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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의 사진은 모두 필름으로 촬영 후, 직접 스캔하는 과정을 거쳤으며 사이즈 조정 외 다른 보정은 없습니다. 사진 설명 앞의 괄호에 있는 정보는 카메라 기종, 필름 종류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입니다. - 기자 말


한나절은 동이 트고부터 해가 질 때까지를 일컫는다. 이에 대한 반대말은 국어에 없다. 낮에는 활동하고 밤에는 잠에 드는 것이 언제나 일상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나절의 반대편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밤 나절이라고 표현하면 모순이 된다. '나절'이라는 말 자체가 해가 떠 있는 동안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본 글에서는 '밤 나절'이라는, 말 아닌 말을 일시적으로 사용해본다.

강원도 정선, 민둥산 억새 축제

해질녘 민둥산에서 (SW612/Portra800)해가 지고나면 본격적으로 산의 밤 나절이 시작된다.
▲ 해질녘 민둥산에서 (SW612/Portra800)해가 지고나면 본격적으로 산의 밤 나절이 시작된다.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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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보내는 밤 나절은 특별하다. 일명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부르는, 해가 지평선에 걸쳐지는 시간이 두 번 지난다. 그 사이에는 밤이 있는데 그곳에는 서로의 빛을 번갈아 가며 발하는 달과 별이 있다. 게다가 이 밤 나절을 만나기 위해 낮부터 산을 오르고 다음 날 내려가는 여정이 있으니, 빛이 지평선과 하늘 꼭대기를 지나 땅 밑 반대편으로 360도를 돌며 만들어내는 풍경을 모두 만끽할 수 있다.

황금빛 억새 (PentaxLX/AgfaCT100) 서쪽에서 비스듬하게 들어오는 햇빛은 점점 노란 색을 띤다.
▲ 황금빛 억새 (PentaxLX/AgfaCT100) 서쪽에서 비스듬하게 들어오는 햇빛은 점점 노란 색을 띤다.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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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로 길었던 연휴가 시작되기 전, 정선 민둥산으로 향했다. 9월 22일, 민둥산 억새 축제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국도로 가면 5시간 반. 짧지 않은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가을의 첫 시작을 누구보다 먼저 담아오고 싶었다. 필름 작업도 그만큼 빨리했으면 좋았으련만 연휴가 너무 긴 탓에 필름을 제때 찾지 못해 스캔 작업이 늦어졌다. 슬라이드 필름은 서울에서 현상해야 하며 지방에서는 택배를 이용해야 해서 연휴가 끼지 않아도 최소한 3일이 걸린다.

억새 축제는 한 달 반 가까이 계속된다. 억새가 피어오르는 때부터 만발한 후 질 때까지의 시간이 꽤 길기 때문이다. 가을의 문턱에서 피어올라 겨울이 오기 직전까지 바람에 나부끼는 억새는, 그 시기로 보나 모습으로 보나 가을을 대표하는 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억새와 소나무 (LX/CT100)석양빛에 물든 억새가 바람에 날리고 있다.
▲ 억새와 소나무 (LX/CT100)석양빛에 물든 억새가 바람에 날리고 있다.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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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 침낭, 카메라, 필름, 삼각대 등을 100리터 배낭에 꾸리고 몇 시간을 기다린 후, 금요일 밤 10시에 자동차 시동을 켜고 깜깜한 밤길 위로 서서히 차를 몰았다. 가뜩이나 짐이 무거운데 다른 등산객들과 겹치면 나 불편한 것은 둘째 치고, 다른 이들에게 큰 불편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아침 일찍 산을 오르기로 했다. 인구밀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서는 남들보다 부지런을 떨면 호젓하고 한가한 풍경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간적 여유를 많이 두고 움직이는 이유는 졸음운전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4시간 거리면 7시간 전에 출발한다. 도착해서 잠깐 눈을 붙이기도 하지만, 운전 중에 조금이라도 졸리면 지체하지 않고 근처 안전한 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많이 돌아가더라도 국도를 이용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새벽 3시. 차로 발구덕 마을까지 올라서 도착한 시각이다. 해발 800m에 위치한 이 마을은 현재 상주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석회암 용식작용으로 생겨난 구덩이에 오래 전부터 밭을 일구어 고랭지 농사를 지어온 곳이다. 자가용이 없고 길이 정비되지 않았을 시절에는 사람들이 꽤 모여 살았다.

