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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 판결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해서 정부의 주요 인사들도 대체복무제도의 필요성을 언급합니다. 하지만 병역거부자들은 여전히 감옥에 갑니다. 대체복무제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왜 대체복무제도가 필요한지 대체복무제 도입이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병역거부자들과 평화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몇 차례에 걸쳐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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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시민사회활동가들이 시찰한 대만의 대체복무제 현장. 대체복무제를 관장하는 대만 정부 부서인 역정서의 관계자는, 이 좋은 것을 한국 정부가 왜 안하는지 모르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2001년 시민사회활동가들이 시찰한 대만의 대체복무제 현장. 대체복무제를 관장하는 대만 정부 부서인 역정서의 관계자는, 이 좋은 것을 한국 정부가 왜 안하는지 모르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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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과 트럼프의 막말 전쟁이 날마다 이어집니다. 막말만 오가는 게 아닙니다. 북한에서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발사 하면 미국은 한반도 상공에서 폭격기로 무력시위를 합니다. 어지간한 상황에서는 제법 의연한 우리 국민들도 이번만큼은 걱정스럽게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가하면 청와대 국민청원 코너에선 여성징병제 청원이 12만명을 넘어서면서 전체 2등을 했다고 합니다. 갈수록 징집 대상자가 줄어드는 상황이라는 점과 군가산점제도 없는데 남성들만 군대가는 것은 평등하지 못하다는 내용이 골자입니다.

이 두 가지 사례는 사실 병역거부 운동이 늘 마주해온 대표적인 질문, 주장들과도 연결됩니다. "남북이 분단되어 있고 군사적 갈등에 놓여 있는데 병역거부를 어떻게 인정하냐?"는 질문과 "군 생활이 이렇게 열악한데, 병역거부를 인정하면 누가 군대 가겠냐?"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대체복무제가 도입되는 것이 군대 내 사병들의 인권과 처우를 개선하는 데 커다란 계기가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남북이 군사적으로 갈등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병역거부를 법적으로 인정한다면 안보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평화국가로 자리매김하고 한반도의 평화에 다가갈 수 있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제 이야기가 얼토당토 않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제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사람 귀한 줄 모르는 한국의 징병제

얼마전 공관병 갑질 사건 모두 기억하실 겁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노예로 부려놓고 아들 같아서 그랬다는 변명을 늘어놔 많은 분들이 분노했죠. 그런데 더 화나는 건, 이런 일이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공관병 하셨던 분들은 이구동성으로 자기도 그런 처우를 받았다고 이야기 합니다.

고작 몇 년 전 일인, 훈련소에서 훈련병들에게 인분을 먹인 사건은 또 어떻습니까? '참으면 윤일병 되고 안 참으면 임병장 된다'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한국 군대는 사병들에 대한 처우가 열악하고 제대로 된 인권도 보장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쉽게 군인을 모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큰 문제를 일어나더라도 잠시 고개 숙인 채 비난 여론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면 됩니다. 군대가 아무리 문제가 많더라도 어차피 신입 병사들은 꾸준히 들어올 수밖에 없거든요.  
    
대만, 대체복무제 이후 군 사병 인권과 처우가 개선되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대체복무제 도입이 군대 내 사병들의 인권과 처우 개선의 출발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병무청은 아무런 경쟁 상대 하나 없이, 남의 집 귀한 자식들을 데려다가 함부로 부려먹었습니다. 하지만 대체복무제가 도입된다면 군장병들을 그렇게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겁니다. 그랬다가는 다들 대체복무제를 하겠다고 할 테니까요. 군대는 스스로 개혁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제 이야기가 굉장히 이상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실제 일어났던 일을 토대로 말씀드리는 겁니다. 이웃나라 대만은 2000년에 대체복무제를 실시합니다. 한 해 대체복무 인원을 정해놓고 운영하는 쿼터제였습니다.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만 대체복무를 했죠. 그런데도 대만의 군대는 바짝 긴장했다고 합니다. 우수한 젊은이들을 대체복무로 다 빼앗길까봐 걱정했던 거죠.

대만의 군대도 그 전까지는 사병에 대한 처우가 나쁘고 인권문제도 심각한 곳이었는데, 대체복무 시행 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국방부가 나서서 자연스럽게 군을 개혁했다고 합니다. 군대와 대체복무가 서로 경쟁을 하게 된 거죠. 누가 더 나쁘냐로 경쟁한 게 아니라 서로 더 좋은 제도라는 걸 젊은이들에게 어필하려다보니 자연스럽게 여러 문제들을 개선해 나간 것이죠.

