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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을 위해 5월 22일 밤 9시 50분에 베를린 테겔 공항(Flughafen Berlin-Tegel)에서 에티하드(etihad) 항공편으로 아랍 에미리트(United Arab Emirates)의 수도 아부다비(Abu Dhabi)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6시 5분이었다. 그런데 인천발 항공편의 출발 시간이 밤 10시 15분이기에 무려 16시간 10분이라는 대기 시간이 주어졌다.

그래서 애초에 유럽여행 끝에 덤으로 중동여행까지 하는구나 쾌재를 불렀는데, 컨디션 난조로 8시간 넘는 비행 시간 동안 잠을 거의 자지 못한 탓에 아부다비 공항에 도착했을 땐 관광이고 뭐고 그저 편히 몸 누일 곳만 있으면 종일 쉬고만 싶었다.

공항 내 기념품 가게
 공항 내 기념품 가게
ⓒ 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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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공항 내엔 나같은 장시간 대기자들을 위한 비교적 저렴한 수면실(Sleeping Lounge)이 있었으나 모두 만석이었고, 내부 호텔에서도 잠깐 쉬어갈 수 있는 저렴한 객실들 역시 매진이었다. 극심한 피로와 짜증으로 한참을 헤매다 그나마 긴 휴식용 의자들이 놓여 있는 곳을 발견해 거기라도 누워 눈을 붙여보려 했다.

두어 시간 쯤 겨우 잠을 청하고 나니 컨디션은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피곤하고 귀찮은 마음에 그냥 이대로 종일 누워있으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긴 시간을 공항에서 허비하다 간다는 게 너무 아까웠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또 중동을 와볼 수 있겠나 싶어 억지로라도 기운을 차리고 공항 밖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남은 유로화 일부를 이곳 화폐로 환전한 후 간단히 출국수속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말로만 듣던 중동의 살인적인 더위가 기다리고 있었다. 작열하는 태양이 내리뿜는 열기는 그야말로 찜질방 불가마를 방불케 했다. 제일 먼저 아부다비의 대표적인 명소인 세계 다섯 번째로 크다는 그랜드 모스크(Sheikh Zayed Grand Mosque)행 버스를 타기 위해 매표기와 씨름하고 있자니, 고맙게도 근처에 있던 어떤 택시기사 한 분이 거기 가려면 5디르함(Dirham) 짜리 패스를 끊으면 된다며 친절히 도와주셨다.

부자나라답게 에어컨이 틀어져 있는 유리벽의 밀폐된 버스정류장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다행히 A1 버스가 곧 도착했다. 30분 남짓 달린 후 버스기사가 알려준 곳에 내리니 휑한 도로 저멀리 새하얀 사원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이 엄청난 더위 속에서 거기까지 걷는 것이 보통 고행이 아니었다. 우연히 동행하게 된 두 중국인 아가씨는 미리 양산을 준비해 왔는데, 난 급한대로 허리에 두르고 있던 얇은 자켓을 뒤집어 쓴 채 땀을 뻘뻘 흘리며 목적지를 향해 걸었다.

이 더위 속에서 멀리 보이는 사원까지 걷는 것조차 큰 고행이었다.
 이 더위 속에서 멀리 보이는 사원까지 걷는 것조차 큰 고행이었다.
ⓒ 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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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사람이 사는 대도시인데도 보이는 건 넓고 휑한 도로에 오직 저택들과 야자수들 뿐, 중간에 쉬어갈 만한 식당이나 편의점 하나 보이지 않고 살아 있는 생명체라곤 관광객인 우리뿐인 그야말로 사막 아닌 사막이었다. 하기사 이런 열기라면 걸어서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해보였다. 멀고 멀게만 느껴지는 사원을 향해 비오듯 쏟아지는 땀을 닦으며 걷다보니 이런 곳에서 혼자 걷다가 일사병으로 쓰러져도 아무도 모르겠구나싶어 두려울 지경이었다.

