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남한산성>이 지난 6월 5일 100쇄를 찍었다. <칼의 노래>, <현의 노래>와 함께 김훈 작가의 역사 3부작으로 불리는 이 작품은 2007년 출간 이래 총 누적 판매수 59만 부에 이르렀다. 우리 소설계에서는 진귀하고도 소중한 성과다. 하지만 영화로 온 <남한산성>은 그와 달리 고전 중이다. 손익분기점 500만이 무색하게 액션 영화 <범죄도시>에 추격을 당하며 11일 현재 누적 관객 수 331만으로 초반의 흥행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 <남한산성>은 그저 손익분기점을 못 넘은 영화로 기억되기엔 아깝다.

 영화 <남한산성> 포스터.

영화 <남한산성> 포스터. ⓒ CJ 엔터테인먼트


소설 <남한산성> 그리고 영화 <남한산성>

소설 <남한산성>은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대군을 피해 인조와 신하들이 머문 47일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 속 자막에서도 알려주다시피 유난히도 춥고 눈이 많았던 그 겨울, 퇴로가 막히면 도망갈 곳도 없는 산성으로 살자고 도망 온 왕의 행보에서부터 소설은 탄식을 이어간다. 그리고 채워가는 살아감의 엄정함, 그 속에서도 여전히 변함없이 지속되는 하던 대로 지속되는 정사. 이에 대해 소설가 김훈은 '아무런 결론도 없는 소설'이라 정의한다.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조건들, 인간의 야만성, 인간의 삶이 빚어내는 풍경들을 묘사하려 했을 뿐'이라 한다. 하지만, 감정을 배제하고 장군의 언어로 전쟁터의 풍경을 지극히 사실적으로 간략하게 전한 <칼의 노래>를 통해 그래서 더 비감하게 임진왜란을 실감했듯, 남한산성 역시, 병자호란 풍전등화 속 조선의 모습을 절실하게 전한다.

그리고 영화는 소설의 그 기조를 이어받아, 1636년 남한산성의 풍경과 인간들을 그려나간다. 역사는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지만, 하지만 그 과거를 기억하는 주체가 오늘의 사람이라, 언제나 거기엔 오늘의 색채가 덧칠해 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의 미국과 김정은의 북한 사이에서, 입지가 좁은 우리의 처지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남한산성에 갇힌 조선의 처지와 오버랩되며 회자될 수밖에 없는 시점이다.

 <남한산성> 스틸컷

<남한산성> 속 수어사(박희순)과 김상헌(김윤석) ⓒ CJ엔터테인먼트


그래서 안타깝다. 영화 <남한산성>이 저어가는 사유의 깊이는 이미 우리가 배워서 알고 익힌 역사, 남한산성에 갇혀 주화파나 주전파냐를 놓고 싸우고 결론 내려진 그 뻔한 역사의 결론을 한 발 넘어서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안다. 당시 조선이 변화하는 동아시아 정세에서 얼마나 무지했는지, 최명길이 제시한 청과의 휴전이 얼마나 자명한 결론이었는지. 하지만 이미 '안 자', 혹은 방관자, 혹은 목격자의 관점을 넘어, 황동혁 감독이 애써 그려낸 1636년 남한산성에 있다면 과연 나는 어땠을까 되돌려 질문을 던져보면 과연 그때도 그럴까?

소설이 '남한산성'이라는 지역성을 배경으로 그 속에 담긴 인간들을 수사를 아낀 문장으로 담백하게, 그래서 서늘하게 묘사해 나갔다면, 영화는 그런 원작의 묘사에 더해, 인조를 중심으로 그들 앞에서 조선의 운명을 둔 '인간군상'들에 조금 더 방점을 찍는다. 걸출한 두 배우 김윤석, 이병헌이 분한 김상헌과 최명길, 그리고 그 두 사람 사이에서 우유부단하게 고뇌하는 인조 박해일, 영화를 본 많은 사람을 분노케 한 영상 김류의 송영창, 이들의 설전과 팽팽한 긴장감이 마치 한 편의 연극 무대를 보듯 관객을 끌어들인다.

경계에 선 자들에게 그 해 겨울은 냉혹했다. 조선 강토를 짓밟으며 청병이 다가오고 있었고 조선의 임금은 두려워 도망가는 백성들 사이를 뚫고 남한산성에 다다랐다. 성벽을 두고 대치하는 것들의 성격은 명백했다. 조선과 청이 대치하고 있었고 조선의 임금 인조와 청의 황제 칸이 대치하고 있었고 조선의 병사와 청의 병사가 대치하고 있었다. 쫓겨온 자와 쫓아온 자의 대치였고 굶주린 자와 배부른 자의 대치였고 말과 말, 문장과 문장의 대치였다.......대치는 성벽을 사이에 둔, 성 밖와 성 안의 것이 아니었다. 성 안에서 군과 신이 대치하고 있었고, 병과 병이 대치하고 있었으며, 병들의 목숨과 성첩을 덮는 추위가 대치하고 있었다......어디도 대치를 피할 곳은 없었다. - 소설 <남한산성> 중

 영화 <남한산성>의 한 장면.