민둥산 임도 '억새꽃길' (67ii/Pro160NS)새벽녘 잠시 돌아본 '억새꽃길'
▲ 민둥산 임도 '억새꽃길' (67ii/Pro160NS)새벽녘 잠시 돌아본 '억새꽃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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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구덕 마을의 어원은 '여덟 개의 구덩이'이다. 팔구뎅이로 불리우다가 발구덕으로 굳어졌다는 설명이 내려온다. 석회암은 빗물에 쉬이 녹는다. 물론 영겁의 세월이 걸리겠지만 다른 암석에 비해서 용식작용이 눈에 띄게 일어난다는 뜻이다. 이로 인해 싱크홀이 생겨나고 점점 땅이 내려앉으면 구덩이가 되는 것이다. 용식작용 후에 남은 불용성 물질은 비옥한 테라로사 토양이 되어 좋은 밭이 되는 천혜의 조건을 이루게 된다.

원래는 더 경사가 급한 구덩이었을 것이다. 농사를 위해 땅을 고르는 과정에서 완만하고 오목한 모양을 가진 터전이 되었다. 물이 쉽게 빠지기 때문에 논농사에는 적합하지 않고 높은 고도에서 잘 자라는 고랭지 작물을 심는다. 배추가 대표적이다.

새벽, 발구덕마을의 밭 (67ii/Pro160NS)수확물을 잠시 두는 곳을 이용했음직한 구조물이, 경사진 밭 한 가운데에 위치해있다.
▲ 새벽, 발구덕마을의 밭 (67ii/Pro160NS)수확물을 잠시 두는 곳을 이용했음직한 구조물이, 경사진 밭 한 가운데에 위치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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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반경이 되자 동네 사람들이 한둘 씩 보인다. 주차한 곳 옆에 있던 두 개의 작은 상점도 문을 열었다.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가 말을 거신다.

"자러 가시는구먼?"
"네. 내일 오전에 내려와서 요기 좀 하겠습니다."
"밤엔 추워. 잘 다녀와요."


배낭 크기가 딱 봐도 1박 2일짜리였나보다.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1Km가 조금 넘는다. 맨몸으로 걸으면 3~4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이지만 등에 짐을 이고 거북이처럼 움직이다 보면 한 시간 반 정도는 걸릴 것이라고 예상을 했다. 발구덕 마을에 기점을 두지 않고 맨 밑인 증산초교 지점에서부터 시작하더라도 짐이 가볍다면 두 시간 반이면 넉넉하게 정상으로 오를 수 있다. 그래서 서울, 경기권에서도 기차를 이용한 당일치기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처음 시작부터 경사가 꽤 있었다. 얼추 30도 정도의 경사가 600m 가량 계속된다. 하지만 그만큼 길이 짧다.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 산 능선이 보이는 길을 만날 수 있었다.

곤드레나물 (LX/Premium400)짐이 없어 나를 추월하시던 한 아주머니께서 이 식물이 곤드레나물이라는 것을 알려주셨다. 완선된 요리로만 보던 식물이었는데 실제 모습은 예상과 매우 달랐다. 보라색 예쁜 꽃 때문이었을 것이다.
▲ 곤드레나물 (LX/Premium400)짐이 없어 나를 추월하시던 한 아주머니께서 이 식물이 곤드레나물이라는 것을 알려주셨다. 완선된 요리로만 보던 식물이었는데 실제 모습은 예상과 매우 달랐다. 보라색 예쁜 꽃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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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으로 (SW612/Pro160NS)임도를 600미터쯤 걸으면 등산로가 나오고 아직은 어린 억새꽃이 반겨준다.
▲ 정상으로 (SW612/Pro160NS)임도를 600미터쯤 걸으면 등산로가 나오고 아직은 어린 억새꽃이 반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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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은 기점에서 오른편으로 가면 화암약수로 가는 길이 나온다. 9Km 가까이 걸어야 하지만 고도의 차가 심하지 않기 때문에 짐이 없고 시간이 넉넉하면 충분히 가볼 수 있는 코스. 왼편으로 가면 정상이 나온다. 경사가 꽤 있는 탓에 정상부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생각보다 빨리 정상을 만났다. 도합 한 시간 10분이 걸렸다. 땀이 비 오듯 흘렀지만, 초가을 강원도의 바람이 순식간에 그것들을 공기 중으로 날려 보냈다.

