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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촛불집회 당시 사진
 지난해 촛불집회 당시 사진
ⓒ 김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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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영화,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고 극장을 나서며 문득 지난해 11월 촛불집회가 열리던 광화문 거리에서 만난 택시 기사님 한 분이 생각났다.

당시 우여곡절 끝에 늦은 시간에야 도착한 광화문 광장, 아이들 욕심 때문에 메인 무대 앞으로 뚫고 들어가느라 많은 이들의 시선을 가렸지만 그 누구도 짜증 내지 않았다. 둘째 아이가 든 촛불이 꺼지자 여기저기서 불을 붙여주겠다고 손 내밀고 간식까지 쥐여 주었다. 사춘기의 정점에 놓인 큰아이의 열정은 참으로 대단했다.

비도 오락가락하고 시간이 너무 늦어 아직 초등학생인 둘째의 컨디션이 걱정되어 오후 11시쯤 되자 그만 귀가하기를 권했지만 '조금만 더'를 간청하는 바람에 자정이 다 되어 광장을 빠져나오게 되었다.

배가 몹시 고파 해장국 집을 찾았다. 몇 시간을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앉아 떨다가 따뜻한 식당 안으로 들어가자 둘째 아이가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아무리 흔들어도 깨어나지 못하자 아이는 남편 등에 업히고 큰길로 나섰다.

'예약등' 켜고 우릴 태워준 택시, 요금까지 받지 않겠다는 이유는 바로...

지난해 촛불집회 당시 사진
 지난해 촛불집회 당시 사진
ⓒ 김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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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도 버스도 이미 끊어진 시간, 드문드문 다니는 택시들은 모두 따로 태울 손님이 있는지 예약 등을 켠 채 우리 곁을 비켜 갔다. 우리도 몇 번이고 콜택시를 부르려 시도했지만 대기 중인 차량이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40여 분을 한 자리에 서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택시를 잡아보려 애쓰는 동안 주저앉고 싶을 만큼 피곤이 몰려왔다. 미끌미끌한 파카를 입은 채 둘째 아이를 업은 남편은 흘러내려 가는 아이를 추스르며 진땀을 빼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는 도저히 택시를 못 타겠구나' 싶어 다른 거리로 이동하려고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예약등이 켜진 택시 한 대가 유턴까지 하면서 우리를 따라왔다. 그러더니 기사님이 차창을 내리고는 "아주머니, 타세요!"하고 우리에게 소리치셨다.

어리둥절한 나는 "저희가 예약한 거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기사님은 "아이 업은 사람 있으면 태우려고 일부러 예약등을 켜고 온 겁니다"라고 하신다. 남편과 나는 귀를 의심하는 듯 서로를 바라보다 택시에 올라탔다.

지난해 촛불집회 참석 당시 사진
 지난해 촛불집회 참석 당시 사진
ⓒ 김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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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날씨에 집회에 참여하느라 우리 가족은 이미 '반 실신' 상태가 되어 있었다. 시위 참여를 격려하는 등의 말씀과 더불어 짧은 대화를 나누면서도 막상 지친 몸이라 받고 있는 호의에 대해 다소는 무감각하게 느끼고 있었다.

우리 차가 대기하던 강남의 남편 회사 주차장 입구가 좁고 어두워 그냥 진입로에서 내려 주십사 했지만 괜찮다며 남편 차 앞까지 몰아주셨다. 남편이 자는 아이를 우리 차로 옮기는 동안 내가 운임을 드리려 하자 "애초부터 미터기도 껐고 요금을 받지 않을 작정이었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태워주신 덕에 고생을 덜어서 이미 큰 은혜를 입었어요. 요금까지 안 받으시면 저희가 너무 죄송하죠"라고 했더니 손사래를 치며 끝내 요금을 사양하셨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도 시위에 참가하고 싶은데 일 때문에 그러지를 못했어요. 그래서 늦은 밤에 어린아이 데리고 있는 가족을 돕는 것으로 한몫을 하고 싶어 예약등을 켜고 다녔던 겁니다. 덕분에 이렇게나마 동참하게 되었는걸요."

그제야 기사님의 의도를 제대로 알아채고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조명이 꺼진 어두운 주차장에서 우리 부부와 택시기사님은 서로에게 몇 번이고 깊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이 어려운 시기'에 당신과 내가 이 거리에서 동지로 만나 서로를 대단하게 여겨주고 알아주는 일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고마웠던 택시기사님, 이 글 보면 연락 주세요

우리 차로 옮겨 탄 뒤에야 기사님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음을 깨닫고 몹시 아쉬웠다. "회사 이름이라도, 성함이라도 봐둘 걸 그랬어"라고 말하니 남편도 "그러게... 나중에 식사라도 한 번 대접해 드리면 좋았을 것을..." 하고 답했다.

그러자 뒷좌석에 앉아 있던 중학생 큰아들이 "아까 그 김기린 기사님 말이야?"라고 물었다.

"어! 너 어떻게 알았어?" 라고 되묻자, "차 안에 이름표가 있던데?"라고 말한다. "와! 녀석, 기억력 좋다" 했더니 "어떻게 잊겠어? '김'자 '기'자 '린'자를..."하며 웃는다. 우리는 큰 아이의 다소 엉뚱한 기억력 덕에 다시 뵐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이 생겼다며 안도의 웃음을 지었다.

작은 촛불이 하나하나 더해져 나쁜 정치를 준엄하게 심판하고 새날을 맞이하였다.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5.18 민주화 운동의 실상을 취재하여 세상에 알린 위르겐 힌츠페터가 처절한 시간을 함께해준 택시운전사 김만복씨를 애타게 찾았듯, 우리 가족도 김기린 기사님을 꼭 한 번 만나 뵙고 싶다.

5.18 민주화 운동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고 그 비극은 오랜 시간 동안 멈추지 않고 이어져만 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촛불 혁명은 달라야 한다. 고사리 같은 손까지 보태어 밝힌 촛불이 불량한 정치의 고리를 끊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해 꺼지지 않는 불빛으로 커가야 한다. 우리의 혁명은 끝나지 않았고 결코 멈출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촛불을 들면 잠재된 동지들이 예약 등을 켜고 달려와 줄 것이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은 대한민국을 위해 함께 달려줄 것이다.

"김기린 기사님, 연락 주세요. 늦은 감이 있지만 동지애를 나누며 축배를 들고 싶습니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스틸컷
 영화 <택시운전사>의 스틸컷
ⓒ (주)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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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의 일부는 이미 본인의 페이스북 포스팅으로 소개된 내용입니다.



태그:#택시운전사, #촛불집회, #5·18민주화 운동, #촛불혁명, #김기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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