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 축구대표팀 감독이 지난 14일 오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이란전과 우즈베키스탄전에 나설 태극전사 26명의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신태용 축구대표팀 감독이 지난 8월 14일 오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이란전과 우즈베키스탄전에 나설 태극전사 26명의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월드컵 본선진출 확정 이후 첫 A매치 평가전을 앞두고 있다. 10월 7일 러시아, 10일 모로코와 2연전은 한국축구가 오랜만에 아시아권을 벗어나 유럽-아프리카 강호들을 원정에서 만나는 기회이자 신태용호의 '러시아월드컵 본선 프로젝트'를 위한 본격적인 출발점이기도 하다.

신태용 감독은 지난 최종예선에서 한국축구에 9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이라는 값진 선물을 안기고도 여론의 싸늘한 반응으로 한동안 곤욕을 치렀다. 최종예선을 불과 2경기 남겨둔 가운데 지휘봉을 물려받아 선수단을 소집한 지 불과 열흘 만에 팀을 만들어내야 했던 열악한 상황에서 이뤄낸 성과였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2연전 내내 거듭된 실망스러운 경기력과 무득점 무승부에 그친 결과에도 불구하고 경쟁팀들의 물고 물리는 혼전 덕분에 '어부지리'로 올라갔다는 혹독한 평가 때문이었다. 때마침 불거진 축구협회의 각종 행정 비리 논란과 '히딩크 복귀설'까지 겹치며 대표팀은 내내 논란의 도마에 올라야 했다.

현재 신태용호를 둘러싼 상황은 여전히 좋은 편이 아니다. 대표팀은 지난 최종예선 당시 K리그 구단들의 조기소집 협조에 대한 보상, 시즌 후반기 치열한 순위 싸움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국내파 선수들을 제외하고 23명 전원을 해외파 선수로만 채우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최상의 선수단을 구성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최전방 공격수와 좌우 풀백 등 일부 포지션에는 선수가 부족한 상황까지 발생했다. 소속팀에서 극도로 출전 기회도 얻지 못하고 있는 몇몇 선수들은 이번 대표팀 발탁을 놓고 자격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신태용 감독을 바라보는 여론도 아직은 냉랭하다. 축구협회가 신태용 감독과 함께 월드컵 본선까지 함께 하겠다는 방침을 여러 차례 확인했음에도 의구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팬들이 많다. 러시아와의 평가전에서는 이번 A매치를 성사시키는 데 기여한 히딩크 감독도 현장에서 관전할 예정으로 알려져 신 감독으로서는 이래저래 다소 부담스럽게 됐다. 당초 의도와 달리 이번 유럽 원정 2연전이 사실상 신감독에 대한 일종의 '중간평가'처럼 여겨지는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신 감독으로서는 난처한 상황이다. 최상의 전력도 아닌 상황에서 부담스러운 유럽과 아프리카팀을 상대로 잘해야 본전이고 만일 결과나 내용이 좋지 못하면 신 감독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만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다. 평가전 결과에 따라 히딩크 논란이 다시 거세질 가능성도 높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다. 역대 대표팀 감독들도 저마다 위기는 있었다. 신태용 감독에 대한 싸늘한 여론을 단번에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이번 유럽 평가전을 통하여 최종예선 때와는 다른 신태용 축구만의 색깔과 희망을 보여준다면 가능성은 열려있다.

무엇보다 신태용 감독 본인부터 변해야 한다. 신감독 본인부터가 지난 최종예선 과정에서 드러난 각종 문제점과 시행착오에 대하여 원점에서부터 다시 점검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5일 오후(현지시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분요드코르 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경기. 우즈벡과 0-0 무승부를 거두며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 지은 한국 선수들이 신태용 감독을 헹가래 하고 있다.

5일 오후(현지시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분요드코르 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경기. 우즈벡과 0-0 무승부를 거두며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 지은 한국 선수들이 신태용 감독을 헹가래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표팀 감독을 맡은 지 얼마되지 않았음에도 신 감독은 그간 쓸데없는 언행을 너무 많이 저질렀다. '졸전' '잔디' '페르시안' 같은 발언에서 보듯이 문제점을 지적받을 때마다 잘못과 책임을 인정하기보다는 외부적 요인만 탓하는 자기방어적인 태도가 특히 도마에 올랐다. 축구팬들이 대표팀 감독에게 기대하는 것은 여론의 반응에 일비일희하며 구차하는 변명과 자기 합리화를 하는 모습이 아니라 확고한 원칙과 비전으로 대표팀을 장악할 수 있는 리더십이다.

최종예선 당시 "내가 하고 싶은 축구보다는 결과를 내는 게 중요했다"는 신 감독의 항변에도 물론 일리는 있지만 졸전에 대한 싸늘한 여론에도 불구하고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하고 헹가래를 치며 자축하거나, 정작 비판과 문제제기에는 날선 반응으로 일관한 장면 등은 문제점에 대한 개선 의지보다는 자꾸 '남탓'에만 급급한 모습으로 비쳐지며 더 큰 실망감을 준 게 사실이다. 그리고 이는 홍명보나 슈틸리케같은 실패한 전임자들의 데자뷰와도 겹쳐지면서 '과연 신태용 감독이 이들과 무엇이 다른가'하는 의구심을 증폭시킨 측면이 있다.

