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편집자말]
추석 명절이 되면, 조용하던 시골집은 아이들의 뛰노는 소리에 활기를 되찾곤 했다. 엄마에게 지청구를 들었는지 왁자하게 울어대는 옆집 아이의 울음소리에 슬며시 웃음이 나기도 했다.

이제는 아이들이 뛰놀만한 집 앞 공터도 얼마 남지 않았거니와, 시끌벅적한 웃음소리로 동네를 가득 메우는 아이들의 모습조차 찾기가 쉽지 않다. 학교에 다녀와서도 학원공부에 치이는 우리 아이들의 현실 때문이기도 하지만, 예전에 비해서 아이들의 수가 확연히 줄고 있음이 느껴진다. 일부 시골 뿐 아니라 청년 인구가 많은 대도시의 경우에도 어린 아이를 안고 나온 젊은 부모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아기가 태어나지 않는 미래의 지구

 영화 <칠드런 오브 맨>

영화 <칠드런 오브 맨> ⓒ 영화사 마농(주)


서기 2027년, 인류는 종말의 시간을 앞두고 있다. 세계는 무장폭동과 테러의 폭력으로 가득하고, 대부분의 국가는 무정부상태에 놓여 있다. 유일하게 군대가 통제하는 영국은 최소한의 안전을 찾아 들어온 불법이민자들로 넘쳐난다. 그리고 인류는 임신능력을 상실했다. 가장 최근에 태어난 소년 디에고가 18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그들은 이제 마지막 희망을 잃었다.

영화 <그래비티>의 감독 알폰소 쿠아론의 2006년 작 < 칠드런 오브 맨(Children of Men) >은 2016년에 국내에서 뒤늦게 개봉되었다. 2017년 현재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2027년 미래의 모습은 그다지 낯설지 않다. 폭력으로 얼룩진 영화 속 런던의 모습에서 테러와 무차별 대량학살의 고통으로 신음하는 유럽과 미국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민자와 이방인을 색출하고 탄압하는 장면의 곳곳에서는 미래에 대한 암울한 상상임에도 불구하고 익숙한 기시감마저 든다. 무엇보다, 새로운 생명에 대한 희망이 사라진 인류의 모습에서 극단적인 저출산률로 인해 시름이 깊은 우리의 고민이 손에 잡힐 듯 한 현실감으로 다가왔다.  

파국만을 막아보려는 신념으로 사회운동에 뛰어들었지만, 이제는 신념도 희망도 잃은 채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테오(클라이브 오언 분)는 어느 날 무장저항단체인 '피쉬단'에 납치된다. 그의 옛 연인이자 동지였고 여전히 이민자들의 인권을 위해 싸우고 있는 피쉬단의 리더 줄리언(줄리언 무어 분)은 테오에게 한 이민자 소녀 '키'를 국외로 탈출시켜달라고 부탁한다. 큰돈을 주겠다는 말에 마지못해 제안을 받아들인 테오는 그 흑인소녀 '키'가 임신중임을 알게 된다. 정부군과 반란군이 맞부딪치는 참혹한 포화 속에서도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기적 앞에서 테오는 이제 인류에게 마지막 기회이자 희망을 지켜내야 한다는 막중한 사명감을 느낀다.

아기를 물어다 주는 황새가 '고깃덩어리'가 된 세상

 영화 <칠드런 오브 맨>

영화 <칠드런 오브 맨> ⓒ 영화사 마농(주)


영화에서는 위의 핵심적인 배역 이외에 또 하나의 중요한 인물이 등장한다. 정부군과 '피쉬단' 양 쪽으로부터 쫓기던 테오는 키를 데리고 젊은 시절 사회운동을 함께 했던 재스퍼(마이클 케인 분)를 찾아간다. 그는 이제 세상에 대한 모든 기대를 접은 채 '평온한 죽음에 이르는 약'을 언제 먹을 지만을 생각하며 살고 있다. 재스퍼는 앞서 테오에게 인류의 불임에 대해 얘기하면서 이런 농담을 한다.

"세상이 불임이 되었거든. 그래서 아무도 아기를 낳지 못했어.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그 이유를 찾아나가기 시작했어. 유전자 탓이다, 방사능 탓이다 말들이 많았지. 한 리포터가 고기를 열심히 먹고 있는 남자한테 물어보았어. '모두가 왜 불임이 되었을까요?' 그러자 그가 대답했지. '나도 잘 모르겠어. 아무튼 이 황새 고기는 정말 맛있군.'"

