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블레이드 러너 2049 >의 한 장면

영화 < 블레이드 러너 2049 >의 한 장면 ⓒ 소니픽쳐스코리아


올 가을 화제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가 정식 개봉을 앞두고 6일 '유료 시사회' 명목의 선개봉을 통해 국내 영화팬들과 첫 만남을 가졌다.  

앞선 1편(1982년작)이 제작 당시엔 흥행 참패+혹평에 시달렸지만 후일 각종 편집판 등을 통해 기사회생+재평가 받은 바 있다. 그런 만큼 이번 35년만의 속편에 큰 기대감이 모이고 있다. 두 작품 모두 영화 음악계의 거장들이 스코어를 담당한 만큼 이를 비교해서 들어보는 것도 나름의 흥미거리 중 하나다.

<블레이드 러너>는 그리스 출신의 세계적인 작곡가+신시사이저 연주자인 반젤리스(Vangelis)가 음악을 맡았고 주요 수록곡들은 국내 각종 방송 BGM으로 널리 사용되었기에 제목은 잘 모를 지언정 멜로디 만큼은 친숙한 편이다. 때마침 추석 당일인 지난 4일 EBS에서 이 영화를 방영하면서 두 작품 모두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새롭게 모으기도 했다.

반면 <블레이드 러너 2049>는 블록버스터 영화의 단골 손님인 한스 짐머, 그리고 신예 벤자민 월피쉬가 참여했다. 두 사람은 올해 초 개봉된 <히든 피겨스>로 주요 영화제 음악상 후보에 여러 차례 노미니될 만큼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영화만큼 우여곡절 많았던 <블레이드 러너> 사운드트랙

 거장 반젤리스가 음악을 담당한 < 블레이드 러너 > 사운드트랙.  영화 첫 개봉 후 12년이 지난 1994년이 되서야 뒤늦게 정식 발매되었다

거장 반젤리스가 음악을 담당한 < 블레이드 러너 > 사운드트랙. 영화 첫 개봉 후 12년이 지난 1994년이 되서야 뒤늦게 정식 발매되었다 ⓒ 워너뮤직코리아


1982년 개봉된 <블레이드 러너>는 스튜디오의 악명 높은 '가위질 편집'으로 유명세를 떨친 할리우드 작품 중 하나였다. 덕분에 감독판, 파이널 컷 등 훗날 각양각색의 버전이 재개봉, DVD 출시될 만큼 영화팬들에게 혼란을 끼치기도 했다.

이 작품의 OST 역시 나름 우여곡절을 많이 겪은 바 있다. 처음 개봉된 이후엔 골든글로브, 영국 아카데미 어워드 음악상 후보에 오를 만큼 반젤리스의 음악 역시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정작 그 당시엔 음반으론 발매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같은 해 톰 스콧(색소폰), 닐 스터벤하우스(베이스), 이안 언더우드(키보드) 등이 참여한 '뉴 아메리칸 오케스트라'라는 스튜디오 유명 세션 연주인 그룹이 영화에 사용된 주요곡을 재편곡+녹음한 음반이 발매되긴 했지만 1970~1980년대 이지 리스닝 계열의 연주 음반 형식이어서 반젤리스가 애초에 구현한 음악과는 거리가 멀었다.

 뉴 아메리칸 오케스트라가 재편곡 녹음한 < 블레이드 러너 > 연주곡집.  영화 포스터 이미지를 사용했지만 이 음반은 정식 사운드트랙이 아니다.

뉴 아메리칸 오케스트라가 재편곡 녹음한 < 블레이드 러너 > 연주곡집. 영화 포스터 이미지를 사용했지만 이 음반은 정식 사운드트랙이 아니다. ⓒ 워너뮤직코리아


1989년엔 <불의 전차> <동물의 묵시록> <오페라 새비지> 등 반젤리스의 주요 영화 음악 삽입곡을 모은 컴필레이션 음반 < Theme > 발매를 통해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일부 곡 (러브 테마, 엔딩 테마 등)이 공식적으로 음반화 되긴 했지만 팬들의 갈증을 채워주기엔 다소 부족했다. 1992년 감독판 재개봉에도 요원했던 정식 사운드트랙 음반 출시는 또 몇해가 지난 1994년이 되어서야 이뤄진다.

