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방송 파업을 위해 KBS 새노조가 다시 깃발을 들었습니다. 'RESET KBS! '국민의 방송'으로 돌아가겠습니다!' KBS 구성원들은 "다시 돌아가겠다"고 말합니다. 고대영 사장 퇴진과 무소불위의 KBS 이사회를 향한 싸움. 이번에는 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KBS 구성원들이 직접 시청자 여러분에게 전하는 글을 <오마이뉴스>에서 연속으로 싣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이들의 꾸준한 싸움을 지켜봐주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글은 <훈장> 불발 사건을 겪은 KBS 이병도 기자의 글입니다. 

"감추려는 자, 그가 곧 범인이다." 어느 영화에서 들을 법한 말이지만 탐사기자들끼리는 꽤 하는 말이기도 하다. 탐사취재를 하다보면 항상 감추는 자, 가로막는 자들을 마주치게 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종종 취재물에서 '악인(惡人)'으로서 보는 이들의 공분을 불러온다. 이 지면을 빌려 진실을 감추려 했던 자들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KBS <훈장> 관련 사진

KBS <훈장> 관련 사진 ⓒ KBS


훈장이 비공개? 정부 상대 소송을 걸다

시작은 4년 전, 2013년 봄이었다. 누가 대한민국의 훈장을 받았는가? 혹시 거짓 공적으로 받은 '잘못된 훈장'은 없을까? 이런 물음에서 훈장 취재는 시작됐다. 훈장을 받은 사람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그러나 비공개 결정이 내려졌다. 개인정보라는 이유에서였다. 나라에 공을 세워 나라가 그 공을 기리겠다며 훈장을 준 사람들의 이름이 비공개라니!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었다. 그해 여름,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KBS 탐사보도팀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지루하고 힘겨운 싸움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3년째인 2015년 1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그러나 주무부처인 안전행정부로부터 받은 자료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2014년까지 서훈을 받은 72만 명 중 6만 명의 명단이 빠져 있었고, 가장 중요한 서훈 사유(공적)는 대부분 비어있었다. 이를 찾기 위한 제2의 취재가 시작됐다. 정부의 인사 명령 등 과거 기록과 현장 취재를 통해 빠르게 빈칸을 메워나갔다. 마침내 전수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분석 작업 끝에 두 가지 큰 줄기를 잡았다. 바로 '간첩'과 '친일'이었다. 첫 번째 '간첩' 아이템은 무고한 사람들을 간첩으로 몰아 훈장을 받은 옛 중앙정보부와 보안사, 경찰 수사관들에 관한 얘기였다. 훗날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간첩사건은 70,80년대에만 60건이었고, 여기에 잘못 수여된 서훈만 70개가 넘은 사실이 취재결과 밝혀졌다. 특히 80년대 보안사의 경우, 5건 중 2건이 조작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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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친일' 아이템은 대한민국의 훈장을 받은 친일파들에 관한 얘기였다. 친일 인사 2백여 명이 4백 건 넘는 서훈을 받은 사실을 새로이 밝혀냈다. 다만 이 경우에는 훈장을 받은 사유와 시기를 놓고 상반된 시각이 있을 수 있어서 다양한 관점을 모두 담으려 노력했다. 이렇게 두 편의 취재를 마친 것이 7월, 휴일을 모두 반납하고 거의 매일 야근을 한 결과였다. 정부가 감추려 한 진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순간이었다. 그러나 진실을 감추려는 자들은 또 있었다.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였다.

