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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반이 지났다. 그가 미국 Pacific Crest Trail(아래 PCT)을 종주한 기록을 책으로 펴낸 후 다시 미국 대륙분수령을 따라 5000km를 걷는 Continental Divide Trail(아래 CDT)로 떠난 지 말이다(관련 기사: "왜 걷느냐"고 묻지 마시라, 답을 구하는 중이므로).

길 위에서의 지난 1년 반은 또 어땠을까? 지난해 CDT 종주에 이어 올 10월 미국 동부의 애팔래치안 트레일(Appalachian Nationl Scenic Trail, 아래 AT) 종주까지 끝내고 트리플 크라우너(Triple Crowner)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양희종씨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공식인증은 중요치 않아... 각자 자신의 길을 걸을 뿐"

애팔랜치안 트레일 종주로 트리플 크라운 하이커가 된 양희종과 그의 아내 이하늘
▲ AT의 종착점인 카티딘 정상 애팔랜치안 트레일 종주로 트리플 크라운 하이커가 된 양희종과 그의 아내 이하늘
ⓒ 양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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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애팔레치안 트레일 완주를 축하드립니다. AT는 언제 출발해서 언제 마친 거죠?
"먼저 관심과 응원에 감사드립니다. AT는 2017년 4월 29일 조지아 스프링거 마운틴에서 출발해 9월 19일에 메인 마운트 카타딘에 올랐으니 146일이 걸렸네요."

- 이번 AT 완주로 소위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습니다. 본인이 이룬 '트리플 크라운'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해주세요.
"미국에는 대표적인 3개의 장거리 트레일이 있습니다. 멕시코-미국 국경에서 출발해 캘리포니아, 오레곤, 워싱턴주를 거쳐 미국-캐나다 국경까지 약 4300km를 걷는 서부의 PTC, 멕시코-미국 국경에서 출발해 뉴멕시코, 콜로라도, 와이오밍, 아이다호, 몬타나 주를 거쳐 미국-캐나다 국경까지 약 5000km로 이어진 중서부의 CDT, 마지막으로 조지아 주 스프링거 마운틴에서 시작해 메인 주 마운틴 카타딘까지 약 3500km를 걷는 동부의 AT입니다.

이 세 가지 트레일을 모두 종주하는 것을 장거리 하이킹 트리플 크라운(Triple Crown of Hiking)이라고 하며, 종주를 끝낸 하이커를 트리플 크라우너라고 합니다."

- 전세계 하이커들의 로망이라고 할 수 있는 트리플 크라운을 인증하는 제도가 있습니까?
"히말라야 고산 등반과 같은 공식적인 인증제도는 없습니다. 다만 미국 장거리 하이킹 협회(ALDHA-WEST, American Long Distance Hiking Association-WEST)에서 트리플 크라운 명예를 선사합니다.

저는 2015년에 PCT를 걸었고, 2016년에 CDT를 걸었으며 2017년 올해 마지막 AT를 걸어 소위 말하는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습니다. 장거리 하이킹은 독특한 문화가 있습니다. 어떤 공식적인 기록이나 확인을 바라는 것보다는 자신의 만족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만약 자신이 이 세 개의 트레일을 걷고 트리플 크라운을 공식 인정받고 싶을 경우 ALDHA-WEST에 등록한 뒤 명예 시스템을 통해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하이커들은 자신만의 목표를 위해 각자 자신의 길을 걷고 있을 뿐, 특별히 타인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습니다."

- '자기 내면의 길'이라는 성격이 강한 거 같은데요, 그렇다면 지금까지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하이커는 얼마나 되나요?
"ALDHA-WEST에 따르면 2017년 1월부로 290명의 트리플 크라우너가 등록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등록된 하이커의 숫자일 뿐 등록되지 않은 수많은 트리플 크라우너가 존재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지난해 CDT를 마지막으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윤은중(트레일 네임: 써모미터)님이 계십니다."

