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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계속 건설 중이다
▲ 아지도 건설 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아직도 계속 건설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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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그라다 파밀리아 이정표
▲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부르고 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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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중심을 조금 벗어나 요한 산책로(Paseo de San Juan)를 따라서 걸었다. 이름만으로도 전 세계적인 이목을 집중시키는 사그리다 파밀리아(Basilica de la Sagrada Familia, 성가족 대성당)를 찾아가는 길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보이는 건널목에 이르렀다. 건널목에서 대각선으로 보이는 성당은 아직도 건설 중이었다.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며 이제 건널목만 건너면 입장할 수 있는 성당을 올려다보았다. 기다리는 신호가 그다지 길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그 순간이 너무 길다고 느껴진 것은 보고 싶었던 마음이 너무나도 커서였을 것이다. 허나 그 순간 바로 이내 알았다. 그것은 기다림이 길어서가 아니라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 무엇이 가슴을 울려서이었다. 성당을 보는 순간 그냥 눈가에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 말을 잃은 사람처럼 멍하니 그렇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신호등이 바뀌었다. 발길을 옮겨 성당입구에 도착했다. 입장하는 대열에 섰다. 입구에서 안내원이 입장객 안내를 했다. 한꺼번에 많은 관람객이 몰리는 혼잡을 피하기 위해 시간 간격을 두고 순차적으로 입장을 유도했다. 입구에서부터 성경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었다. 성경을 모르는 사람이건 아니 관람객이 어떤 종교를 갖고 있건 그 어떤 것도 문제되지 않았다. 아직도 건설 중인 성당이 전하는 메시지를 자신만의 내면의 언어로 받아들인 준비만 되어 있다면 누구라도 이미 입장할 자격이 충분히 있노라고 말하는 듯했다.

주기도문의 한 구절이...
▲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주기도문의 한 구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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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를 기다리며 제일 먼저 보게 된 것은 '십자가를 등에 짊어지고 고행을 떠나는 예수상'이었다. '고행하는 예수상'을 성당 출입문 전면에 배치한 '가우디는 진정 어떤 신념으로 이 거대한 성당을 건축할 생각을 했을까?' 그의 생각의 근원을 이루는 바탕이 무엇인지 그가 살아있다면 진정 묻고 싶어졌다. 신앙심과 예술적 조예가 깊은 19세기 프랑스 작가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처럼 아마 가우디도 자신의 깊은 신앙심을 예술적 조우로 표현해낸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혼자만의 생각을 하며 성당으로 들어갔다.

성당 한가운데로 들어서자, 성당 안에서 배어나는 거역할 수 없는 웅장함과 숭고함이 있었다. 그 순간 성당 안에 무언가가 훅 마음으로 들어왔다. 그 가운데 분명 무엇인지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마음 안으로 들어와 가슴을 채웠다.

자신에 잠재한 내면의 사념들이 공기의 가벼움에 못지않게 가벼움이 되어 팔랑팔랑 날아올랐다. 미움이나 세속적인 사랑 따위는 그런 비속한 감정은 이제 발아래 저 심연의 밑바닥에 열을 지어서가는 구름만큼이나 멀어져 갔다. 영혼이 자신의 온몸을 에워싸고 있는 하늘의 광활함만큼이나 드넓고 순결한 것 같았다.

고개를 젖혀 올려다 본 끝을 알 수 없는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천장은 모든 삶의 일상을, 생각을 그저 아무것도 아니라고 좋든 나쁘든 그저 지나는 것이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을 위해 중앙에 배치되어 있는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잠시, 그저 잠시 그렇게 눈을 감고 싶었다. 뭔가를 간절히 원하면 이뤄진다는 진리를 가슴에 담고 싶었다. 소망하는 모든 것을 깊이 염원하며 그렇게 눈을 감았다. 가슴의 염원이 이뤄지길 간절히, 간절히 바라면서...

인간의 욕망의 상징인가!!!
▲ 끝을 모르는 천장 인간의 욕망의 상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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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빛을 다 받게 하소서
▲ 이야기를 전하는 스테인 글라스 모든 빛을 다 받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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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들의 영혼을 위하여 보들레르는 <내면일기>의 '벌거벗은 내 마음'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로 기도를 올린다.

매일 아침 모든 힘과 모든 정의의 저장고인 신에게, 그 중계자로서 아버지와 '마이예 트`와 포에게 기도할 것, 내 모든 의무를 준수하는 데 필요한 힘을 나에게 내려주시고, 그리고 어머니에게 내 변한 모습을 보고 기뻐하실 수 있도록 장수를 허락해주시옵길 기도할 것...

후에 릴케는 이 구절을 동일한 신념과 의지의 표현으로 <말테의 수기>에서 기도문으로 인용한다.

성당 안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주기도문의 한 구절,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세계 각국어로 벽에 새겨져 있었다. 한국어와 영어가 새겨진 곳에서 시선이 멎었다. 그곳에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서 전 세계 언어 속의 한국어로 된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보는 게 너무 기뻤다. 찰칵,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모든 언어로 된 주기도문의 한 구절을 보면서, '세상의 모두에게 너 나 할 것 없이 먹고사는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그토록 중요한 일'이었구나 생각하니, 새삼 삶의 엄중함이 느껴졌다. 삶의 매순간은 결국 먹고사는 문제를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자연스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모든 고난을 짊어지고
▲ 고행을 떠나는 예수상 모든 고난을 짊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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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안은 상당히 밝았다. 대부분의 성당처럼 사그라다 파밀리아도 밝고 투명한 스테인 글라스에 많은 성서 이야기를 새겨 놓았다. 이루 다 해석할 수 없는 마음이 안타까웠다. 눈으로, 가슴으로, 마음으로, 생각으로, 느낌으로 하나하나 마음에 담았다. 정확한 이름을 기억해낼 수 없지만 지금은 일본인 건축가가 가우디에 이어 건축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전한다. 그래서인지 조각의 모양을 좀 자세히 들여다보면 얼굴 모양이나 체형에서 미세한 표현의 차이를 인지할 수 있다. 조각된 모양에서 다른 조각가의 숨결을 느끼고 보는 것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만의 특징이 될 것 같았다.

언제가 될는지는 모르겠다. 언젠가 이 성당이 다 완성되었을 때, 다시 한 번 가족 모두 올 수 있는, 오겠다는 기약을 마음으로 다지면서 성당을 나섰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나와 다음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의 주인공이 되어서 길을 걸었다. 벅차오른 가슴이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그런 마음으로 한참을 걸었다. 그러다 로이의 작품 <가재> 조형물 앞에 이르렀다. 그때서야 비로소 감정으로 전환을 맞이할 수 있었다. 환희로서. 로이의 바다를 떠난 '가재'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고 있었다. 아주 높게 비상을 꿈꾸며...

로이는 가재를 통해 날고 싶었다
▲ 하늘로 비상 중인 로이의 '가재' 로이는 가재를 통해 날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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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2017 스페인 여행 이야기 아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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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kespeare 전공. 문학은 세계로 향하는 창이며, 성찰로 자신을 알게 한다. 치유로서 인문학을 조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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