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안예은 그리고 관객 안예은 지난 9월 21일 늦은 오후, 서울 합정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가수 안예은을 만났다. 트위터에서 유명한 '프로관극러'로 통할 만큼 다양한 연극·뮤지컬 작품을 보고 있는 안예은. 그녀를 만나 '입덕기'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 가수 안예은 그리고 관객 안예은 지난 9월 21일 늦은 오후, 서울 합정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가수 안예은을 만났다. 트위터에서 유명한 '프로관극러'로 통할 만큼 다양한 연극·뮤지컬 작품을 보고 있는 안예은. 그녀를 만나 가수 안예은이 아닌 '관객' 안예은의 입장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 곽우신


우리는 모두 무언가의 '덕후(오타쿠)'이다.

'덕통사고(덕후+교통사고)'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나는 오늘 입덕(덕후의 길에 입문)하러 갈 거야'라고 예측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문득, 특정한 장르가, 작품이, 캐릭터가, 아티스트가 나의 뒤통수를 세게 후려치면서 말한다.

"오늘부터 내가 네 본진(가장 좋아하여 중점적으로 파게 되는 대상)이야."

그렇게 입덕 후 '덕질(덕후로서 소비하는 것)'을 꾸준히 하게 된다. 이 탈출구 없는 미로에 빠지면, '탈덕(덕질의 세계에서 탈출)'은 없다. 가끔의 '휴덕(덕질을 잠시 쉼)'이 있을 뿐이다. 가수 안예은이 연극·뮤지컬 장르에 빠진 것도 그렇게 시작됐다. 대한민국 대표 트위터리안 중 한 명인 그녀는, '프로관극러(프로페셔널+관극+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er')'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자신이 종사하고 있는 장르가 아닌, 다른 장르의 작품을 열심히 관람하며 인증 샷과 후기를 남긴다.

그녀가 연극·뮤지컬에 입덕했을 때, 이 장르를 파고 있던 수많은 트위터 계정들이 마치 구유에서 아기 예수가 태어났을 때의 동방박사들처럼 안예은을 환영했다. 다른 작품과 배우를 홍보하고, 영업하고, 후기를 공유했다. < K팝스타 >에서 보여줬던 독특한 보컬, 희소성으로 따지면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에서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독보적인 자기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아티스트. 그런 그녀의 '반전'이라고 할 정도로 유쾌하고 발랄한 트윗에 조용히 하트만 눌렀던 적이 몇 번이었나. 그렇게 입덕의 세례를 거친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다.

지난 9월 21일 늦은 오후, 서울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안예은을 만났다.

어느 가수의 입덕기

가수 안예은 그리고 관객 안예은 지난 9월 21일 늦은 오후, 서울 합정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가수 안예은을 만났다. 트위터에서 유명한 '프로관극러'로 통할 만큼 다양한 연극·뮤지컬 작품을 보고 있는 안예은. 그녀를 만나 '입덕기'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 진심에서 나오는 미소 영화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 주인공인 피터 파커(스파이더맨)가 작 중에서 멨던 가방 '잔스포츠 빅스튜던트 베이지백팩 스파이더맨 필드탄'을 보유한 가수 안예은. 그녀의 덕질은 장르도 다양했고, 역사도 깊었다. ⓒ 곽우신


안예은은 <오마이뉴스>와 이전에도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관련 기사: 유희열이 살려낸 안예은, 그의 노래가 짠한 이유). 오마이스타 팀에서 음악을 담당하고 있는 손화신 기자는 그녀를 만난 뒤 이렇게 평했다.

"4차원인데, 되게 괜찮은 사람이에요."

카페에 들어서는 그녀를 본 순간부터 동료 기자의 평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만나는 순간부터 그의 고매한 덕력 아우라가 느껴졌다.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 '스파이디'의 가방과 같은 모델을 메고 왔다. 덕지덕지 붙어있는 각종 배지와 굿즈들은 공식 MD로 판매된 것이거나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얻은 것들이었다. 페미니즘, 젠더 이슈 관련 배지들도 상당수 있었고, 연극 <모범생들>의 배지나, 뮤지컬 <헤드윅>의 배지도 눈에 띄었다(음악적으로 가장 완벽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단다). 그리고 당당히 본인을 '아수리언'(영화 <아수라>를 사랑하는 마니아들)으로 인증하는 마스크까지.

