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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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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 어서 빨리 달려!"

충북 옥천 동이초등학교 운동회 릴레이 경기. 엄마는 목에 갯지렁이처럼 핏대를 세워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백군 배턴을 잡은 딸아이가 50미터 정도 앞서 있다. 허나, 또래보다 제법 잘 달리기로 소문난 9살 딸아이는 화장실이 급한 모양새로 종종거린다. 몇 번씩 뒤돌아보기까지 한다. 순간 알 수 없는 의심까지 스친다.

'백군 딸아이가 청군의 스파이로 위장했나?'

백군 쪽에서의 한숨과 야유가 딸아이에게 쏟아진다. 마음이 급해진 엄마의 "빨리 달려!"라는 고함 소리가 목구멍에서 갈라져 나온다. 청군과의 거리는 완전히 좁혀졌다. 양팀 다음 주자는 나란히 바통을 이어 받았다. 결국 그 릴레이 경주에서 백팀은 지고 말았다.

백군 친구들이 아쉬움과 차가움이 담긴 눈빛으로 딸아이를 쏘아본다. 그러나 백군 패배의 장본인인 이 녀석은 싱글벙글이다. 그날 밤, 9살 딸아이의 일기를 본 후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가장 친하고 좋아하는 채라와 릴레이 경주에서 대결했다.
달리기 대장인 나는 채라보다 엄청 빠르다.
그런데 백군이 훨씬 빨라서 내가 먼저 출발해야 했다.
뒤에서 혼자 달릴 채라를 생각하니 마음이 안 좋았다.
채라랑 가까워질 때까지 천천히 뛰었다.
채라랑 함께 들어왔다.
백군 친구들이 나를 밉게 쳐다봤다.
그래도 채라가 뒤에서 혼자 달리지 않아 다행이다.
채라가 꼴등하지 않아서 좋다.
활짝 웃는 채라를 보니 날아갈 거 같았다.'


경쟁. 사전적 의미로는 '같은 목적에 대해 이기거나 앞서려고 서로 겨룸'이다. 현 사회의 엄마들은 이 사전적인 의미에 충실해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들의 행복한 추억을 만드는 운동회에서 조차도 경쟁에서 이기라고 목청이 갈라지도록 질러댔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부끄러웠다.

4일자 뉴스를 보니, 전기차 주도권 경쟁, 프로야구 우승 경쟁, 중소형 아파트 청약 경쟁, 대전 시장 출마 예정자 민심잡기 경쟁들이 보인다. 사전적 의미에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는 경쟁들. 우선 순위를 매기는 경쟁 속에서 살고 있는 내가, 우리 사회 모두가 망각한 것이 있다.

9살짜리 딸아이에게는 있고, 나에게서는 잊혀진 것. 열흘이라는 긴 명절 동안 한 번쯤은 곰곰이 생각해 볼 만한 주제 거리로 괜찮을 것 같다. 깨달음의 크기와 깊이, 질감 등의 차이는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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