(* 트레일 네임이란 장거리 하이커들이 본명 대신 사용하는 일종의 별명이다. 양희종씨의 트레일 네임은 '스폰테니어스(spontaneous)'다. - 기자 주)

끝없이 트레일이 이어지고 있다.
▲ CDT의 콜로라도 산악 구간 끝없이 트레일이 이어지고 있다.
ⓒ 양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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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대표적인 3대 장거리 트레일을 실제 경험해보신 결과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대개 AT가 가장 쉽고, 다음은 PCT, 마지막으로는 CDT 순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순서대로 길을 걷는 사람이 가장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는 제일 처음 PCT를 알게 돼 일반적인 순서대로 걷지 않았지만 각각의 길은 비슷하면서도 색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AT는 3개의 트레일 중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인구밀도가 높은 미국 동부에 위치해 다른 트레일에 비해 마을과의 접근성도 좋아서 많은 사람이 AT로 장거리 하이킹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거리는 다른 트레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지만 매우 습하고 숲길이 많으며, 지형적인 이유에서인지 스위치백(산을 지그재그로 돌아 올라가는 방식)보다는 산 깊숙이 급한 경사를 따라 정상에 올라가는 길이 많아서 다른 트레일에 비해 체력적으로 힘들었습니다.

또한 비도 많이 오고 무덥고 습해 모기나 벌레가 많습니다. 야생 진드기의 한 종류인 틱(Ticks)이라는 벌레가 있는데, 이는 사람에게 치명적인 병인 '라임병'을 옮긴다고 알려져 특히 주의를 요합니다. 트레일 역사가 오래된 만큼 많은 트레일 엔젤과 트레일 매직도 존재하지만 반면에 하이커를 상대로 하는 상업 행위도 많습니다."

(*트레일 엔젤과 트레일 매직은 미국 장거리 하이킹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트레일 엔젤은 하이커들에게 차량, 음식, 숙소 등을 지원해주는 자원봉사자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무보수, 또는 무료에 가까운 비용으로 장거리 하이커들을 지원한다. 트레일 매직은 말 그대로 트레일에서 예고 없이 일어나는 마술과 같은 일로, 트레일 위에 음식과 식수, 또는 하이킹 장비들을 가져다 두고 필요한 하이커들이 가져가게 하는 것이다. - 기자 주)

CDT의 고산 설원 구간을 지날 때는 겨울 등반 장비가 필요했다.
▲ CDT의 설원 구간 CDT의 고산 설원 구간을 지날 때는 겨울 등반 장비가 필요했다.
ⓒ 양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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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T가 가장 난도가 높은 트레일로 꼽히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아직 완벽히 정비되지 않은 길들이 많고, 무더운 사막 구간과 수많은 강을 건너야 하는 협곡 구간, 그리고 4000m 이상의 높은 산들을 셀 수 없이 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다른 트레일에 비해 상당히 적은 수의 하이커가 도전하고 있으며, 그만큼 완주 성공률도 떨어집니다.

특히 눈이 많이 쌓여있는 초여름 시즌 콜로라도 구간을 걸을 때는 하이킹 지식과 더불어 기본적인 기술 등반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걸었던 2016년에는 대부분의 하이커가 그 구간을 지나가지 못하여 약 2~3주 정도 눈이 녹을 때까지 기다린 경험이 있습니다. 설산 경험이 있었던 저와 몇몇 하이커들만이 아이스 엑스와 아이젠 그리고 스노우 슈즈를 챙겨 그 구간을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마을 접근성 또한 어려워 평균 5, 6일 치의 식량을 짊어지고 다녀야 했습니다."

- 미국 서부를 건너는 PCT는 어떤가요?
"PCT는 위의 두 가지 트레일의 특징이 골고루 섞여 있습니다. 전체적인 느낌은 CDT와 비슷하지만 트레일 엔젤이나 트레일 매직 문화가 잘 발달해 있습니다. 또한 PCT를 관리하는 PCTA(Pacific Crest Trail Association)의 노력으로 트레일 상태도 잘 관리되고 있으며, 미국 서부 특유의 유쾌하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형성돼 있습니다. 만약 세 가지 트레일 중 한 가지를 해야 한다면 PCT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미국 최고봉에서 결혼식... 지금도 신혼여행 중"