진실을 감추려는 '내부자들'과의 싸움

당초 <훈장>(2부작)은 2015년 6월과 7월에 각각 한편씩 방송될 예정이었다. 호국보훈의 달인 6월에 <간첩과 훈장> 편을, 광복절을 앞둔 7월에 <친일과 훈장> 편을 방송하자는 것이었다. 5월 말쯤 탐사제작부 내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그러다가 6월초에 메르스 사태가 터졌다. 특집이 편성됐고 방송은 7월부터로 밀렸다. 긴급 상황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6월 말부터 상황이 심상치 않게 바뀌었다. 바로 KBS의 '이승만 망명 요청' 보도 때문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정부가 일본 망명을 타진했다는 것이었는데, 뉴라이트를 중심으로 한 보수단체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당시 이인호 KBS 이사장은 이 보도를 논의하기 위한 긴급 이사회를 소집하기도 했다. 결국 회사 측은 사실상 정정 보도를 했고, 문책 인사를 했다. 불똥이 <훈장>으로 튀었다. 7월 초, <훈장>(2부작)이 방송예정목록에서 사라졌다.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의 간첩조작사건과 박정희의 친일행적과 훈장이 걸림돌이 됐다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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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기다림이 시작됐다. 팀장이 원고를 다 봤지만, 그 위의 부장과 국장은 아무 말이 없었다. 한참 뒤에야, 8월 내내 광복특별기획 시리즈가 잡혀 있고, 9월에도 한 달 내내 경제 살리기 시리즈가 예정됐다는 말을 들었다. 결국 제작진은 9월 초 사내게시판에 호소문을 올렸다. 방송이 석연찮게 미뤄지고 있으니 하루 빨리 방송 날짜만이라도 잡아달라는 호소였다. 4천명 직원 중에 2천여 명이 읽고 추천이 240건을 넘으면서 큰 반향이 일었다.

그러나 사측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제작진을 인사 발령 냈다. 제작진을 대변한 안양봉 탐사보도팀장을 보도국 평기자로, 제작진 중 선임이었던 최문호 기자를 라디오제작부로 보내 버렸다. 7월부터 기자협회장을 맡게 된 나도 디지털뉴스부로 발령이 났다. 남은 사람은 후배 최광호 한 명뿐이었다. 사측은 통상적 절차에 따른 인사였다고 했지만 그 말을 믿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호소문을 올린 지 열흘이 지나서야 겨우 부장의 데스킹이 시작됐다.

KBS 역사상 유례없는 내부검열

KBS 역사상 유례없이, 2시간씩 모두 10차례 데스킹 회의가 열렸다. 고통의 연속이었다. 방송 날짜도 안 잡은 채 데스킹을 하는 것도 전례가 없는 일이었지만 데스킹이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차라리 검열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인터뷰한 사람이 부적절하니 바꿔라, 화면은 이러이러한 것을 써라, 심지어 토씨 하나까지 문제 삼았다.

15년 기자생활에 1시간짜리 프로그램만 4년을 만들었지만 이런 적은 없었다. 게이트키핑이라는 미명 하에 제작 자율성은 철저히 무시됐다. 1편 <간첩과 훈장>에서는 '조작'이란 표현을 사용하지 말라는 지시를 했다. 무고한 사람을 고문 등을 통해 간첩으로 만든 사건이 조작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또 전 국정원과거사진상조사 위원으로서 꼭 필요한 인터뷰를 한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인터뷰도 빼라고 했다. 마침 보수단체가 한 교수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을 폄하하는 발언을 했다"며 공격을 퍼붓던 시기였다.

 KBS <훈장> 관련 사진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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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친일과 훈장>은 문제가 더욱 심각했다. 한국전쟁 때 무공훈장을 받은 백선엽·박정희의 친일 행적은 언급하지 말 것과, 2차 대전 전범으로 지목된 기시 노부스케 전 일본 총리가 훈장을 받은 내용도 뺄 것을 지시했다. 특히 이승만, 박정희 관련 부분은 보도하는 것 자체를 꺼리는 태도가 느껴졌다. 결국 2편 전체 원고에서 3분의 1에 대해 '방송 불가' 통보를 받았다. 이런 '검열'에 저항하느라 회의 때마다 고성이 오갔다. 거세게 항의도 해보았고 설득도 해보았다. 그러나 머리를 맞대는 회의가 아니라 오로지 지시를 관철시키려는 데스크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가위질 한 채로 1편만 방송... <뉴스타파>에서 4부작을 내보내다

