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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구립 예술의마을 경로당 왕태식 회장 모습
▲ 예술의마을 경로당 서초구립 예술의마을 경로당 왕태식 회장 모습
ⓒ 임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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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에는 500년 넘게 집성촌을 이루며 명맥을 이어온 가문이 있다. 개성 왕씨 일가다. 그 중심에는 왕태식(81)씨가 있다. 그는 1965년부터 2012년까지 48년간 통장을 맡아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했다. 그 역시 서초동의 터줏대감으로 자부심이 대단하다. 지금은 서초3동 예술의마을 경로당 회장으로 15년간 봉사 중이다.

왕태식 회장의 사회봉사는 196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대 후반이던 왕 회장은 통장을 하던 집안 아저씨를 도와 동네 반장 일을 했다. 그 후 집안 아저씨의 대를 이어 통장직을 수행하게 됐다.

왕태식 회장이 경로당 업무를 보고 있다.
▲ 경로당 집무실 왕태식 회장이 경로당 업무를 보고 있다.
ⓒ 임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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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가 넘은 모습이지만 왕 회장은 민첩하고 다부지다. 평소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그는 통장 일을 천직으로 알고 동네를 위해 헌신했다.

왕 회장은 통장 일을 보면서 동네 어르신들이 오갈 데가 없는 것을 많이 목격했다. 그는 동네에 경로당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왕 회장은 동네 어르신들을 위해 지역사회 독지가들의 후원 등을 받아 노인잔치를 열기 시작했다.

동네 어르신 100여 명을 모시고 처음으로 노인잔치를 열었다. 어르신들이 너무 좋아했다. 힘들어도 노인잔치는 자주 해야겠다고 왕 회장은 결심했다. 그때부터 시작한 노인잔치는 지금까지 계속돼 다른 경로당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예술의 마을 설립 당시 전 원중선 동장과 뜻을 모아 건립했다고 말했다.
▲ 경로당 설립 예술의 마을 설립 당시 전 원중선 동장과 뜻을 모아 건립했다고 말했다.
ⓒ 임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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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동네에 경로당을 지을 기회가 찾아왔다. 왕 회장의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닿았을까. 낙후됐던 서초동이 개발되면서 동사무소 근처에 대기업 빌딩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기업이 주변 땅을 사지 못해 건물을 지을 수가 없었다. 당시 통장이었던 왕 회장이 땅 주인을 설득해 그 기업에 건물을 짓게 해줬다.

그 기업 회장은 고마움의 표시로 왕 회장께 사례금을 주겠다고 했다. 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사례금 대신 경로당을 지어달라고 기업 회장에게 부탁했다. 기업 회장은 "젊은 사람이 돈은 싫고 왜 노인정을 지어달라고 하느냐"라고 물었다. 왕 회장은 "아이들은 학교에나 가서 놀지만 노인들이 갈 데가 없습니다. 노인들이 시간도 보내고 식사도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라고 답했다.

그 회장은 "15명 이상으로 구성된 노인정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오라"고 말했다. 왕 회장은 이튿날 30명으로 구성된 명단을 갖다 줬다. 그 회장은 "왕 통장은 날개 달렸냐"고 하면서 경로당을 지어줬다. 그래서 경로당이 1989년 완공됐다.

예술의마을 설립 공적기념비
▲ 공적기념비 예술의마을 설립 공적기념비
ⓒ 임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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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당을 지을 때 또 하나의 어려움이 있었다. 건축허가가 문제였다. 구청을 일곱 번, 시청을 세 번 다녀왔지만, "건축할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왕 회장은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었다. 대한노인회에도 전화도 하고 탄원서도 냈다. 소용이 없었다. 그는 포기할 수 없었다. 대한노인회에 투서를 보냈다. 당시 대통령의 장인이었던 이규동 대한노인회장(당시)이 사실을 알게 되고 조치를 해줘서 경로당을 건축할 수 있었다.

왕 회장은 경로당을 지은 것을 그 무엇보다 보람된 일로 기억한다. 서초노인회에서는 왕 회장의 노고를 위로하고 공로를 기억하기 위해 경로당에 앞에 공적비를 세워줬다.

예술의마을 경로당 회원 모습
▲ 경로당 회원 예술의마을 경로당 회원 모습
ⓒ 임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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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3동 예술의마을 경로당은 토·일요일에도 회원들에게 점심을 대접한다. 경로당에서 일주일 내내 점심을 제공하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모든 것이 왕 회장의 헌신과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해 보인다.

왕 회장은 노인들을 위한 일이라면 끈질긴 면을 보였다. 경로당이 비좁아 회원들이 다 같이 식사하기에는 불편했다. 경로당을 넓혀야 했지만, 관계 기관에서는 규정을 들어 난색을 보였다. 그러나 그의 끈질긴 노력으로 결실을 보았다. 서초구청장이 경로당 확장을 도와준 것이다. 왕 회장은 지금의 경로당 시설에 만족하며 경로당 운영에도 애로사항이 없다고 한다.

경로당이 완공됐을 때 왕 회장의 나이는 53세였다. 그는 만 65세가 되자 경로당 정식회원에 가입했고, 곧바로 경로당 총무를 맡았다. 통장과 경로당 총무를 겸임하면서 경로당에 많은 협찬을 받아왔다. 그는 "2002년부터 경로당 회장을 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맡고 있다. 이제는 회장을 그만두고 고문이나 경로당 지키는 일만 하면 좋겠는데, 후임자가 나타나질 않는다.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지금 당장이라도 회장을 물려줄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군시절에 나팔수을 했다는 왕태식 회장
▲ 트럼펫 군시절에 나팔수을 했다는 왕태식 회장
ⓒ 임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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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회장은 1985년에는 민방위대육성 발전에 대한 공로로 대통령표창을 받았고, 지역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서초구민대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어르신들이 즐거운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지역을 위해 골목길 청소, 불법 홍보물 제거 등 거리 환경미화에 경로당 회원과 함께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왕 회장도 어느덧 세월이 흘러 어르신이 됐다. 이제는 어르신으로 대우를 받을 만도 하지만, 지역사회 어르신들의 손과 발이 돼 아직도 일하고 있다.

1962년 군시절에 받은 부대장 공로 표창장
▲ 표창장 1962년 군시절에 받은 부대장 공로 표창장
ⓒ 임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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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회장은 어르신들도 의식 변화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명령하거나 앉아서 대접만 받기를 원해서는 안 됩니다. 솔선수범하고 모범을 보이며 스스로 품격을 높여 젊은이들로부터 존경받는 어르신이 돼야 합니다. 그리고 젊은 세대와도 소통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태그:#서초구립 서초3동, #예술의마을 경로당, #왕태식 회장, #경로당설립, #봉사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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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긍정적사고로 활동적인 소유성격으로서 사진과의 취미가 많아 앞으로 좋은 소식을 전하게되어 매우 반갑습니다. 움직이며 발로 뛰는 그러한 뉴스정보를 가지고 열심히 해볼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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