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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마을 반곡리에서 바라본 세종시 금강과 괴화산을 끼고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었던 내 고향 반곡리에서 바라 본 세종시 모습. 세종시는 지금 행정수도 완성의 바람이 일고 있다.
▲ 고향마을 반곡리에서 바라본 세종시 금강과 괴화산을 끼고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었던 내 고향 반곡리에서 바라 본 세종시 모습. 세종시는 지금 행정수도 완성의 바람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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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 행정안전부 세종시 이전(행복도시법) 국회 통과"
"행정수도=세종시, 국가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의 시작입니다."
"행정수도 완성으로 국가균형발전 실현하자!"

고향을 떠나온지 꼭 10년 됐다. 지난 2007년 고향 세종시를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인 충남 태안으로 주소를 옮기고 꼭 한달 만에 불행으로 기름유출사고가 터졌으니 만 10년에서 한달이 모자란다.

그동안 명절이나 계기마다 고향마을을 찾았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달랐다. 추석 명절을 맞아 찾은 고향 세종시에는 곳곳에 현수막이 내걸렸다.

당진-대전 고속도로에서 본 세종시 정부부처가 이전한 세종시 전경. 행안부 이전도 국회를 통과했다.
▲ 당진-대전 고속도로에서 본 세종시 정부부처가 이전한 세종시 전경. 행안부 이전도 국회를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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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종시는 다시 행정수도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달 28일 국회가 행정중심복합도시 이전 제외 대상에서 제외됐던 행정안전부를 세종시로 이전시키는 법적 근거가 담긴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공주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데 따른 것이다.

이 법안은 민주당 이해찬 의원이 지난해 10월 대표발의해 1년 여 만에 통과됐는데, 이번 개정안에 담긴 행정안전부의 세종시 이전은 세종시가 실질적인 행정수도 역할을 하는 데 있어 중대한 역할을 해 줄 것으로 보여 세종시민들의 기대를 높이고 있다.

세종시 곳곳에 내걸린 현수막 세종시 곳곳에는 행정수도 완성으로 국가균형발전을 실현하자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 세종시 곳곳에 내걸린 현수막 세종시 곳곳에는 행정수도 완성으로 국가균형발전을 실현하자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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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 통과에 따라 지금 세종시에는 곳곳에 현수막이 내걸렸다. 현수막을 내건 이들은 행정수도완성 세종시민대책위와 행정수도완성 충청권공동대책위원회로 이들 단체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던 지난달 28일 성명서를 내고 환영의 뜻을 밝힌 바 있다.

이들은 "행복도시특별법 통과는 여·야의 초당적 협력을 토대로 문재인 정부의 공약 이행과 행정수도 완성의 첫걸음을 내딛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면서 "행안부는 지자체와 정부부처의 업무를 총괄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세종시가 실질적인 행정수도 역할을 제고하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세종시 거리 풍경 세종시 대평동 모습. 행복도시법 국회 통과를 환영하는 금남면 이장단협의회의 현수막이 내걸렸다.
▲ 세종시 거리 풍경 세종시 대평동 모습. 행복도시법 국회 통과를 환영하는 금남면 이장단협의회의 현수막이 내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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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또 행안부의 이전과 함께 "향후 행정수도 완성을 위한 로드맵에 따라 박근혜 정부의 직무유기로 지연되었던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세종시 이전을 안행부의 이전 고시에 따라 조속 시행해야 한다"고도 했다.

꼭 1년 만에 다시 찾은 고향마을, 아파트 공사로 변모하는 반곡리

전월산과 세종시 전월산과 세종시 모습. 내 고향 반곡리 인근에서 바라본 전경이다.
▲ 전월산과 세종시 전월산과 세종시 모습. 내 고향 반곡리 인근에서 바라본 전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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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로 바뀌기 전 충남 연기군 금남면 반곡리였던 내 고향은 이제 세종시 반곡동으로 이름도 바뀌었다. 그리고 1년 만에 찾은 고향마을도 변화가 생겼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고향마을 앞마당까지 차로 이동해서 도보로 마을을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온전하게 마을터만은 남아있었지만, 올해는 마을터에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점점 마을터의 모습이 알아보기 힘들게 변하고 있었다. 고향마을에는 반곡리의 지명을 따 반곡공원이 들어서고 생활권으로 지정돼 아파트가 들어선다.