정상 직전에 보이는 풍경 (SW612/Pro160NS)정상 도착 직전 동편으로 보이는 풍경.
▲ 정상 직전에 보이는 풍경 (SW612/Pro160NS)정상 도착 직전 동편으로 보이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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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에 도착한 후부터는 유유자적 행동할 수 있는 시간이다.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만한, 그러면서도 소지품을 함부로 한다는 느낌을 주지 않을 수 있는 곳에 배낭을 놓았다. 전망데크 가장 구석진 곳의 울타리 바깥쪽에 배낭을 걸면 딱이다. 가져온 책을 꺼내어 몇 장 읽어본다. 여행 계획을 할 때는 항상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배낭이 아무리 무거워도 책을 한 권 꼭 넣는다. 여행의 색채와 어울리는 책을 고르는 재미도 쏠쏠하고, 평소에는 잘 못 읽는 책을 이런 곳에서 읽기 시작하면 정작 여행 중에는 많이 못 읽더라도 다시 돌아가면 결국 끝까지 읽게 된다.

배낭과 책 (LX/CT100)데크 구석. 배낭과 책.
▲ 배낭과 책 (LX/CT100)데크 구석. 배낭과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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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사마귀 (LX/CT100)가을 옷을 입은 사마귀 한 마리가 가방을 메어 놓은 바로 옆 기둥에 앉아있다.
▲ 가을 사마귀 (LX/CT100)가을 옷을 입은 사마귀 한 마리가 가방을 메어 놓은 바로 옆 기둥에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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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던 어깨가 사뭇 가벼워 마음 놓고 사진을 찍어본다. 정상 기점에서 증산초교 방향으로 얼마간 내려가 보고, 왔던 길로도 다시 내려가 보면서 사진을 몇 장 담았다. 발구덕 마을에 위치한 민박집에서 등짐을 지고 출장을 나와 관광객들에게 이런저런 주전부리를 파는 아저씨와 수다도 조금 떨었다. 생각보다 오래 머문 탓에 식수가 부족할 뻔했는데 아저씨에게 생수 몇 통을 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민둥산 정상에서 (LX/CT100)정상석에서 조금 내려오면 보이는 풍경이다. 때 아닌 가을 황사가 밀려와 가시거리가 짧다.
▲ 민둥산 정상에서 (LX/CT100)정상석에서 조금 내려오면 보이는 풍경이다. 때 아닌 가을 황사가 밀려와 가시거리가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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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둥산 정상에서(2) (LX/CT100)도착한지 세 시간쯤 지나자 사람들이 꽤 많아진다.
▲ 민둥산 정상에서(2) (LX/CT100)도착한지 세 시간쯤 지나자 사람들이 꽤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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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구덕으로 가는 방향 (SW612/Pro160NS)왔던 길이다. 이 길로 30분만 내려가면 발구덕 마을이 나온다.
▲ 발구덕으로 가는 방향 (SW612/Pro160NS)왔던 길이다. 이 길로 30분만 내려가면 발구덕 마을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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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푸른 (SW612/Pro160NS)아직은 녹색빛을 띄고있는 민둥산의 모습. 변발처럼 뒤통수를 파르라니 깎은 듯 하다. 간간히 보이는 야생화가 홍일점 같다.
▲ 아직은 푸른 (SW612/Pro160NS)아직은 녹색빛을 띄고있는 민둥산의 모습. 변발처럼 뒤통수를 파르라니 깎은 듯 하다. 간간히 보이는 야생화가 홍일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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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풍경 (SW612/CT100)서쪽 데크 구석에 서서 남쪽을 바라보고 담은 사진. 황사 때문에 하늘이 뿌옇다.
▲ 남쪽 풍경 (SW612/CT100)서쪽 데크 구석에 서서 남쪽을 바라보고 담은 사진. 황사 때문에 하늘이 뿌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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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둥산 억새 (SW612/Pro160NS)규칙적인 듯 규칙적이지 않은 억새의 모습. 해가 점점 기울어 갔다.
▲ 민둥산 억새 (SW612/Pro160NS)규칙적인 듯 규칙적이지 않은 억새의 모습. 해가 점점 기울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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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둥산 정상에서 보면 산의 능선이 남북으로 뻗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일몰과 일출이 모두 조망된다. 정상석을 마주 보고 왼쪽의 데크는 서쪽에, 오른쪽의 데크는 동쪽에 위치해있다. 하나에 4m * 10m 정도는 되어 보이는 데크가 양쪽에 두 개씩 있으니 공간이 꽤 넓다. 정상 바로 밑에도 큰 데크가 두 개나 더 있다. 산 자체의 경치가 좋고 조망도 훌륭한 데다가 넓은 데크까지 있으니 비박 산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을 만하다. 당연히, 당일 산행 관광객들이 거의 다 빠진 후 텐트를 치는 것은 두말할 것 없는 가장 기본적인 예의일 것이다.

