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는 없다. '공영방송' KBS가 가장 많았다. JTBC는 단 한 편만을 선보였다. 전통적으로 파일럿 프로그램이 시험무대에 명절 연휴. 역대 가장 긴 올 추석 연휴야말로 방송사들이 파일럿 예능 프로그램을 '시험'해 볼 수 있는 명절 '특수'라 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 와중에, 양대 공영방송 노조의 총파업으로 인해 MBC와 KBS의 희비가 엇갈렸다. MBC는 명절 '특수'였던 <아이돌 육상 대회>의 녹화조차 진행하지 못했던데 반해, KBS는 무려 8개의 신규 프로그램을 이번 연휴 기간 맛보기로 선보였다. 지난 5일 방송된 KBS <1%의 우정>은 실시간 검색어 1위와 함께 시청률 6.9%를 기록하며 정규편성의 가능성을 한껏 높였다.

같은 날 첫 회를 방송한 SBS <내 방을 여행하는 낯선 이를 위한 안내서>(이하 <내 방 안내서>를 비롯해 각 방송사에서 5일까지 방영한 예능 파일럿 프로그램을 '맛보기' 해 봤다. 이미 10회 방영이 예정된 <내 방 안내서>를 제외하고, KBS <가족의 발견>(4일 방송)과 JTBC의 <이론상 완벽한 남자>(2일 방송), tvN <20세기 소년 탐구생활>(5일 방송)은 모두 정규편성이 확정되지 않았다.

SBS <내 방을 여행하는 낯선 이를 위한 안내서>

 sbs <내 방 안내서>의 한 장면.

sbs <내 방 안내서>의 한 장면. ⓒ sbs


아마도 이 프로그램의 메인 아이디어를 낸 작가 혹은 PD는 환호를 지르지 않았을까. 카메론 디아즈, 주드 로, 잭 블랙 등이 출연한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2006)에서 소개됐던 '홈 익스체인지'(집 바꾸기 여행)라는 콘셉트를 길어 올린 제작진은 분명 프로그램의 인기를 자신했지 모를 일이다. 제작진은 이 형식을 출연자 중 한 명인 배우 박신양의 목소리로 이렇게 소개했다.

"1950년대부터 유럽의 몇몇 선생님들은 특별한 인생 수업이라는 생각으로 집을 바꾸는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갈수록 '홈 익스체인지' 여행은 보편화됐고,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무려 10만 명  정도가 집을 바꾸는 여행을 즐기고 있답니다."

그러니까 해외에 사는 이와 집을 바꾸어 열흘 간 지내는 이 여행은 지금 한국 예능이 활발하게 소비 중이고 시청자들이 즐기고 있는 형식을 총망라했다고 과언이 아닐 것이다. 기본적으로 <나 혼자 산다>류의 (집 공개를 전제로 한) 관찰 예능이 가능하고, <꽃보다 할배> 이후 유행한 해외여행 콘셉트가 기본 전제이며,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와 같이 한국과 서울을 방문한 외국인의 체험기까지 아우를 수 있는 비빔밥 혹은 종합선물세트라 할 만 하다.

여기에 박신양을 위시해 혜민 스님, 박나래 등 출연진의 면면도 균형감 있고 신선하다. 은퇴 이후 <내 방 안내서>로 복귀(?)하는 손연재의 캐스팅은 신의 한수다. 미 LA에서 온 DJ 스쿱 데빌이나 덴마크 코펜하겐의 '청녀' 정치평론가 니키타(과 네덜란드의 제이지, 재즈 그룹   스페인의 예술가 프란세스카 로피스) 등 외국인 캐스팅도 기대를 모으게 한다. 5일 첫 방송된 <내 방 안내서>의 시청률은 4.2%(이하 닐슨코리아 기준). 목요일 오후 11시 시간대의 새로운 강자가 출현한 느낌이다.  

KBS <가족의 발견>

 kbs <가족의 발견>의 한 장면.

kbs <가족의 발견>의 한 장면. ⓒ kbs


흡사 과거 SBS 대표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진실 게임>을 빼다 박은 수준이다. 일반인 출연자 중 게스트들이 진짜와 가짜를 가렸던 그 추억의 장수 프로그램 있지 않은가. 게다가 유재석에 이어 MC를 맡았던 송은이까지 게스트로 출연했으니 그 기시감을 더한다. 도대체 KBS 예능국은 왜 이렇게 안일하고 게으른 예능을 '파일럿'이라고 내놓은 걸까.

"진짜 가족과 진짜 가족임을 주장하는 미스터리 패밀리들 속에서 스타의 진짜 가족을 연예인 감정단이 찾아내는 가족 버라이어티 추리쇼 프로그램"이란 제작의도가 무색하게, 뚜껑을 연 <가족의 발견>은 '가족'도 '버라이어티'도, 더군다나 '추리'는 찾기 힘들었다. 그저 딱 한 줄, '스튜디오에서 연예인의 가족 맞추는 <진실게임>' 정도로 식상하다고 하면 너무 야박한 평이려나.

