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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 18일 오전 10시 35분]

충북 괴산의 숲속작은책방
 충북 괴산의 숲속작은책방
ⓒ 김건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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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식 백반이라면 모를까 '가정식 서점'이라니 금시초문이었다. 그것도 충청북도 괴산의 산골 마을에 있다고 하였다. 이 소식을 접한 것은 2015년이다. 최근 도서정가에 힘입어 상상을 뛰어 넘는 동네 책방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이토록 이색적인 생각을 하였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 속 이야기로만 존재할 것 같은 이야기였다. 서점이 산골 마을에 생겼다는 것도 놀라운데 자신의 거실에 낸 서점이라니, 동네 서점 소식이 들릴 때마다 놀라움을 경신했다.

과연 시골 마을에서 책으로 먹고 사는 일이 가능할까? 우리나라의 독서 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책을 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온라인 서점을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도시 한복판의 서점들도 경영난으로 문을 닫는 곳이 태반이다. 알고 보니 책방 주인 부부도 시골로 이주하기 전에 이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부부는 책마을을 만들고 사람들과 함께 책과 문화를 꿈꾸며 소박한 삶을 살아 갈 수 있는지에 대한 탐색을 하기 위해 40여 일 간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 동유럽의 시골에 만들어진 '책마을'을 찾아다녔다. 그 여행을 통해 절반의 절망과 절반의 희망을 느꼈지만 희망의 편에 기대기로 하고 시골행을 결심했다.

초등학교 시절 내가 가진 꿈 가운데 하나는 사면을 책으로 가득 채운 서재를 갖는 것이었다. 지금은 책이 넘쳐나는 시대여서 독자의 손에 들어가기도 전에 버려지는 책들도 많지만 70년대의 시골에서 책은 아주 귀한 물건이었다. 어떤 인연으로 책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잘 모르지만 나는 학교 도서실을 자주 찾았다. 지금 생각하면 외진 시골 초등학교에 도서실이 있었다는 사실이 큰 복이었다.

그런데 동창회에 나갔을 때 들어보니 도서실이 있었는지조차 모르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돌이켜보면 도서관에서 혼자 책을 읽었던 경우가 많았다. 소장 도서도 많지 않았고 지금처럼 좋은 책이 출판되는 시기도 아니었으나 도서실 덕분에 책을 알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책은 내 삶의 동반자가 되었다.

초등학교 때 꾸었던 서재의 꿈은 아파트를 사서 이사할 때 거실에다 실현했다. 양쪽으로 큰 책장을 들이고 거실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책은 여러 번 걸러냈어도 여전히 넘쳐서 안방에도 들어가고 거실 바닥에도 쌓이는 현실이 되었지만 책과 함께 하는 일상은 행복하다.

4인 가족이 생활하는 보통의 아파트에서 서재로 쓸 공간이 없어서 나처럼 거실에 만드는 경우들이 있다. 그리고 책에 관심이 있는 부모라면 아이들에게 책을 가까이 하기 위해서 일부러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의 거실에 서점을 차렸다는 일은 한 단계, 아니 열 단계는 업그레이드 된 일이다. <숲속작은책방>의 백창화, 김병록 부부는 자신들이 보던 헌책들을 거실에 진열해놓고 판매하다가 지금은 새 책도 판매하고 있다.

새 책들은 자신들이 먼저 읽고 난 뒤에 선별하여 들여놓는다. 또한 '책이 있는 집에서의 하룻밤'이라는 카피를 내걸고 '북스테이'도 한다. 책이 있는 집에서 사람들이 만나고 그 만남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인문 공간을 꿈꾼 것을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가정식 책방 입문기는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를 통해 먼저 읽었고, <북바이북>에서 저자 강연 때 들었다.

그들의 강연을 듣고서 20여 일이 지난 후에 남편과 나는 괴산으로 향했다. 우리에게 괴산행은 처음이었다. 1박 2일로 여행 일정을 잡았지만 순전히 그것은 <숲속작은책방>에 가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첫 번째 방문지는 역시 책방이었다.