물론 군개혁을 위해 대체복무제를 도입하자는 건 아닙니다. 다만 병역거부자들의 인권을 위해 대체복무제를 만든다면 군대 내 사병들의 인권까지도 자연스럽게 올라간다는 사실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대체복무제도만으로 군대 내 사병들의 처우 개선과 인권 보장이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중요한 변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병역거부는 원래 전쟁을 막아서는 직접행동

한국산 최루탄의 터키 수출을 반대하는 평화활동가들. 한국이 전쟁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국가가 아니라, 평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국가로 자리매김 할 때 한반도의 안보와 평화는 더욱 탄탄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산 최루탄의 터키 수출을 반대하는 평화활동가들. 한국이 전쟁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국가가 아니라, 평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국가로 자리매김 할 때 한반도의 안보와 평화는 더욱 탄탄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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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자들이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는 바로 "남북 분단 상황이기 때문에, 아직 전쟁이 끝난 게 아니기 때문에 병역거부는 시기 상조다"입니다. 그러면 저희는 저희대로 십수년 째 똑같은 대답을 합니다. "병역거부는 원래 전쟁 시기에 더 많이 하고, 세계 여러 나라가 대체복무제를 인정한 것도 전쟁 시기였다." 실제로 전쟁 중인 국가에서 병역거부자가 많이 나옵니다.

병역거부가 가장 대중적으로 일어났던 때는 베트남 전쟁 때였습니다. 많은 미국인들조차 그 전쟁의 정당성에 의문을 품었죠. 복싱 세계 챔피언이었던 무하마드 알리는 "베트남 사람들은 우리를 검둥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면서 징집을 거부하고 챔피언 벨트를 박탈당합니다. 알리를 포함한 많은 젊은이들이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며 병역거부를 했습니다.

물론 그들의 병역거부가 베트남 전쟁을 멈추게 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의 병역거부는 베트남 전쟁의 부당함을 널리 알리는 것에 일조했고, 시민불복종으로 전쟁에 저항하려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한반도,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과 갈등은 병역거부를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이유들 때문에 병역거부가 평화의 의미를 가장 크게 갖는 지역이 바로 한반도입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군인이 밀집해 있고 군사적 충돌의 우려가 높은만큼 전쟁을 막기 위한 시민불복종이 다른 지역보다도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병역거부는 한반도에 사는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통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러 방법들 중 하나입니다.

한반도에 필요한 건 군사력 경쟁이 아니라 평화 경쟁

병역거부자들의 이러한 생각들은 평소에 지나치게 이상적이라는 비판을 듣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좋은 이야기지만 당장의 현실은 북한군과 휴전선을 맞대고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는 것이죠. 저는 남북한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상황에서 군사력으로 경쟁하면서 평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이 오히려 더 비현실적인 것 같습니다.

강한 군사력이 전쟁을 억지한다는 말은 한편으로만 진실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강한 군사력은 서로의 군사 행동의 빌미가 되고, 군사력 경쟁이 커질수록 평화는 위협받습니다. 당장의 상황만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실험은 전쟁을 억지하기보다는 오히려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전쟁은 고도로 복잡한 정치적 과정입니다. 당사자들끼리 총칼로 싸우는 것을 넘어서서 무수한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 충돌하겠죠. 특히 남북한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거기에 얽힌 정치적 이해관계는 보통의 셈법으로는 가늠조차 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전쟁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고 고립된 채 수행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강한 군사력이 전쟁을 이길 필요충분조건이 되지는 않습니다. 정치적 명분을 가진 쪽이 세계적으로 지지받기 쉽고, 명분이 없는 쪽은 반대로 우방 국가들조차도 섣불리 도와주기 힘들 겁니다.

물론 남북한이 서로 협력한다면 가장 좋겠죠. 하지만 지금 정치적인 상황에서는 당장 협력하는 건 어려워 보입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당분간은 남북한은 서로를 적대하며 경쟁하겠죠. 그렇다면 군사력 경쟁을 할 것이 아니라, 평화를 위한 경쟁을 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평화를 정착시키는 노력, 인권을 신장시키는 노력,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한국 정부가 꾸준히 해나가는 게 필요합니다.

군사력 경쟁보다는 이 편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바람직하고, 국제 외교 무대에서도 명분을 쌓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제3세계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지원, 그리고 국내로 보자면 사병 인권을 개선하고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는 것 등이 한국 정부가 북한에 쉽게 우위를 보일 수 있는 평화 경쟁 이슈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대체복무제 도입할 때

병역거부자의 역사는 일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일본 제국주의에 복종하지 않은 병역거부자들의 행동은 한국 정부가 편찬한 독립운동사 책자에도 실려있습니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1만9000명이 넘는 젊은이가 병역거부로 감옥에 갔습니다. 2011년 이후 감옥에 간 병역거부자가 3000명에 육박합니다. 한국 정도 수준으로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 중 대체복무제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는 없습니다.

물론 제도 도입에 따른 부작용이나 우려 지점들을 살펴보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건 제도를 더 잘 시행하기 위해서지, 시행 자체를 포기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한국정부가 나서서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고 북한에, 세계에 널리 알리기를 희망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평화와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자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태그:#대체복무제, #군인권 개선, #한반도 평화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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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를 하면서 평화를 알게 되고, 평화주의자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출판노동자를 거쳐 다시 평화운동 단체 활동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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