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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ak softly and carry a big stick, and you will go far."
"말은 부드럽게 몽둥이는 커다랗게.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1858~1919)는 한 국가의 외교 전략을 상단의 경구로 함축했다. 이 짧은 문구에는 외교의 본질이 담겨있다. 중요한 것은 힘이며 꾸밈말은 부차적이라는 것이다. 즉, 상대방의 입을 보고 두려워할 것도 기뻐할 것도 아니라 몽둥이를 유심히 봐야 한다는 뜻이다. 거꾸로,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외교적 칭찬이나 위협에 일일이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보다 힘의 준비를 착실히 하는 것임을 지침하기도 한다.

이명박 정부는 '비핵개방 3000'을 내세우며 김대중-노무현 10년 정권의 대북화해 기조를 되돌렸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사태를 연이어 맞고도 제대로 된 대응조차 하지 못했다. 대북 제재를 위해 전격적으로 강행한 5.24 조치는 북한에 준 피해보다 우리 기업과 정부가 더 큰 손실을 본 자해적 양상을 보였다. 그나마 실효성 있는 조처는 교전수칙을 간결하게 개정하는 정도에 그쳤다.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무력도발 심화에 따른 대응은 확성기 방송에 불과했다. 도망치듯 준비 없이 치러진 개성공단 철수로 인해 오히려 대한민국의 많은 자산이 그대로 북한에 억류되고 말았다. 최근에는 북한은 우리의 개성공단 동결자산을 무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

나쁜 놈을 나쁘다고만 외치는 속 빈 구호는 의미가 없다. 이 모두가 준비 없는 안보 구호만을 1차원적인 행동으로 옮긴 탓에 벌어진 일이었다. 보수 정권의 집권 9년은 입으로만 강경했지 몽둥이는 여전히 솜방망이였다. 만연한 방산비리로 인해 한국의 자구적 안보 능력 강화 시도는 밑 빠진 독의 나날들이었다. 정확히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9년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일러준 외교의 기본을 정반대로 따른 셈이었다.

문재인 정부, 점잖은 말과 묵직한 몽둥이

우리는 대북 포용정책 10년과 대북 강경정책 9년을 모두 해봤지만, 그 어떤 것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위협과 도발을 일삼는 북한의 행태가 교정되지 못했으며, 김정은 정권은 계속해서 핵 능력을 고도화하고 있다. 북한은 아예 '경제-핵 무력 건설 병진 노선'을 국정기조로 못 박아두기까지 했다.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본질적으로 이 게임은 미-중간의 패권 다툼이라는 상위변수에 동북아 6자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고차방정식이다. 미-중의 협조 없이 우리 정부의 독자적인 노력이 가져올 실효성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분명 우리가 한 가지는 확실하게 취할 수 있다. 바로 묵직한 몽둥이를 드는 것 즉, 자주국방 역량을 제고하는 것이다.

지난 9월 5일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격적으로 탄두중량 제한을 해제하기로 합의했다.
 지난 9월 5일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격적으로 탄두중량 제한을 해제하기로 합의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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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에겐 카드가 몇 개 남지 않았다. 전임자들이 카드를 헤프게 써버린 탓이었다. 개성공단은 문을 닫았고, 사드는 전략적으로 다방면에 활용될 기회를 생략한 채 너무 급하게 배치가 결정되었다. 더는 흥정할 거리가 없다. 더군다나 전술핵 재배치를 미국이 거부하는 상황에서 유일하고도 확실한 수단은 최소한의 억지력을 키우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말을 뱉는 입이 아니라 늘어난 몽둥이의 두께를 봐야 한다.

이전 정부가 막무가내로 나오는 상대에게 덩달아 말뿐인 흥분만 벌였다면, 현 정부는 대북제재 결의안 2375호에 유류공급 규모 제한 조치를 포함시켰고,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에 합의해 탄도 중량을 두 배로 늘릴 수 있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으로부터 첨단무기를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북한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감비아와 접촉면을 잇는 디테일도 놓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대화의 제스처를 점잖게 반복하면서도 매의 무게는 묵직하게 늘렸다.

김정은이 저지르고 트럼프가 으르면 우리는 달랠 수밖에 없다. 핵 인질극을 벌이는 북한, 전 지구 최강의 전력을 보유한 미국과 우리의 사정은 다르다. 벼랑 끝 전술을 취할 수 없는 우리의 외교는 늘 그럴 수밖에 없다. 북한과 미국, 말과 말이 맞불을 놓아 핵심지에 불이 붙기 직전인 모양새다. 그러나 트럼프와 김정은이 말 폭탄을 던져대는 와중에도 문재인은 과묵하게 이삭을 줍고 있다. 이것이 한국이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말은 점잖게 몽둥이는 무겁게, 과묵한 안보를 믿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대학원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입니다.



태그:#대북정책, #문재인, #트럼프, #김정은, #북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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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근로자, 부업 작가 『연애 결핍 시대의 증언』과 『젊은 생각, 오래된 지혜를 만나다』를 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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