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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 무숙씨는 외며느리다. 아버지는 1남 6녀 중 장남이자 2대 독자니 엄마는 시누이가 여섯에 위로는 시할머니와 시어머니 시아버지까지 그야말로 층층시하였다. 같은 처지를 한탄할 동서 하나 없이 시월드에 홀로 선 외로운 섬 같은 엄마의 시월드 이야기는, 끝도 없는 고된 노동뿐만이 아니라 마음 하나 터 놓을 데 없는 억울함과 외로움의 역사이기도 하다.

엄마가 스물셋에 시집을 왔으니 77세인 올해까지 54년 동안 명절만 108번을 치른 셈이다. 인간사 고뇌가 모두 108번뇌라는데 엄마의 수고로움은 한 바퀴를 다 돌고 끝난 걸까?

시누이 '화투판' 술상까지 차려줬던 명절... 병이 날 수밖에

 결혼식 사진. 무숙씨가 며느리로서의 삶을 시작하던 날.
 엄마의 결혼식 사진. 무숙씨가 며느리로서의 삶을 시작하던 날.
ⓒ 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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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서울로 살림을 나오고 몇 해는 아기를 등에 업고 명절 보따리를 지고 5시간이 넘는 입석 기차를 타고 시댁에 내려갔다. 어린 시누이들의 명절옷과 시어른들 입 다실 간식거리, 차례상에 올릴 과일 몇 개를 사가지고 가서는 아기를 내려놓기 무섭게 부엌에 가서 차례 준비를 했다. 나물을 무치고 전을 부치는 중간중간 시어른들이 드실 술상을 봐야 했다. 중간중간 우는 아이를 보는 것도 엄마 몫이었다. 아버지는 제사상에 올릴 밤을 깎아주는 것으로 자기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했다.

결혼하고 7년 만에 시아버지가 중풍으로 돌아가시자 첫 제사부터 무숙씨가 떠맡았다. 원래도 살림에 손을 대지 않던 시어머니는 바람만 피우다 죽은 남편이 밉다는 핑계로 제사를 나 몰라라 했던 것이다. 그때부터는 모든 명절이며 제사가 우리 집에서 이루어졌다.

평생 과일 장사며 화장품 장사며 일을 손에 놓아본 적이 없는 엄마는 명절이 다가오면 한숨이 깊어지고 걱정이 많아졌다. 또 뭘 가지고 명절을 지낼지 없는 돈에도 챙겨야 할 것은 많았다. 김치도 미리 담가야 하고 식혜도 하고 떡도 하고... 해야 할 일 목록들이 엄마 머리 속을 꽉 채웠다. 보름도 전부터 차례상에 올릴 알 굵은 사과며 배를 사다 우리들 손이 닿지 않는 선반에 올려놓았다.

송편을 찔 솔잎은 이미 봄부터 냉동실에 잠자고 있었다. 나박김치도 미리 담고, 엿질금을 사다 식혜를 안쳤으며, 바싹 마른 묵나물들을 미리 꺼내 불리고 데쳐 놓았다. 송편을 빚고, 전을 부치고 나물을 무치는 일이 추석 전날 밤이 늦도록 계속되었다. 온몸에서 기름내가 진동을 했고 그 많은 음식을 혼자 하다시피 한 엄마는 막상 냄새에 질려 음식 맛도 모르겠다고 했다.

엄마의 명절이 불합리하고 버거워 보인 건 비단 명절상 차림 때문만은 아니었다. 명절 며칠 전부터 들이닥친 할머니와 고모들은 명절이 지나고도 며칠을 묶다 갔다. 단칸방에 혹은 두 칸 방에 그 식구들이 다 북적대는데도 늘 부엌에서 일을 하는 것은 엄마 혼자였다. 빈둥대기가 민망했는지 저마다 만만한 나에게 눈총을 주며 이 사람 저 사람 시켜대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면 나도 심통이 나서 꾀를 부렸고 엄마 혼자 고스란히 그 일을 다 했다.