CDT의 절반, AT는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종주한 길 위의 친구이자 아내
▲ 길동무이자 아내, 이하늘 CDT의 절반, AT는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종주한 길 위의 친구이자 아내
ⓒ 양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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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대 트레일을 종주하면서 모두 며칠간을 길에서 야영하고, 총 몇 km을 걸었는지 계산해봤나요?
"정확히 계산해 보지는 않았지만 PCT는 175일이 걸렸고, 공식 거리로는 4300km를 걸었습니다. 물론 사이드 트레일이나 휘트니산 등을 올라갔다 온 것까지 합하면 더 걸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CDT는 163일 걸렸고 공식 거리로는 5000km 정도 되지만 이 역시 말이 공식이지 일부 구간은 정비된 트레일이 없이 많은 우회 길들이 있어 정확하진 않습니다. AT는 146일 동안 약 3500km를 걸었습니다. 이 세 개의 트레일을 걸은 날짜를 합하면 484일이 걸렸고, 이 중 365일 정도는 길 위에서 야영했으며, 모두 1만2000km 이상은 걸었을 것 같습니다."

- 이번 AT 종주는 배우자와 함께 걸었다고 들었습니다. 함께 종주하신 이하늘님도 소개해주세요.
"평생 친구이자 아내인 이하늘양은 원래 의남매라고 불릴 만한 친한 동생이었습니다. 2010년에 오지탐사대란 프로그램에서 처음 만났고, 관심사가 비슷해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4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2015년 PCT를 떠날 때도 가장 응원해주던 친구 중 한 명이었고요.

PCT를 끝내고 잠시 한국에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연인으로 발전하게 됐습니다. 이후 제가 CDT를 걷는 도중 하늘양이 여름휴가 때 미국에 와서 일주일 정도 함께 여행했는데, 그때 평생 친구이자 아내가 돼달라고 프러포즈를 한 뒤 미국 본토 최고봉인 마운트 휘트니에 올라 둘만의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하늘양은 다시 한국에 돌아가 회사 생활과 주변 정리를 한 후 미국으로 와서 저와 CDT의  남은 구간(와이오밍, 아이다호, 몬태나)을 함께 걸었습니다. 그리고 양가 부모님의 허락으로 혼인 신고를 한 뒤 계속해서 우리만의 신혼여행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현재 두 바퀴와 두 다리로 세계여행을 하는 부부의 의미로 '두두부부'라는 별칭을 지어 여행 중입니다. 지금까지 저와 CDT의 절반을 걸었고, AT는 전체를 함께 걸었습니다."

2015년 5명의 한국인 하이커들이 PCT를 종주했고, 그 중에 양희종과 김희남도 있었다. 2015년 양희종과 함께 PCT를 종주한 김희남은 자료 분석과 사전 준비에 능해 큰 힘이 되었다.
▲ PCT의 종착점 2015년 5명의 한국인 하이커들이 PCT를 종주했고, 그 중에 양희종과 김희남도 있었다. 2015년 양희종과 함께 PCT를 종주한 김희남은 자료 분석과 사전 준비에 능해 큰 힘이 되었다.
ⓒ 양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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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장거리 트레일은 2015년의 PCT였다고 했는데요, 당시 관련된 정보가 거의 없었을 텐데 어떤 계기 때문에 '미지의 세계'로 떠난 건가요?
"2015년 초에 극도의 스트레스로 회사를 그만두고 잠시 쉬는 중이었습니다. 아무런 계획 없이 그냥 쉬고 싶었습니다. 그때 TV를 무심코 보다 신작 영화를 소개해주는 프로그램에서 영화 <와일드>를 접했습니다. 영화 줄거리나 등장인물 이런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그저 4300km의 긴 길이란 것만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때 바로 결정하고 함께 갈 사람을 찾았습니다. 마침 오지탐사대 활동으로 알고 지내던 김희남군과 의기투합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국내에 아무런 정보가 없어 주로 외국 사이트에서 정보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미리 준비하는 희남군과는 다르게 워낙 즉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 '가면 다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큰 준비 없이 떠났던 것 같습니다. 이 때문에 희남군와 약간의 의견 충돌이 있었지만 각자의 길이란 것을 인정하고 서로를 배려하기로 했습니다. 그때가 2015년 4월이었습니다."