대표팀 감독에게 팬들 및 언론과의 원할한 소통은 매우 중요하다. 신 감독이 연령대별 대표팀 감독 시절부터 자주 도마에 올랐던 것은 본인부터가 연이은 인터뷰 실언 등 미숙한 언론 대응에서 비롯된 측면도 컸다. 신 감독 본인의 노력뿐만이 아니라 협회에서도 감독의 이미지를 보호하고 관리할수 있는 홍보담당관이나 미디어 전문 인력을 좀더 확충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대표팀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이나 철학에 대해서도 더 확실하고 구체적인 비전 제시가 있어야 할 것이다. 신 감독은 본선진출이 확정된 직후 "월드컵에서는 공격축구를 보여주겠다"는 선언으로 눈길을 끌었다. 강팀을 상대로도 내려앉아 수비만 하지 않고 공격적으로 같이 맞붙어서 경쟁력 있게 이기는 축구는 프로축구 성남이나 연령대별 대표팀 감독 시절부터 신감독이 강조해온 축구철학이기도 하다.

감독이 자신이 추구하는 축구철학과 색깔을 팀에 주입하겠다는 것은 당연히 존중되어야한다. 다만 우려되는 점은, 신 감독이 지난 최종예선에서 드러난 '졸전'의 원인이나 팀운영을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단지 "공격축구를 하지 못해서" "시간이 부족해서"라는 안이한 시각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다.

신 감독은 연령대별 대표팀 시절 자신이 원하는 공격축구를 마음껏 시도하고도, 2016 아시아 챔피언십 결승 도하 참사(한일전 2-3 역전패). U-20 월드컵 16강전 포르투갈전 완패(1-3) 등 공격축구에 대한 무리한 욕심과 전술적 자충수로 쓴 맛을 본 경우가 여러 번 있다. '공격이냐 수비냐' '신태용 스타일이냐 아니냐'하는 것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팬들과 언론이 진정으로 신태용 축구에게 요구하는 것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 상황에 걸맞은 '합리적인 판단력'이다.

지난 최종예선 당시 도마에 올랐던 신 감독의 리더십은 '시간과 조건의 제약'을 감안하더라도 고개를 갸웃하게하는 부분이 많았다. 기껏 K리그의 협조까지 받아가며 조기소집까지 단행했음에도 정작 실전에서는 해외파에 대한 집착으로 조직력 효과를 스스로 반감시킨 경우가 대표적이다.

또한 신태용 감독이 주로 '빅매치'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을 때마다 반복되는 공통점은, 자신의 전술적 고집을 지나치게 밀어붙이다가 의도대로 경기가 풀리지 않을 경우 그대로 자멸하는 패턴이다. 사실 이는 신태용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철학이나 색깔의 차이라기보다는, 감독으로서 팀운영에 대한 기본적인 판단력이나 임기응변, 결단력의 차원에서 비롯된 문제가 더 컸다. 단순히 시간이 흐르고 공격축구를 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감독 스스로의 의식부터 바뀌어야만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만화축구'를 시도했던 조광래 감독이나 '원 팀'을 이야기하던 홍명보 감독, '점유율 축구'를 추구하던 슈틸리케 감독에 이르기까지. 이들 모두 자신이 원하는 선수들로 팀을 구성했고, 자신이 추구하는 축구철학대로 팀을 운영했다. 시간도 충분히 주어졌다. 하지만 하나같이 결말은 좋지 못했다.

조금씩 상황의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인 이유는 대표팀을 이끌어가는 데 있어서 자신의 주관적 신념과 고정관념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감독의 소신대로 팀을 이끌어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눈과 귀를 닫아건 채 합리적인 소통이나 외부의 비판을 외면하다 보면 결국 발전하지못하고 점점 고립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만일 신 감독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 주변에 '제대로 된 조언을 해줄 인재'는 과연 얼마나 있는지도 이번 기회에 한번쯤 돌아봐야할 필요가 있다. 월드컵같은 큰 무대는 선수들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감독의 주변을 받쳐줄 코치진을 비롯한 다양한 스태프들의 역할과 경험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신 감독은 김남일과 차두리같이 현역 시절 이름값은 화려하지만 코치 경험은 극히 부족한 인물들로 코치진을 구성했다. 슈틸리케 감독 시절에도 지적받았던 문제들이다.

히딩크 복귀설이 끊이지않는 배경에는 바로 이런 부분도 간과할 수 없다. 히딩크 감독은 이전의 국내 지도자들과는 달리 월드컵같은 큰 무대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한국축구에 처음으로 제대로 가르쳐준 감독이었다. 히딩크 감독은 2002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코칭스태프로 국내와 외국인을 아울러 각 분야의 최고 스텝으로 구성하며 확실한 시스템을 갖췄다.

최종예선과 월드컵 본선은 또 차원이 다르다. 나름 경험이 풍부하다는 신 감독도 월드컵 본선무대에 준비하는 것은 처음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코칭스태프의 경험부족은 의외로 중요한 변수가 될수도 있다. 신태용호가 월드컵 본선에서 명예회복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축구만이 아니라 그 외적인 부분에서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바로 이번 유럽 원정이 변화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한편으로 팬들에게도 여유와 인내가 필요하다. 최근 축구협회와 대표팀에 대한 불신이 깊어진 나머지 쓴소리를 퍼붓는 일부 팬들의 심경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제 와서 감독교체같은 극단적인 주장은 현실성도 없고 오히려 지나친 비난은 대표팀을 더 큰 혼란으로 몰아넣자는 무책임한 자충수일 뿐이다.

이번 유럽 원정 평가전은 러시아월드컵 본선을 향한 첫 걸음에 불과하고  본래의 목적인 해외파 선수들에 대한 점검과 실험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승패를 떠나 이번 경기 결과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대표팀을 위해서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눈앞의 결과에만 일비일희하기보다 장기적인 측면에서 대표팀이 얼마나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좀 더 긴 호흡에서 냉철하게 지켜봐야할  필요가 있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축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