이색 서점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작은 책방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은 먼 거리라도 갈 구실을 만드는 법이다. 내가 작은 책방을 응원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서점을 탐방한 뒤 블로그에 올리는 것이었다. 올린 포스팅을 보고 관심을 보이는 경우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나는 열심히 다니고 열심히 올리고 있는 중이다.

나는 괴산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전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충북 지역엔 거의 갈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방이 있는 미루 마을에 들어서면서 많이 놀랐다. 책에서 <숲속작은책방>을 보았을 때 집이 멋있다는 것과 그 마을이 조성된 전원마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마을 전체가 동화 나라처럼 예쁜 집들이 있는 곳인 줄은 몰랐다. 한 사람이 비슷한 디자인의 집들을 조금 다르게 설계한 것 같았다. 분홍 톤으로 밝고 예쁜 집들이 잘 꾸며진 정원들 사이에 지어져 있었다.

뒤는 멋진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한눈에 봐도 풍수가 좋은 곳이라 느껴졌다. 집과 집 사이도 여유로워서 사생활 보장도 충분히 될 거리였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우리도 전원생활을 꿈꾸고 있었는데 그런 마을이면 좋겠다 생각했다.

공터에 주차장이 있어서 차에서 내려 한 바퀴 돌았지만 책방을 찾지 못했다. 무슨 사무실이 있어서 물어봤더니 28호라고 알려주었다. 생각보다 마을이 커서 쉽게 찾을 것이란 생각이 오산이었다. 드디어 <숲속작은책방>이라고 쓰인 나무 간판을 보았다. 마당을 질러 들어가니 양쪽에 작은 오두막이 있고 현관 옆에 있는 발코니의 책장도 보였다. 책에서 보았던 모습이었다. 벌써 책의 향기가 발끝에 와서 맞는 것 같았다.

테라스의 의자에 남성 두 명이 앉아 있었다. 안에 들어 간 가족을 기다리는 듯 보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현관문을 들어섰다. 하지만 '머뭇거리지 않고' 들어갔다. 이곳에서 '머뭇거리지 않고'라는 표현에 주의해야 한다. 이들 주인장이 내린 서점의 정의를 숙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점이란, 그곳에서 내게 필요한 정보를 얻었거나 친구와 만남의 장소로 이용했다면 더더욱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책 구매 행위로 치러야만 하는 곳", "우리부부는 처음부터 책을 '강매'하는 책방으로 출발했다. 시골 마을 작은 책방은 오가는 대화 속에 정이 넘치는 인심 좋은 공간이 아니라 웃는 얼굴로 지갑을 열고 책 사기를 강요하는 상업 공간인 것이다."

나는 이미 이 문장을 책에서 읽었고, 거기에 동의했기 때문에 그곳에 가기로 했다. 또한 나는 원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동네 서점을 응원하는 사람이므로 방문했을 경우라면 책을 사 가지고 나오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는 금액도 적지 않은데 그 서점처럼 책을 전파시키는 데 힘을 아끼지 않는 곳이라면 마땅히 사야지.

충북 괴산의 숲속작은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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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 안쪽에도 책장이 있었는데 카메라를 맨 젊은 남성이 책을 보고 있었다. 안에는 젊은 엄마가 막 계산을 하고 있었다. 산골 서점에 사람들이 있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 그런데 그때는 주말이었고, 동네 서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처럼 방문하고 싶은 마음에 온 사람들도 있을 것이었다.

계산하던 손님이 나간 후 나는 저자 강연 때 받은 사인을 김병록씨에게 보여주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말문을 텄다. 안주인 백창화씨는 마을 일로 회관에 갔다고 했다. 김병록 씨는 거실부터 2층까지 안내를 해 주었다. <숲속작은책방>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야는 첫째 환경과 생태 분야이다.