제작진은 1편이라도 먼저 내야겠다고 판단했다. 지시를 모두 수용해 방송예정일이 10월 20일로 일단 잡혔다. 그러나 또 다시 여러 프로그램들이 '특집'이라는 이름 아래 갑자기 편성되기 시작했다. 이산가족생방송 세계기록유산등재 특집이 잡혔고, 이어 다음주에는 <시청자칼럼-우리 사는세상> 특집이 편성됐다. 이상한 건, 우리가 방송을 내려는 <시사기획 창>이 나가는 화요일 밤 10시에만 유독 특집이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그 다음 주부터는 다른 일반 아이템들이 예정돼 있다고 했다. 이쯤 되면 회사 수뇌부가 방송을 내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왜였을까? 당시 진행 중이던 신임 사장 선임절차 때문이라고 제작진은 판단했다. 조대현 당시 사장은 연임을 시도하고 있었고, 지금 고대영 사장도 당시 KBS비즈니스 사장도 공모에 지원했다. '김구 선생은 대한민국 건국 공로자가 아니'라는 이인호 이사장의 심기는 물론, 박근혜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를 만한 어떤 프로그램도 내보내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감춰진 진실을 밝히려는 3년에 걸친 노력이 정권 눈치 보기에 급급한 내부자들에 가로막혔다는 사실에 깊이 절망했다. 분노가 밀려왔다. 몸도 마음도 지치고 피폐해졌다. 무엇보다 슬펐던 것은, 공영방송 KBS에 대해 입사 16년 만에 처음 느낀, 깊은 회의감이었다.

1편 <간첩과 훈장>은 결국 해를 넘겨 2016년 2월초, <훈장>이라는 애매한 제목을 달고 방송이 됐다. 그리고 2편 <친일과 훈장>은 KBS에서 끝내 방송되지 못했다. 모든 취재의 산파 역할을 했던 최문호 기자는 회사를 떠나 독립언론 <뉴스타파>로 갔고, <친일과 훈장>편을 포함한 <훈장과 권력> 4부작을 마침내 세상에 알렸다.

'공범자' 문화 청산하고 공영방송 되살려야

KBS 노조 총파업 “고대영은 물러나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새노조) 조합원들이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열린 총파업 출정식에 참석해 고대영 사장의 퇴진과 공영방송 정상화를 요구하고 있다.

▲ KBS 노조 총파업 “고대영은 물러나라” ⓒ 유성호


원고가 난도질을 당하면서도 1편 방송을 내는 데 동의했던 건, 속죄의 마음 때문이었다. 서슬퍼런 군사정권의 간첩조작, 이를 검증 없이 받아쓴 KBS같은 언론, 그리고 이를 지켜보기만 했던 방관자들... 과거의 우리 대부분이 결국 가해자였기 때문이다. 훈장 방송을 통해 늦게라도 피해자 분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정의를 바로세우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다.

지금 파업을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권력을 쥔 자들은 불편한 진실을 감춤으로써, 국민의 알권리를 막아왔다. KBS의 '내부자들'은 그런 권력에 동조해 온 '공범자들'이었다. 굳이 '세월호 보도참사'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명박근혜 정권' 동안 KBS는 얼마나 많은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았던가. 좋든 싫든 수신료 2500원을 내주신 국민들에게, KBS는 "수신료의 소중한 가치"를 실현했던가? 부끄럽지만 내 답은 '아니다'이다. 그럼 무엇을 해야 하는가. <훈장 1편>처럼 억지로라도 방송을 함으로써 잘못을 바로잡을 시간은 지났다. 잘못된 방송을 멈추고, 제대로 된 방송을 준비해야 한다. 진실을 감추려했던 권력을 드러내고, 그에 동조한 공범자들의 문화를 청산해야 한다. 이번 파업이 반드시 승리해야 할 이유다.

 <훈장> 취재 기자들. (왼쪽부터 이병도 최문호 최광호 순)

<훈장> 취재 기자들. (왼쪽부터 이병도 최문호 최광호 순) ⓒ 이병도


이병도 기자는 2001년 KBS에 입사해, 정치부, 경제부, 사회부 등을 거쳐 탐사보도팀에서만 4년 근무했다. 대선후보 및 고위공직자 검증보도로 안종필 자유언론상을 비롯해 이달의 기자상과 이달의 방송기자상 등을 다수 수상했다. 2015년부터 1년간 KBS기자협회장을 역임했다.(<시사기획 창-훈장>으로 한국기자협회가 수여하는 제48회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친일과훈장 공범자들 KBS 새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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