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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추석연휴가 끝나자 가을걷이가 한창입니다. 황금벌판에는 콤바인 소리가 요란합니다. 예전 낫으로 나락 베고, 탈곡기로 털어 추수할 때를 생각하면 요즘 들녘의 가을걷이는 한결 수월해졌습니다. 벼를 베면서 낟알까지 털어내니 기계의 편리함을 실감합니다.

나팔꽃 같은 고구마꽃

고구마꽃의 아름다운 자태. 좀처럼 보기 드문 고구마꽃이 아름답게 피었습니다.
 고구마꽃의 아름다운 자태. 좀처럼 보기 드문 고구마꽃이 아름답게 피었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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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나는 추수하는 들길을 자전거 타고 달립니다. 동네고샅길로 접어들던 아내가 마을 어귀에서 내립니다.

"여보, 여기 좀 봐! 고구마밭에 웬 나팔꽃이야?"
"고구마밭에 뭔 나팔꽃!"
"이거 나팔꽃이 아니고 뭐예요?"
"그건 고구마꽃이야!"
"고구마도 꽃이 피어요?"

아내는 고구마꽃을 처음 보는 모양입니다. 좀처럼 보기 드문 고구마꽃이 아내의 발길을 붙잡은 것입니다.

작은 고구마밭에서 많은 꽃들이 피었습니다.
 작은 고구마밭에서 많은 꽃들이 피었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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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꽃이 핀 고구마밭.
 많은 꽃이 핀 고구마밭.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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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고구마밭에 고구마꽃이 군데군데 많이도 피었습니다. 아내는 고구마줄기를 걷어 올려보고, 고구마꽃의 정체를 확인해봅니다. 

"우리 고구마밭에선 몇 년을 심었어도 고구마꽃 구경을 못했는데, 여기는 나팔꽃처럼 요상하게 많이도 피었네!"

아내 말마따나 고구마꽃이 나팔꽃과 비슷합니다. 꽃부리가 깔때기 모양을 하고 있어 꽃만 보면 나팔꽃이라 착각할 만합니다. 고구마꽃은 나팔꽃과 같은 메꽃과에 속합니다.

고구마꽃은 피고 지고를 수없이 반복하며 여러 날 꽃을 피웁니다.
 고구마꽃은 피고 지고를 수없이 반복하며 여러 날 꽃을 피웁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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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꽃은 잎겨드랑이에서 올라온 꽃줄기 끝에 대여섯 송이씩 모여 피어납니다. 꽃줄기에 달린 꽃송이를 보니 여러 날 피고 지고를 반복하는 것 같습니다. 그냥 놔두면 서리가 내릴 때까지는 계속해서 필 태세입니다.

춘원 이광수의 회고록에 고구마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춘원은 연보라색을 띤 고구마꽃이 나팔꽃과 같이 생겼는데, '100년에 한 번 볼 수 있는 귀한 꽃'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고구마꽃이 흔히 피는 꽃이 아님을 설명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100년 만에 한 번 핀다는 고구마꽃이 요즈음에는 꽃 소식을 심심찮게 들려줍니다.

고구마는 괴근(塊根)에서 나오는 순을 잘라 심습니다. 그런데, 씨앗으로 번식하지 않는 고구마가 무슨 연유로 꽃을 피워냈을까? 참으로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씨앗을 퍼트려 번식하려는 의도는 분명 아닐 진데….

사실, 고구마 원산지인 열대 아메리카지방에서는 고구마꽃이 흔하게 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처럼 온대지방에서는 잘 피지 않은 것뿐이랍니다. 고구마가 꽃을 피우는 게 우리나라가 아열대기후로 접어든 징조는 아닐까요?

고구마꽃을 찾은 꼬리박각시나방

고구마꽃에 꿀벌이 찾아왔습니다.
 고구마꽃에 꿀벌이 찾아왔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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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꽃에는 벌과 나비가 찾아드는 법. 꿀벌들이 고구마꽃에 찾아왔습니다. 꿀벌 녀석들도 월동준비를 하는 모양입니다. 꽃 속 깊숙이 고개를 쳐 박고 꿀과 꽃가루 체취에 여념이 없습니다.

고구마꽃을 한참을 구경하다 아내가 호들갑입니다.

"여보, 여보! 이거 무슨 큰 벌 같은 게 있어! 아니 나방인가?"
"그거! 꼬리박각시나방이야!"
"그럼 이 곤충이 벌이 아니고 나방인거야?"
"나방치곤 너무 예쁘지?"
"야, 너무 예쁘네. 녀석도 꿀을 찾나?"

고구마꽃의 귀한 손님, 꼬리박각시나방입니다.
 고구마꽃의 귀한 손님, 꼬리박각시나방입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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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꽃에서 예쁜 나방을 볼 수 있다니! 나는 꼬리박각시나방을 따라다니며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으려는데 쉽지 않습니다. 녀석이 진득하게 한 자리에 머물러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렵사리 두어 컷을 찍는데 성공했습니다. 사진기로 제대로 찍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벌새처럼 생긴 나방은 긴 대롱을 꽃 속에 넣고 꿀을 채취하는 모습이 참 신기해보입니다.

꼬리박각시나방이 정지비행을 하며 꿀을 빨고 있습니다.
 꼬리박각시나방이 정지비행을 하며 꿀을 빨고 있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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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에 앉아 꿀과 꽃가루를 채취하는 꿀벌과는 달리 꼬리박각시나방은 정지비행을 하면서 흡사 빨대로 꿀을 빨듯이 먹이를 찾습니다. 이곳저곳 고구마꽃을 찾아다니며 먹이를 찾는 날갯짓이 아름답습니다.

사람들은 나비는 사랑스럽고 귀엽게 여기지만, 나방이라 놈은 불결하고 께름칙하다는 선입견을 갖습니다. 꼬리박각시나방을 보면 그런 선입견이 사라집니다. 아름다운 몸 색깔에다 날렵한 몸매, 놀라운 비행솜씨를 보면 그렇습니다.

"여보, 나방 몸을 만지면 너무 부드러울 것 같아. 쓰다듬고 싶을 정도로!"

아내는 꼬리박각시나방의 몸이 새 깃털처럼 부드러워 보인 모양입니다.

다시 자전거에 몸을 싣고서 나는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당신, 고구마꽃 꽃말이 뭔지 알아?"
"글쎄!"
"흔히 볼 수 없는 꽃이니까 잘 생각해봐?"
"혹시, '행운' 아녀요!"
"용케 맞혔네!"

'행운'이란 꽃말을 가진 고구마꽃과 이를 찾은 꼬리박가시나방의 힘찬 날갯짓. 아침에 만난 예사롭지 않은 행운입니다.

우리는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기대를 안고, 더욱 힘차게 자전거 페달에 밟습니다.


태그:#고구마, #고구마꽃, #꼬리박각시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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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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