- 2015년 PCT를 마치고 책을 펴냈습니다. 한국에서 출간된 최초의 PCT 관련 서적인데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요?
"사실 처음부터 공식적인 출판이 목적은 아니었기에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냥 그때 느꼈던 순간의 감정, 서른이 지나가며 느끼는 고민 등에 대해 생각한 것들을 그날의 일기처럼 기록했습니다. 게다가 사진도 별로 없는데 400쪽이 넘어 조금 지루하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위해 보여주기보다는 175일 동안 그 길을 걸으며 생각했던 것들을 솔직하게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의 저는 정말 불안정한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남기는 나의 마지막 흔적이라는 생각도 했었고요. 나중에 출간되고 난 후 몇몇 후기들을 읽었는데, 어떤 분들은 PCT 내용이 생각보다 너무 없어서 실망했다는 분도 계셨고, 어떤 분들은 비슷한 시기의 고민과 생각들에 대해 공감이 가서 좋았다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후기는 '이 책은 여타 다른 여행 책과 다르게 독자를 떠나라고 밀쳐내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사실 하이커의 일상이란 늘 허기지고 남루할 뿐 그리 멋있는 것은 아니다.
▲ CDT 종주 중인 양희종 사실 하이커의 일상이란 늘 허기지고 남루할 뿐 그리 멋있는 것은 아니다.
ⓒ 양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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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장거리 하이커가 종주를 마치고 현실로 복귀하면 상당 기간 불안정한 심리상태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나요?
"처음 PCT를 걸을 때 저는 '신선이 되고 싶다'라고 생각했어요. 이 긴 길을 걷다 보면 포레스트 검프나 원효대사처럼 어떤 깨달음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결국 그 길 끝에 서게 됐을 때 저는 신선이 되지 못했어요. 하지만 전보다 조금은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조금은 더 많은 여유를 가지게 된 것 같아요. 그게 이 길 위에서 얻은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언젠가는 현실로 복귀해야 할 텐데 그에 따른 수많은 고민은 여전히 많아요. 다행스럽게 지금은 고민의 진폭이 심각한 내상을 입힐 정도는 아니에요. 선순환이든 악순환이든 순환하는 에너지는 존재한다고 생각하는데, 중요한 것은 고리의 방향만 바꿔주면 악순환으로 소모될 많은 에너지를 선순환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해요. 그래서 불안정한 상태를 일시에 탈피하기 위해 에너지를 소모하기보다 여유를 가지고 그 방향을 바꾸려고 노력해요.

많은 하이커가 현실에 돌아가면 그때 얻었던 긍정적 에너지를 잘 활용하지 못한 채 다시 무너지는 상황도 있는 것 같아요. 누군가는 현실 적응에 실패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그 에너지를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몇 년간 긴 길을 걸었던 한국인 친구들도 이러한 어려움을 두고 고민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던 것 같고요. 저 역시 고민을 완전히 끝내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에 돌아가게 되면 이런 이야기를 많이 나눠보고 싶습니다."

그의 두번째 장거리 하이킹이었던 2016년 CDT 종주 중 사막 구간을 지나고 있다.
▲ CDT 사막구간 그의 두번째 장거리 하이킹이었던 2016년 CDT 종주 중 사막 구간을 지나고 있다.
ⓒ 양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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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행보가 궁금합니다. 혹시 다음 여행지는 어디인가요?
"2016년 CDT 이후 자전거로 중미 과테말라까지 내려갔다가 멕시코 유카탄 반도를 돈 후 칸쿤에 자전거를 맡겨두고 AT로 온 상태였습니다. 원래 계획대로 하면 다시 칸쿤으로 돌아가 자전거를 타고 쿠바와 중미, 그리고 남미를 거쳐 마지막 파타고니아까지 여행하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변수가 생겨 11월 중순에 잠시 한국에 들어갈 것 같습니다. AT를 걸으며 2018 평창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하이커들에게 알리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저희 부부가 평창 올림픽 성화봉송을 하는 영광을 얻게 됐습니다. 그래서 12월 초에 성화봉송을 하고 다시 원래대로 두 바퀴와 두 다리로 세계여행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아직 정확한 계획은 세워지지 않았지만 내년 1월부터 3월까지 국내 혹은 아시아권 여행을 하고 4월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PCT를 걸으려 합니다. 저에겐 두 번째 PCT이고 아내인 하늘양에게는 첫 번째 PCT가 됩니다. 그리고 남미로 향할지 아니면 또 다른 곳으로 향할지 그때 가봐야 정해질 것 같습니다. 물론 모든 것들은 첫째로 우리가 행복할 것, 둘째로 남에게 해가 안 될 것,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것을 원칙으로 정해질 것입니다."