고모들이 시집을 간 후에는 우리 집이 고모들의 친정이 되었다. 명절 당일 늦게 나 다음날 도착한 고모와 고모부 조카들은 최소 1박 2일은 기본이었다. 화투판이 벌어졌고 저녁엔 술상이 차려졌다. 역시 친정이 편하고, 언니 음식이 맛있다는 소리와 함께 술이 한 바퀴 돌고 나면 목소리들이 높아졌다. 저마다 집안이 망해 공부를 못한 얘기며 고생했던 옛날 얘기를 하다가는 싸움이 났다.

며칠째 수없이 밥상과 술상, 차례상을 차리느라 눈도 못 뜨는 엄마는 먼저 자지도 못하고 앉아 있다가 그 싸움의 뒷설거지까지 다해야 했다. 처음엔 웃으며 부어라 마셔라 노래를 하고 시작된 술자리는 늘 와장창 싸움으로 끝이 났다. 밖으로 돌며 딴 살림을 차렸다 일찍 간 할아버지 때문에 고생했다는 원망은 살갑지 못한 아버지를 향한 설움으로 돌변했고 마지막 화살은 우리 엄마 무숙씨를 향해 터져 나왔다.

몇 날 며칠을 밥을 해 바치고 술상을 차리고 시누이 남편들 술주정까지 다 받아내도 누구 하나 고맙다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 눈에는 그저 맏며느리이니 당연했다. 가끔 분을 참지 못한 내가 엄마 대신 싸움에 나서 봤지만 어린 조카년이 배웠다고 어른 무시하냐는 소리를 들을 뿐이었다. 엄마는 집안 시끄러우니 제발 아무 말도 말라고 나를 쥐어박았다.

그렇게 술을 마시고 울고 소리치고 설움을 분출하고 잠이 든 그들은 다음날 느지막이 일어나 엄마가 차린 뜨신 국으로 해장을 하고는 전이며 떡이며 사과 한 알까지 다 나눠 담은 보따리들을 가지고 떠났다. 명절이 끝난 집안은 폭풍이라도 지나간 듯 휑했고 엄마는 참았던 통증과 분노로 병이 났다.

시집 식구들의 애먼 소리에 울타리가 되어주지 않고, 고된 노동에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할 줄 모르는 아버지에게 엄마의 원망이 쏟아져 내렸다. 이제 후폭풍이 불어 닥칠 차례다. 입을 꾹 다물고 원망을 듣던 아버지가 고함을 치면 엄마는 앓아누웠고, 우리들은 풀이 죽어 눈치만 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휑하니 집을 나가 밤늦게 짙은 술 냄새와 함께 돌아왔다.

늘 종종거리며 전을 굽고 떡을 빚고 탕국을 끓여 차례상을 차렸지만 무숙씨는 차례상 앞에선 늘 찬 냄새가 가득한 옷차림으로 뒷바라지만 했다. 퇴주잔을 물리고 음복을 할 때까지 엄마는 부엌을 벗어나지 못했다. 새 옷을 갈아입고 제사상 앞에서 절을 하는 사람은 아버지였고 한복을 입고 앉아 절을 받는 사람은 시어른들, 시누이들은 차려준 밥상을 맛있게 먹을 뿐이었다. 그 모든 일을 해낸 엄마는 얼굴 없는 사람처럼 수고로움에 대한 감사를 받지 못했다.

"안 한다" 말 못한 무숙씨의 속내

 올해 설 차례상, 비용이 얼마? 

(서울=연합뉴스) 김수진 기자 = 설을 1주일 가량 앞두고 차례상을 차리는 데 드는 비용은 재래시장의 경우 약 22만 4천원이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최근 가격 조사 전문 기관인 한국물가정보가 조사한 것으로 지난해 21만 3천원보다 약 5% 오른 것이다. 한편 할인마트에서는 약 28만 1천원으로 조사됐다. 사진은 31일 한 마트에서 차린 표준 차례상. 2016.1.31
 '외며느리'로서 수십번 차례상을 혼자 차렸고, 두 명의 며느리가 있는 지금도 손수 장을 보고 상을 차린다. (해당 사진은 본 글과 관련이 없습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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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54년 동안 무숙씨의 인생에 펼쳐진 명절의 노동의 가치는 얼마일까? 계산을 해보았다. 명절마다 장을 보아 음식을 차리고 차례상을 보는데 보낸 시간은 얼마일까? 54년이니 108번의 명절, 108개의 차례상. 1번의 차례상을 위해 다섯 번 이상 장을 보고, 장 본 재료를 다듬고 나물을 불리고 고기를 재고, 김치를 담고, 떡을 빚고 전을 부친 그 모든 시간이 상 하나에 차림으로 모일 때까지 도대체 얼마의 시간을 잡아야 할까?