나도 시골살이에 관심이 많지만, 시골 마을의 작은 책방까지 찾아오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환경과 시골살이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함께 나눌 만한 좋은 책들을 찾아내는 것이 자신들의 주요 과제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리고 평화에 대한 책이다. 전쟁과 폭력에 반대하고 평화를 지키려는 노력을 담은 책을 널리 알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가 배열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이 책표지라고 한다. 책 표지는 책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고, 책 제목을 그 책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가 적혀 있기 때문에 책 표지를 노출시키는 것이다. 서점에서도 책등이 보이는 것과 표지가 보이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책등이 보일 때는 제목도 책도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전면이 보이면 한눈에 보인다.

서가에 꽂혀있는 것과 평대에 있는 책들의 매출도 차이가 많이 날 것으로 생각된다. 일단 고객의 눈에 띄어야 책이 관심을 받는다. 동네 서점에 가면 표지를 보이게 진열해 놓는 경우가 많다. 이제 이런 인식이 많이 퍼져서 그럴 수도 있겠고 상대적으로 책의 재고가 적어서 일 수도 있겠지만 책 표지가 보이는 것이 책과의 거리를 가깝게 한다.

<북바이북>에 추천평이 있다면 <숲속작은책방>에는 띠지가 있다. 나는 책을 사면 이 띠지를 어떻게 처리할지 난감할 때가 많다. 때로는 책갈피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띠지에는 내용이 좋은 것들도 있기 때문에 버리는 것이 아까울 때가 있다. 책을 읽으려면 거추장스러워서 빼게 되고, 빼 놓으면 주변이 지저분해지거나 다 읽고 나서는 어디 갔는지 안 보이는 경우들이 많다.

백창화씨는 색지에 추천의 글을 써서 책 표지에 띠지를 씌우기 시작했는데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다고 한다. 예쁜 손글씨로 그 책이 어떤 감동을 안겨 주는지, 어떤 사람이 읽으면 좋을지 자신의 느낌을 적는다고 한다. 일본에도 주인이 추천 문장을 써서 놓는 서점이 있는데 손님들한테 반응이 아주 좋다고 한다. 예를 들면 '연인과 이별한 날 읽으면 좋은 책', '지하철에서 읽으면 안 되는 책'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문구를 써 놓는 것이다.

<숲속작은책방>에서는 일반인과 초등, 청소년의 3개 팀으로 나뉘어 한 달에 한번 북클럽이 진행된다. 일반인들은 책 한 권을 미리 읽고 토론하고 초등생들은 간단한 책 이야기와 지난달에 구입한 책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고 한다.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읽고 싶은 책을 읽는다고 한다. 청소년들은 상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한데 미리 읽어야 한다면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런데 자유롭게 와서 읽고 싶은 책을 읽는 것은 체험의 기회로 좋을 것 같다.

책방이 도서관 역할까지 해 주므로 지역민들에게는 참 든든할 것이다. 그리고 북 콘서트, 시 콘서트 등도 진행하는데 넓고 아름다운 정원이 있어서 그 분위기가 최고일 것 같다. 북아트 만들기, 목공 체험 등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책 이외에 그림책에 등장하는 인형과 자체 개발한 노트도 판매한다.

이곳 미루 마을은 자연 환경은 좋지만 조성된 지 얼마 안 된 지역이라서 문화 기반이 취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곳에 <숲속작은책방>이 문화와 예술의 체험 공간으로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하나하나 지역 주민과 가치 있는 문화를 확장시켜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

이날 나는 김병록씨가 추천해 준 책을 샀다. 도서관과 서점, 그림책에 관한 책과 에세이였다. 시간이 여유로우면 좀 더 천천히 구경하고 더 샀을 텐데 남편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추천해주는 것만 계산하고 나왔다. 사실 집에 밀려 있는 책이 많아서 그것을 다 읽을 때까지는 그만 사자고 했지만, 동네 서점에 왔을 때는 1년 뒤에 읽게 될지라도 사야 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동네 서점은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물질이 부족해도 우리는 견디어 나갈 수 있으나 정신력이 부족하다면 작은 흔들림에도 비틀거린다. 정신을 견고하고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데에는 책만 한 것이 없다. 또한 동네 서점은 문화 공간으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 나가고 있다. 그래서 점점 소외되고 삭막해져가는 우리 사회의 틈을 따스하게 메워 나갈 것이다. 그래서 우리 손으로 지켜내야 한다.