관광객들 (LX/CT100)축제 둘째 날 민둥산을 찾은 관광객들
▲ 관광객들 (LX/CT100)축제 둘째 날 민둥산을 찾은 관광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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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도 찍고 도시락도 먹고 (LX/CT100)관광객들의 모습이 각양 각색이다.
▲ 사진도 찍고 도시락도 먹고 (LX/CT100)관광객들의 모습이 각양 각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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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어둠이 찾아오는 시간이 더뎠다. 덕분에 책을 60페이지가량 읽었다. 산에 밤이 길다는 것은 골짜기를 얘기하는 것이고 이런 봉우리나 능선에서는 오히려 해가 더 길기도 하다.

이윽고 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자 사선으로 들어오는 노란 빛에 갈대가 빛났다. 아마 이 글을 작성하는 현재에는 훨씬 더 억새가 하얗게 피어올랐을 것이다. 축제 시작 바로 다음 날이었던 이때에는 아직은 붉은 모습의 억새도 있었고 연한 갈색으로 변해가는 억새도 있었다. 발구덕 마을에서 어렴풋이 들었던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억새는 세 번 본다고 안 해? 빨갛게 올라올 때 한 번, 노랄 때 한 번, 하얗게 꽃 필 때 한 번."

만발하여 하얗게 넘실대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풋풋한 느낌의 억새의 다소 억샌 몸놀림 또한 충분히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느지막이 올라온 사람들은 자그마한 탄성을 지르며 너나 할 것 없이 사진을 찍었다. 무겁고 불편했지만, 키 크고 튼튼한 삼각대를 가져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억새의 키가 꽤 컸고 셔터스피드는 매우 느렸기 때문이다.

아직은 풋풋한 (LX/CT100)어린 억새들
▲ 아직은 풋풋한 (LX/CT100)어린 억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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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빛과 억새 (LX/CT100)억새의 왼쪽 뺨을 석양이 노랗게 물들이고 있다.
▲ 석양빛과 억새 (LX/CT100)억새의 왼쪽 뺨을 석양이 노랗게 물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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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 울타리, 석양 (LX/CT100)아래쪽 데크에 텐트가 들어섰다. 갈대의 서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잠들기 좋은 곳이라고 한다.
▲ 억새, 울타리, 석양 (LX/CT100)아래쪽 데크에 텐트가 들어섰다. 갈대의 서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잠들기 좋은 곳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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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깔리기 30분 전 (SW612/Pro160NS)해가 능선으로 넘어가기 30분 전 쯤의 모습이다. 점차 동쪽 편은 어두워지고 아직 서쪽에 남아있는 햇빛은, 능선에 조명을 쏜다.
▲ 어둠이 깔리기 30분 전 (SW612/Pro160NS)해가 능선으로 넘어가기 30분 전 쯤의 모습이다. 점차 동쪽 편은 어두워지고 아직 서쪽에 남아있는 햇빛은, 능선에 조명을 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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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가장 아쉬웠던 것은 대기의 상태였다. 사진상에서는 최대한 드러나지 않도록 각도와 구도를 조정해서 찍었지만 실제로는 시야가 상당히 좋지 않았다. 중국에서 몰려온 가을 황사 때문이었다. 이 시기에는 황사를 좀처럼 보기 힘든데, 딱 이 주말에만 밀려온 탁한 먼지들이 야속하기만 했다. 먼지와 함께 찾아온 습기는 구름 한 점 없던 밤하늘을 바로 눈앞에서 가려버렸다. 아침 일출 또한 머리 위에는 파란 하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산 중턱 전역에서 마치 짚불이라도 피운 듯 희뿌연 상태로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청명하지 않은 날 또한 사진의 소재가 되어 줄 수 있다. 반짝이는 은하수, 지평선에서 타오르는 해를 담을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아래의 사진은, 가을 황사와 석양빛을 반영한 그 날의 분위기를 그대로 담은 것이다.