"길은 한 번에 답을 주지 않는다"

장거리 하이킹에서는 짐을 최대한 가볍게 꾸리는 게 중요하다.
▲ 단촐한 살림살이 장거리 하이킹에서는 짐을 최대한 가볍게 꾸리는 게 중요하다.
ⓒ 양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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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길 위에서 야영을 한 게 365일이 넘는다. 야영을 좋아하는 사람이 1년 52주를 빠지지 않는다해도 7년이 넘는 시간이다.
▲ 트레일 야영지 이렇게 길 위에서 야영을 한 게 365일이 넘는다. 야영을 좋아하는 사람이 1년 52주를 빠지지 않는다해도 7년이 넘는 시간이다.
ⓒ 양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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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만 2000km를 걸은 양희종씨의 배낭 안이 궁금합니다. 길 위에서 먹고 자는 문제를 모두 해결해야 하므로 온갖 살림살이가 다 들어 있을 거 같은데요.
"많은 사람이 장거리 하이킹을 할 때 엄청 많은 짐을 짊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실 텐데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들어있진 않아요. 오랫동안 트레일을 걸어야 하므로 최소한의 짐을 꾸려야 해요.

보통 BPL(BackPackingLite) 혹은 ULH(UltraLightHiking)이라는 방식의 배낭을 꾸리려고 노력합니다. 그래도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의식주는 모두 갖추고 있답니다. 저는 50L 크기의 배낭을 짊어지고 다닙니다. 일단 소중한 보금자리가 돼주는, 저희 부부의 신혼집인 2인용 텐트가 있습니다. 그리고 따뜻한 이부자리 침낭과 폼매트리스가 있고, 요리를 할 수 있는 스토브와 쿠킹팟 세트, 그리고 평균 3, 4일 치의 식량이 있어요.

옷가지는 딱 한 벌씩만 가지고 다녀요. 양말도 한 켤레만 신고 다니다 해지면 버리고 새 양말을 삽니다. 신발은 가벼운 트레일 러닝화를 신는데 보통 1000km마다 한 번씩 바꿨던 것 같아요. 그 외에는 물을 깨끗이 해주는 정수 필터와 트레킹폴, 헤드 랜턴, 구급약 등과 카메라, 핸드폰, MP3 등의 전자장비와 배터리 등을 가지고 다닙니다.

조금 특별한 것은 AT를 걸을 때 평창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알리기 위해 수호랑 반다비 인형과 스티커 패치 등을 들고 다니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눠줬어요. 아, 그리고 마을을 들르게 되면 캔 콜라를 챙겨와서 트레일 위에서 마시는 것도 좋아합니다. 많이 가지고 다닐 때는 350mL 캔 8개까지 챙겨봤고 보통 서너 개씩 챙겨 다녔습니다. 가끔 캔 맥주도 챙기기도 하는데 역시 트레일 위에서 마시는 콜라가 제일 맛있습니다."

양희종, 이하늘 부부의 배낭. 50리터 남짓한 배낭에는 길 위에서의 살림살이가 모두 들어있다.
▲ 그들 살림살이의 전부 양희종, 이하늘 부부의 배낭. 50리터 남짓한 배낭에는 길 위에서의 살림살이가 모두 들어있다.
ⓒ 양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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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텐트에 자신이 야영한 지점을 빼곡하게 새겼다.
▲ 텐트는 가장 중요한 장비 중 하나 그는 텐트에 자신이 야영한 지점을 빼곡하게 새겼다.
ⓒ 양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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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라는 의외입니다만 매우 단출한 살림살이인데요, 배낭 속 물건 중 가장 소중한 물건 세 가지만 소개해주세요.
"첫 번째는 배낭, 두 번째는 텐트 그리고 세 번째는 콜라입니다. 배낭은 PCT에서 썼던 배낭이 뜯어져서 새로운 배낭을 알아보던 중 친한 동생이 자신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썼던 배낭이라며 저에게 선물해줬어요. 그 배낭을 받아 CDT와 AT에서 정말 잘 썼습니다. 이 배낭엔 조금 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배낭에 달려있는 패치들인데요, 저는 여행한 곳을 추억하기 위해 제가 걸었던 트레일이나 국립공원, 지역 등의 패치를 하나씩 하나씩 모아 배낭에 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정말 애착이 가는 물건입니다. 물론 AT를 끝마치고 AT 패치도 배낭에 달았답니다.