전체적인 음반의 분위기는 1970년대 크라프트베르크, 탠저린 드림 등의 독일 그룹, 그리고 반젤리스 본인이 추구했던 일렉트로닉 음악의 기조를 유지한 채 후일 '엠비언트', '뉴에이지' 장르로 분류될 법한 몽환적이면서도 실험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 특히 1980년대 반젤리스의 주요 장비였던 야마하 CS-80 신시사이저의 진가가 <불의 전차>와 더불어 본작에서 크게 빛을 발한 작품이기도 하다.

수록곡 중 `Blade Runner (End Titles)`은 과거 MBC 주말의 명화, 특선 영화의 오프닝 음악으로 자주 사용되면서 대중에게도 제법 친숙한 곡이다. CD 발매 이후 국내 FM을 통해 종종 울려퍼진 `One More Kiss, Dear`는 1950~1960년대 스탠다드 재즈 풍의 보컬 곡으로 재즈 피아니스트 출신의 음반사 A&R 담당자였던 돈 퍼시벌이 노래했다.

`Tales of the Future`에선 과거 록그룹 아프로디테스 차일드 시절 반젤리스의 동료 데미스 루소스가 기괴하다 싶을 만큼 하이톤의 소름 돋는 목소리를 들려준다.

한편 또 다른 보컬곡 `Rachel's Song`은 과거 `Those Were The Days`로 1960년대 반짝 인기를 모았던 영국의 여가수 메리 홉킨이 참여했다. 음반의 마지막 곡 `Tears In The Rain`은 영화에서도 대미를 장식하는 룻거 하우어의 명대사를 포함하고 있다. 영화와 별개로 <블레이드 러너> 사운드트랙은 음반만으로도 독자적인 생명력과 높은 완성도를 보였기에 지금도 반젤리스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한편 지난 2007년에는 3장짜리 구성의 25주년 기념반이 발매되기도 했는데 여기엔 1994년 음반에는 누락된 연주곡, 이후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신곡 등이 추가되었다. 아쉽게도 이 버전은 국내 온라인 음악 사이트에선 접할 수 없다.

최첨단 전자 사운드의 웅장함, 개별 곡의 매력은 아쉬운 <블레이드 러너 2049>

 영화 < 블레이드 러너 2049 > 사운드트랙

영화 < 블레이드 러너 2049 > 사운드트랙 ⓒ Sony Music


당초 영화가 기획될 당시엔 <프리즈너스> <시카리오> <컨택트> 등 드니 빌뇌브 감독의 전작을 맡았던 요한 요한슨이 또 한번 손을 잡을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한스 짐머 등이 참여하게 되었다. 일부 해외 마니아들 중에선 반젤리스의 음악을 기대하기도 했던 모양이지만 이 역시 실현되진 못했다.

올드팝 4곡을 포함한 5곡의 보컬 곡을 제외한 모든 트랙은 한스 짐머와 벤자민 월피쉬가 만들었다. 35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영화가 최첨단 기술의 CG로 중무장한 것처럼 음악 역시 마찬가지 과정을 거쳤다. 

전편 대비 몇단계 이상 진일보한, SF 영화에 최적화된 신시사이저 연주가 극의 전체를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만큼 천둥을 방불케하는 웅장한 사운드가 <블레이드 러너 2049>를 풍성하게 채워준다.

다만 개별 트랙들의 매력은 반젤리스의 작품에 비하면 살짝 떨어진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낱장의 음반으로 듣기엔 영화 이상의 지구력(?)을 요구하는 효과음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다.

대신 이런 부분은 프랭크 시내트라(`One For My Baby`), 엘비스 프레슬리(`Cant't Help Falling In Love`)의 명곡들이 부족함을 채워줄 것이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라면 제목만으로도 이 곡을 사용한 이유를 대충 짐작할 수 있을 듯 싶다.

한편 극장에서 엔딩 크레딧이 한참 올라간 후에야 들을 수 있는 `Almost Human`은 아델을 연상시키는 목소리로 노래하는 신예 CCM 가수 로렌 다이글의 신곡이다. 가급적이면 끝까지 객석 자리를 지키고 이 곡을 들어보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상화 시민기자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jazzkid 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블레이드러너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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