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아버지의 술잔

부자지잔(父子之棧) 소고
17.10.07 02:08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지난 1967년에 개봉한 외화에 용문객잔(龍門客棧)이란 것이 있었다. 이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당시에 꽤 히트한 걸로 알고 있다. '용문객잔'이란 용문이라는 곳을 찾은 '객잔', 즉 손님이란 의미다.

열흘간이나 되는 사상 최장의 올 추석연휴가 아직도 이틀(오늘 10월7일 기준)이나 남았다. 무늬만 휴일이었던 까닭에 이 기간 중에도 나는 주근과 야근이 뒤범벅되는 근무에 충실해야 했다. 그제 아들에 이어 딸과 사위도 집에 왔다.

허나 내가 거푸 근무를 하는 바람에 한 자리에 앉아서 오붓한 식사를 한 건 어제 점심이 유일했다. 아내가 정성을 들여 만든 새우꽃게탕이 식탁에 올랐다. 그 환상의 반찬 겸 '안주'에 아들이 사온 이강주를 함께 나눴음 하는 바람은 어서 허물을 벗고 나래를 활짝 펴고자 하는 잠자리 유충의 간절한 소원과도 같았다.

그러나 어제도 야근이었기에 결단코 술은 단 한 모금조차 마시면 안 되었다. "선물로 들어온 좋은 술 소곡주가 있는데 아들과 사위도 한 잔씩들 하지?" 술이 약한 사위는 사양했지만 부전자전이랬다고 아들은 씨익 웃음으로 화답하기에 금세 고무되었다.

아들의 앞에 술을 가득 따라주었다. "아빠도 한 잔만 하셔요." "아녀, 난 공사구분이 명확하잖니? 내일은 쉬니까 점심에 마실 게." 대낮이라서 더는 안 마시겠다는 아들에게 한 잔의 술을 더 따라줬다. "저만 마셔서 죄송해요!"

아들의 그 말에 오래 전 세상을 떠나신 선친이 아쉬움과 그리움의 이중 무지개로 다가오면서 잠시 눈앞이 흐려졌다. 아버지께선 생전에 물보다 술을 더 좋아하셨다. 그러나 그 술이 원인이 되는 바람에 너무도 일찍 타계하셨다.

가뜩이나 '이가 서 말'인 홀아비였던 선친께선 술만 드시면 그렇게 주사(酒邪)가 심했다. 그래서 다정한 부자간의 술잔 나누기, 이를테면 부자지잔(父子之棧)은 그 사다리마저 아예 생성조차 될 수 없었다.

내가 어렸을 적엔 하는 수 없었을지라도 나이가 굵어진 다음에 "오늘은 우리 아들이랑 한 잔 할까?"라는 아버지의 말씀과 행동이 연결되었더라면 오죽이나 좋았을까! 그러한 상실감과 바위처럼 묵직한 허전함 때문일까... 나는 지금도 아들과 곧잘 술잔을 나눈다.

아들과 마시는 술이 세상에서 가장 맛난 때문임은 구태여 사족의 강조다. 딸의 선물과는 별도로 아들은 이강주 외 아주 고가의 홍삼제품 건강기능식품까지를 선물로 가져왔다. "이 비싼 걸 뭣하러?"라면서도 아들의 남다른 효심이 거듭 고마웠음은 물론이다.

지금 시간은 야근 중에 동료와 교대를 마친 새벽 1시 56분. 이제 4시간 후면 퇴근이다. 그리고 이틀을 쉴 수 있다. 오늘 점심을 먹고 나면 아들도, 딸 내외도 올라간댔다.

하지만 오늘은 작심하고 술을 마실 수 있는 날이다. 아들의 잔에도 내 잔에도 사랑과 고마움의 술을 가득 채울 요량이다. 조선 중기부터 전라도와 황해도에서 제조되었던 조선 3대 명주 중의 하나라고 했다.

또한 배와 생강으로 빚어 사람 몸에 좋은 술이 '이강주'라지? 너는 오늘 내 손에 죽었다!

첨부파일
이강주.png

덧붙이는 글 | 없음



태그:#술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