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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게 해 줄게, 나만 믿고 따라와."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결혼 전에 한 번쯤 들어봄 직한, 하지만 결혼하고 생각하면 헛웃음만 나오게 하는 말이다. 그때는 순진해서 진심인 줄 믿었던 그 말을 놓고 남자들은 결혼 후 이런 변명을 하며 발을 뺀다.

"누구는 그렇게 안 해주고 싶어? 하지만 현실이 따라주지 않는 것을 어떻게 해?"

그렇게 서로 속이고 속으며 이룬 가정은 쉼과 행복이 있는, 세상에서 부모가 주체가 되어 창조한 가장 의미 있는 공간이다. 또 그 속에서 아이는 아이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서로 부대끼며 함께 성장, 내지는 성숙해 간다. 그런데 한국의 가정은 정말 그 의미에 맞는 역할을 다 하고 있는 것일까?

서울대생이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의 입사를 포기하고 9급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바로 저녁이 있는 삶을 꿈꾸기 때문이란다. 그런 삶을 꿈꾸는 게 정상이고 일상인데, 우리는 그것을 오히려 특별하다 못해 유별나다고 생각한다.

'성공보다 저녁 있는 보통 삶이 낫다고? 진짜?'

독일에서 '서둘러!'란 표현이 필요한 때는?

"여보! 서둘러! 문 닫을 시간이야!"

독일에서 '서둘러'라는 표현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독일에 살면서 서둘러야 하는 일이 딱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장보기이다!

독일에서의 장보기는 거의 전투이다. 평일은 오후 8시, 토요일은 오후 6시면 모든 슈퍼가 문을 닫는다. 그 시간 이후로는 어디서든 물건을 살 수 없다. 일요일과 공휴일은 아예 문을 열지 않는다. 그래서 장보기에 바짝 신경을 쓰지 않으면 긴긴 주말과 휴일 동안 굶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분주함으로 비상식량을 준비하고 나면 2(토·일요일 이틀)+0.5(금요일 오후 반나절) 동안의 주말이 찾아든다. 집안에는 쌓아둔 양식이 있고, 시간이 있고, 함께 할 가족이 있으니 이 정도면 가족과 함께 하는 쉼이 있는 주말이 아니겠는가?

독일인들은 일보다 쉼을 더 원한다?

독일인들은 일보다 쉼이 있는 삶을 지향한다. 그런 삶을 지금도 누리며 영원히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바로 돈 버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지 않도록 사회적 시스템과 제도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GDP 규모는 매년 세계 5위권 안에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OECD 국가 중 가장 일을 적게 하는 나라로도 유명하다. OECD에서 발표한 '2016년 고용동향'에 따르면 한국 근로자가 연간 2113시간 일하는 것에 비해 독일은 1371시간을 일한다. 한국 근로자가 독일 근로자보다 4개월을 더 일하는 셈이다.

실제 독일의 모든 상점과 가게의 영업시간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평일 8시, 토요일은 오후 6시까지로 제한되어 있다. 일요일에는 아예 어느 가게도 문을 열 수 없다. 주말과 공휴일 일체의 영업을 법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근로자들의 인권을 위함이란다. 회사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쉼을 국가가 챙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주말에 일하지 않는 곳, 그래서 온 독일인이 쉼에 들어갈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독일이다. 자녀들은 어떠랴?

일은 적게, 그러나 노동생산성은 더 높다!

초등학교 졸업반인 4학년 때, 대학입학계열 학생과 취업계열 학생이 거의 7대 3의 비율로 결정되는 데다, 대학의 수준 차이가 없다 보니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들이 미친 듯이 공부할 이유가 애당초 사라진다. 방과 후 수업, 자율학습, 과외, 학원을 독일 학생들은 아예 모른다. 이런 것에 시달릴 필요도, 이유도 없다. 엄마들 역시도 아이들의 사교육비 때문에 취업 전선에 내몰릴 이유 또한 없다.

대학교 등록금이 없다 보니 학교에 다니면서 수업료 때문에 공부와 알바 사이에서 힘겨워하거나, 학자금대출 상환에 대한 부담을 안고 공부할 이유가 전혀 없다.

월세가 안정되어 있으니 본인이나 부모가 나서 굳이 집 장만을 위해 애쓸 필요가 없고, 의료비가 의료보험료 외에는 거의 무상이니 병원비 걱정을 따로 할 필요도 없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 악착같이 돈 벌 이유가 있겠는가? 능력에 맞게 벌고 즐기는 것, 이것이 그들에게 저녁 있는 삶을 가능하게 한다. 또 그런 일상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보통의 삶인 것이다.

그렇게 적게 일함에도 불구하고 GDP규모는 항상 세계 5위 권 안에 드는 이 결과를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또 노동생산성은 어떠한가? 시간당 노동의 가치를 달러로 환산하면 한국은 15.67$, 독일은 32.77$이다. 이는 한국 근로자의 노동 가치가 독일의 48%에 지나지 않음을 의미한다. 바꿔 말하면 독일인이 적게 일해도 한국인보다 더 많이 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죽어라 열심히 일한 나라보다 적게 일하고도 많이 버는 이 나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반대로 죽어라 일하지만 돈도 적게 벌고, 쉼도 없는 이 일상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쉴 때는 사회가 통째로, 제대로 함께 쉬는 이런 분위기가 적게 일해도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게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더퍼스트미디어에 연재된 글의 일부를 기초로 하였습니다.



태그:#독일생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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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키일대학(Christian-Albrechts-Universitat zu Kiel)에서 경제학 디플롬 학위(Diplom,석사) 취득 후 시골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2021년, 독일 교육과 생활의 경험을 담은, 독일 부모는 조급함이 없다(이비락,2021)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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