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개봉돼 천만 관객을 동원했던 <변호인>이 4일 JTBC를 통해 안방극장을 찾았다.

2013년 개봉돼 천만 관객을 동원했던 <변호인>이 4일 JTBC를 통해 안방극장을 찾았다. ⓒ NEW


한 번 본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은 늘 두렵다. 처음 볼 땐 감명 깊었지만 다시 봤을 때 처음의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영화가 있어서다. 반면, 시간이 좀 더 흐른 뒤 다시 보면 감동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오는 영화가 있다. 송강호, 고 김영애 주연의 2013년 작 <변호인>이 그랬다. 

<변호인>은 추석인 4일 오후 추석 특선 프로그램으로 편성돼 TV전파를 탔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영화 <변호인>은 1980년대 대표적인 공안사건인 부림사건, 그리고 이 사건 변호를 맡았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실화를 그린 영화다. 박근혜 전 정권은 이 영화의 소재나 내용이 무척 불편했나보다. 주연배우인 송강호는 블랙리스트에 올라 <사도> 출연 전까지 2년 동안 한 편의 섭외도 받지 못했고, 배급사엔 세무조사 시행명령이 내려졌다. 뿐만 아니라 국가정보원(국정원) 산하 '엔터테인먼트'팀은 이 영화에 맞서 이른바 '국뽕'으로 불리는 애국영화 제작까지 기획했다.

이토록 수난을 당한 영화가 TV전파를 탔으니, 이 감격은 말로 다 하기 어렵다. 이 영화를 방송한 방송사가 JTBC여서 더더욱 감격스럽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땐, 지난 80년대 애꿎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안몰이를 한 신군부 세력에 분노했다. 또 올해 4월 타계한 고 김영애의 연기를 보면서 눈물이 핑돈다. 무엇보다 고문경찰 차동영(곽도원)을 향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라고 외치던 송우석(송강호)의 외침은 지금봐도 전율이 인다.

송우석에게서 '택시운전사' 김만섭을 보다 

그런데 송우석에게서 올해 8월 개봉한 <택시운전사>의 주인공 김만섭을 본다. 송우석은 부산에서 부동산 등기 전문 변호사로 자신의 이름을 알린다. 그는 영업을 위해 나이트클럽에서 명함을 나눠주다 웨이터에게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지역 변호사 업계는 그를 홀대한다. 더구나 송우석의 학력이 고졸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는 더욱 무시한다. 설상가상으로 사법서사들은 송우석이 자신들의 밥그릇을 빼앗아간다며 불만을 터뜨린다.

그럼에도 송우석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는 돈벌이가 될 만한 일거리를 족집게처럼 집어내고, 이렇게 해서 번 돈으로 집과 요트를 손에 넣고 남부럽지 않게 생활한다. 그러던 차 우연히 단골 돼지국밥집 주인아줌마의 아들 진우(임시완)가 공안사건에 연루됐음을 알게 된다. 급히 사건의 전모를 파악한 송우석은 진우의 변론을 맡기로 마음 먹는다. 이 과정에서 송우석은 시국 변호사로 거듭난다.

송강호가 연기한 <택시운전사>의 김만섭도 송우석과 비슷한 길을 간다. 비록 김만섭의 직업이 송우석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김만섭은 사우디 건설현장에 뛰어들어 제법 돈도 벌었고, 택시 운전을 하면서도 이 나라가 나름 잘 산다고 굳게 믿어왔다. <변호인>의 송우석도 진우의 변론을 맡기 전까지 김만섭과 비슷한 태도였고, 데모하지 말라고 진우를 타이르기도 했다.

김만섭은 어느 날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를 태우고 1980년 5월 광주로 가게 된다. 김만섭은 그곳에서 신군부가 시민들을 학살하는 광경을 목격하고, 현실에 새롭게 눈뜬다. 즉, 평범한 소시민이 우연히 시대의 큰 흐름에 빨려들어 새로이 거듭난다는 점에서 송우석과 김만섭은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다.

블랙리스트는 당연한 귀결 

 지난 박근혜 전 정권은 이 영화 <변호인>을 표적 삼아 갖은 탄압을 자행했다.

지난 박근혜 전 정권은 이 영화 <변호인>을 표적 삼아 갖은 탄압을 자행했다. ⓒ NEW


지금 <변호인>을 다시 보니, 박근혜 전 정권이 유독 이 영화를 불편하게 여긴 이유가 또렷이 보인다. 1980년대 신군부의 공안 몰이는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에서 한 단계 진화한 방식으로 부활했다. 신군부가 취약한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해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 교사, 회사원들을 간첩으로 몰았다면 보수 정권은 정부를 비판하는 시민들에게 '종북좌파' 딱지를 붙이고 국정원을 동원해 감시, 탄압한 것이다.

또 두 시절 모두 가장 공영적이어야 했던 언론은 정부 비판의 목소리는 없애고, 정권이 보기 좋아할 뉴스들만 만들어 냈다. 영화 <변호인>에서 송우석의 고교 동문이자 지역 신문사 기자였던 윤택(이성민)은 정권 찬양 일변도의 뉴스를 보고 한숨지으며 이렇게 말한다.

"아직도 방송과 언론을 믿는 사람이 있나?"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져보자. 윤택의 탄식이 비단 1980년대만의 일이었을까?

그뿐만 아니다. 1980년대나 지난 보수 정권시절이나 판·검사들은 정권의 의중에 맞게 형량을 주물렀고, 그 대가로 승승장구했다. 부림사건의 수사검사였던 고영주 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현실을 바꾸고자 몸을 던졌던 이들이 없지 않았다. 송우석의 모델이 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러나 이들은 사악한 정권으로부터 보복에 시달렸고, 고 노 전 대통령은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2007년 '민주적으로' 퇴행의 길을 택했다. 그러나 적폐의 몸통으로 지목 받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적폐청산이 정치보복이자 퇴행적 시도라며 적반하장식 태도를 취하고 있다.

영화 <변호인>은 공안몰이가 횡행했던 1980년대나 지금의 정치현실이나 크게 다르지 않음을 일깨웠다. 이러니 박근혜 전 정권이 이 영화를 블랙리스트에 올린 건 당연한 수순이었던 셈이다.

영화를 다시 보면서 마지막 장면이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는 다수의 변호사들이 피고인의 처지가 된 송우석의 변론에 나서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이제 박근혜 전 정권이 물러난 만큼 마지막 장면을 새롭게 편집했으면 좋겠다. 고 노 전 대통령이 부산 지역에서 민주화 운동을 했던 당시의 사진을 연이어 보여주는 것으로 말이다.

<변호인>은 많은 관객들을 눈물 짓게 했다. 그러나 이제는 눈물 짓는 것으로만 그쳐서는 안 된다. 그보다 1980년대 공안정국이 무슨 이유로 정확히 한 세대가 지나서 부활했는지, 왜 우리는 퇴행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성찰해야 한다. 진정한 적폐청산은 바로 이런 성찰이 전제되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퇴행에 대한 성찰이 없고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측이 주장하는 '정치보복' 프레임을 넘어설 수 없을 것이다.

변호인 송강호 김영애 택시운전사 블랙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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