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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되면 항상 비슷한 내용의 뉴스가 반복된다. 명절 노동으로 힘들어하는 여성의 이야기, 취업을 하지 못해 집에 내려가지 못하는 청년세대, 명절을 외롭게 보내는 독거노인의 이야기가 주로 다뤄진다.

그들만큼 명절이 힘들진 않지만 나도 약간 다른 종류의 고충은 있다. 부모님이 20년 가까이 떡집을 하는 덕에 명절이면 쉬기보다 일하는 날이 더 많기 때문이다.

올 추석도 '떡집 아들'의 본분에 충실할 수밖에 없었다.

떡을 사러 온 건지 먹으러 온 건지

 추석 대목, 당연히 송편이 압도적으로 많이 팔린다
 추석 대목, 당연히 송편이 압도적으로 많이 팔린다
ⓒ 이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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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추석이면 꼭 한 명씩 등장하는 갑질 손님의 유형이 있다. 팔고 있는 송편을 한 움큼 먹고 가는 손님이다.

가게 입장에서 시식은 오히려 권유하는 편이다. 처음 오는 손님도 어떤 맛인지 알아보고 사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유형은 맛을 본다는 핑계로 가게 주위를 어슬렁거리면서 한 자리에서 계속 떡을 먹고 가는 사람들이다.

이번 추석에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한 손님이 오더니 누가 권한 것도 아닌데 포장 중인 떡을 한 개 집어 먹는다. 물건을 고르는 척 하더니 내가 다른 손님과 계산하는 사이에 또 떡을 먹고 있다. 예의상 '한 개 먹어봐도 되요?'라고 물어볼 법도 하지만 그다지 거리낌이 없다. 돈 받고 파는 상품을 마치 자기 집 부엌에 있는 음식마냥 먹는다.

"손님 떡 한 팩 포장해서 드릴까요?"

눈치를 주니 그제야 떡을 산다. 이쯤에서 그만두고 돌아가면 갑질이라고 할 이유도 없다. 떡을 사고 난 뒤엔 더 당당하게 떡을 먹는다. 떡값 1만 원을 냈으니 이 가게 떡은 모두 내가 샀다는 생각을 한것일까. 가게를 안 떠나고 또 떡을 먹더니 대뜸 휴지를 찾는다. 손에 기름이 묻었으니 닦을 휴지를 달라는 이야기다.

"어휴 그만 좀 드세요. 더 드실거면 한 팩 더 사시고요."

대체로 이런 손님들은 제지하면 오히려 화를 낸다. 그렇다고 마냥 냅둘수도 없다. 다른 손님들도 한 개씩 더 먹어보겠다고 자기들에게도 떡을 달라고 하기 때문이다. 방치하면 떡집이 아니라 '떡 뷔페'가 된다.

몇 시간 뒤에 가게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낮에 떡을 다섯 개는 먹고 간 바로 그 손님이다. 욕을 섞어가며 그까짓 떡 몇 개 먹은 걸로 창피를 주느냐고 한참을 항의한다. 손님이 너무 많이 오다보니 대충 알겠다고 하며 전화를 끊을 수 밖에 없다.

사실 이 정도면 큰 손해라고 할 수 없다. 어떤 손님은 추석을 맞아 온가족을 데리고 와서 떡을 한 개씩 먹어보라고 권유한다. 가게 주인이 우리 부모님인지 아니면 본인인지 헷갈릴 정도다. 예닐곱명이서 인당 송편을 서너 개를 먹고 나면 금세 5천원어치가 사라진다. 차라리 안 오는 것만도 못하다.

지민이가 누구십니까?

"인사해야지 이쪽은 지민이 어머님이시다"

안녕하세요. 어휴 많이도 컸네. 대학은 졸업했니? 예 지난번에 졸업하고 취업준비 하고 있습니다. 그래 힘내고 우리 지민이 저쪽에 있는데 인사할래? 하하 잠시만요 지금 너무 바빠서요 다음에 만나면 인사할게요.

아니 근데 지민이가 누구야.

동네에서 한 자리에 20년 가까이 장사를 하다 보니 단골손님이 많다. 그중에는 나의 초중고등학교 동창의 부모님이 가게를 알게 돼서 단골이 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십여 년만에 만나는 친구가 너무 어색하다는 점이다.

그날 가게에 찾아온 지민이 어머님도 이런 경우다. 손님을 핑계로 대충 대화를 얼버무리고 지민이 어머님이 떠난 이후에야 어머니에게 지민이가 누구인지 물어본다.

"기억 안 나? 중학교 때 친구 있잖아."
"친구요?"
"2학년 때 같은 반도 했어~"


계속 생각해봤지만 역시 기억나지 않는다. 십 년도 더 전에 우연히 같은반이 된 뒤로 연락이 끊긴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겠거니 짐작한다. 더군다나 중학교 때의 교우관계란 얼마나 미묘한가. 둘도 없이 친한 친구도 사소한 이유로 적이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러나 한없이 뻘쭘해지지 않기 위해선 '아는 척' 할 수밖에 없다.

엄마, '언니'라는 말을 쓰면 안 돼요

 우리 떡집에서 만든 송편들
 우리 떡집에서 만든 송편들
ⓒ 이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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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게는 분업이 확실한 편이다. 아버지는 주로 떡을 만드시고 어머니는 판매를 한다. 어머니께서 가게에 오는 손님을 부르는 호칭은 대체로 가족 호칭이다. 여자 손님은 '어머님' 아니면 '언니'다. 남자는 '아버님' 아니면 '삼촌'으로 부르신다.

동생이 엄마가 손님을 부르는 호칭을 듣더니 '언니'라는 말을 쓰면 안 된다고 지적한다. 가족 호칭으로 손님을 부르는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줄 수도 있다는 이유다.

"아니 그러면 언니 말고 뭐라고 불러?"
"손님이라고 해 손님"


동생의 지적을 듣는 척 하시다가도 다시 손님이 오면 '언니'라고 부른다. 어머니 입장에서 손님이라는 단어는 되려 의도적으로 거리를 둘 때 사용하는 호칭이다. 예를들어 "손님~ 그 가격에는 다른 떡집 가도 못 맞춰요"같은 상황에서 자주 쓰인다.

그날 벌어진 호칭 논쟁은 '언니'라는 표현이 더 좋다는 한 손님의 의견으로 일단락됐다.

"언니~ 또 오셨어요"
"언니라고 부르면 안 된다니깐"
"나는 언니라고 부르면 좋아~"


나도 가족 호칭을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사회적 관계에서 가족 호칭을 쓰는 경우 문제가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가게에서 가끔 일할때면 보통 '손님'이라고 부르고 아주 나이가 많아 보이는 손님이 올 때만 '어르신'이라는 표현을 쓴다.

동네 장사이다 보니 현실과 이론이 맞지 않는 경우도 많다. 앞서 온 손님처럼 '언니', '동생'하며 부르면서 친밀감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명절 대목이 지나고 나면 돈 세는 재미가 있었다. 상자 한 가득 만원자리가 있어서 한참을 셀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서는 카드로 결제하는 사람도 많고 5만원짜리를 많이 쓰게되면서 돈 세는 재미는 줄었다. 그래도 돈에 관계 없이 가득 있던 떡이 모두 팔린 모습을 뒤로하고 집으로 올 때면 뿌듯함을 느낀다. 이런저런 사건사고가 있었지만 올 추석도 그럭저럭 잘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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