황사 속 민둥산, 그리고 하늘 (SW612/Portra800)민둥산 정상석, 그 뒤로 보이는 서쪽 데크와 텐트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이 시각, 난생 처음 보는 공기의 색깔을 접했다. 마치 화성을 개척하여 일구어놓은 땅 위에 서있는 것 같았다.
▲ 황사 속 민둥산, 그리고 하늘 (SW612/Portra800)민둥산 정상석, 그 뒤로 보이는 서쪽 데크와 텐트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이 시각, 난생 처음 보는 공기의 색깔을 접했다. 마치 화성을 개척하여 일구어놓은 땅 위에 서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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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을 본 사람들이 말했다.

"어? 진짜로 이름이 민둥산이네?"

여행을 떠나기 전, 주변 사람들에게 민둥산에 다녀오겠다고 말을 했을 때, 그들은 민둥산이 이곳의 별명쯤 되리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 산의 이름은 진짜로 '민둥산'이다. 오래전, 나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해마다 불을 놓았기 때문에 나무는 없고 그 자리에 억새가 자라고 있다. 원래는 근처 마을 이름을 따서 '한치뒷산'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정선아리랑의 가사에도 이 지명이 나온다.

현재 지도검색을 해보면 한치 마을은 화암면 소속으로 표시가 된다. 한치뒷산의 배경이 된 한치 마을은 남면 유평리에 있다. 민둥산 들머리 중 하나인 삼내약수 근처에는 동명의 펜션이 있어서 그 유래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위에서 설명했듯, 대기 상태가 좋지 않아 별 사진과 일출 사진을 찍지 못했다. 산에서 밤 나절을 보내는 이유 중 절반이 날아간 셈이다. 이럴 때면 너무도 안타깝지만, 이런 아쉬움이 있기 때문에 좋은 날씨를 만날 때 행복감이 증폭되는 것이라고 위안을 삼곤 한다. 민둥산에서 담지 못한 밤과 아침 시간을 얼마 전 밤 나절을 보냈던 진안 부귀산에서의 사진으로 메꾸어 본다.

어릴 적 일몰과 일출의 풍경 차이가 뭘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밤을 새우며, 혹은 깜깜한 새벽 산을 오르며 굳이 떠오르는 해를 잡아내야 하는 이유가 뭔지에 대해 다소 엉뚱하면서도 어리석은 질문을 스스로 던진 셈이다. 단지 동과 서, 방위의 차이만 있다면 매일 뜨는 아침 해를 잡아야 하는 이유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아침 해와 저녁 해의 명백히 다른 점은 구름의 차이다. 지평선에 해가 걸리는 것은 똑같겠지만 그 시각 직전까지의 기온의 변화 추이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풍경이 각각 다른 것이다. 일몰 석양을 빛내주는 구름은 태양의 위에 있고, 일출 풍경을 돋보이게 하는 구름은 태양의 아래에 있다.

진안 부귀산은 그런 의미에서 일출 촬영지로 적격인 곳이다. 근처에 있는 용담호 때문에 일교차가 그리 심하지 않은 때에도 항상 산봉우리들 사이로 운해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 사이로 말 귀마냥 쫑긋 솟은 두 개의 봉우리는 아침 운해 사진에 화룡점정이 되어준다.