지친 영혼이라면 책과의 동침을

충북 괴산의 숲속작은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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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의 청산은 정신적 안정을 주는 대신 몸의 노동을 요구했다. 가사와 출산, 육아에 이르기까지 일은 점점 많아지고 힘들어졌다. 현재의 젊은 친구들하고는 비교가 안 되겠지만 그래도 남편은 우리 세대에서는 드물게 가사에 많이 참여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회사 일로 늦는 날이 많아서 집안일은 대부분 내 차지였다.

특히 연년생으로 아이들을 낳아 키우고 있을 때 남편은 국내외 출장이 잦았다. 그래서 많이 힘들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큰 뒤에는 독서 관련 일을 하였는데 점차 일이 많아지면서 몸이 지쳐갔다. 숨구멍이 필요했으나 일을 안 할 수는 없었다.

이처럼 힘들고 지칠 때에는 배낭에 책을 가득 넣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아무 것도 안 하고 그저 책만 읽으며 휴식을 취하고 싶었던 것이다. 다큐멘터리 TV 프로그램에서 법정 스님의 암자를 본 적이 있다.

대나무 숲길을 지나 방으로 들어가니 가사 한 벌, 앉은뱅이책상, 다구, 책만 있었다. 그때에도 많이 지쳐 있었는지 그 곳에 내가 있는 상상을 했고 그 암자의 모습은 아직도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 누구한테도 방해받지 않는 한적한 곳에서 단 사흘만이라도 책만 읽다가 오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런데 바로 그런 공간이 생겼다고 했다. 내가 그토록 원하던 시기에는 없었지만 최근 몇 군데 북스테이 공간이 생겼다. 이들도 처음부터 민박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아들이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나 있게 되면서 아들 방이었던 2층 다락방이 손님방이 되었다가 민박으로 바뀌었다. 프랑스에서 경험한 행복했던 시골 민박이 자연스럽게 그 일을 하도록 했다고 한다. 지금 이곳은 예약이 많아서 바로는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그런데 나처럼 힘들 때 책과 함께 푹 쉬고 싶어 한 사람이 있었다고 해서 반갑고도 놀랐다. 한 직장 여성이 1년 중 유일하게 허락되는 3일의 휴가를 이 <숲속작은책방>에서 보냈다고 한다. 어렵게 얻은 휴가라 아무 것도 안 하고 책만 보면서 조용히 쉬고 싶다면서 간단한 산책을 제외하곤 집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하루 종일 볕을 쬐거나 다락방에 머물며 잠을 자거나 책을 읽었다"고 주인장의 책에 나와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처럼 그런 공간과 시간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럴 것이다.

서점의 안주인인 백창화씨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고 한다. 과로와 스트레스로 마음이 지치자 몸이 많이 아팠던 때라고 한다. 하던 일을 당장 그만 둘 수가 없어 단 며칠이라도 몸과 마음을 달래면서 조용히 쉬고 싶었단다. 일상과 떨어져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서 책이 가득한 곳을 열심히 찾았지만 대개 수련원이나 명상센터여서 결국 포기했다고 한다.

자연 속에서 아름다운 정원과 책으로 가득한 집을 만들고 살면서 그때 생각이 많이 났다. 그때 내가 원하던 곳이 바로 이런 집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몇 해가 흘러서 그때 간절히 원하던 집을 스스로 만들고야 말았구나 하는 생각.
 -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백창화·김병록, 남해의 봄날

그랬던 것이다. 꽃들의 향기가 가득한 정원에 책 한권 들고 앉아 있으면 문득 과거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서 민박의 문을 열게 된 것이다. 자신이 누리는 편안함과 행복감을 지친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따스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숙박업이라는 것이 돈벌이로 생각한다면 하기 힘든 일이다. 예약에서부터 침구 세탁, 청소, 손님맞이 등 손이 많은 가는 일이다.

