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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민주주의에서 매우 소중한 가치다. 고대의 노예에겐 일체의 자유가 없었고, 신분제가 남아있던 많은 국가에서 직업 선택의 자유가 없었다. 근대 국가 이전에는 실질적인 경제적 자유가 보장되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위해 싸우고 외친 덕분에 자유는 점점 확대되었다. 사람들이 가진 자유는 점점 넓어지고 그들의 권리도 법으로 보장되고 있다.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어 개인이 자유를 말 그대로 자유롭게 누리는 것이 이상적인 사회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자유를 제한해야 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자유와 도덕적 의무가 충돌하기도 하고, 개인의 자유를 보장한 대가로 공유지가 파괴되기도 한다. 자유를 제한하고, 공익과 자유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어떤 조치를 할 것인지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 일어나는 곳이 현대 사회다.

자유의 비극
 자유의 비극
ⓒ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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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비극>은 숙명여대 경제학과에 재임 중인 유진수 교수가 자유를 위한 투쟁의 역사와, 자유가 비극이 될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 쓴 에세이다. 자유가 어떤 상황에서 왜 제한되어야 할지 생각할 소재를 준다. 그동안 자유를 두고 논의한 철학자들의 설명과 정치적인 테마가 많이 들어가 있지만,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를 빗대어 우화적인 설명을 한 덕분에 글이 어렵지는 않다.

저자는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를 빌려서 자유가 해가 될 수 있는 조건을 설명한다. 로빈슨 크루소는 무인도하면 떠오르는 소설의 주인공으로, 아무도 살지 않는 섬에서 홀로 살게 된 인물이다. 이후 로빈슨은 원주민을 한 명 구해주고 프라이데이라는 이름을 붙여 함께 살게 된다. 저자는 로빈슨과 프라이데이의 이야기를 통해 자유가 어떻게 해가 될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우선, 무인도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로빈슨은 이미 섬에 와서 먼저 지내고 있는 상황이었고, 섬의 지형에 대해 프라이데이보다 더 잘 알고 있으며 채집에도 능숙하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롭게 채집을 한다면 로빈슨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프라이데이는 불공정 경쟁을 강요받는 것이다. 이것이 무인도에서 자유가 비극이 될 수 있는 첫 번째 이유라고 한다.

또한 채집 기술이 뛰어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함께 채집에 도전하면, 필연적으로 불평등이 생겨난다. 한 사람이 채집 기술을 향상시켜 많은 양을 채집하면, 자원이 한정된 무인도에서 다른 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채집을 못하게 된다. 심하면 채집을 하지 못한 사람은 굶어 죽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살아남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죽이려 드는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것이 자유가 비극이 될 수 있는 두 번째 이유라고 한다.

만약 로빈슨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무인도의 자원을 저축하려고 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로빈슨이 저축하기 위해 채집량을 늘리면, 로빈슨이 당장 먹을 것만을 채집한 경우보다 훨씬 더 프라이데이의 채집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무인도에서 저축이 허용될 경우, 로빈슨은 더 나은 내일을 위하거나 불확실한 내일을 대비하기 위해 저축을 하려고 노력할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고구마와 야자열매의 채집량을 늘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제로섬 사회에서 로빈슨이 더 많이 채집하면 프라이데이가 채집할 수 있는 양은 감소하게 된다. 로빈슨이 저축함으로써 프라이데이의 채집량은 감소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심한 경우 프라이데이는 굶어 죽을 수도 있다. 무인도에서 자유가 비극이 될 수 있는 일곱 번째 이유다. -143P

그렇다면, 로빈슨과 프라이데이가 채집을 그만두고 농사를 지으면 상황이 좀 나아질까? 일단 채집 대신 농경을 선택하면 극단의 한정적인 자원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다. 농사를 통해 생산량을 증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모든 비극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기존의 정글이나 숲을 파괴하고, 농경에 적합한 땅을 만들어야 한다. 실제로 개발도상국에서는 농경을 위해 숲이 파괴되는 일이 흔하다. 사람을 위해서 다른 생명이나 환경이이 희생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토지의 구분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토지 소유를 놓고 갈등이 생기게 된다.

저자는 일정한 가상의 공간인 무인도와 로빈슨, 프라이데이의 예를 들어서 사회의 소유와 자유 문제를 설명한다. 섬에서 채집을 할 경우의 로빈슨과 프라이데이의 채집을 두고 비교우위론을 설명하기도 하고, 섬에서 농경을 할 경우의 토지 소유를 두고 토지 소유제도의 역사적 맥락을 논하기도 한다.

자유롭게 먹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 저축을 하고, 생산량을 증대시키는 행위는 그걸로 끝나지 않는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다른 사람이나 생명에게 영향을 준다. 때문에 자유에 대해 일정한 제한을 가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고, 이를 위해서 자유에 대해 공론을 벌일 필요가 발생한다.

독자는 저자의 논의를 따라가면서 자유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된다. 자유와 도덕적 의무,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공익이 충돌하는 다양한 상황을 살펴볼 수 있다. 경제학을 전공한 저자가 쓴 책이지만, 읽기 위해 수학을 잘 하거나 경제학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정의나 평등에 관한 철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자유의 비극 - 자유가 비극이 될 수 있는 열두 가지 이유

유진수 지음, 한길사(2017)


태그:#자유, #로빈슨,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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