<남한산성> 속 최명길(이병헌) ⓒ CJ엔터테인먼트


<남한산성>, 국가를 묻다

아마도 영화 <남한산성>이 지루했던 이들이라면, 그 이유의 상당수가 '절체절명'의 설전 그 행간 속에서 길을 잃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훈이 그러했듯, 감독 황동혁 역시 애써 그 결론에 의거치 않고 그 시대를 산 그들의 입장 각각에 힘을 실어준다. 사대의 나라 조선, 이미 그렇게 몇 백 년을 이끌어 온 조정에서, 적폐가 되어가며 기득권이 된 영상과 적폐는 아니지만 여전히 유교의 국가 조선의 신하가 자신의 정체성인 김상헌, 그리고 그럼에도 국가의 생존을 우선해야 한다는 최명길의 주장은 각각 명징하게 자신의 길을 갖는다. 이념과 이데올로기에 따라 각자의 입장에서 쟁투하는 오늘날의 인간들에 굳이 비교할 것도 없다.

'경계에 선 인간들', 김훈은 그리 표현했다. 하지만,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 나는 사과나무를 심는 게, 지구가 멸망해도 희망을 심고자 해서가 아니라 내일 지구가 멸망하는 걸 알지 못해서이듯, 과연, 몇 백 년을 사대의 유교 국가로 살아온 조선에게, 청과의 화친이 '수긍'될 수 있을까? 심지어, 임진왜란 당시 압록강 주변까지 도망쳐 명의 도움으로(?) 나라를 구했다는 인식을 가질 지도 모르는 사대부들에게, 최명길의 '혜안'은 얼마나 멀고도 아득한 이야기일지.

보름달이 뜨면 봉화가 오를 것이라 기대하는 김상헌과, 보름달이 뜨기 전 항복을 해야 한다는 최명길의 절박한 설득은 바로 그런 경계에 대한 공감에서부터 절절해진다. 하지만 이미 역사적  결론을 알고 있는 후대의 관객들에겐 싱거운 선택일 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그 답을 그들이 아닌 조선의 백성들에게서 찾았다. 영화 역시 김상헌의 눈에 밟힌 산성의 군인들과 서날쇠, 소녀 나루에게서 찾는다. 영화는 최명길을 청과의 경계에 서게 한 반면, 김상헌을 나루터에서부터 산성에 이르기까지 진짜 조선의 주인들과 접점을 가지도록 만든다. 심지어 굳이 역사적 사실을 들먹일 필요조차 없이, 김상헌의 마지막을 사실과 다르게 그려낸다. 그리고 그 다른 선택이 오히려 묻는다. 과연, 1636년 조선이 그 치욕을 감당하면서 지킬 가치가 있는 국가인가라고. 소설이 남한산성의 그 피할 곳 없는 풍경에서 자명한 진실에서 비껴간 정사의 어리석음을 통렬하게 드러냈다면, 영화는 오히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지킬 가치가 없는 국가의 존속을 묻는다. 그렇게 많은 백성을 희생하고, 삼전도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지켜낸 조선이 그 이후에 어땠던가?, 돌아온 인조는 어땠던가? 과연, 그 곳에서 조선이 살아 돌아올 만한 가치가 있었던가?

 책임을 회피하는 무능한 군주 인조(박해일 분)의 모습 - 영화 <남한산성> 스틸컷

영화 <남한산성> 속 인조(박해일) ⓒ CJ 엔터테인먼트


영화 <남한산성>이 던진 진짜 질문은 이것일 지도 모른다. 1636년 청에 굴복할 것인가 싸울 것인가가 아니라, 어쩌자고 백성은 내팽개쳐두고 그 산성으로 도망친 것인지, 삼전도의 치욕을 겪고도 왕조(아니 왕)의 운신만이 여전했던 것인지, 과연 백성을 보호하지 못하는 국가는 존립할 가치가 있는가 라고 말이다. 여전히 '국가'의 존재가 크고도 엄정한 대한민국에서 어쩌면 이 질문은 그래서 낯설고, 도발적이다. 그리고 이 묵직할 질문이 바로 영화 <남한산성>의 가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남한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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