각하는 그 마음. 6년째 진행하고 있는 성대골 에너지 자립 마을의 도전이다.

2013년 1월 서울 동작구 상도동 국사봉 등산로에서 '성대골 마을학교' 아이들이 마을학교의 화목난로에 땔 나뭇가지를 찾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13년 1월 서울 동작구 상도동 국사봉 등산로에서 '성대골 마을학교' 아이들이 마을학교의 화목난로에 땔 나뭇가지를 찾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2013년 1월 서울 동작구 상도동 국사봉 등산로에서 '성대골 마을학교' 아이들이 마을학교의 화목난로에 땔 나뭇가지를 찾아 포대 자루에 넣고 있다.
 2013년 1월 서울 동작구 상도동 국사봉 등산로에서 '성대골 마을학교' 아이들이 마을학교의 화목난로에 땔 나뭇가지를 찾아 포대 자루에 넣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2013년 1월 '성대골 마을학교'에서 한 학생이 '햇빛온풍기'를 가리키며 "추운 겨울에도 햇빛만 있으면 여기서 더운 바람이 나온다"고 자랑하고 있다.
 2013년 1월 '성대골 마을학교'에서 한 학생이 '햇빛온풍기'를 가리키며 "추운 겨울에도 햇빛만 있으면 여기서 더운 바람이 나온다"고 자랑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정책에 기대지 않고 주민이 나선다, 성대골 리빙랩의 실험

성대골은 직접 나선다. 서울시 동작구 상도 3, 4동의 성대시장을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는 성대골은 '성대골 리빙랩(Living Lab)'을 실험하고 있다. 이곳에서 주민들은 에너지 절약, 태양광 설치에 관한 모든 의견을 나눌 수 있다.

'생활연구소'라고도 불리는 리빙랩은 지역주민들이 전문가와 함께 연구하는 것을 말한다. 전문가가 기술개발을 주도해 위에서 아래로 퍼뜨리는 것이 아니다. 주민들이 직접 원하는 기술을 찾고 개선방안을 고려하며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성대골 리빙랩을 주도하는 것은 마을연구원이다. 마을연구원은 말 그대로 주민이 직접 연구원이 되는 것을 뜻한다. 현재 성대골에서 활동하는 마을연구원은 총 49명이다. 이들이 직접 사용하며 불편한 점을 반영해 탄생한 것이 DIY 미니 태양광, 우리집 솔라론, 마을 백업센터다.

'미니태양광에 연결된 전선을 창문을 통해 배선 작업을 하면 창문을 완전히 닫을 수 없어서 불편하다.'
'비가 오면 거치대에 물이 고여 물이 썩거나 벌레가 생길 수 있다'

마을연구원의 불편함은 미니태양광에 그대로 반영됐다. 태양광제작업체인 마이크로발전소는 벽을 뚫을 필요 없이 창문 틈 사이로 간편하게 배선작업을 할 수 있는 플랫케이블을 개발했다. 거치대 문제 역시 거치대에 배수구를 뚫고 물이 잘 빠질 수 있도록 했다.

성대골 리빙랩은 태양광 설치 역시 주민 스스로 하도록 독려한다. 미니 태양광 앞에 DIY가 붙은 까닭이다. 주민들은 체험 워크숍을 통해 직류, 교류의 간단한 강의부터 전자파 측정 실습, 태양광 설치 등을 연습할 수 있다.

2013년 1월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골 마을학교'에서 열린 '탈핵학교' 수업에서 마을주민과 학생들이 반핵의사회 소속 주영수 한림대 의대교수의 '핵 발전소 사고와 방사선 건강피해' 강의를 듣고 있다.
 2013년 1월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골 마을학교'에서 열린 '탈핵학교' 수업에서 마을주민과 학생들이 반핵의사회 소속 주영수 한림대 의대교수의 '핵 발전소 사고와 방사선 건강피해' 강의를 듣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부담스러운 태양광 설치비용 문제도 해결했다. 태양광 설치에 관심은 있는데 가격은 부담스러운 사람들을 위한 시스템이다. 김 대표는 "동작신협을 찾아가 태양광 설치를 지원하는 금융상품을 만들자고 설득했다"라며 "300W의 경우 월 1만 원씩 22개월 갚아 나가는 무이자 보급형이다. 월 3만 원의 전기요금이 나오는 세대라면 적어도 5000원 이상 요금이 줄어든다"라고 밝혔다.

마을 백업센터도 있다. 집에 설치한 태양광에 문제가 생겼을 때, 마을기술자들이 출동한다. 마을 연구원 중 기술적으로 숙련도가 높고 의욕이 많은 이들을 대상으로 마을 기술팀이 꾸려졌다. 이들은 마이크로발전소로부터 소정의 교육을 받고 약 5~7건의 시범 설치를 한 후 정식 마을기술팀 백업센터의 일원이 된다.

정부 정책, 시·도·군의 지원이 못 미치는 곳곳에 주민들이 머리를 맞댔다. 성대골 에너지 자립마을의 토양을 다진 2011년부터 2017년 현재까지 '에너지 자립'이 가능했던 건 다른 게 아니다. 마을 주민이 직접 나서 부족을 메꾸고 개선을 고심하며 움직인 덕분이다.

[원전 하나 줄인 사람들①] 신대방 현대아파트의 전기요금 절감 기적
[원전 하나 줄인 사람들②] 추소연 RE도시건축연구소장의 패시브 하우스에 가보니...



태그:#핵노답, #에너지자립, #성대골, #성대골 마을
댓글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