마치 관광이 아닌 생존을 위한 고행을 하는 심정으로 한참을 걸어 정문으로 보이는 곳에 도착했지만 문이 잠겨 있어 들어갈 방법을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자니, 경비원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나타나 저쪽으로 돌아가라고 손가락으로 한 방향을 가리키는데 그 입구까지 거리가 또 한참이다.

이 거대한 사원은 입구를 찾는 것또한 고행이었다.
 이 거대한 사원은 입구를 찾는 것또한 고행이었다.
ⓒ 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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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입장을 하니 정원에 방문객들이 꽤 모여 있었고, 익히 들었던 바대로 전통의상인 아바야(abaya)로 갈아입기 위해 가까운 곳에 있는 컨테이너 건물처럼 보이는 가건물에 들어가니, 여성 요원들이 몸과 소지품 검사를 한 뒤 음식물은 지참할 수 없으니 나갈 때 찾아가라며 음료수와 감자칩을 압수했다.

믿을 수 없이 아름다운 사원의 정원(1)
 믿을 수 없이 아름다운 사원의 정원(1)
ⓒ 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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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원의 정원(2)
 아름다운 사원의 정원(2)
ⓒ 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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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펄 끓는 더위 속에 그 위용의 실체를 드러낸 웅장한 백색의 건축물 앞에 있는 수영장 같은 파란 물을 보는 순간 바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내부로 들어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두 가지 색인 흰 색과 파란 색이 뚜렷이 대비되는 이 깨끗하고 신비로운 풍경은 어떻게 보아도 놀랍고 아름답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정도의 경이로움이었다.

그랜드모스크 사원 내부(1)
 그랜드모스크 사원 내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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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모스크 사원 내부(2)
 그랜드모스크 사원 내부(2)
ⓒ 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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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 안에는 총 1,096개의 흰 대리석 기둥들이 있으며 그 끝에는 대추야자열매를 형상화 한 도금된 알루미늄 조각들이 붙어 있다. 또한 기둥에 있는 덩쿨 무늬들은 모두 자개를 이용해 수공예로 조각된 것이라고 한다.
 사원 안에는 총 1,096개의 흰 대리석 기둥들이 있으며 그 끝에는 대추야자열매를 형상화 한 도금된 알루미늄 조각들이 붙어 있다. 또한 기둥에 있는 덩쿨 무늬들은 모두 자개를 이용해 수공예로 조각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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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처럼 뜨거운 바깥과는 달리 비교적 냉방이 잘 된 사원 내부에서 짬짬이 급수대의 물을 마셔가며 맨 발로 차가운 대리석 바닥을 밟고 돌아다니자니 이제야 살 것 같았다. 중간에 실수로 히잡이 벗겨지기라도 하면 보안요원에게 바로 주의를 듣는 것 외에는 별다른 불편함 없이 이 훌륭한 곳을 무료로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는 것이 무척 고마웠고 내가 이걸 보려고 그 엄청난 더위를 무릅쓰고 고생한 보람이 있구나 싶었다.

중앙 기도실의 카펫의 넓이는 5,700평빙미터로 세계 최고이며 약 1,200 명의 장인들에 의해 2년에 걸쳐 완성되었다고 한다.
 중앙 기도실의 카펫의 넓이는 5,700평빙미터로 세계 최고이며 약 1,200 명의 장인들에 의해 2년에 걸쳐 완성되었다고 한다.
ⓒ 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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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 안에는 모두 일곱 개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수정 샹들리에들이 있으며 그 중 가장 큰 것의 무게는 약 12톤이라고 한다.
 사원 안에는 모두 일곱 개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수정 샹들리에들이 있으며 그 중 가장 큰 것의 무게는 약 12톤이라고 한다.
ⓒ 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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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추후 개인 블로그 http://arinalife.tistory.com/에 게재할 예정입니다.



태그:#아부다비, #그랜드모스크, #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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