애석하게도, <가족의 발견>의 내용은 그게 전부였다. 가수 강남의 진짜 사촌 동생이라고 주장하는 출연자 7명이 보여주는 '연기'와 '장기자랑'은 새로울 것이 없었고, 배우 김혜은의 시어머니라고 우기는 출연자 5명의 활약(?)은 <전국노래자랑>에서 볼 법한 무대였다. 4일 방송된 <가족의 발견>의 전국 시청률은 5.1%. 개인적으로, 과연 KBS가 이 프로그램을 정규 편성할지, 몹시 궁금하다.   

JTBC의 <이론상 완벽한 남자>

 jtbc <이론상 완벽한 남자>의 한 장면.

jtbc <이론상 완벽한 남자>의 한 장면. ⓒ jtbc


"달라야 한다"거나 "새로워야 한다"는 강박증은 종종 일을 꼬이게 만드는 법이다. 지난 2일 방송된 <이론상 완벽한 남자> 역시 이 강박증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흔한 '커플 매칭' 예능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은 분명 인정해 줄만하지만, 전체적으로 프로그램이 산만했다는 점은 제작진도 부인하기 힘들 것 같다.

"오직 취향과 성향 중심의 과학적 분석을 통해 나만의 이상형을 찾아주는 신개념 SF 커플 매칭"이란 형식은 나쁘지 않다. 오히려 외모와 스펙을 배제한 채 취향 매칭, 생물학적 매칭, 사회성 & 가치관 매칭만으로 커플을 맺어준다는 발상은 시청자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포인트일 수 있었다.

특히나 " 남사친·여사친과 단둘이 마시는 술자리를 허락 하겠는가"와 같이 커플들이 보편적으로 고민하는 지점을 '취향'으로 끌어낸 점은 충분히 공감을 살만한 지점이었다. '끌리는 남성의 체취'를 고르는 매칭도 이색적이긴 마찬가지였다. 실시간으로 출연자들의 감정을 체크하고 보여주는 방식도 신선했다.

하지만, 주인공 여성이 8인의 남성 중 한 명을 고르기 위해 7명을 떨어뜨리는 과정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약점은 제작진이 보완해야 할 숙제라 할 수 있다. 신동엽을 위시한 MC나 패널들의 역할이나 편집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랄까. 커플 매칭 프로그램이란 특성 상, '이론상 완벽한 남자'와 실제는 다를 수 있다는 반전을 꺼내놓을 수 없다면 좀 더 촘촘하고 완급을 조절하는 편집이 시급해 보인다. 

tvN <20세기 소년 탐구생활>

 tvN <20세기 소년 탐구생활>의 한 장면.

tvN <20세기 소년 탐구생활>의 한 장면. ⓒ tvN


"건축은 포도주다"라는 홍익대 건축학과 유현준 교수, "관점은 코끼리다"라는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 송길영 교수, "미술사학은 꽃이다"이라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양정무 교수, "인지심리학은 추리소설이다"라는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김경일 교수, "인구학은 창"이라는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조영태 교수까지.

'<알쓸신잡> 이을 인문학 버라이어티'로 홍보된 <20세기 소년 탐구생활>은 오히려 왜 <알쓸신잡>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는가를 다시금 확인시켜준 예능이었다. 유시민이라는 걸출한 수다쟁이 '지식인'(과 정재승, 김영하, 황교익의) 존재감은 물론 공간과 여행, 그 외의 잡다한 지식방출을 유려한 편집으로 집대성한 나영석 PD와 작가진의 편집 능력은 <알쓸신잡>의 기반이라 할 수 있다.

이와 다르게 스튜디오 토크쇼인 <20세기 소년 탐구생활>은 '퇴사'라는 주제를 놓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방사형으로 펼쳐 놓는 인문사회예술 분야의 토크쇼로서 가능성을 보여주기는 했다. 하지만, 그 방사형의 단편적인 지식들이 하나로 모여지고 큰 줄기의 서사로 이어지는가 하는데 있어서는 아직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송길영 교수가 제시한 데이터를 토대로 5명의 출연자가 각자 알고 있는 지식과 기억을 늘어놓는데 그치는 느낌이 다분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알쓸신잡>에 이어 진행자 이상민과 김준현을 포함해 7명의 출연자 모두가 남성이라는 사실은 심히 유감이다. 비단 '젠더 감수성' 차원이 아니라 훨씬 더 폭넓고 유려한 시각과 관점을 제공할 가능성을 제작진 스스로가 날려 버린 꼴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다만, 심리학이나 미술이론, 인구학 등 그간 TV나 예능에서 쉬이 접할 수 없던 분야의 시각이나 지식 등이 제시될 여지는 충분히 흥미롭다. tvN에 차고 넘치는 여타 스튜디오 토크쇼와는 차별화되는 지점도 분명해 보인다. 오는 7일 2부 방송 예정인 <20세기 소년 탐구생활>이 향후 <알쓸신잡>과 같은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지, 첫회 1%에도 못 미친 시청률을 어떻게 끌어올릴지 지켜보도록 하자.

내방안내서 추석예능 20세기소년탐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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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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