진안의 밤하늘 (67ii/Portra160)부귀산 전망대에서 남쪽을 보면 진안 읍내가 한 눈에 보이고, 그 뒤로 마이산이 보인다. 1등성이 거의 없어서 밤하늘이 화려한 계절은 아니었지만 렌즈를 오랫동안 열어서 별의 자국을 담았다. 곡선들 사이의 직선 하나는 별똥별의 흔적.
▲ 진안의 밤하늘 (67ii/Portra160)부귀산 전망대에서 남쪽을 보면 진안 읍내가 한 눈에 보이고, 그 뒤로 마이산이 보인다. 1등성이 거의 없어서 밤하늘이 화려한 계절은 아니었지만 렌즈를 오랫동안 열어서 별의 자국을 담았다. 곡선들 사이의 직선 하나는 별똥별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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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귀산에서 본 일출 (67ii/Portra160)전망대에서 10분 정도 더 오르면 일출을 볼 수 있는 지점이 있다. 전망대는 마이산과 운해의 조합을 찍기 좋고, 이 곳은 해와 운해의 조합을 찍기 좋다.
▲ 부귀산에서 본 일출 (67ii/Portra160)전망대에서 10분 정도 더 오르면 일출을 볼 수 있는 지점이 있다. 전망대는 마이산과 운해의 조합을 찍기 좋고, 이 곳은 해와 운해의 조합을 찍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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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귀산 전망대에서(2) (67ii/Portra160)다시 전망대로 내려와 아침 햇살을 사선으로 받고있는 운해를 담았다. 오른편으로 마이산의 두 봉우리가 보인다.
▲ 부귀산 전망대에서(2) (67ii/Portra160)다시 전망대로 내려와 아침 햇살을 사선으로 받고있는 운해를 담았다. 오른편으로 마이산의 두 봉우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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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위 구름, 하늘 아래 구름 (67ii/Portra160)기온차가 심한 아침 시간에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구름 덕에 다양한 모습의 풍경을 담을 수 있다.
▲ 하늘 위 구름, 하늘 아래 구름 (67ii/Portra160)기온차가 심한 아침 시간에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구름 덕에 다양한 모습의 풍경을 담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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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부터 아침까지의 시간을 채웠으니 다시 민둥산으로 복귀한다. 간밤에 내린 엄청난 양의 이슬로 텐트가 흠뻑 젖었다. 먼지와 안개가 가실 때마다 10분 정도 하늘이 열린 적이 있었는데 별이 정말 많았다. 육안으로도 은하수가 선명하게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공기 중의 먼지와 높은 습도 탓에 20초가 멀다 하고 렌즈에 물방울이 맺혀서, 빛나는 별들을 그저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담을 수밖에 없었다.

내려가는 길은 훨씬 수월했다. 배낭에 싣고 온 음식과 물을 다 먹었으니 무게가 얼추 4Kg은 줄었을 것이고 내리막이니까 당연한 이야기다. 중등산화를 신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사가 급해 발이 몇 번 미끄러졌지만 그리 긴 코스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진도 몇 장 더 담아가면서 쉬엄쉬엄 내려가도 5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아침이슬 (LX/CT100)이슬이 흠뻑 맺힌 텐트 겉면
▲ 아침이슬 (LX/CT100)이슬이 흠뻑 맺힌 텐트 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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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일 아침 (LX/CT100)아침의 햇빛은 어제의 반대로 들어온다. 대기가 좋지 않아 바로 바로 앞의 산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 익일 아침 (LX/CT100)아침의 햇빛은 어제의 반대로 들어온다. 대기가 좋지 않아 바로 바로 앞의 산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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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과 억새 (LX/CT100)오전 10시가 되었음에도 아직 이슬이 마르지 않았다. 습도가 높았고 먼지 탓에 아침 햇살이 강하게 들어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 이슬과 억새 (LX/CT100)오전 10시가 되었음에도 아직 이슬이 마르지 않았다. 습도가 높았고 먼지 탓에 아침 햇살이 강하게 들어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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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끼는 억새들 (SW612/Pro160NS)셔터를 길게 열어 억새의 흔들림을 고스란히 담았다. 파란 하늘을 기다렸지만 끝내 구름은 비켜주지 않았다.
▲ 나부끼는 억새들 (SW612/Pro160NS)셔터를 길게 열어 억새의 흔들림을 고스란히 담았다. 파란 하늘을 기다렸지만 끝내 구름은 비켜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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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에서 저녁과 밤, 그리고 다음날 오전을 보낸다는 것은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의식주를 모두 짊어지고 산을 올라야 하고 기상의 변화를 온몸으로 경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고생하는 만큼 평소에, 그리고 누구나 쉽사리 볼 수 없는 풍경들을 감상할 수 있다. 오늘의 풍경을 필름에 담아 내일 다시 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을 나눌 수 있다는 것 또한 참 행복한 일이다. 마치 OST를 감상할 때마다 감명 깊었던 바로 그 장면이 다시 떠올라 마음을 적시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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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교사. 필름카메라를 주력기로 사용하며 학생들과의 소통 이야기 및 소소한 여행기를 주로 작성하고 있습니다.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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