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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만 남은 물고기한테 새숨 불어넣는 꿈그림

[시골에서 그림책 읽기] 홍종의, 유기훈 <하얀 도화지>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하얀 도화지
홍종의 글·유기훈 그림
국민서관, 2017.6.15. 12000원

겉그림 ⓒ 국민서관
우리는 그림을 얼마나 알까요? 어쩌면 우리는 그림이란 무엇인가를 거의 안 배우거나 못 배운 채 어른이 되고, 어른이 되고서 아이를 낳으며,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되지는 않을까요?

아이는 모두 그림을 매우 좋아합니다. 그림을 안 좋아하는 아이란 없습니다. 그런데 저 스스로 아이인 나날을 보내고서도 왜 아이가 그림을 좋아하는가를 미처 짚지 못했습니다. 저 스스로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라 아이를 낳고서도 한참이 흐른 뒤에 비로소 그림을 새삼스레 바라봅니다.

물고기는 땅에 떨어졌어.
그러나 다시 강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어.
강물이 깨끗해지기를 기다리기로 했지. (3쪽)

그림책 <하얀 도화지>(국민서관 펴냄)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서로 맞물리도록 엮습니다. 먼저 서울하고 냇물을 엮습니다. 아버지하고 딸을 엮지요. 서울에서 냇가로 마실을 나온 아버지하고 딸이 냇가에서 말라죽어 뼈만 남은 물고기를 보아요. 뼈만 남고 죽은 물고기는 냇물이 너무 지저분해서 더는 살 수 없다고 느껴서 냇물에서 땅으로 뛰쳐나왔다지요.

이 대목에서 아이는 뼈만 남은 물고기를 눈여겨봅니다. 아이 아버지는 그만 쳐다보라고 하지만 아이는 마음에서 못 잊습니다. 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뼈만 남은 물고기'를 하얀 종이에 그려요. 그리고 뼈만 남은 물고기한테 요모조모 이쁜 빛쫑이로 비늘이랑 몸을 입혀 주고 눈알까지 새로 그려 줍니다.

'미안해! 물고기야.'
집으로 돌아온 소녀는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기로 했어.
제일 먼저 물고기 머리뼈를 그렸어.
그러자 강가에 있던 물고기 뼈에서 머리뼈가 감쪽같이 사라졌어.
이상하지? (12쪽)

속그림 ⓒ 국민서관

제가 아이였던 지난날 학교에서는 반공포스터를 비롯한 온갖 정치 외침말이 춤추는 그림을 다달이 그리도록 시켰습니다. 포스터에 표어에 웅변대회에 …… 지난날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꿈을 그리도록 이끌지 않았어요. 한 학기에 한 차례쯤 '상상화'를 그리라고 했습니다만, 여덟아홉 살짜리 아이들이 '상상'이라는 한자말을 제대로 알 턱이 없어요.

학교에서는 그저 '터무니없는' 것을 생각해서 그리라고만 가르쳤어요. 다시 말해서 아이들 스스로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을 그림으로 담도록 이끄는 가르침은 지난날에 거의 없었다고 할 만합니다. 이러면서 절약, 예절, 산불예방, 협동, 새마을, 국군 아저씨 …… 이런 그림만 그리도록 시켰어요.

사회 흐름대로 아이들을 얽매거나 옥죈 지난날 모습이라고 느낍니다. 스스로 새롭게 짓는 꿈이 아닌, 스스로 곱게 가꾸는 사랑이 아닌, 스스로 동무하고 손을 맞잡고 서로 돕는 길이 아닌, 딱딱한 사회에 길들이는 그림만 가르쳤다고 느껴요.

한 마디로 간추리자면 지난날 학교에서는 스스로 마음에 품고서 가꾸려고 하는 꿈을 하얀 종이에 티없이 맑은 숨결로 그려 넣으면, 이러한 그림을 누구나 스스로 이룰 수 있다고 하는 뜻을 안 가르쳤지 싶어요.

이제 물고기 그림을 완성하기로 했지.
소녀는 뼈 위에 살을 붙이고, 비늘을 덮어 주었어.
지느러미를 달아 주고 마지막으로 눈을 그려 넣었어. (20쪽)

속그림 ⓒ 국민서관

그림책 <하얀 도화지>에 나오는 아이는 티없는 마음으로 뼈만 남은 물고기를 그렸고, 뼈만 남은 물고기를 그리고서 빛종이를 붙여서 새로운 몸을 선물했습니다. 아니 새로운 물고기를 꿈으로 빚었지요.

이때에 냇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뼈만 앙상하게 남은 채 말라죽은 물고기한테 어떤 일이 생길까요? 냇물은 맑아질 수 있을까요? 앞으로 냇물에 참말로 물고기가 헤엄치고 아이들은 홀가분하게 냇물로 뛰어들어 신나게 물장구를 치면서 물고기한테 어울려 놀 수 있을까요?

우리 어른들은 서울 한복판에서도 맑은 냇물이 흐르는 삶터가 되도록 힘을 모을 만할까요? 우리 아이들이 서울이고 시골이고 정갈하며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누리면서 물고기하고도 새하고도 풀벌레하고도 나무하고도 사이좋게 어우러지는 땅이 되도록 온힘을 기울일 만할까요?

꿈을 그려서 꿈을 이루는 작은 이야기를 다룬 그림책 <하얀 도화지>입니다. 아이들이 꿈을 마음에 종이에 그리면서 시나브로 이루는 즐거운 이야기를 가만히 보여주는 그림책입니다. 기쁜 꿈을 그리려는 마음을 다룹니다. 고운 사랑을 그리려는 손길을 다룹니다. 함께 노래하고 웃는 마을살림을 그리려는 따스한 눈빛을 다룹니다.

덧붙이는 글 | <하얀 도화지>(홍종의 글 / 유기훈 그림 / 국민서관 / 2017.6.15.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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