"요새 '아수리언' 탈퇴했냐는 말이 있더라고요. 아닌데…. 인증하려고 가져왔습니다. (웃음)"

가수 안예은 그리고 관객 안예은 지난 9월 21일 늦은 오후, 서울 합정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가수 안예은을 만났다. 트위터에서 유명한 '프로관극러'로 통할 만큼 다양한 연극·뮤지컬 작품을 보고 있는 안예은. 그녀를 만나 '입덕기'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 팬심은 굿즈로 인터뷰가 끝난 후, 간단한 사진 촬영을 진행하는데 굉장히 어색해 하던 가수 안예은. 하지만 익숙한 소품을 꺼내 들자 훨씬 자연스러운 표정이 나왔다. ⓒ 곽우신


모아둔 티켓이나 재관람카드, MD 등을 꺼내놓으며 하나하나 설명하자 눈이 반짝거렸다. 안예은이 공연이라는 장르를 최근에야 접한 건 아니었다. 그 옛날 연극 <밑바닥에서>도 본 적이 있고, <노트르담 드 파리>의 내한공연도 챙겨봤다. 조정석 배우가 출연한 <블러드 브라더스>를 보고 매력을 느낀 게 처음이었고, 그 후로도 간간히 연극과 뮤지컬을 관람했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뮤지컬 넘버의 완성도나 배우의 가창력에 집중하리라 생각했는데, 안예은은 배우의 연기나 캐릭터 표현력에 더 중점을 두고 극의 재미를 찾았다. 소소하게 돌다가 본격적으로 장르를 '파기' 시작한 건 지난 뮤지컬 <광염소나타> 때문이었다. 처음 관람 때 유승현 배우에게 치여서 큰 감명을 받았고, 페어를 바꿔서 두 번째로 관람했을 때 문태유 배우의 연기를 보고 2차로 치였다.

"유승현 배우님은 <광염소나타>와 <리틀잭> 느낌이 너무 다르시더라고요. 그런 온도차에서 매력이 있었어요. <광염소나타>예선 '햇살수인' 같으셨는데, <리틀잭>은 또 제가 봤던 극 중 가장 낭만적이고 밝은 극이었거든요. 그런 게 있어서 좋았고…. 문태유 배우님은 목소리가 되게 특이하시잖아요. 아, 이거 어떻게 포장을 해서 설명해야 하죠? 소동물 같은 이미지랄까요? 제가 지금까지 좋아했던 '최애'(가장 좋아하는 인물 혹은 캐릭터)들은 대체로 비슷한 그런 게 있는데…. 아, 이거 어떻게 말로 표현을 못하겠네요. 어쨌든 너무 좋았습니다."

가수 안예은 그리고 관객 안예은 지난 9월 21일 늦은 오후, 서울 합정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가수 안예은을 만났다. 트위터에서 유명한 '프로관극러'로 통할 만큼 다양한 연극·뮤지컬 작품을 보고 있는 안예은. 그녀를 만나 '입덕기'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 유승현 배우의 사인 <광염소나타> 이후 뮤지컬 <리틀잭>에 출연했던 유승현 배우를 보기 위해, <리틀잭>도 관람했다는 안예은. 자신을 알아봐줘서 너무 고마웠다고 한다. ⓒ 곽우신


안예은은 이후 이 배우들의 필모그래피를 따라 적극적으로 관극에 나섰다. <리틀잭>도 봤고,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도 미리 잡아놨고, <팬레터>도 볼 예정이다. 자칫 지루하지 않을까 싶었던 연극 <모범생들>도 봤다가, 처음 관람 이후 표가 증식하는 현상을 체험했다. <택시운전사>도 작품 마지막에 '취객'으로 잠깐 나오는 문태유를 보기 위해서 관람하러 가기도 했다.