황새는 서양의 민담에서 아기를 물어다 주는 새이다. 우리 영화였다면 아마 "글쎄, 삼신할머니가 돌아가셨나보지" 정도로 얘기했을 듯 싶다. 농담이 담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서구인들은 황새에게 자연의 섭리를 전하는 영험한 힘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인류는 더 이상 그러한 '비과학적 신비'를 믿지 않는다. 아기는 어떻게 태어나는지, 사람의 몸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그리고 어떤 과정을 거쳐 죽어 가는지 '과학적'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이제 스스로 신의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 자연은 순응이 아닌 정복의 대상이다. 아기를 물어다 준다고 믿었던 황새 역시 그저 잡아먹을 수 있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 영화 속에서 황새고기를 맛있게 먹던 인류는 더 이상 생명을 탄생시킬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영화 <칠드런 오브 멘>은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상상하는 기존의 영화들과는 달리 현재의 인류에게도 큰 위협이 되고 있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테러의 공포와 위협,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대립과 분쟁, 극우주의자들의 준동과 폭압적인 반이민정책 등 우리가 현실에서 겪고 있는 문제들이 계속해서 악화될 경우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그 원인과 성격은 다르지만 출산과 관련한 문제 역시 이미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저출산 극복을 위한 긴급제언>에 따르면 2100년에 한민족 인구가 절반으로 줄고, 2500년에는 인구가 33만 명으로 줄어 장기적으로는 소멸할 우려가 있다고 경고한다. 2750년이면 대한민국에 사람이 살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른바 선진국인 이웃나라 일본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 때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밀집해 있었던 신도시들은 이미 유령도시로 변해가고 있다. 세계에서 최고로 인구 고령화가 진행된 일본은 불황 20년 동안 청년인구의 3분의 1이 줄었다. 만 20세 진입 인구가 1990년 270만명에서 2013년 122만명으로 감소했다. 그리고 한국은 일본의 경우보다 더 심각한 현상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영화 <칠드런 오브 맨>

영화 <칠드런 오브 맨> ⓒ 영화사 마농(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청년들이 결혼은커녕 연애마저 포기하는 N포세대로 전락하고 있다.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일하는 청년 3명 중 1명이 비정규직이고, 청년 10명 중 1명은 실업상태다. 한국의 니트족은 현재 86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급속도로 줄어드는 반면 인간의 평균수명은 백세시대를 넘어 120세 시대를 바라보고 있다. 인류는 이미 이상적인 유전자를 골라 '맞춤형'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유전공학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아이를 물어다주던 황새의 역할을 이미 인간 스스로 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태어날 아이의 키나 몸무게 등 외모와 관련된 것뿐만 아니라 질병의 가능성마저 예측하고 차단할 수 있다. 여러개의 배아에서 추출한 DNA를 검사하여 질환을 갖고 있지 않은 배아를 골라내서 착상시키면 된다.

인류는 인간의 모든 유전 정보가 담긴 게놈(Genome)지도를 손에 넣으면서 우리 몸 속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다. 태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얼마나 더 오래 살 수 있을지 까지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인간의 노화와 수명을 좌우하는 염색체 속 비밀까지도 밝혀냈다. 늙지도 죽지도 않는 '불로초'를 찾아내려던 진시황의 꿈이 현실이 되고, '메멘토 모리' 즉 언젠가는 반드시 죽을 것이니 겸손하라는 라틴어의 격언 역시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이 의미를 잃게 된다면

 영화 <칠드런 오브 맨>

영화 <칠드런 오브 맨> ⓒ 영화사 마농(주)


영화의 초반부에서 도움을 청하기 위해 찾아간 테오의 사촌은 막대한 돈을 들여 세계적인 미술품을 사 들이고 있다. 다비드 상을 힘들게 구했다며 자랑하던 그는 끝내 피에타 상을 구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한다. 피에타는 '신이여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기도문으로 쓰이는 말로, 성모마리아가 죽은 예수의 시신을 무릎에 안은 모습을 표현한 미켈란젤로의 3대 조각 작품 중 하나이다. 막대한 돈과 권력으로도 구하지 못한 피에타의 모습을 불법이민자인 흑인소녀가 구현하고 있다.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던 모든 인간은  아기를 안고 있는 소녀의 모습에, 생명의 존엄과 경이로움 앞에 숨을 죽인다.

과학기술을 통해 신의 영역에 도전하고 있는 인류는 지금, 그러한 교만함이 어떤 미래를 가져오게 될 것인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아이들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이미 존재하는 사람들만이 늙지도 죽지도 않은 채 정부가 보급한 '조용히 죽음에 이르는 약'을 언제 먹을 지를 고민하는, 다소 황당무계한 상상이 가능할 정도로 지금 사피엔스의 폭주에는 제동장치가 보이질 않는다. 인류의 미래에 대한 회의론적 가능성마저 미연에 차단할 방법 역시 우리의 지혜를 모으고 이를 현실에서 구현하는 정치, 그리고 국제사회와의 협의와 협력에 있다.

칠드런 오브 맨 저출산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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