특히 이 숙소는 주인 부부가 살고 있는 이층에 있다. 화장실도 1층에 하나여서 주인들과 같이 사용해야 한다. 주변에 식당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숙소를 얻을 때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이 화장실과 식당이다. 밖에 나가서 볼 일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 여행이 아니라 고통이다. 그리고 나는 아무리 주방 시설이 잘 되어 있는 곳에서 묵는다 해도 음식을 싸 들고 다니지 않는 현지 조달형이다. 그래서 주변에 식당도 있어야 한다.

그래도 이곳은 한번 묵어보고 싶다. 이틀까지도 가능할 것 같다. 왜냐하면 주변 경관이 너무 좋아서 식당이 없어도 용서가 될 것 같다. 동네 자체도 멋지고 산책하기에 좋지만 조금만 나가면 멋진 계곡이나 호수가 있다. 나는 이곳에 갔을 때 묵지 않고 책만 사서 나왔다.

일본에서 온 남편과 함께였기 때문에 여러 가지 고려해 자는 것까지는 못했다. 다음엔 친구와 함께 가서 꼭 한번 자 보고 싶다. 지금은 지친 몸을 풀어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책방과 책방 주변의 자연을 흠뻑 느껴보고 싶다.

책방이 있는 미루 마을은 동화 속에 등장할 것 같은 집들이 모여 있다. 책방의 숙소 공간인 2층 다락방도 동화 나라 같다. 한켠에 책이 몇 권씩 놓여 있는 나무 계단을 올라가면 방 두 개가 마주보고 있다. 한 사람이든 두 사람이든 꼭 한 팀만 예약을 받는다고 하니 존중 받는 느낌을 받을 것 같다. 사선으로 내려 온 천장과 깔끔한 침대 그리고 책들이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벽에 붙어 있는 나무 인테리어도 좋다.

다락방의 숨은 장치인 왼쪽 문은 아이들이 아주 좋아할 것 같다. 주인장이 "책아 책아 사랑해, 책아 책아 사랑해, 책아 책아 사랑해," 하고 세 번 외치면 스스로 열리지만 곧 들통 날 장난이라고 위트 넘치는 주인장님의 말에 웃음이 나온다. 이 마법의 문이 열리면 그 방은 한 마디로 보물창고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좋아하는 안주인이 앨리스에 관한 자료들을 모아 놓았다. 토끼굴로 떨어진 앨리스처럼 눈에 비친 이상한 나라처럼 신기한 곳이어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리고 안주인이 가산을 탕진(?)하며 수집하였다는 팝업북과 아트북이 500여 권이 있다.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팝업북이 다양하지 않아서 구경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날 수 있다.

온갖 캐릭터 인형과 북아트 아이템이 모여 있고 수레 책장과 재미있는 모양의 책상 등이 있어 아이들과 함께 묵기에도 좋다. 아이가 어렸을 때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주는 것은 최상의 선물이다. 성인이 되었을 때 그것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일상에 지친 도시인들에게 묻지 마 여행지로는 이 <숲속작은책방>이 최고일 것이다. 1박 2일 또는 2박 3일을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그냥 지친 영혼을 자연 속에 푹 놓아주는 것이다. 직장도 집도 모두 잊고 말이다.

그러다가 누군가와 말이 하고 싶어질 때면 정원에 앉아 주인장과 이야기를 나누시라. 따스한 햇살 아래여도 좋고, 은은한 달빛 아래여도 좋을 것이다. 이미 당신과 같은 경험을 가진 자이기에 표정만 보고도 그 마음 다 헤아려 줄 것이다.

주소: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명태재로 미루길 90(칠성면 사은리 768-5 미루마을 28호)
전화번호: 043-834-7626
홈페이지 : http://blog.naver.com/supsokiz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제가 지은 책 <책 사랑꾼 이색 서점에서 무얼 보았나?>에 나오는 내용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태그:#북스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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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살무늬의 세상 읽기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며 책과 동네 책방과 그림책에 대한 애정이 깊다. <책 사랑꾼 이색 서점에서 무얼 보았나?>과 <책 사랑꾼 그림책에서 무얼 보았나?>를 지어 세상에 내놓았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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