내 고향 반곡리 지난해 추석에 찍은 반곡리 모습으로 이 당시에만 해도 수십년간 살던 집터를 찾을 수 있었다.
▲ 내 고향 반곡리 지난해 추석에 찍은 반곡리 모습으로 이 당시에만 해도 수십년간 살던 집터를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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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반곡리 오른쪽 산등성이의 송신탑이 마을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다. 지난해 추석에 찍은 반곡리 모습.
▲ 내 고향 반곡리 오른쪽 산등성이의 송신탑이 마을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다. 지난해 추석에 찍은 반곡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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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추석에 찍은 반곡리 모습. 중장비들이 곧 개발이 시작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었다.
 지난해 추석에 찍은 반곡리 모습. 중장비들이 곧 개발이 시작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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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아파트 공사가 한창 진행 중으로 차량의 접근도 어려웠다. 하여 멀리서 그나마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그 옛날 뒷산을 기준으로 머릿속에 고향마을을 그렸고, 그 속에서 수십년간 살았던 고향집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제 이 또한 마지막이 될 것 같았다. 아파트가 빼곡이 들어서게 되면 그 때는 정말 고향마을과 고향집이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아득한 추억이 될테니 말이다.

내 고향 반곡리는 지금 변신 중 생활권으로 지정된 반곡리는 현재 아파트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저 멀리 오른편 송신탑이 마을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다.
▲ 내 고향 반곡리는 지금 변신 중 생활권으로 지정된 반곡리는 현재 아파트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저 멀리 오른편 송신탑이 마을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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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가는 길 반곡로라는 이정표가 고향 반곡리로 향하는 길임을 알려주고 있다.
▲ 고향 가는 길 반곡로라는 이정표가 고향 반곡리로 향하는 길임을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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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아파트에 시야가 가려 예전의 고향마을은 카메라에 담을 수 없었지만 변모해가는 고향마을의 모습을 기록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어린 시절의 추억이 남아 있는 고향마을 주변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아직까지 어릴 적 형체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남아있는 추억의 장소가 눈에 들어왔다.

형체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반곡교 이 다리는 아래에서 어릴적 물놀이를 하던 추억이 깃든 곳이다. 오른쪽 낮은 산등성이가 어머니가 고이 잠들어 계시던 선산이다.
▲ 형체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반곡교 이 다리는 아래에서 어릴적 물놀이를 하던 추억이 깃든 곳이다. 오른쪽 낮은 산등성이가 어머니가 고이 잠들어 계시던 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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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고이 잠들어 있던 선산으로 연결되는 다리인데, 유일하게 그 모습이 예전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던 것. 어머니가 잠들어 계셨던 선산은 아직까지 그 형태는 남아있지만 조만간 개발이 시작되면 대학교부지 결정돼 상전벽해가 이뤄질 것이다. 어쩌면 마지막 모습이 될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 다리라도 남아 있어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의 묘소가 있던 선산도 찾을 수 있었는데, 그 다리마저 사라지게 되면 어릴 적 추억이 서려 있는 고향마을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지게 될 것을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짠해졌다.

고향마을을 떠나 이번에는 학창시절의 추억이 서려있는 모교 금석초등학교로 향했다. 모교로 향하는 길에도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 옛날 논과 밭으로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의 땀이 서려 있는 기름진 평야였는데 온통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었다.

어느덧 모교에 도착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학교건물과 함께 그네와 시소 등 추억이 서린 놀이기구도 남아있었는데, 이제는 풀숲만 무성한 채로 달랑 '사랑의 일기 연수원'이라는 간판 하나만 남아있었다. 마치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도 사라져 버린 것만 같아 씁쓸했다.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고향마을과 놀이기구조차 남아있지 않은 모교를 다녀오면서 문득 아버지의 뼈 있는 말이 귓전을 맴돌았다.

"명품도시를 만든다더니 아파트만 잔뜩 짓고 있다. 이게 무슨 명품도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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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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