"저는 <모범생들>이 진짜 제 취향이었거든요. 사실은 친구랑 들어가기 전에 걱정을 좀 했어요. 뮤지컬은 음악이 있으니까요, 아무래도. '설마 내가 연극을 치여서 회전을 돌까'했는데, 나오자마자 너무 좋아서 세 장 더 잡고…. <모범생들> 총막공 너무 보고 싶었는데 결국 못 봐서 너무 아쉬워요. 돈 벌어서 다 여기에 쓰는 것 같아요…."

'예매대기'는 기본이다. 치열한 티켓팅을 위해서 지인에게 '용병'을 부탁하기도 하고, 새벽이 되면 예매 사이트에 들어가 취소표를 구하는 '산책'도 하고, 정히 필요하면 '양도'도 구한다. 그렇게 이 장르의 여러 작품을 보다가 애정 배우도 늘어나고, 관극하게 되는 공연의 종류와 소재도 더 다양해졌단다. <광염소나타>에 출연했던 김수용의 탈레랑 연기를 보러 <나폴레옹>도 보고, <신과 함께-저승편>의 바닥 조명에도 반하고…. 자신이 관람한 작품 후기들을 이야기하는데 시간이 훅 지나갔다. 이렇게 공연을 관람하는 게 본업에 방해가 되지는 않았을까.

"전혀요. 저는 오히려 이렇게 '덕질'하는 게, 제 작업에 필수적인 과정이에요. 쉬러 가거나 놀러간다는 의미도 있지만, 작품을 보면서 영감을 받는 것도 굉장히 많아요. 어디서 영감을 받냐고 물어보는 분들이 계시는데, 저는 이 장르가 거의 제 주된 영감을 주는 분야에요. '2차 창작'이라고들 많이 하잖아요. 그 이후의 결말이나, 캐릭터의 미래에 대해서도 상상해보며 그에 어울리는 음악을 생각해보기도 하고요. 그리고 대체로 공연시간이 평일 저녁 8시잖아요. 제 작업 시간에 그렇게 방해받지도 않고요. 덕질은 제 음악작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과정입니다!"

언젠가 창작진으로 도전할 그날까지

가수 안예은 그리고 관객 안예은 지난 9월 21일 늦은 오후, 서울 합정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가수 안예은을 만났다. 트위터에서 유명한 '프로관극러'로 통할 만큼 다양한 연극·뮤지컬 작품을 보고 있는 안예은. 그녀를 만나 '입덕기'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 <모범생들> 프로그램 북과 함께 "<모범생들>은 진짜 너무 '취저'(취향저격)였어요. 처음에 그 명품 자랑하는 신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고, 안무도 그렇고, 조명 쓰는 것도 진짜 세련됐고…. 총막 못 본 게 너무 아쉬워요." ⓒ 곽우신


때때로 배우의 '퇴근길'도 챙겨가며 인사도 나누고, '조공'으로 선물도 챙겨주고, 사인도 받는단다. 유승현 배우가 자신을 알아봤을 때는 "어떻게!"하면서 당황까지 했다. 문태유 배우와도 퇴근길에서 인사를 몇 번 했지만, "아직 저를 모르시는 것 같은데…"라며 자신 없어 했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안예은이라는 아티스트를 만나면 너무 좋아서 당황하게 만드는 사람인데, 안예은은 또 누군가의 팬으로서 쑥스러워 하고 있었다.

"저도 퇴근길에서 말을 몇 마디 못해요. '이렇게 얘기해야지'라고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되새김질하고 가기도 하고요. 그래서 오히려 제 팬 분들이 저 보고 어려워하시거나 놀라실 때, 그 마음을 제가 다 아니까, 이해하니까…. 그래서 능숙하게 잘해요. '괜찮아요, 천천히 하세요'하고요."