명절 당 72시간으로 어림잡아 계산을 하면 7776시간, 324일이다. 그 시간을 손에 물 마를 새 없는 노동과 종종걸음의 장보기로 꽉 채운 것이다. 무숙씨가 며느리로 명절을 보내며 치러낸 노동의 순수 시간... 돈으로 따지면 얼마나 될까? 2017년 현재 최저임금이 6470원이니 5031만720원이다. 이 계산에는 음식으로 물질화된 노동만 쳤을 뿐, 감정노동, 돌봄 노동 등은 빠져있다.

나는 돌아서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밥과 찬을 차려내고, 쓸고 닦는 가사 노동에 지치면서 '시지프스는 여자임에 틀림이 없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명절의 그늘 아래 며느리로서 살아온 '시지프스 무숙'의 시간은 그녀 얼굴에 깊은 주름살로만 남았다.

지금 무숙씨는 손주를 보고 병든 남편의 수발을 들고 있다. 아직도 집안의 여가장이다. 현역이다. 이번 추석에도 엄마는 손주를 보고 살림을 하는 틈틈이 명절 장을 봤다. 이제는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아 자꾸 빠트린다고 하며 종종걸음으로 집앞 시장을 다녀온다. 어린 아이 둘을 키우는 맏며느리며 직장에 다니는 둘째 며느리가 있지만 아직도 그저 본인의 일이려니 한다.

당신 살아있는 동안은 당신 식대로 하고 자기 죽은 다음에는 제사를 지내든 말든 알아서 하라고, 세상이 변했고 자신들의 세대가 끝나가는 것을 받아들이는 중이다. 가끔 부화가 치밀면 '이노무 팔자는 죽기 전에는 끝이 안 난다'며 투덜거리지만 점점 선선해지는 기색이시다. 엄마의 평생 모토, '나 하나 참으면 집안이 다 편하다'가 젊을 때는 자기 최면과 정신 승리의 말이었다면 이제는 도가 튼 것 같다. "엄마 참지 마. 이제 그냥 식구들 모여 사먹고 말자" 해도 "몸 움적거릴 수 있을 때까지는 할란다" 한다.

이번 추석엔 며느리들과 함께 이른 차례상을 차리고 아들 며느리를 사돈집으로 보낸 후 낮잠을 주무셨다. 그리고 저녁엔 나와 영화 구경을 갔다. 77년 평생 처음 있는 명절의 자유. 시집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 명절이 준 평화요, 여유였다.

이 글을 쓰다 문득 궁금해졌다. 억울하고 힘들었을 텐데 왜 한 번도 '안 한다'고 투정 한번 하지 않았는지 엄마의 속내가 궁금했다.

" 뭐... 내 살아온 삶이 그랬으니까... 크면서 부모한테 배운 게 그거지. 조상 잘 모셔야 자식들이 잘된다고 하니까... 이제 늙어서 안 한다고 누가 뭐라기야 하겠냐만 하다 안 하면 자식들 잘못 될까봐 겁도 나고..."

기가 막힌다. 해석하자면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와 모성본능의 콜라보가 낳은 무숙씨의 명절 54년이었던 거다.

내가 "엄마 조상 잘 만난 자손들은 다 해외 여행 가고, 조상 덕도 못 본 우리 같은 사람들이 조상 챙긴다고 이 고생이래" 했더니 

"지 고생이 지 복이지 왜 조상 탓을 해. 그래도 난 내가 어려워도 성심껏 해서 지금 이나마도 자식들 별 탈 없이 산다고 생각해. 건강하고 남한테 돈 꾸러 안 다니면 되는 거 아니냐? 하긴 요즘에는 명절에 각자 자기 집으로 간다고들 하기는 하드라만... 하긴 난 나 타고난 세월대로 사는 거고, 요즘 사람들은 요즘 세월대로 사는 거지 뭐."

쿨 하다. 무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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