텐트는 PCT를 끝내고 남쪽으로 향하는 자전거 여행을 시작할 때 저를 응원해주신다며 제로그램에서 선물로 받았던 텐트입니다. 저는 제 텐트의 이름을 지어서 사용하는데 이번 텐트 이름은 '희종기지 4호'였어요. 참고로 희종기지 1호는 2010년 캐나다 횡단여행과 알래스카-유콘 자전거 여행에 썼던 텐트이고, 2호는 국내 여행에서 썼던 텐트입니다. 3호는 2015년 PCT 때 함께 했던 텐트, 5호는 2016년 CDT 때 함께 했던 텐트예요. 이 역시 그 후로 남미로 향하는 자전거 여행에서 계속해서 잘 쓰다 이번 AT에서도 저희 부부의 따뜻한 보금자리가 돼주었습니다. 저는 트레일을 걸을 때마다 텐트에 걸었던 길을 지도로 그리곤 하는데요, 이번 AT를 걸으면서도 텐트 입구에 제가 걸었던 AT 지도를 그렸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의외라고 하셨는데, 콜라입니다. 저는 조금 특이하게 콜라를 행동식으로 많이 사용한 편이었어요. 하이커마다 자신만이 가진 어떤 필살기(?) 같은 것이 있는데 저는 그게 콜라였던 거 같아요. 아무리 힘들고 지치더라도 콜라 한 모금을 생각하며 힘을 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PCT를 걸을 때부터 '콜라후원'이라는 것을 만들어 저를 응원해주신 분들에게 1000원~2000원씩 후원을 받았어요. 사실 돈의 문제라기보단 사람들에게 잊히고 싶지 않아서 만들었던 일종의 '재미'였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디어가 많은 분에게 즐거움을 주었는지 정말 많은 호응을 받았어요. 그래서 한번은 트레일 위에서 후원해주신 분들 모두에게 연락을 드려 직접 그린 그림으로 감사의 엽서 한 장씩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왜 장거리 하이킹을 하는 것일까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어쩌면 실존주의에 닿아 있을지도 모른다.
▲ 하이킹은 나에게 무엇일까? 왜 장거리 하이킹을 하는 것일까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어쩌면 실존주의에 닿아 있을지도 모른다.
ⓒ 양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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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바퀴와 두 다리로 세계여행을 하는 부부의 의미를 가진 ‘두두부부’
▲ 계속 길을 이어가고 있는 두두부부 두 바퀴와 두 다리로 세계여행을 하는 부부의 의미를 가진 ‘두두부부’
ⓒ 양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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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거리 하이킹은 나에게 '무엇'이라고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지금 이 순간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

-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이 장거리 하이킹에 관심을 가지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미 내년 PCT를 준비하는 분들도 많고요. 먼저 경험한 분으로서 조언을 부탁합니다.
"제일 먼저 안전에 대해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장거리 하이킹이 보이는 부분에서는 멋있고 긍정적인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 부정적인 부분이나 위험요소들도 존재합니다. 특히 올해에는 트레일에서 안전사고가 자주 일어났습니다. 결국 본인이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이니만큼 각자 자신의 안전에 대해서도 충분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한 가지 추가하고 싶은 문구가 있습니다. '틀린 여행이 아니라 다른 여행이다. 하지만 각자 선호하는 여행은 분명히 존재한다.'

AT 종주로 트리플 크라운을 이룬 양희종씨는 오는 11월 잠시 한국에 들러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화 봉송 주자로 나설 예정이다. 또 1년 반이 지난 후에는 지구 어딘가에 있을 뿐 어떤 길 위에 있을지 그 자신도 모를 일이다.


태그:#PCT, #CDT, #AT, #애팔래치안, #하이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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