중학교 때부터 항상 무언가의 '덕질'을 했던 안예은이기 때문에, 같은 덕후로서 덕후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콘서트 세트리스트를 짤 때도, '내가 팬이라면 어떤 걸 듣고 싶을까'라고 상상하고, 검색도 열심히 해서 누군가가 SNS에 '안예은이 어떤 곡 라이브하는 것 듣고 싶다'라고 하면 기억해뒀다가 꼭 올리고 하는 식이다. 어쩌면 그런 마인드가 팬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함께 성장하는 아티스트가 될 수 있었던 바탕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아티스트로서 더 성장하고 나면, 보다 전문적으로 참여하고 싶은 욕심도 있다.

"그럼요. 저는 뮤지컬 제작에 참여하는 데 도전하고 싶은 꿈이 '너무' 있어요. 지금도 혼자 조금씩 구상하고 있는 것도 있고요. 저는 지금도 앨범 노래를 만들 때 그 노래에 맞는 이야기나 장면을 생각하고 거기에 맞춰서 작업하거든요. '너무너무'하고 싶은데 아직은 역량이 안 되니까, 차근차근 준비해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극 음악, 음악적으로 뮤지컬 작품에 참여하고 싶어요. 영상 음악도 하고 싶었는데, <역적> 통해서 그건 이뤘거든요. 그것도 재밌었는데 뮤지컬은 또 얼마나 재미있을까요. 최종 목표에요."

가수 안예은 그리고 관객 안예은 지난 9월 21일 늦은 오후, 서울 합정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가수 안예은을 만났다. 트위터에서 유명한 '프로관극러'로 통할 만큼 다양한 연극·뮤지컬 작품을 보고 있는 안예은. 그녀를 만나 '입덕기'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 행복한 덕질을 하고 싶지만 "영화는 10번을 봐도 10만 원이잖아요. 그런데 이 장르는 티켓값이 너무 비싸니까…. 제가 3분 안에 몇 십만 원을 쓰고 있는 걸 발견하고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일하려고요. (웃음)" ⓒ 곽우신


물론, 대부분 팬이 그렇듯이 장르에 대해 아쉬운 것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안예은은 페미니스트로서 본인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는 편인 가수이고, 그런 관점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의 작품들이 더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어떤 작품에서의 여성 캐릭터 묘사가 아쉬울 때, 여성 주인공의 분량이나 서사가 아쉬울 때를 자주 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아쉬움을 극복할 가능성을 발견하는 작품도 있다. 판이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도 느끼고 있다. 역시나 '탈덕'의 길은 먼 것 같다며 웃었다.

인터뷰 말미, 아직 안예은이라는 가수가 자신의 팬이라는 걸 '모르는 것 같은' 문태유 배우에게 드리는 영상 편지 한 번 찍어보겠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하지만 매우 부끄러워하며 "'횡설수설'하다가 흑역사로 남을 것 같다"고, 대신 글로 남겨달라고 전했다. 그녀의 '어덕행덕(어차피 덕질할 것, 행복하게 덕질하자)'을 응원한다.

"문태유 배우님, 제가 정말 좋아하고요. 매번 너무 좋은 연기 보여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요. 그리고 제가 부끄럽기도 하고, 퇴근길에 피곤하실까봐 오래 붙잡고 있기 죄송해서 말을 좀 두서없이 짧게 끊어서 하고는 했는데, 혹시나 실례가 되지는 않았는지 너무 죄송하고요. 배우님 덕분에 정말 힘도 많이 얻었고요. 항상 응원하고 있습니다. 또 뵈러 갈게요!"

가수 안예은 그리고 관객 안예은 지난 9월 21일 늦은 오후, 서울 합정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가수 안예은을 만났다. 트위터에서 유명한 '프로관극러'로 통할 만큼 다양한 연극·뮤지컬 작품을 보고 있는 안예은. 그녀를 만나 '입덕기'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 문태유 배우의 사인 문태유 배우에게 사인을 받은 <모범생들> 프로그램 북을 소중히 간지하고 있는 안예은. 그녀의 또 다른 꿈 중에 하나는, 자신의 뮤직비디오에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하는 것이다. ⓒ 곽우신



안예은 프로관극러 입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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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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